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 교회본부



cond="$

[182년12월]상급의 리 - 김규수

2020.01.04 13:22

편집실 조회 수:137

11월 월차제 신전강화

 

상급의 리

 

김규수(성원교회장)

 

방금 소개받은 성원교회장 김규수입니다.

부덕한 제가 귀한 신님말씀을 전한다는 것이 송구스러우나 지난 일들과 최근에 겪은 일들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조용한 가운데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4)

 

상급의 리

 

상급교회 포교 60주년 행사를 1년 정도 앞두고 있을 때였습니다. 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큰 행사를 무사히 치르기 위해서 노력하는 중이었습니다.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방송에서 아주 긴박한 상황이다. 모든 장병은 빨리 자대로 귀대하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깨보니 꿈이었습니다. ‘, 큰일 났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하들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 이 시순은 대단히 급한 시순이다. 그러니, 각자 더욱더 노력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란다.”라고 하고, 저도 좀 더 노력해서 이 어려운 마디를 넘어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실천을 계속했습니다.

하루는 새벽부터 장대비가 퍼부었습니다. 그날이 1년 중에 비가 가장 많이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도보실천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기가 망설여졌습니다. 하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늦게 출발해서 진전면을 지나 배둔터널 가기 전 고개를 조금 못가서 커브 길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 하는 소리만 들렸고 상황을 잘 몰랐습니다. 눈을 떠보고 교통사고인 줄 알았습니다. 몸을 움직여봤습니다. 다리를 움직여보니 괜찮고, 팔을 움직이는데, 오른팔이 불편했습니다. ‘팔을 다쳤구나.’ 하고 인지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박자목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걸을 때 박자목을 뒤(가방)에 넣고 있었는데, 얼마나 세게 받쳤으면 가방 안에 들어있던 박자목이 튕겨 나가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겁니다. 비가 올 때 교통사고는 최하 중상이거나 사망이라고 하는데 저도 아마 그날 그 지경이 되었을 텐데 어버이신님 수호로, 상급의 행사에 맞추기 위해 노력한 결과로 팔만 조금 다치고 마는 수호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그나마 조금 다치고 말았습니다. 조금만 더 받쳤더라면 팔을 쓰지 못하게 됐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후로 수호를 많이 받아서 지금까지 이상 없이 잘 쓰고 있습니다.

 

, 올여름에 비몽사몽 간에 드는 생각이 으뜸인 리를 빨리 알려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들리는 분위기가 참 큰일이다. 보통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으뜸인 리를 어디를 가든 읽었습니다. 터미널이든 어디든 말이죠. 혼자 차를 타고 가도 계속해서 읽었습니다.

그 여름이 지나고 불과 한 달 정도 됐을까.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전도를 나가는데 온 골목마다 군대가 소대 병력으로 집결해서 군인들이 쫙 깔려있었습니다. , 들에는 기관총을 메고 군인들이 달려갔습니다. 저번에는 방송으로 들렸는데, 이번에는 군인들이 직접 나와서 난리가 났습니다. 이런 것을 보고 이것 또,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과 이것은 보통으로 실천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실천을 해나가는 가운데, 그날이 마침 상급교회의 리를 받아서 하는 전도의 날이었습니다. 불과 한 달 전, 1021일이었습니다. 10년도 더 전에 상급회장님께서 전국의 각 지역에 포교의 날을 정해서 각 지역에 포교를 활성화하도록 하고, 교우들 간에 친선도 도모하는 의미에서 전도의 날을 정했습니다. 우리 마산지역도 매달 21일로 날을 정해서 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사모님께서도 각 지역에 격려차 순례를 하시고 독려하시곤 했습니다.

그 이후로 마산지역은 매달 21일을 전도의 날로 정해서 해오고 있습니다. 그 규모가 변변치는 못합니다. 하지만, 이 맥을 끊지 않고 이어나가서 때가 되면 활성화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하고 있습니다. 오전 10시에 하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아침에 전도 나갔다가 들어와서 밥 먹고 좀 쉬었다가 버스를 타고 경남대학 앞에까지 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달에는 상급인 원화분교회 6대 교회장 취임봉고제가 있어서 이것은 어렵고, 급박한 시순이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상급교회의 행사는 경축 중의 경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이상의 큰 마디도 없습니다. 그 마디는 자녀들을 키워주기 위한 것입니다. 모든 마디에서 수호가 나는 것입니다.

