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 교회본부



cond="$

코로나19 사태에 대하는 우리들의 마음가짐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어버이신님의 수호 덕분으로 선선한 가운데 7월의 월차제를 올렸습니다. 신전강화를 명받았기에 제가 준비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4)

 

아마도 지겹게 듣고 있는 이야기이겠습니다만, 요즘 다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고통을 받고 계십니다. 전 세계도 몇 개월째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어제 기준으로 확진자가 1,444만 명에, 이로 인한 사망자만 해도 60만 명이 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역사회 발생이 10명에서 20명대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좀 잡히는 것 같은데, 지금까지 몇 번이나 거의 종식되나 싶으면 다시 확진자가 늘어나고, 또 이번에는 진짜 종식되나 싶으면 다시 확진자가 늘어나는 것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 사태가 끝나기 전까지 계속 긴장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근에 일부에서 나오는 이야기로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영원히 종식되지 않고 계속 함께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바이러스에 의한 병에 걸렸다가 나으면 그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생겨 다시는 그 병에 걸리지 않게 됩니다. 이것을 면역력이라 하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그 면역력이 3개월밖에 안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코로나19에 걸려 완치가 되었더라도 다시 걸린 사례가 있고, 백신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 효과가 3개월밖에 안 갈 거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결국, 전 세계에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모두 사멸하기 전까지는 언제든지 다시 재발할 수 있고, 사실상 전 세계에 퍼져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완전히 사멸시키기 어려우므로 언제든지 코로나19에 걸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생활 습관과 생각으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고 합니다.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앞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지 않고 계속된다면 우선 해외여행이라는 말 자체가 사라질지 모르겠습니다. 외국에 가더라도 2주간 격리되어야 하고, 들어와서도 2주간 격리되어야 하니 며칠 여행을 위해 거의 한 달 동안 격리를 당해 정상적인 생활을 못 하니 귀찮아서라도 해외여행은 안 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꼭 필요한 업무상 출장 외 웬만한 것들은 온라인 채팅을 통해 일이 진행되고, 접대문화가 사라져 로비를 잘하는 회사보다는 진짜 실력 있는 회사들이 살아남는 사회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교회본부도 현재 상태가 계속된다면 어쩌면 변화가 있을지 모를 것 같습니다. 해외에서 오는 사람들은 2주간의 격리 기간이 있는데, 이런 사람을 38모야에 모아 각 방에 한 명씩 하여 화상 강습 같은 형태로 1인 별석, 1인 강습회 같은 형태가 나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또 월차제와 부인회도 지금과 달라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보는데, 지금껏 전국의 용재들이 다 모이는 형태에서 가까운 지역 용재들만 모이는 형태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사실 우리 진홍교회는 신자들이 몇 되지도 않고, 그분들이 이 기간에도 변함없이 나오셔서 코로나19 사태 전이나 코로나19 사태 중이나 별 변함없이 월차제와 부인회 제전을 올렸습니다. 여러 지역에 산하들이 있고, 신자들이 많아서 이분들이 못 와서 제전에 지장이 생겼다면 상급교회에서 했던 대로 전반까지만 하고 마친다든지 고민을 해볼 건데, 언제나 근행 제원은 모자란 상태로 오시는 분들 그대로 다 오니 제전을 줄인다는 고민을 할 필요도 없이 그냥 보던 데로 12장까지 다 봤습니다. 앞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된다고 한다면 이처럼 지역사회에서의 교회활동이 더 중요시되게 되어,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활동으로 변화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지역발생자가 이달 들어 10~20명 사이를 오가고 있고, 질병관리본부에서 어느 정도 통제가 되어 다른 나라보다는 안심하고 살 수 있습니다만, 앞에서 이야기드렸듯이 이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종식되기 전까지는 언제든지 확진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위험이 있으므로 또다시 지역 간 이동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결국,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앞으로 거기에 맞춰 준비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친필에는 마마와 콜레라라는 감염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친필 제6, 7, 8, 12, 13호에 6차례에 걸쳐 마마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14호에는 콜레라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있습니다.

천연두라고도 불리는 마마는 1977년을 마지막으로 지금은 사라진 병 중 하나입니다만, 기원전 1,000년의 기록에도 나오는 우리 인류와 함께한 아주 오래된 감염증입니다. 그래서 교조님 당시 사람들은 마마에 대해, 감염증이라기보다는 재수가 없으면 걸리고, 그보다 더 재수가 없으면 죽기도 하는 그런 병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감염증이라는 생각보다는 신이 벌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더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조님께서는 근행을 통해 마마에 걸리지 않도록 해주겠다고 하셨고, 교조님께서 이야기하신 그대로 우리가 근행을 배운 덕분에 1977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진 질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콜레라라고 하는 감염증도 친필에 나오고 있습니다만, 이 콜레라라는 감염증은 누구든 걸릴 수 있는 병이었고, 또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던 병입니다. 지금 우리가 코로나19 사태를 겪는 것처럼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실제 일본은 1877년부터 근대적인 위생체계가 확립된 1910년까지 34년 동안 모두 554천여 명이 콜레라에 걸려 376151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조님 재세시인 1879년에는 한해에만 콜레라로 인한 사망자가 10만 명이 넘을 정도로 크게 유행을 했었다고 합니다.

