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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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글이 될 때까지 7

신상

 

 

박혜경(진홍교회)

 

제가 경남교의강습소에서 악기를 가르치게 된 게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한 가지 일을 한 것 중에 가장 오래 한 일입니다. 그동안 그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가장 힘든 부분이 감사제(강습을 받는 3개월 동안 무사히 강습을 마치게 해 주신 어버이신님 · 교조님께 감사 근행을 올리는 것.)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요즘 애들이 학교나 학원에서 선생님 말씀 안 듣는다고 말을 많이 하는데요, 어른들도 똑같습니다. 애들한테 뭐라고 하기 전에 우리부터 반성해야 합니다. 애들은 혼이라도 내죠. 어른은 그렇게도 못합니다.

언제부턴지 감사제를 준비하면서 드는 생각이 이건 도대체 누구를 위한 행사인가, 이게 나를 위한 행사인가.’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정말 열두 번도 더 난다고 하면 이해를 하실까요? 때로는 이런 식으로 하려면 감사제 하지 말라고 까칠하게 화를 내기도 하고, 안 되면 계속 지칠 때까지 연습을 시켜서 서로 힘들 때가 많았는데, 그마저도 요즘에는 화를 내려다가도 억지로 참고 스스로 맘을 다스리고 다시 들어가서 달래가면서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저와 초창기에 감사제 연습을 했던 분들이라면 샘 성질 많이 죽었네.’ 하실 겁니다. 10년 동안 저도, 사람들도 변해서 예전에는 화내면 심각함을 깨닫고는 연습을 열심히 했는데, 요즘에는 오히려 더 안 하더라고요. ㅠ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제가 지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위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에 겪은 일을 이야기하기 위한 설명입니다. 감사제 연습하면서 제가 서운한 부분을 잘 참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정말 마음속 깊이 단노를 한 게 아니라, 겉으로만 단노를 한 것처럼 보였나 봅니다. 신님은 어쩌면 그렇게 한순간의 서운함을 살펴보시고는 덜컹 신상으로 보여주시는지…….

여러 번 언급한 적이 있듯이 저는 류머티즘 신상을 갖고 있습니다. 그게 모든 신상이 100% 수호를 받을 수 없듯이 저도 조금은 그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이 해이해지든지, 교만해지든지 하면 신님께서 신상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이번에도 그냥 위의 일과 우리 교회 월차제와 다음날 전도청 악기 강습회에서 서서 수업하다 보니 여러 가지 겹쳐서 몸이 안 좋은가 했습니다. 처음에는 악기강습회 다음 날 오른쪽 무릎이 갑자기 부어올라서 걷기가 좀 힘들다고 생각하고는 근행을 마치고 우리 회장님께 수훈을 받았습니다. 회장님이 수훈을 전하면서 저에게 무릎의 연골은 부드럽게 잊는 것인데 혹시나 마음에 연결하는 마음, 부드러운 마음에 맞지 않는 마음을 쓴 것이 없는지, 그리고 류머티즘이 자가면역 질환인데, 보통은 우리 몸에 외부로부터 균이 침투하면 우리 몸에서 알아서 균을 퇴치하기 위해 싸우는데, 류머티즘은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공격하는 병이니 자기 자신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 달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제가 처음 류머티즘이라는 병을 앓고 여기저기 자료를 찾으며 가장 충격적이었던 내용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이젠 하다 하다 남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공격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이 실수를 할 수도 있는데 저는 그런 것을 용납을 못 해서 자신을 자책하고 그게 심하다 보면 굴을 파고 땅으로 들어간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저를 힘들게 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남의 실수도 용납을 못 해서 남을, 옆의 사람을 말로 힘들게 하고 마음을 힘들게 한 적이 많았습니다. 이런 일들을 생각하며 다시 반성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제가 부족 불만을 쌓은 일을 생각해 보고는 감사제 준비하는 과정에서 뭔가 서운함을 갖게 만든 그 사람에게 가서 직접 사과를 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약도 다시 처방을 받고, 무릎에 물도 빼고, 계속 수훈을 받고 나니 차츰차츰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 상급 월차제에 갔다가 전반에 여자악기를 하고 내려왔는데 후반에 손춤 한 명이 안 올라가서 제가 대신 올라갔습니다. 손춤을 추면서 ! 다리가 안 아프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더욱 어버이신님과 교조님께 감사를 드리며 기쁘게 근행을 올렸습니다.

요즘에는 코로나로 인해 제원역할표가 안 오니까 서로 근행에 올라가도 되는지 눈치를 보는데 그러다 보면 그 시간이 지체되는 게 안 맞는 것 같아서 그냥 제가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것도 신님께서 건강을 수호해 주시니까 가능한 일이지, 건강이 허락해 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마음은 근행에 올라가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신상 수호에 대해서 어디서 봤더라 하며 물어서 찾아보니 고본 천리교교조전일화편147. 진정한 구제에 잘 나와 있습니다.

야마토 지방 구라하시 마을에 사는 야마모토 요헤이(與平)의 아내 이사(당시 41)는 오랫동안 하반신 장애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1882년 신기한 구제를 받아 부드득 소리를 내며 일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 손이 약간 떨렸는데 좀처럼 잘 낫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으나 본인은 그것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1884년 여름, 터전으로 돌아와 교조님을 뵙고 그 떨리는 손을 내밀며 숨을 불어 주십시오.”라고 청했다. 그러자 교조님께서는

숨을 불어 주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나, 자네는 다리를 구제받았으니까 손이 약간 떨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말끔히 구제받는 것보다는 조금 남아 있는 것이 전생의 인연도 잘 깨닫게 되고, 언제까지나 잊지 않게 되므로 그것이 진정한 구제인 거야. 사람들은 모두 말끔히 구제받기를 원하지만, 진실로 구제받는 리가 소중한 거야. 숨을 불어 주는 대신 이 책을 빌려 주마. 이것을 베껴서 끊임없이 읽어라.”

라고 깨우쳐 주시면서, 친필 17호 전권을 빌려 주셨다. 그때부터 이사는 손이 떨리는 것은 조금도 괴로움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친정아버지가 베껴 주신 친필을 평생 곁에 두고 읽곤 했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열심히 포교하며 89세까지 장수했다.

이 이야기는 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도 몸이 안 좋아질 때마다 나의 신상에 대해 다시 깨닫고, 그동안 나의 마음과 행동에 뭔가 신님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은 없는지 확인해 봅니다. 그래서 늘 신상과 같이 가까이에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을 보면 신상이 그다지 안 좋은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몸은 조금 불편하지만, 언제든 나의 마음에 따라 쨍쨍한 햇볕이 드는 밝은 날이 되기도 하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답답한 날이 되기도 하니까, 말 그대로 마음에 따라 수호를 해주시니 신님의 마음에 맞는 마음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면 되니 그것 또한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언젠가 어느 교회장님 아드님이 수련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선생님들이 다 웃지도 않고 인상이 안 좋다고 하면서 하는 말이 그래도 용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릅니다. 정말 무늬만 용재였지, 나부터 밝은 마음이 아닌데, 어떻게 웃음이 나고 아이들에게 또는 남에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겠습니까. 늘 이 이야기를 되새기며 밝은 마음으로 웃을 수 있도록 더욱더 마음을 단단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