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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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95

 

엄마와 행복하기 2

 

 

박지수

 

날마다 아침에 단장을 시키면 엄마는 묻습니다.

어디 가는데?”

~ 노치원(노인 유치원, 어르신 유치원, 주간 보호센터) 가야죠~.”

~ 그래.”

잠시 후 1분도 채 지나기 전에 다시 묻는다.

오늘 어디 가는데?”

~. 오늘은 화요일이니 노치원갑니다~.”

그렇게 아침에 노치원 차가 오기 전에 대여섯 번은 반복해서 묻습니다. 엄마의 머릿속 지우개는 정말 빠르게 작동하나 봅니다. 돌아서면 다시 똑같은 질문을 하시니 말이에요. 그러면 저는 처음 듣는 것처럼 반응합니다. 가능하면 자세히, 부드럽고, 다정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100일쯤 된 어느 날

오늘 노치원가나?”

하고 묻습니다. 엄마 머릿속에 드디어 노치원 간다는 게 입력된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벌써 가나? 아직 멀었제?”

하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아니, 갈 시간이 다 됐어요. 시계 보세요. 50분에 모시러 오니까 다 됐지요?”

합니다. 이 말씀도 100일쯤 되니,

, 50분에 간다고?”

하고 기억을 하셨습니다.

100번을 묻더라도 100번 다 처음 들은 것처럼 답을 하겠다고 처음부터 작정하였습니다. 작정한 대로 100일이 되니 드디어 진짜로 기억을 하십니다. 기뻤습니다.

치매 환자는 시간, 날짜, 요일, 계절 같은 것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엄마 방에 시계를 걸고, 달력을 갖다 놓고 중요한 일들을 표시해 두었습니다. 엄마가 수시로 보며 인지할 수 있도록요.

 

엄마의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기가 행복하냐? 불행하냐는 것이 함께 지내는 제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엄마는 스스로 행복한 인생을 잘 살았다고 하십니다. 자식들, 사위, 며느리 복도 많다고 하시고, 돌아가신 아버지도 정말 잘해줬다고 다시 만나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런 엄마에게 인생 마지막도 참 행복했다고 느끼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지금 저에게 주어진 아주 큰 사명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마무리하는데 행복을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요? 더구나 그 사람이 엄마라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요.

그런 마음으로 엄마가 똑같은 질문을 한자리에서 100번 묻더라도 다정하게, 친절하게 대답하리라 마음먹고 늘 되새기고 있습니다. 이런 똑같은 대화를 매일, 수시로 주고받습니다. 저는 늘 처음 들은 것처럼 대답하고 있습니다. 엄마도 내가 말을 배울 때 그렇게 했을 테지요? 말 하나 배우려면 100번이 아니라 몇백 번, 몇천 번을 반복하지 않을까요? 엄마는 그렇게 3년 이상을 말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저도 몇백 번, 몇천 번은 못 하더라도 백번은 그렇게 해야겠지요.

 

그리고 엄마에게 밥을 챙겨드릴 때도, 건강식품을 챙겨드릴 때도, 옷을 입혀 드릴 때도 다정하게 자세히 이야기합니다.

엄마, 이건 큰 언니가 엄마가 쌈 좋아한다고 가져온 상추예요.”

엄마가 단감 좋아하신다고 단감을 갖다 줬어요.”

이건 큰 올케가 엄마 건강 생각해서 사 온 보약이에요.”

이 예쁜 옷은 작은 언니가 사 온 거예요.”

이 외투는 작은아들, 며느리가 엄마한테 사 준 옷이네요.”

이렇게 늘 말씀드립니다. 엄마는 금방 그런 이야기들을 잊어버리지만,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런 사실들을 알려드려서 엄마가 자녀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귀중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켜드려서 자존감을 높여 드리려고 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엄마 머릿속 지우개가 최근 어떤 일들은 아주 빨리 지워 버리지만, 더 많은 일은 지우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 지우지 않은 일들을 자주 상기시키고, 잊지 않도록 자꾸 이야기를 걸고, 나눕니다. 지우개 자체를 없애면 좋겠지만 그 지우개가 덜 작동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엄마에게 들이는 제 정성은 이렇게 엄마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함께 조석근행을 올리고 수훈을 늘 전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겨울이라 신전이 추워서 엄마, 우리 근행 올릴 건데, 나오고 싶으면 나오세요~”말씀드리고 절대로 근행을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치매 환자들은 강요당하는 것을 엄청나게 싫어한다고 배웠습니다. 신전에 나오지 않아도, 바로 옆 엄마 방에서는 근행 올리는 소리가 다 들리니 영혼은 근행을 올리고 계시겠지요.

 

엄마와 함께 보내는 시간에는 TV를 많이 활용합니다. 결혼하고서 30여 년 동안 우리 집에는 TV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처음 왔을 때 TV마련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우리 원칙대로라면 없이 지내는 것이지만, 엄마 입장에서 보면 평생을 보아온 TV인데 있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의논 끝에 들여놓기로 했습니다.