1879년에 교조님께서 적으신 친필이 친필 제14호입니다. 따라서 친필 제14호를 읽어보면 콜레라와 같은 감염증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이 콜레라가 나오는 친필구절은 친필 제1422수입니다. 그 앞뒤로 제1420수부터 25수까지를 읽어드리면

무슨 일이든 월일이 하는 거야 / 어떤 것도 질병이 아니니라 14-20

몸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 질병이 아니라 월일의 손질이야 14-21

세상에서는 콜레라라고 하고 있지만 / 월일의 섭섭함을 알리는 거야 14-22

온 세상 어디의 누구도 마찬가지 / 마음이 침울하기만 하니 14-23

이제부터는 마음 단단히 바꿔서 / 즐거움이 넘치는 마음이 되도록 14-24

월일이 인간을 창조한 것은 / 즐거운 놀이를 보고 싶은 까닭에 14-25

라고 하시면서 감염증은 어버이신님의 섭섭함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이고, 그 어버이신님의 섭섭함이란 우리들의 마음이 침울한 것이고, 빨리 즐거운 마음으로 바꾸어 달라고 하는 것이 이 감염증을 주신 어버이신님의 의도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친필의 앞을 보면

그러므로 무슨 말을 월일이 할지라도 / 모두들 의심하여 무시할 뿐이다 14-11

월일은 이것이 제일 섭섭해 / 무엇이든 이것을 명확히 나타내리라 14-12

라며 윗사람들의 말만 듣고, 어버이신님의 말을 믿지 않는 것에 대해 섭섭하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즉 어버이신님께서는 온 세상 사람들을 구제해서 즐거운 삶으로 인도하고자 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고, 윗사람들의 말만 따르고 있다. 윗사람들은 온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이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있고, 이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마음은 침울하다고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어버이신님이 우리 인간들을 창조한 뜻을 깨달아 즐거운 마음으로 바꾸어 달라고 이야기하는 의도에서 감염증이라는 가르침을 주셨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 콜레라가 나온 친필 다음으로 이어지는 친필은 너무나 유명한 친필입니다.

지금까지는 월일이라고 일러왔지만 / 이제 오늘부터는 이름 바꿀 테다 14-29

이렇게 이야기하시고, 월일에서 어버이로 어버이신님의 호칭을 바꾸십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진실한 / 마음만 있으면 두려울 것 없다 14-49

라고 하시며 진실한 마음만 있다면 이런 전염병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진실한 어버이의 섭섭함이 나타나면 / 이를 진정시키는 법을 아무도 모르겠지

14-79

이것은 성진실만 있으면 / 무슨 일이든 일러주리라 14-80

라고 하시며 성진실한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따라서 성진실한 마음으로 바꾸기만 하면 콜레라와 같은 위험한 감염증도 걱정할 것 없다고 이야기하시는 것이고, 그것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어버이신님의 가르침을 믿고, 침울한 마음을 용솟음치는 마음으로 바꾸고, 성진실한 마음으로 바꾼다면 지금의 코로나 사태도 저는 걱정할 필요 없이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성진실한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내 생활의 중심을 어버이신님께 맞추는 것이 성진실한 마음이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예전에 어떤 분이 무언가 실천을 하나 했으면 하는데, 어떤 실천을 하면 좋을지 저한테 물어왔습니다. 그때 저는 매일 천 원씩 음덕을 하는 실천을 백일 간 해보시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분은 매일 천 원씩 음덕 하는 것은 하찮다고 생각하셨는지 그 실천을 하지 않으셨는데, 저는 매일 천 원씩 음덕 하는 것도 큰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천 원씩 음덕을 한다는 마음 작정을 했다면 그 천원을 음덕 하기 위해 매일 천 원씩을 준비해야 합니다. 오늘 주머니를 뒤져보니 만 원짜리 밖에 없는데, 만원 음덕하고 오늘부터 10일간은 음덕을 안 해야지... 이런 것은 성진실한 마음이라 할 수 없겠죠. 그리고 또 만원밖에 없는데, 일단 만원 음덕하고, 내일 천원 준비해서 천원 음덕 하면 되지... 이것도, 저는 성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천 원씩 매일 음덕 하기로 신님께 작정했다면 어떻든 그 천원을 음덕하기 위해 그 천원을 준비해야만 합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만 원짜리 밖에 없다면 가게에 가서 껌이라도 하나 사서 돈을 바꾸더라도 천원을 준비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신님과 약속한 바를 어떻든 지키려고 노력하고, 그리고 그 천원을 준비하는 것을 내 생활의 중심으로 잡는 것, 이것이 성진실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생활의 중심을 어버이신님으로 잡는 것 이것이 바로 성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조님께서는

