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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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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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월차제 신전강화

 

용재로서의 신념과 의지

 

이호열(성천교회장)

 

 

궂은 날씨 속에서도 7월의 월차제를 정성껏 모시기 위해 모여주신 여러분들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즐겁게 근행을 올릴 수 있어서 기쁩니다.

지명을 받았기 때문에 잠시 제가 생각하는 바를 말씀드리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부족하지만 경청해주시기 바랍니다.(4)

 

용재로서의 신념과 의지

 

교조전일화편에 보면 우메타니 시로베에게 교조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123 사람이 목표인가

교조님께서는 입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우메타니 시로베에게

유순한 마음을 갖도록 하게. 남을 구제하게. 나쁜 버릇, 나쁜 성품을 없애게.”

라고 깨우쳐 주셨다. 본래 시로베는 성미가 급한 편이었다.

1883, 시로베는 휴식소 역사를 할 때, 벽 바르기 히노끼싱을 하고 있었는데, “오사카에서 밥줄이 끊긴 미장이가 야마토 지방까지 일하러 왔군.”이라는 험담을 듣고 격분한 나머지, 한밤중에 살며시 짐을 챙겨 오사카로 돌아가려고 했다.

발자국 소리를 죽여 가며 중남의 문간채를 나오려 할 때, 교조님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 교조님!’ 하고 생각하는 순간, 발이 멈춰지고 화도 풀려 버렸다.

이튿날 아침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있는데, 교조님께서 나오셔서

시로베 씨, 사람이 목표인가, 신이 목표인가? 신이 목표인 거야.”

라고 하셨다.

라는 말씀입니다.

유순한 마음을 갖도록 하게. 남을 구제하게. 나쁜 버릇, 나쁜 성품을 없애게.”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이 일화편의 포인트는 사람이 목표인가, 신이 목표인가.”이지만 이 세 가지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을 해봤으면 합니다.

가끔 제가 하는 일, 행동, 말들이 저의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본의 아니게, 제가 한 말들이나 행동들이 듣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불편한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신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것이 참이다 진실이다.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 충분히 상대방으로부터 비방과 조롱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해서 해야 합니다. 바꿔 말하면, 상대방의 비방과 조롱을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만큼의 신념이나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끝까지 관철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그렇지 못하다면 자신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에게 물리면, 병원에 가서 반나절만 치료를 받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뱀에게 물리면, 뱀독을 해독하는데 3일 정도 걸립니다. 그래서 3일 정도 치료를 받으면 됩니다. 하지만, ()에 물리면 그 기간이 오래 걸립니다.

이 말은 무심코 내뱉은 말이 얼마나 독하고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지, 뱀독을 능가하는 치료를 받아야만 될 정도라는 것을 실감케 합니다.

공자께서 하신 말씀 중에 삼사일언 삼사일행(三思一言 三思一行)’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한마디의 말을 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고 한번 행동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라.’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누워서 침을 뱉으면 자기 얼굴에 침이 떨어집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얼굴에 침이 다시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혹은 자기 입을 떠난 말이 어떻게 자신에게 되돌아올지 모르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입으로 전하지 말고 마음으로, 말로써 전하지 말고 가슴으로 전하라. 라는 말씀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구제를 목표로 합니다. 최종적으로는 즐거운 삶을 목표로 해서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남의 티끌을 보면서도 자신의 티끌은 보지 못한 채 남을 비방하고 험담하면서 자신의 인격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품격이라고 할 때의 ()’자의 한자를 보면 입구() 자가 세 개입니다. 그 사람의 말에서 그 사람의 품격, 인격이 나오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혀끝으로 내뱉는 말은 아첨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말을 했을 때, 그것을 칭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을 칭찬했을 때, 그 칭찬을 받은 사람은 나에 대해서 상대방이 존경해주는구나.’ 하고 생각해서 그 사람의 말을 잘 듣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평소에 칭찬보다는 상대에 대해 험담하거나 무시하는 식의 말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신님의 말씀을 듣고 이것이 삶의 길잡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해서든지 신님의 의도에 맞춰서 따라가려고 하는 사람들만이 이 자리에 모여있습니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이 자리에 계신 분은 안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님의 말씀을 따라서 어떻게 해서든 그것이 실행될 수 있게끔 마음을 모아서 가려고 하는 사람들만 모인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음의 길이라고 했을 때, ‘마음의 길을 걷기란 참으로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신앙하는 도중에 여러 가지 유혹과 난관들이 수없이 찾아옵니다. 그러면서도 어렵다. 어렵다. 이래서 될까. 저래서 될까.’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걷기 어려운 길을 걷기 때문에 값어치가 생기는 것입니다. 어려운 것을 했기 때문에 그만큼의 가치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신님의 세계를 걷는 만큼, 세상의 상식이나 지혜 등이 이 세계에서는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어쨌든 신님의 가르침, 그 의도에 따르려고 하는 한줄기 마음만이 도움이 되는 겁니다. 인간적인 계산, 내 몸, 내 집안을 생각하는 사욕에 사로잡힌 생각이나, 지혜의 힘은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마는 겁니다.

