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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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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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계대제 신전강화

 

은혜보답하는 길

 

 

교회장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춘계대제 근행을 용솟음치게 함께 올려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잠깐 한 말씀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4)

 

입교 183년 새해를 맞이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에 고성교회로 마음과 정성을 모아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올 한 해도 여러 가지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은 고성교회 춘계대제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춘계대제는 1887년 음력 정월 26일에 교조님께서 몸을 감추시고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존명의 리로 활동하게 된 것을 기리기 위해서 올리는 근행입니다.

교조님은 인간의 정명은 115세라고 하시고, 마음에 따라서 언제까지도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근행을 재촉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근행을 올리면 경찰이 나와서 교조님을 연행했습니다. 더구나 90에 가까운 고령의 몸으로 겨울에 온기도 없는 추운 감방에서 지내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근행 올리기를 주저했습니다. 그래도 교조님께서는 근행을 올려라.”라고 계속 재촉하셨습니다. 근행을 올린다고 하면 사람들이 몰려오고, 사람들이 몰려오면 경찰 단속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근행 올리기를 꺼렸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교조님의 신상이 심해져서, 더는 교조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은 교조님 말씀을 순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깨달아서 1887126일에 교조님 말씀대로 사람들이 모여서 근행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근행을 올리는 도중에 경찰에 끌려가 감옥에 갇히게 되더라도 괜찮다는 각오에서 근행복 밑에 많은 속옷을 껴입고 근행에 참가했습니다. 감옥에 가게 되면 추위를 견디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필사의 각오로 근행을 올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은 신악가 12장의 목수들의 인수도 갖추어졌다라고 마칠 때까지 근행이 끝날 때까지 신기하게도 한 사람의 경찰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정말 교조님 말씀대로 순직하게 근행을 올리니까 수호를 받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용솟음치는 기분에 모두 휴식소에 계시는 교조님께 사례인사를 올리러 갔습니다.

하지만, 교조님은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서쪽으로 향한 채 현신을 감추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세계구제를 위해 활동하신다는 존명의 리로서 남게 되었다는 사실을 이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리를 기리기 위해 춘계대제를 올리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바뀝니다만,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물질적으로는 윤택해진 삶을 누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신적으로 어려운 사정의 문제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런 문제들이 생기는 가장 근본의 원인은 가정이 본래의 모습대로 역할을 못 해서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만 하더라도 대가족이 다 모여서 살았습니다. 고성교회가 위치한 고성만 보더라도 조금만 나가보면 논, 밭이 아주 많습니다. 고성평야라고 해서 전국에서도 몇 번째에 들어가는 넓은 평야입니다. 고성 사람들만 하더라도 대부분이 농사를 짓든지, 물고기를 잡든지, 둘 중 하나의 일을 했습니다.

농경사회에서는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기본적으로 3대가 모여 살았습니다. 3대가 모여 산다는 것은 할아버지, 손자, 삼촌, 고모 등의 친척들이 모여서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구성원이 한 가족으로 살면, 많은 갈등도 생기지만, 그런 갈등을 해소하는 것도 한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예전의 가정은 하나의 사회였습니다. 사회가 돌아가기 위한 원칙들이 있을 텐데, 이런 대가족에는 가정 안에 그런 질서들이 모두 있는 것입니다. , 농사를 짓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날씨의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입니다. 올해는 볕이 많이 들어서 풍년이 들었다든가. 올해는 태풍이 와서 농사를 망쳤다. 홍수가 와서 안 됐다고 하는 등 날씨 덕택으로 농사를 지어서 작물이 자라고 추수를 하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러한 것은 내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자연의 혜택이라는 것에 대해 덕택에 농사를 지을 수 있다.’ , 은혜를 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자기가 지은 농작물에 대해서는 곡식 한 톨이라도 소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주 소중하고 감사한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요즘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자꾸 없어지고 있습니다. , 대가족이 아니라 핵가족으로 바뀌었습니다. 부모와 자식만의 구성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1인 가구가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식당에 혼자 가면 식사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없었는데, 요새는 혼밥 시대라고 해서 혼자 가서 식사할 수 있는 장소도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혼자서 하는 일이 굉장히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이도 낳지 않는 저출산 시대가 됐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사회와 같은 가정의 역할이 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지극히 개인적인 생활을 하는 곳으로 가정의 의미가 바뀌게 됐습니다.