신님에 대한 신앙은 말이지, 신님을 육친의 부모처럼 여겨야 해요. 그렇게 하면 진짜 신앙이 되는 거예요.” (고본천리교교조전일화편 104 신앙은 말이지)

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어버이신님의 호칭을 월일에서 어버이로 바꾸신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하늘 높은 곳에 있는 해님과 달님은 우리를 따뜻하고, 밝게 비춰주시는 존재이지만, 너무나 먼 곳에 있어 우리가 다가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처럼 가까이 다가오라는 것이 어버이로 호칭을 바꾸신 의도라 할 수 있습니다.

효도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항상 부모님만 생각하고, 부모님이 좋아하실 것만 하는 것이 효도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어버이신님만 생각하고, 어버이신님이 좋아하실 것만 생각하는 것 이것이 진짜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성진실한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전에 어떤 선배 선생님은 반찬 할 것을 사더라도 어버이신님께 먼저 올리고 그것을 내려 반찬을 만들어 드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진실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도 이 실천을 한번 해보려고 집사람과 의논하여 실천해봤는데, 신님에 대한 정성이 부족하여 며칠 하다 잘 안되어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아직 어버이신님이 우리 가족의 생활 중심이 되지 못한 증거라고 할 수 있겠죠. 이렇게 내 생활의 중심이 어버이신님이 되는 것, 어떻든 어버이신님을 즐겁게 해드리려고 노력하는 것, 이것이 성진실한 마음이고, 이것을 어버이신님과 교조님께서는 바라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이 길을 걸어가는 우리 용재들은 확실한 생활의 중심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근행입니다. 이 길을 걷는 용재들은 아침 근행으로 시작해서 저녁 근행으로 일과를 마무리합니다. 그러므로 근행이 바로 우리 생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근행을 우리는 생활의 중심으로 과연 생각하고 있을까요?

아침 근행을 보기 위해서 저녁에 일찍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 남영교회 초대회장님은 저녁 9시 되면 주무셨습니다. 예전에 학생회 일이 있어서 9시 지나서 남영교회 전화를 했는데, 버럭 화를 내며 받으셨습니다. 지금 자야 할 시간인데, 자지 않고 전화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근행을 보시기 위해 일찍 주무시는 생활 습관을 지니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근행을 보기 위해 생활을 거기에 맞춘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녁 근행을 보기 위해 밖에서 하던 일정을 빨리 마무리 짓고 일찍 귀가하는 것, 이런 생활이 우리들 생활의 중심이 근행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든 근행을 보기 위해서 내 생활의 중심을 여기에 맞추고, 근행을 보기 위해서 몸의 건강을 챙기고, 근행을 보기 위해서 운동을 하고, 그런 것이 앞으로 우리들의 생활 자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드시게 되면 몸의 근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아픈 곳도 많이 나오게 되고, 관절로 고생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몸이 아프다고 아야 아야하면서 그냥 있을 것이 아니라, 근행을 보기 위해서 조금씩 근력을 기르는 운동이라도 하는 그러한 자세가 앞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근행을 보기 위해 하루 일정을 거기에 맞추기보다는 근행시간 다 되었으니 근행보러 간다는 분들이 더 많지 않을까요? 내 생활의 중심은 따로 있는데, 지금 재미있는 드라마 봐야 하는데, 근행시간이네, 퍼뜩 보고 와서 계속 봐야지 하는... 드라마를 못 보는 것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근행을 올려야지 하는 마음보다 더 크신 분도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근행을 봐야 할 시간이니까 잠시 시간을 내서 근행을 본다는 형식적으로 근행을 올리는 분들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고본천리교교조전 제10문을 열고서에는 교조님께서 몸이 안 좋아지자 밤새 의논을 하여, 세상 보통 일 2, 신님의 일 8푼으로 하기로 정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그동안 교조님 옆에 계시던 사람들이 세상의 일 8푼에 신님의 일 2푼을 해왔던 것을 반성하고, 신님의 일을 더 많이 하자고 마음을 정한 것입니다. 저 역시도 이 길의 용재이기는 하지만, 집안일에, 아이들 일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버이신님보다는 세상일에 더 중심을 쓰고 있고, 어쩌면 과거의 선배 선생님들처럼 세상 보통 일 8, 신님의 일 2, 그 정도가 제 형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2푼도 많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 길의 용재들조차도 교조님 시대의 윗사람들처럼 남을 구제하려는 마음보다는, 그리고 어버이신님과 교조님께서 올리라고 한 근행에 정성을 쏟는 마음보다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더 생각하는 시대가 되다 보니 어버이신님의 섭섭한 마음이 나타난 것이 이번의 코로나19 사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친필 제14호의 마지막은

어서어서 마음 맞추어서 단단히 / 근행하면 온 세상 안정이 된다 14-92

로 끝맺고 있습니다.