그냥 수호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작물이 마디에서 꽃이 펴서 열매가 맺혀서 과일이 되고 곡식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마디가 없고서는 모든 곡식과 과일을 맺을 수 없습니다. 신앙도 역시 상급의 시순, 큰 행사 등은 큰 경축인 반면에 아주 큰 마디의 시순입니다. 둘하나의 이치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마디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키워주기 위한 수호인 것입니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이런 어려운 시순에 버스를 타고 경남대학까지 갈 것이 아니라 걸어가야겠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걸음으로는 불과 40여 분이면 가겠지만 말이죠. 걸어가다 보니, 이상하게 몸이 무언가 답답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이 있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자기만이 느끼는 몸의 현상입니다. 제가 지금껏 그런 현상을 겪지 못해서 , 이상하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걸어가다 안 되면 차를 타게 되더라도 그냥 걸어가야겠다고 마음먹고 계속 걸었습니다.

그렇게 가는데 몸이 자꾸 한쪽으로 쏠리게 됐습니다. 그렇게 걸어가다 마산의료원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 앞에 가니까 몸이 더는 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빨리 의료원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료원까지 불과 100m 정도 남겨둔 상황이었습니다. 그 짧은 거리를 도저히 더 걸을 수 없어서 마침 의료원에서 나오는 택시를 잡아타고 의료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어지러움이 심해서 걷지를 못하니 그 택시기사가 안에 연락해서 휠체어를 가지고 나와서 그걸 타고 응급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응급실 침대에 있는데도 도저히 어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침대 난간을 꽉 잡고 있어도 어지러워서 앉아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CT도 찍고 했습니다. 하지만 의사의 소견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어지러우니까, 의사가 하는 말이 그럼, 귀에 이상이 있을 수도 있으니,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라고 했습니다. 집사람과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찰한 결과도 귀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머리에 혹시 작은 혈관이 터지면 그런 현상이 있을 수 있으니 입원을 해서 MRI를 찍어보자고 했습니다. MRI를 찍으려면 입원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입원하려고 응급실에서 나와서 이비인후과에 입원 수속을 하러 가다 보니 집사람 하는 말이 내일이면 원남성교회 대제이고, 25일이면 터전에도 가야 하는데, 지금 입원하면 빨라도 1주일 걸릴 것 같은데 터전에 가지 않아도 되겠어요?”라는 것입니다. 속으로는 내가 지금 어지러워 죽겠는데, 내일이면 결과가 나올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사람이 마저 하는 말이 내가 아픈 게 아니고 회장님이 아프니까 알아서 하이소. 나는 입원 안 하고 퇴원해서 터전에 가면 좋겠는데...” 하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 맞다.’ 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몸이 이래도 퇴원해서 터전에 가야 하겠다.’ 하고 마음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응급실에서 나와서 퇴원한다고 하니까, 병원 직원들이 어안이 벙벙해서 지금도 어지러워서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퇴원한다고 합니까.”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래도 퇴원하겠습니다. 집에 갔다가 이상이 있으면 다시 입원하겠습니다.” 하고 퇴원하려고 하니까, 퇴원을 시켜주지 않는 겁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심박수가 보통 40~60회인데, 환자분의 심박수는 38, 39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퇴원을 시켜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정도의 수치는 운동선수에게나 있는 수치인데 그것도 보통의 운동이 아니라 마라톤과 같이 아주 힘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평상시 심박수 라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좀 무리를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터전의 행사에 빠질 수 없다. 하는 생각으로 집사람을 의지해서 어지럽지 않은 것으로 가장해서 퇴원을 하고 택시를 타고 겨우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와서 한 2시간 쉬고 나니, 몸이 좀 나아졌습니다. 그 이후로 아무 일 없이 터전에 가게 됐습니다.

그날이 만약 상급의 리를 받은 전도의 날이 아니었다면, 그날 저는 아마도 산속에 있었을 겁니다. 저의 핸드폰은 스마트폰이 아닌 초창기의 핸드폰이기 때문에 깊은 산에서는 통화가 안 됩니다. 만약, 산속에 있는 상태에서 그런 상황을 맞았더라면 어떻게 될 뻔했겠습니까. 통화도 안 되고, 몸도 어지럽고 말이죠. 다행히 상급 전도의 날 행사에 참여하려고 했던 덕분에 내가 살 수 있었던 겁니다.