혼자서 살면서 바뀌게 된 것 중의 하나는,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나 물질에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 돈만 있으면 내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손안에 넣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돈이 없다는 것은 바로 불행한 것이다.’라는 의미로 이어지게 됩니다.

흔히 선진국이라고 이야기하는 미국만 보더라도 아주 부자로 잘살던 사람들도 갑자기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게 되니까 도저히 일반 사람의 재산으로는 집을 살 수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되다 보니, 멀쩡하게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던 사람들도 노숙자로 전락해서 망하게 됩니다. 이렇게 돈이 없으면 바로 불행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런 물질만능주의가 되면서 작은 사회였던 가정이 가지고 있는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먼저, 은혜에 고마워하는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사람이나 물질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뭐든지 소홀하게 됩니다. 물질 같으면 돈만 있으면 다 된다고 생각하게 되니, 그 고마움을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물질도 소홀하게 되기 때문에 덤으로 사람도 소홀하게 대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돈만 내면 뭐든지 살 수 있고, 원하는 물건은 모두 얻을 수 있는 편리한 시대가 되었지만, 뭐든지 항상 잊기 때문에 분에 넘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물질도 소홀하게 대하고, 사람도 소홀하게 대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도 생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근본은 물질의 은혜를 모르고, 사람의 은혜를 알 수 없고, 천지자연이 주는 은혜를 모르고, 그런 걸 느끼는 마음 자체가 없어지는 겁니다.

 

은혜보답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의 행복은 과연 어디서 오는 걸까요?

자기가 고맙고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마음, 즐거워할 수 있는 마음이 행복이 아닐까요? 아무리 갖춰져 있더라도, 산해진미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맛있다고 생각하고, 먹어서 좋다고 생각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행복하지 않은 겁니다.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행복감이 낮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길을 걷는 우리는 은혜에 대해서 항상 듣고 있습니다. 어버이신님이 우리 육체를 빌려주시고, , , 바람의 수호를 비롯한 하루하루 살려주시는 은혜에 대해 생각합니다. , 우리가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덕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보답을 하는 길에 대해서 언제나 듣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은혜보답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조님께서는 항상 근행을 올려라. ‘근행을 올려라. 근행 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 근행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요. 오늘도 우리 모두 함께 모여서 근행을 올렸습니다만, 어버이신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은 의도에서 이 길을 시작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어버이신님의 수호입니다. 나날이 부자유 없이 신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도 어버이신님의 수호입니다. ,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것, 모든 것이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도 서로 도와가는 덕분입니다. 그런 사회 덕분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진주님께서는 매일 어버이신님께 수호 받는 은혜보답은 근행을 올리는 것이다. , 사람들에게 받는 은혜보답은 수훈을 전하는 것이다.”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는 모르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교육을 받아서 점차 어려운 것들도 알게 되지 않습니까. 그것은 학교 선생님 덕분입니다. 그처럼 사람에게 받는 은혜에 대한 보답은 수훈의 리라고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근행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하고 묻는다면, 어버이신님에 대한 은혜보답이고, 수훈을 전하는 것은 나를 보살펴준 사람들에 대한 은혜보답입니다. 그렇다면 교조님 모본의 길 50년은 근행을 올리고 수훈을 전하는 데 있다.’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교조님은 우리에게 은혜보답의 길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천리교 신앙을 통해서 은혜보답하는 길은 근행을 올리고 수훈을 전하는 것이라고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춘계대제의 의미

 

춘계대제는 그런 점에서 교조님께서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경찰이 온다고 생각해서 근행을 올리는 것을 주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모습을 감추시고 교조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항상 근본이 되는 집터에 머무시면서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다니시는 존명의 리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이달 26, 춘계대제입니다. 춘계대제는 교조님께서 존명의 리로 바뀌게 된 것에 대한 어버이마음이 담긴 제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조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당시 사람들이 순직하게 근행을 올리는 것을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순직이라는 것은 바꿔말하면, 신님이 하시는 말씀도, 사람이 하는 말도, 바보가 되어 듣고, 바보가 되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바보가 되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부족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살아오면서 부족을 느끼는 날이 많은지, 순직하게 받아들이는 날이 많은지, 이 길을 가는 사람들은 각자 돌이켜봐야 할 것입니다.

