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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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년06월]진정한 행복 - 최영철

2020.05.26 17:57

편집실 조회 수:172

5월 월차제 신전강화

 

진정한 행복

 

  

최영철(문산교회장)

 

 

여러분 반갑습니다.

좋은 날씨 속에 5월 월차제 근행을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지명을 받았기에 잠시 말씀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4)

 

이달은 가정의 달입니다. 참 좋은 계절이며 좋은 달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 전파로 인해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줄 믿습니다.

조금 완화되었나 싶더니 또다시 확산하여 걱정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당연한 것

 

현재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문명이 발달하고 현대의학이 급속도로 발달한 이 시점에 우리는 큰 불편함 없이 누릴 것 다 누려가며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60대 이상 되시는 분들은 살아온 세월을 뒤돌아보면 여러 가지 감회가 새롭겠지요. 60년 보릿고개를 넘어 풀뿌리로 연명하며 요즘같이 비료가 없어 똥장군을 짊어지고 농작물에 거름 질을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요즘 자라나는 후대들에 이야기를 들려주면 곧이곧대로 믿기지 않을 일들이지만, 그래도 그런 시기가 없었다면 또한 오늘처럼 이렇게 문명이 발달하지도 않았겠지요. 손만 까딱하면 밥이 되고 핸들에 손을 잡지 않아도 차가 굴러가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뭐가 또 부족한지 불평불만 속에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돈 한 푼 벌지 않고도 살아가는 시대에 살면서 맛이 있네, 없네 하며 불평을 합니다. 세상엔 공짜란 게 없는데, 그리고 당연한 게 없는데 당연시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친필 말씀에

남의 것을 빌리면 이자가 붙는다

빨리 갚고 치사하도록 하라 3-28

이란 말씀처럼 공짜를 너무 좋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습관처럼 길이 들어서 당연히 받을 권리가 있는 것처럼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물론, 젊어서 고생을 했으니 그에 상응한 대가는 보상받아야 하겠지만, 그래도 많으나 적으나 감사는 알고 사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어버이신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인간들의 즐거운 모습을 보고 함께 즐기시려는 의도에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즐겁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마냥 즐겁다고만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사람에 따라, 생각에 따라 피부로 느끼는 행복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조그마한 것에도 감사를 느끼는 사람, 채워도 만족을 못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차피 세상에 태어나 한평생 살 거라면 행복을 느끼면서 살다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진정한 행복이란 어떤 것일까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옛날 조선 시대 숙종 때의 일입니다. 임금님은 밤중에 미복 차림으로 백성들의 사는 형편을 살피시려고 미행을 자주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허름한 작은 오두막집 앞을 지나는데 때마침 집 안에서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양반들이 사는 기와집 동네를 지나면서도 듣지 못했던 웃음소리에 숙종은 어리둥절하여 그 까닭을 알아보기 위해 오두막집에 들어가 주인에게 물 한 사발을 청했습니다. 그 사이 숙종은 문틈으로 방안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방 안에는 수염이 허연 할아버지가 새끼를 꼬고 있었고 올망졸망한 어린이들은 짚을 고르고 있었으며 할머니는 빨래를 밟고 있었고, 부인은 옷을 깁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의 얼굴들이 모두가 어찌나 밝고 맑은지 도무지 근심 걱정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숙종은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사는 형편이 어려워 보이는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소. 밖에서 들으니 이곳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더이다.” 하니 주인은 희색을 띤 얼굴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빚도 갚아가며 저축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절로 웃음이 나는가 봅니다.”

궁궐로 돌아온 숙종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오두막집에서 살면서 빚도 갚고 저축도 한다는 말에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숙종은 신하를 시켜 어젯밤 그 집에 감춰진 재물이라도 있는지 조사해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조사를 해봐도 그 집에는 아무것도 특이한 걸 찾지 못했습니다. 숙종은 다시 그 집을 찾아가, 전에 했던 말의 뜻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 공양하는 것이 곧 빚을 갚는 것이고, 제가 늙어서 의지할 아이들을 키우니 이게 바로 저축이 아니겠습니까.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으니 저절로 웃음이 나올 수밖에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의 예를 드렸습니다만, 요즘도 이렇게 생각하시는 사람이 있을까요. 진정한 행복이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더 행복해져야 하겠지만, 세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머리는 더 복잡해지고, 인간관계는 더 삭막해지고, 순수한 인간미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유달의 말씀에

삼갈 줄 모르는 욕망은 사람을 잘못된 길로 들게 하고 분쟁을 일으키며 결국에는 세상의 조화를 문란케하여 장래를 위태롭게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풍조가 만연함으로써 사람과 사람의 유대가 한층 약화되고 가족 간의 정리마저 위협받는 오늘날의 세상이다. 참으로 즐거운 사람과는 등을 진 모습이다.