상급의 리는 평소에는 모릅니다. 하지만, 위급할 때는 정말, 상급의 리는 생각할 수 없는 위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전도의 날에 참석하기 위해 갔기 때문에 다른 곳도 아닌 딱 병원 앞에서 그런 신상을 맞게 되는 수호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 덕분에 터전에 갈 수 있게 됐습니다. 터전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신전에 가서 참배하려고 하는데 다시 그 증상이 나타나게 됐습니다. ‘터전까지 와서 이런 상황을 맞았으니, 터전에서 병원 신세를 지게 생겼으니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드는 생각이 회장님에게 수훈을 받아야겠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방문을 열고 나가니 마침 사천회장님이 계셔서 회장님께 수훈을 받아야겠는데, 회장님 어디 계십니까?” 하고 여쭤보니 바쁘셔서 쓰메쇼에는 안 계실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대신 사천회장님에게서 수훈을 받았습니다. 근행을 보고 들어오니, 회장님께서 기다리시다 들어가셨다고 내일 아침 7시 반에 수훈을 전해주시겠다는 얘기를 듣고 다음 날 회장님에게서 수훈을 받았습니다. 회장님께서 수훈을 내려주신 후에 별일 없을 겁니다.” 하고 안심시켜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무사히 한국으로 들어갈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고, 그 이후로 별 이상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 자신이 부덕한 덕분에 상급을 불편하게 해 온 일이 많습니다. , 신앙을 한 지 40년이 다 되어가도록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이제야 겨우 , 신앙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철이 드니 나이는 들어 해는 서산으로 지고 있습니다. 인연은 그대로 남아있고, 나이만 들고 있습니다.

20여 년 전에 제가 꿈을 꾸니, 어떤 노인이 저를 세워놓고 줄자로 키도 재고, 팔도 재보더니 앞으로 20년은 더 살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20년이나 남았으니, 어려움도 별로 없을 것 같고 뭐든 잘 될 것 같았습니다. 20년 후가 70입니다. 지금 2년 더 연장해서 72살이 됐습니다. 그 사고가 일어난 후 별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내가 70에 죽을 목숨이 어버이신님께서 2년을 더 연장해주셨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걸을 때마다 심장에 압박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지금 병원에는 못 가겠고 시간이 되면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지가 몇 개월 흘렀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저의 형님이 올해 80인데 참 건강했습니다. 아침 등산에 남들은 올라가는 시간에 이미 등산을 마치고 내려올 정도였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부지런함이 좀 있습니다. 그렇게 일찍 다니니까 다른 사람들이 산신령이라는 별명도 지어줬습니다. 그런 형님이 올 57일에 어버이날이라고 자녀 삼 형제와 외식을 했습니다. 그 장조카가 술을 따르면서 이상하다. 오늘 아버지가 기분이 저렇게 좋으셔서 드리는 술을 다 자시노?” 했답니다. 그렇게 2홉들이 정종을 다 드시고 기분 좋아하시더랍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등산하시고 운동하시는 체력을 가졌던 형님이 심장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형님은 평소 말이 없고 성을 잘 내지 않았습니다. 최고로 성내는 말로 꾸중을 들어본 것이 저에게 , 이 사람아, 자네 와 그러는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한 번 들어봤습니다.

일본사람에게서 미장을 배운 기술자라 부산에서도 고급주택의 고급기술을 필요로 하는 부분을 맡아서 하곤 했습니다. 그런 기술을 손 놓은 것이 돌아가시기 불과 2년 전입니다. 못 살아서 그때까지 일한 것이 아닙니다. 크게 내세울 것은 없어도 자녀들이 모두 그런대로 삽니다. 막내아들 내외는 부부가 사무관으로 관공서에 근무하고 있기도 합니다.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살았습니다. 게다가 형수님은 불교를 신앙해서 며느리 셋을 친딸처럼 대하고 그 며느리들도 형수님을 친엄마처럼 대합니다. 가 보면 형수님과 그 며느리들이 그렇게 분위기 좋게 지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 형수님은 밥 먹고 나면 염불, 시간 나면 염불을 합니다. 그 손자들도 다 공부도 잘하고, 가정에 아무런 어려움도 없는 형님댁입니다.