남이 말하는 것에 대해 순직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리를 받아들이는 측면에서 어버이신님, 상급회장님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일에 제 몸 생각을 제쳐두고, 먼저 순직하게 리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18381026일 입교의 으뜸하루의 날로 돌아가서 보면, 어버이신님께서 미키를 신의 현신으로 받아들이고 싶다고 말씀하셨을 때, 남편 젠베와 그 문제를 두고 3일 동안 문답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교조님은 아직 농가의 주부이고, 자녀도 어려서 해야 할 집안일도 많이 있었습니다. 42살에 젖먹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해야 하는 가운데 신의 현신으로 받아들이고 싶다고 신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남편인 젠베는 거절을 했습니다. 하지만, 3일간의 문답 후에 어버이신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온갖 인간 생각을 버리고 신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게 되고, 교조님이 신의 대리인으로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가르침을 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길은, 먼저, 인간 생각을 제쳐두고 신님의 말씀을 순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면, 지금 당장은 어려움이 많겠지만, 20, 30년 지나면 과연 그때는 힘들었지만, 신님의 가르침을 들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될 날이 반드시 온다고 하셨습니다. 근행을 올리고 수훈을 전하는 일을 무엇보다 우선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수훈을 전하는 마음가짐

 

하지만, 그런 것을 소홀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특히, 수훈을 전하는 데 소홀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수훈의 리를 받는다는 것은 존명하신 교조님의 대리인으로서 활동한다는 뜻입니다. 수훈은 결코 나 혼자서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훈을 전하는 것은 교조님의 어버이마음을 받아서 전하는 것입니다. 일전에 출직하신 후카야 선생님은 수훈을 전하면 수호가 잘 나기로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이분에게 수훈을 전할 때, 어떻게 해야 수호가 잘 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선생이 두 가지로 대답을 했습니다. “항상 교조님을 모시고 수훈을 전한다고 생각하고, 또 하나는 교만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 교만한 마음이라는 것은 나 같이 부족하고 실천도 없는 사람이 수훈을 전하면 수호가 날까. 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가장 교만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수훈을 전하나.’ 하는 마음을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리가 높고 실천도 잘하는 분이 수훈을 전해야 한다. 라고 생각하지만, 그 마음이 가장 교만한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친필에

어떤 구제를 하는 것도 진실한

어버이가 있으니 모두 맡는다 7-101

라고 하신 것처럼, ‘수훈을 전해도 수호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교만한 마음이 없다.’라고 선생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실천을 못 하고 성인이 둔해서 수훈을 전하지 못해서는 안 됩니다. 둔한 만큼 수훈을 더 많이 전해야 합니다. 그렇게 수훈을 많이 전하는 노력을 기울여서 성인에 이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안 하고 있으면, 할 마음이 없으면 계속 그 자리에 머무르게 되는 겁니다. 마음이 미숙하면 미숙한 만큼 수훈을 부지런히 전해서 성인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수훈의 리를 받은 우리는 내가 잘해서 수훈을 전해서 효과가 나는 것이 아니라, 교조님이 활동하신 덕택으로 수호가 난다고 생각해서 어쨌든 계속 수훈을 전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주저하지 않고 수훈을 전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흔히, 우리는 신앙만 열심히 하면 로또라도 맞을 것 같이 생각을 하고, 모든 일이 바라는 대로 풀릴 것 같이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길은 은혜보답의 길을 먼저 걸어야 합니다. 은혜보답의 길을 나날이 나르고 다해서, , 근행을 올리고 수훈을 전하는 일을 거듭함으로써 대난은 소난으로 소난은 무난으로 이끌어주시는 수호를 받는 길입니다.

하지만, 원치 않는 일이 나타나는 것, 보이는 리를 통해서 자신의 집안과 자신의 인연을 자각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서 더욱더 은혜보답의 길을 걸어서, 남을 도와서 내가 도와지는 아주 먼 길을 끈기 있게 걸어가야 합니다.

 

어쨌든 입교 183년 한 해도 하루하루 은혜보답의 길, 나날의 근행과 구제를 위해서 수훈을 주저 없이 전해가는 일에 소홀함이 없이 나르고 다하라고 당부드리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