참으로 맞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요즘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수많은 일을 겪으며 살아왔지만, 과학이 발달하고 현대 문명 속에 살면서 예상 밖의 일을 겪고 있습니다.

 

감사하며 살라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불안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19로 인해 경제도 인간관계도 꽁꽁 얼어붙고, 유례없는 종교집회도 쉬어야 하는 사태를 겪어야 했습니다.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자연은 파괴되고 환경은 오염되어 우리 인간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 인간이 신의 품속에 살고 있다고 했는데, , 자연이 신의 품이 아닌가.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수많은 혜택을 받으면서도 그 감사를 모르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친필에

세상에는 콜레라라고 하고 있지만

월일의 섭섭함을 알리는 거야 14-22

라는 말씀처럼 어버이신님은 이것을 유행병으로만 생각지 말고 이 속에 내포된 인간 정신의 정화라는 신의를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세상의 마디를 겪고 있습니다. 인간들의 오만함을 일깨워주시려는 어버이신님의 훈계라 깨닫는 게 맞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진정한 어버이신님의 말씀을 깨우치며 접하고 살면 더욱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교리말씀에 대물차물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늘 자주 듣는 교리말씀입니다. 우리들이 대물차물의 리만 충분히 마음속에 새겨서 깨달음을 얻게 되면 어떤 신상이나 사정의 고통도 고민도 도와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했는데, 우리의 몸은 신님으로부터 잠깐 빌려주신 것, 즉 대물이며 어버이신님으로부터 빌려 쓰고 있다는 사실, 즉 차물이란 사실, 제 것이라고는 마음뿐이라는 사실.

지도말씀에

인간이란 몸은 차물, 마음 하나가 제 것이다. (1889. 2. 14)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만 마음에 새겨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봅니다. 사람의 생명에 관한 일이나 우리 몸에 관한 일들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이렇게 우리가 빌려 쓰는 데 대한 감사와 고마움에 즐기면서 살다 보면 억센 욕심, 억센 고집도 부릴 리 없으리라 봅니다. 어버이신님께서도 자녀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자녀들의 모든 마음씀과 행동들을 보시고 행여나 잘못된 길을 걷거나 어버이의 뜻에 반하는 일을 하면 가끔 매질도 하시고 훈계도 하시면서 우리를 이끌어주고 계신다고 봅니다. 어버이신님께서는 자녀 귀여운 일념에서 몸소 직접 겪어보시고 모본의 길을 남겼습니다.

이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항상 가슴에 간직해야 할 말씀입니다. 교조님께서는 모본의 길을 걷지 않으면 모본은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도말씀에

50년이나 30년이나 걸으라 하면 안 될 테지. 20년이나 10년을 걸으라고도 안 한다. 그저 10년 가운데 셋이야. 사흘 동안의 길을 걸으면 되는 거야.

기껏 천 날의 길을 걸으라고 하는 거야. 천 날의 길이 어려운 거야. 모본의 길밖에 길이 없는 거야. (1889. 11. 7)

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라면 후회 없이는 살 수가 없겠지요. 그렇다면 되도록 덜 후회하며 사는 법이 있다면 그것은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나 자신과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지금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을 어떻게 내 편으로 끌어가느냐에 따라서 나의 인생이 결정됩니다. 보고 싶은 사람보다 지금 보고 있는 사람을 더 사랑하며 미래의 시간보다 지금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지혜이며 자기 관리를 잘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인간은 세 가지 착각과 교만에 빠져서 살기 쉽다고 합니다. 젊을 때는 언제나 청춘이어서 안 늙을 것 같은 착각과 교만, 건강할 때는 자신은 아프지 않고 병이 안 들 것 같은 착각과 교만 그리고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과 교만에 빠져 살기 쉽다고 했습니다.

삼성오신(三省五身)이란 말이 있습니다. 오늘 일에 최선을 다했는가. 만난 사람에게 진심을 다했는가. 오늘의 삶에 소홀함이 없었는가. 나의 일에 최선을 다했는가. 인간관계를 진심으로 하며 학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이것이 있을 때 잘해.”의 지혜이며 해답입니다.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소홀히 하지 마세요. 한평생 살아가면서 그런 사람 만나는 건 쉽지 않습니다. 택시는 놓치면 버스라도 오지만 사람을 놓치면 그런 사람을 다시 만나기 어렵습니다. 떠나버리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다. 옆에 있을 때 잘 챙기시고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항상 감사함을 잊지 마세요. 스트레스를 연구해 노벨상을 받은 한 노교수가 하버드대에서 강연을 끝내고 강단을 내려가려는데 한 학생이 교수님 앞을 가로막고는 선생님, 우리가 스트레스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는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비결 딱 한 마디만 해주십시오.” 하였더니, 그 교수님의 하시는 말씀이 감사하며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답니다.

