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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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96

 

엄마와 행복하기 3

 

박지수

 

 

아침에 엄마 방에 들어가면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하듯

"엄마. 안녕~^^ 잘 잤어요?"

하고는 누워 계신 엄마의 등과 팔을 부드럽게 마사지해드린다.

"밤에 별일 없었어요? 따뜻하게 잘 잤어요? 좋은 꿈 꿨어요?"

"좋은 꿈 꿨으면 뭐할라꼬?

"~. 좋은 꿈 꿨으면 내가 사려고~^^ 다음에 좋은 꿈 꾸면 꼭 이야기해줘요~^^

근데 배가 부르네. 이 뱃살 우짜것노?"

"배가 부르기는! 나는 배가 마이 고프다!!"

하신다. 순간 웃음이 빵 터졌다.

"배고프다고? 아침 먹을 때가 다 돼가니 배고픈 거 당연하죠. 배고프다는 건 소화가 잘된다는 거니 고맙네요. 건강하다는 거잖아요. 배 안 고프면 아픈 거지, 윤아(막내)가 엄마 건강하게 잘 보살펴 달라고 하던데, 엄마가 소화가 잘되고 건강하니 고맙네요."

"윤아가 언제 그랬노?"

"지난번 만났을 때 윤아가 상품권을 줘서 제물 샀거든. 고맙다고 전화했더니 엄마 잘 부탁한다네요. 그러니까 엄마 건강해야지~."

"그래? 윤아가 그랬나?"

", 참 착하지요?"

"우리 아이들은 다 착하다~."

"엄마, 아버지가 착하고, 잘 사셨으니 애들도 다 착하게 컸네요. 엄마 고맙습니다."

"글치!“

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으신다.

그러면서 엄마와 스킨십을 겸한 가벼운 안마를 끝내고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에 엄마를 깨울 때는 예전에 수정이 보살필 때처럼, 항상 가벼운 안마를 해드리면서 스킨십을 한다. 엄마는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 깨어 계시는 편이지만, 그대로 누워서 내 안마를 받는 걸 즐기시는 듯하다. 안마를 마무리하며 엄마, 이제, 일어나세요~~” 할 때까지 가만히 누워 계신다. 착한 아기처럼 기분 좋게 누워 계시다가 일어나라는 소리에 일어나는 엄마를 보면 귀엽기도 사랑스럽기도 하다.

 

엄마를 모셔오기 전에 들은 이야기는 엄마가 기억력이 없어져서 돈 간수를 못 하시고 금방 잊어버리신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용돈을 드리면 안 된단다. 엄마에게는 돈이 필요 없고, 수중에는 돈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돈을 간수하지 못하시지만, 돈은 필요하다. 보통의 할머니라면 손자들을 만나면 용돈을 주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에 생각이 미치자 손자들을 만나러 갈 때나 손자들이 온다고 할 때는 미리 엄마에게 아이들 용돈 주자고 말씀드리고 돈을 봉투에 넣어서 드리거나 손에 쥐여 드린다. 미리 드리면 엄마가 돈 간수를 못 해서 잃어버릴까 봐 건네줄 기회를 살피다가 딱 필요하다 싶을 때 아이들 몰래 드린다.

할머니가 어린 손자, 손녀들을 만나 돈을 내밀면 "할머니, 고맙습니다. 할머니 최고!"라고 엄지 척을 해 준다. 그 모습이 좋은지 엄마는 몇 번이나 그 이야기를 하셨다.

그런데 처음에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려고 할 때 동생과 올케는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지 못하게 엄마를 말렸고, 아이들에게도 못 받게 했다.

"그러지 마. 엄마가 주고 싶어서 주는 건데 일단 받아라. 엄마 즐거움을 방해하지 마. 엄마는 원래 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야."

비록 엄마가 정신이 혼미할 때가 많지만 자존심을 지켜드리고 싶었고, 자존감도 살려 드리고 싶었다.

동생 부부에겐 그 일이 인상 깊었나 보다. 그다음부터는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동생이 장모 칠순 잔치로 해외여행을 간다고 할 때도 잘 다녀오라고 아들과 며느리, 손자 손녀에게 만 원씩 건네니, 쑥스러워하면서도 기쁘게 잘 받아주었다.

엄마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지는 것을 보니 엄마가 용돈을 주며 얼마나 기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물론 그 돈은 내 주머니에서 나간다.

집에 돌아오면 몇 번이나 엄마가 그 생각이 나는지 웃으시며

"용돈을 주니까 애들이 할머니 최고!’라 카더라. 돈 받고 싫어하는 사람 어디 있노? 다 좋아하지." 하신다. 맞는 말씀이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라는 격언이 있지 않은가.

 

엄마는 함안교회에서 거의 50년 가까이 신앙을 하셨다. 그렇게 주목받을 만한 신앙이 아닌 가난한 농촌에 아낙으로 월차제만 겨우 참배할 정도의 아주 평범한 신앙을 이어오셨다. 어느 날 함안 초대회장님께 엄마의 신앙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변함없이 쭉 이어왔다. 그래도 포교하는 자녀를 수호받은 것을 보면 신님이 그 정성을 받아주셨나 보다.’ 하셨다. 그래서 엄마를 모시고 매달 6일마다 함안교회 월차제에는 꼭 참배 간다. 교회 갈 때도 음덕 할 돈을 늘 봉투에 넣어 챙겨드린다.