엄마와 같이 TV를 자주 봅니다. TV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서 연상이 되는, 떠오르는 옛날이야기들을 함께 나눕니다. 엄마니까 함께 공유하는 추억들이 많지요. 나이 쉰을 넘긴 저는 16살까지는 엄마랑 같이 살았습니다. 엄마랑 같이 산 날보다 독립해 살았던 날들이 훨씬 더 많지요. 물론 따로 살았다 해도 엄마의 마음은 늘 제 뒤에서 어른거리지 않았을까요? 엄마니까요. 엄마라면 누구라도 자녀에게 마음이 쏠리고, 늘 가 있는 게 인지상정이니 말이죠.

엄마와 함께 웃고, 손잡고 이야기하면서 TV를 보는 시간이 제게도 기쁘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비록 집안일이 밀리고, 공부할 시간이 줄어들고, 전도하는 시간도 줄어들고, 남편에게는 좀 소원해지기도 하지만, 내려놓습니다.

지금은 엄마와 행복하기가 가장 소중한 일이니까요.

TV를 켜고 이런저런 채널을 틀어 보면서 엄마를 가만히 관찰해 봅니다. 넉 달이 지난 지금,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동물농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아지, 고양이, 다람쥐, 원숭이 같은 동물이 나오고, 이야기가 있는 프로그램을 좋아하시죠. 동물이 나오거나 아이가 나오는 프로그램은 할 말이 엄청 많아집니다. 서로 크게 웃기도 하고, 이야기 나눌 것이 많아서 활발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이렇게 엄마가 반응을 자주 보이는 프로그램을 같이 보면서 시간을 함께 보냅니다.

 

제가 하는 효도란 특별한 게 없습니다. 하루에 두세 시간을 엄마랑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엄마의 지우개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 엄마에게 최선을 다해 즐거움을 드리는 것, 그리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이야기를 해 드리는 것, 친절하고 다정하게 엄마를 대하는 것 등등입니다. 빨래를 개는 일이나, 바느질을 하는 일 같은 집안일도 가능하면 엄마랑 같이하든지, 엄마 방에서 하고 있습니다.

지금 엄마에겐 보호자인 제 말투, 행동, 표정 하나하나가 행복을 주거나 불행하게 만들거나 할 터입니다. 그래서 엄마에게 더욱 다정한 목소리, 친절한 말투로 부드럽게 대하려고 몹시 노력합니다. 엄마의 인생, 노년의 행, 불행이 제 책임이라 깨닫고 있으니까요.

얼마 전에 엄마 방에 커다란 가족사진 현수막을 만들어 걸었습니다. 온 가족사진을 중앙에 놓고, 장녀부터 순서대로 가족들을 배치하고 이름을 써넣었지요. 엄마가 가끔 만나는 손자, 손녀, 사위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고, 바로 알아보실 수 있도록 말이에요.

엄마가 기분이 좋지 않으면 휴대폰에서 가족들 사진을 보여 드리곤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단번에 기분이 좋아지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시더라고요. 그리고 전화 소리가 나면 행여나 자식인가 싶어 나오셔서 옆에 앉아 계시지요. 그렇게 자식들이 늘 보고 싶고, 그리워한다는 걸 깨닫고는 사진 현수막을 만들어 걸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에겐 자식이, 손자, 손녀가 엔도르핀이며, 삶의 기쁨, 희망이란 것을 엄마를 보면서 순간순간 확인합니다.

엄마는 TV를 보다가도 TV 위 벽에 걸린 가족사진 현수막을 수시로 보십니다. 그리고 하하하웃으시며 늘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엄마에게 가장 애틋하고 정을 많이 주었던 장손인 손자 이야기, 큰 사위 이야기, 큰 외손자 이야기를.

 

엄마를 처음 모셔올 때 엄마와 함께 행복하기를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신앙하신 보람으로 신앙하는 딸, 신앙하는 사위를 얻었으니, 그 보살핌을 받으며 행복한 노후를 보내시도록 하고 싶었죠. 제 행복보다는 엄마의 행복에 더 많은 관심과 집중을 하였습니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그것은 절반만 맞는 생각이었습니다.

엄마가 행복해지는 과정에서 저 자신도 덩달아 행복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으니까요. 어린아이들은 엄마가 웃으면 세상 다 가진 듯 행복합니다. 하지만, 입장이 뒤바뀐 지금도 엄마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제 마음에는 더할 수 없는 행복이 가득 찹니다. 엄마가 제 행동, 말투, 표정에서 행복을 느끼듯이 저 역시 엄마의 표정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이렇게 서로 축복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참 좋은 미션입니다.

엄마와 행복하기는 어버이신님의 큰 수호이고,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