근행만 올리면 감염증도 해결해주고, 온 세상을 안정시켜 주겠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근행은 근행시간이 다되었으니 올리는 형식적인 근행이 아니라, 어버이신님, 교조님께서 원하시는 근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어버이신님이 중심인 삶, 근행이 중심인 삶을 사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코로나19 사태로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교조님, 어버이신님께서 바라시는 근행은 고본천리교교조전에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교조님께서는 1874년부터 신악탈을 만드시고, 붉은 옷을 입으시고, 다음 해 터전 결정, 1877년 가야금, 월금, 해금의 여자악기를 가르쳐 주시고, 1880년에는 여자악기를 넣은 근행을 처음으로 올리는 등, 근행의 준비를 순서에 따라 하셨습니다. 또 친필, 신악가, 고오끼 이야기를 통해 가르침의 면에서도 정리하셨습니다. 그래서 근행을 올리기만 하면 되도록 이끌어 주셨지만, 근행을 올리면 경찰에서 교조님과 사람들을 잡아가니 선뜻 근행을 올리기 힘들었습니다.

그 와중에 188711일부터 교조님이 몸이 안 좋으셨고, 이번에 경찰에 잡혀가면 교조님께서 무사하시기 힘들 거라 더욱 근행에 소극적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버이신님과 교조님은 더욱 근행을 서두르시고, 사람들은 법률 때문에 어렵다, 손발이 맞아질 때까지 기다려 달라, 교회본부를 허락해 달라며 계속 미루기만 했습니다. 또 근행을 통해 교조님의 신상을 수호해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교조님께서는 한결같이 마음작정해서 어서 근행을 올리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즉 교조님과 어버이신님은 마음작정을 통한 근행이 제일 1순위이며, 이 이외의 다른 것은 필요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마음작정이 된 근행을 올리기만 하면 다른 것은 모두 해결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작정을 해서 올린 근행의 결과가 교조님 재세시 마지막 근행입니다. 근행을 올리기만 하면 경찰에서 와서 교조님과 사람들을 잡아갔는데, 그때는 한 명의 경찰도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어버이신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도록 마음작정하여 근행을 올리는 것, 그리고 그런 근행을 올리기만 하면 다른 것은 다 해결된다는 순서의 리를 명확히 하신 것이 바로 교조님의 50년간의 모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것 생각하지 말고 먼저 근행을 올리겠다는 마음작정을 해라. 어버이신님을 우선으로 하는 마음작정을 해라. 이것을 교조님께서는 바라셨고, 그것을 직접 모본으로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우리는 근행을 올리는 것에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이 모이기 힘들어 근행 제원도 모자라 여러 가지 근행을 올리는데 제약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근행을 올리는데 제약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근행을 올리는 마음가짐이 어버이신님의 뜻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것은 근행을 올리는 우리들의 마음가짐에 대한 어버이신님의 가르침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볼 수 있는 순서의 리는 어떤 것일까요?

근행을 통해 코로나19 사태가 빨리 종식되게 해주십시오.’가 아니라, 바로 어버이신님, 교조님께서 바라시는 근행을 올리겠다는 마음작정이 우선 아닐까요? 저는 이것이 순서의 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근행을 올릴 테니 어버이신님 수호해주십시오.’가 아니라 어떻든 어버이신님께서 바라시는 근행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수호를 해주시고, 안 해주시고는 어버이신님께서 알아서 해주십시오.’ 이것이 맞는 순서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으로 근행을 올리면 차마 어버이신님께서 외면하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수호를 해주실 것입니다.

요즘 포스트 코로나를 이야기합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생활 습관과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들 이야기합니다. 우리 역시 이 코로나19 사태를 지나면서 지금까지의 생활 습관과 그동안 바르다고 생각했던 생각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새로운 사람이 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 바로 교조모본의 정신, 즉 순서의 리를 틀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떻든 어버이신님, 교조님께서 만족하실 수 있는 근행을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이것만 이루어지게 된다면 코로나19 사태도 빨리 종식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든 어버이신님이 제일 우선이 되고, 근행이 제일 우선이 될 수 있는 용재로 다시 태어나길 당부드리면서 제가 준비한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