엄마는 차 안에서 몇 번이나 봉투를 열어서 확인하고 세어 보신다. 누군가는 그렇게 돈을 세는 모습은 돌아가실 때가 되었다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그렇게 반복하면서, 기분 좋은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은 아닐까. 손자들에게 용돈을 주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음덕을 하면서도 즐거움을 느낀다. 이런 소소한 즐거움이 엄마의 행복을 키우고, 자존감을 더 높이는 것은 아닐까.

엄마 방에는 예쁜 분홍색 핸드백을 용돈 가방으로 걸어 두었다. 거기다가 손자들이 오면 줄 용돈을 조금씩 모아 두었다. 분홍색을 좋아하시는 엄마가 바로 볼 수 있도록 정면 벽에 걸어 두었다. 그리고 거기에 용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엄마는 잊어버린다. 그러나 언젠가 기억하실 것이고, 그 가방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질 것은 틀림없으리라.

 

얼마 전에는 일이 있어 엄마를 잠시 남동생네에 맡겨 두었다가 다시 모시러 갔을 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헤어질 즈음 엄마에게 돈을 챙겨드리며 손주들에게 용돈 주라고 눈짓했다. 엄마가 그 돈을 받아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니까 올케가

? 아까 아이들한테 용돈 줬는데요.”

한다. 내가 영문을 몰라 쳐다보니

"아까 애들 아빠가 용돈 줄 돈을 챙겨드렸어요. 그때 어머님이 손자들한테 주셨어요."

했다. 순간, 남동생이 참 고마웠다.

지난번 엄마가 손주들 용돈을 주면서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기억하였던 모양이다. 이렇게 필요할 때 용돈을 챙겨드린 것이 참 대견스럽고, 고맙고, 기뻤다. 이런 일들이 엄마를 더 행복하게 만들고, 가족 간에도 더 친밀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렇게 세상이 조금 더 행복해지고 따뜻해지니 얼마나 좋은가.

 

엄마는 평생 남에게 베푸는 걸 즐거워하셨다. 물론 신앙생활을 50년 가까이 하셨으니 몸에 붙으셔서 그런지, 아니면 천성이 그런지 잘 모른다. 내가 어릴 때도 친척들이 오면 우리 집에 있던 거 다 싸드리는 것처럼 바리바리 싸서 보냈다. 아버지의 이복형제들이 많았는데 그분들에게 싸 드리면 우리는 뭘 먹지?’ 싶을 정도로 많이 싸 보내곤 하셨다. 난 어린 마음에 그렇게 싸 가는 고모, 숙모들이 미웠다. 우리도 형제가 많았으니 넉넉지 않았을 것 아닌가.

철없는 우리들의 투정에도 엄마는 아랑곳없었다.

동네 분들이 지나가면 불러서 밥, , 참을 같이 먹는 일도 일상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때마다 집안으로 사람을 청해서 같이 놀고, 뭐라도 같이 나눠 먹는 일이 흔했다. 어린 나는 그런 게 싫었다. 사람들이 오시면 인사에서부터 온갖 심부름을 해야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싫었다.

그런 엄마가 아침에 노치원 차를 타러 나가시며 뭘 찾는 듯 둘러보신다.

"뭐 없나? 운전해 오는 선생하고, 같이 가는 할매한테 하나씩 주게 사탕이나 뭐 없나?"

하며 챙기신다. 뭐라도 챙겨드리면 얼굴에 만족한 기색 가득하고, 주머니를 만져보면서 좋아하신다. 그래서 매일 나눠 드릴 수 있도록 과자나 밀감을 꼭 챙겨둔다.

 

엄마가 처음 오셨을 때, 엄마는 우리에게 뭔가를 챙겨주는 일이 아예 없었다. 엄마 방에 늘 챙겨놓는 과자나 밀감 같은 먹을 것이 있어도 우리에게 먹어보라고 집어주는 일이 없었다. 주로 혼자 드셨다. 치매와 우울증 영향인 듯도 한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었다. 여기서 와서 석 달이 지나고 차츰차츰 엄마의 우울증이 없어지고, 밝아지니 우리에게도 뭔가를 주신다. 노치원에서 돌아오실 때 사탕 같은 것을 주머니에 넣어 오셨다가 내미는 일이 많아졌다. 내게도 남편한테도 자주 그런 모습을 보여 주신다. 그러면 우리는 일부러 더 좋아하면서 받는다. 그 모습에 엄마는 또 신이 나서 더 잘 챙겨주시고, 점점 더 배려심도 생기는 것 같았다.

 

지난번 11월에 멸치젓갈을 내렸을 때 이야기이다.

엄마와 남편 나, 셋이서 이야기하다가, 맛있으니 여기저기 나눠 먹어야겠다는 내 말에 남편이

"양이 많지 않아서 나눠 먹을 게 없겠는데~."

라고 했다. 그랬더니 나눠 먹기 좋아하는 엄마가

"그럼 조금씩 나눠 먹으면 되지!“

라고 하셨다. 남편이

"장모님은 나보다 더 마음이 크시네. 소장이라는 내가 좀 부끄럽다."

라고 감탄했다. 이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다시 깨닫고 배우게 된다. 그리고 더 행복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무엇이든 온갖으로 서로 도웁기라 하신 신악가 노래처럼, 나눌 수 있는 것은 물질이든, 마음이든, 정신이든 무엇이든 흔쾌히 나누고 싶다. 그러면 내 주변도, 세상도 지금보다 더 밝아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