여러분, 감사한 것만큼 스트레스 정화제가 없고, 감사만 한 스트레스 치유제도 없다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속에는 미움이나 시기 질투가 없습니다.

참으로 평온하고 편안합니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이러한 순간 유익한 세로토닌이 펑펑 쏟아진다고 합니다. 저는 죽음을 한 번 경험했기에 다시 한번 주어진 삶에 늘 감사와 실천을 게을리하지 않고 실천하려 노력합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실천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제게 주어진 하루

 

그리고 한동안 코로나바이러스 19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 실천을 했습니다. 얼마나 두려운지 모두 집안에 갇혀 생활한다고 참으로 따분하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해방이 되는가 싶더니 또다시 제동이 걸려 이런 불편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과가 어떻게 지나가는 줄 모르게 집 안에 있으면서도 즐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눈만 뜨면 앞마당을 한 바퀴 돌면서 하루하루 변해가는 꽃들의 향연에 취해 풀도 뽑고, 화단을 가꾸면서 때론 손녀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방에 앉아 있어도 앞산의 푸른 정원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낭만에 젖기도 하고, 기원근행을 보기도 합니다.

예전의 철길이 자전거 도로로 변한 뒤 축대를 쌓은 블록 별돌 사이를 손질해서 화분처럼 칸칸이 와송 나무를 심었는데, 겨울에 죽지 않고 싹을 틔워 뽑아내고 새롭게 싹을 틔운 나무를 옮겨심기도 하고, 잡풀도 뽑고 가꾸는 재미로 늘 분주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그 면적이 자그마치 1,800칸 한 블록 안에 두세 그루 이상 심었으니까. 5,400송이 정도 되겠네요. 양쪽에는 지나다니는 동네 분을 위해 꽃송이를 장식했습니다. 다행히 진해시청에 아는 지인이 있어 꽃송이를 많이 얻어 심었습니다. 심을 때는 힘이 들었지만, 동네 분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참 잘했구나.’ 하고 보람을 느꼈습니다. 때로는 얌체인 사람들이 뽑아도 가지만 기쁜 마음으로 가꾸고 있습니다.

 

신님의 수호로, 꿈에 그리던 교회 앞터를 지인의 도움으로 매입해 예전에는 막다른 골목이었는데, 이제 교회 앞마당이 되어 교회 정문이 새롭게 생겨 참으로 편리하게 차가 앞마당 현관 앞까지 들어오고 예전엔 교회가 막다른 집이었는데 참 편리합니다. 참으로 초대 때 이루지 못하고 내 당대에나 터를 해결할까 말까 한 일을 신님의 수호로 한꺼번에 두 필지를 해결하는 수호를 보았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란 말이 있죠. 정말 꿈에나 그리웠던 일이 현실이 되어 요즘 참으로 삶에 보람을 느낍니다. 저는 이 길을 가면서 어떤 마디를 만날 때마다 마디에서 싹이 튼다. 라는 신님말씀을 가슴 깊이 새겼습니다.

작은 나무는 작은 싹을 틔우지만 큰 나무는 큰 싹을 틔울 수 있다는 신님의 말씀을 믿고 언제나 꿋꿋하게 노력해왔습니다.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마디를 많이도 만났지만, 마디를 만난 뒤에는 늘 많은 변화를 주셨습니다. 신님께서는 늘 안 좋은 것만 주시는 게 아니라 조금씩 마음에 반성과 단노의 여하에 따라 많은 선물을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주의할 것은 신앙을 오래 하셨던 용재라도 큰 마디가 닥쳐오면 그 순간을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어버이신님의 시험에서 탈락한 결과입니다. 분명히 싹을 틔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마음을 바꾸질 못하고 부족불만으로 일관한 용재일 거라 믿습니다. 신님의 말씀에도 나날이 용재에게 손질을 한다.”라고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은 참으로 어지러운 시순입니다.

무언가 큰 변화가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시순이라고 생각합니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사회의 물결 속에 우리가 어떻게 생존해야 할 것인가를 각자가 잘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신님의 수호만을 바라기보다 각자가 이 어려움을 극복할 지혜를 짜내어 각 교회가 상생할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이렇게 활동하기 어려울 때는 혼자서라도 자기 자신을 뒤돌아보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고 기원근행이라도 자주 보며 신님과 더 가까워지는 계기로 삼는 것도 한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하루 속히 코로나 바이러스 19가 종식이 되어 마음놓고 포교활동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하고 여러분의 건강 또한 기원하면서 마치겠습니다.

끝까지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