그 형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이런 일련의 일을 겪으면서 제가 느끼는 것이 나도 심장병의 인연이 있구나. 조심해야 하겠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인연을 끊는 길

 

인연을 끊는 길은 이 길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인연을 끊을 수 있느냐. 그것은 친필 147수부터 50수까지에 잘 나와 있습니다.

산언덕 가시밭 낭떠러지 비탈길도

칼날 같은 험한 길도 헤쳐 나가면 1-47

아직도 보이는 불속 깊은 물속을

그것을 지나가면 좁은 길이 보이느니 1-48

좁은 길을 차츰차츰 넘어가면 큰길이야

이것이 확실한 본 길이니라 1-49

이 이야기는 남의 일이 아닌 만큼

신한줄기로서 이것은 자신의 일이야 1-50

 

우리 사람끼리 다 통하지 않고 되는 것은 전생 인연을 끊는 것입니다. 인연에 가려서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인연만 끊어버리면 모두 즐거움과 반가움 뿐입니다. 인연을 못 끊기 때문에 괴로운 겁니다.

친필 말씀에

온 세상에 많은 사람 살고 있으나

사람들은 모두 안개 속에 사는 것 같아서 6-14

 

이 사회는 몰라서 그렇다고 하지만, 이 길을 알아도 행하지 않으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안 끊으면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든 끊어야 합니다. 끊으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모두가 반갑게 됩니다. 그때까지 끊는 것이 나에게는 고생이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언덕, 물속도 길입니다. 당하는 그때만큼은 괴롭지만, 순간순간이 괴롭지만, 그 괴로움이 깊고, 더 어렵게 될 때 다음의 자식들은 편하게 사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 길은 참 어렵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고 회장님도 여기 계시지만, 저는 리를 제대로 못 받았습니다. 이제 와보니 이 길은 천 마디의 말보다 상급에서 흘리는 한마디 말씀이 신님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저에게 맞닥뜨린 지도말씀입니다. 이제야 그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렵더라도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으뜸인 리에도 보면, 마지막으로는 신과 인간이 단란하게 사는 것입니다. 상급도 마찬가지입니다. 산하와 상급이 함께 인연이 끊어지고 맑아지면 함께 단란하게 가는 길이 이 길입니다. 이 길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옛길로 비유해서 말하면, 옛길은 부모의 길이라고 할 수 있고, 새길은 자녀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저에게 있어서는 옛길은 태초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길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옛길은 태초의 길이 됩니다. 새길은 인간이 만든 길입니다. 이 사회가 아무리 발전하고 과학이 앞서가도 결국 마지막 길은 이 길입니다. 지금은 세상이 넓고 좋은 것 같지만, 이 길밖에는 없습니다.

지도말씀에 보면

이젠 틀렸구나, 틀렸구나 하는 것은 마디라 한다. 정신을 차려서 단단히 버티어 다오. 버티며 일하는 것이 하늘의 리라는 것, 이것 깨우쳐 둔다.(1904. 8. 23)

 

이 말씀을 통해 보더라도 내가 나이가 많다.”, “내가 몸이 어디가 아프다.”, “내가 지금 사정이 어렵다. 잘 안 된다.” 하는 것이 마디라고 합니다. 어떻든 헤쳐나가면 거기에 진기한 길이 나타납니다. 그렇게 헤쳐나간 진기한 길이 이 길입니다. 그것을 헤쳐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마디에서 무너집니다. 그래서 크다 작다 말하지 마라.”라고 한 것입니다. 이 길은 상급으로 이어집니다. 아무리 큰 상급도, 작은 상급도 둘러보면 손이 모자랍니다. 그 모자라는 부분에 손과 발을 보태서 메꾸는 것이 산하입니다. 그것이 내가 구제받아서 은혜 보답을 하는 이 길입니다.

저도 제대로 못 하면서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메꿔서 가는 길입니다.

 

아무튼, 보잘것없고 두서도 없는 말씀을 조용한 가운데 잘 들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내가 몸이 아파보니 건강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여러분들도 건강하시기를 부탁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