그래서 중간중간 신님께서는 세상의 상식은 필요 없다. 나를 의지해서 따라오라는 의미에서 신상도 주시고 사정도 주시는 겁니다. 이 길에서 상대의 결점을 드러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조전일화편을 살펴봐도, 어느 누가 아무리 어려운 신상을 가지고 오더라도 힘들지. 걱정하지 말아라.”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와도 내가 너 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쓴 마음, 행동을 알고 있다. 처음 왔으니, 잘 듣고 가거라.”라고 하셨습니다. 내친 적이 없습니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자신이 변하고 자신이 진실로 인연을 자각함으로써 음덕을 쌓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음덕 쌓기가 되면, 그런 성진실 가운데 변하고 변해서 둘 하나의 조화가 생기고, 그런 가운데 감사한 섭리들이 나타나는 겁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각자의 삶을 통해서 여덟 가지 티끌, , 인색, 미움, 편애, 분노, 욕심, 교만, 원망 등으로 인해서 사람 사이의 화목과 친목을 깨고 행복해질 수 있는 것들을 모두 깨버리게 됩니다.

질병과 신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님께서는 처음부터 질병과 신상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처음에는 작게 보여주시다가 자꾸 말을 안 들으니까 큰 걸 주게 됩니다. 물론, 그 정도가 심해지면 물러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 사이의 갈등 속에서 여지없이 벌거숭이로 맞서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리교, 이 길에서의 교직자, 교회장이나 포교소장을 성직자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성직이라는 갑옷을 씌워서 면죄부를 주지 않습니다. 세상의 많은 종교를 다 짚을 수는 없지만, 많은 종교가 성직이라는 갑옷을 입고 여러 가지 안 좋은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갑옷이 너무 두꺼워서 세상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통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에게는 그런 갑옷이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성직이라는 갑옷 따위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더더욱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이런 상황에서 이겨나갈 수가 없게 됩니다. 다 같이 벌거벗고 있으므로 부끄러울 것도 없고 이겨낼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가 나쁘다고 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결국은 모든 것은 둘 하나의 조화가 무너지는 가운데 생겨나는 모습들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신님께서 원하는 마음으로 고쳐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특히, 신님께서는 내가 바뀌어야 한다.’라는 것을 혹독하게 얘기해주시고 있습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줍니다

 

이야기가 조금 바뀝니다만, 저의 개인적인 얘기를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두 달 정도 굉장히 우울했습니다. 우울한 마음에 빠져있었습니다. ‘우월이 아니라 우울입니다. 제가 했던, 관계했던 말들이 돌아서 그 속에 빠져버렸습니다. 진흙탕 속에 빠지는 느낌.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됐습니다. 여기서 완전히 벗어났는지는 아직 저도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교차하고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냥 아무 일 없이 앉아 있는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덕분에 배가 많이 나오게 됐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나온 배가 더 튀어나오게 됐습니다. 스스로가 자신에게 기분 나쁘게 하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좋지 않은 데까지도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도 해봤습니다.

지난 부인회 총회 때 교회장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이 세상은 55푼으로 시작해서 55푼으로 성인했다. 부부간도 부모와 자식 간에도 55푼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물론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지금까지 두 달 정도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혼자서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이 길은 특정한 한 사람이 이 길을 가자. 가자.” 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부족한 가운데서 서로의 힘을 조금씩 모으는 마음들이 모여서 결국은 하나의 작은 씨앗이 열 개, 백 개, 천 개가 되어 신님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그런 것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아직은 부족합니다. 10푼이 아니라 5푼부터 시작하니까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족하다고 하는 것. 그것 밖에 힘을 낼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스스로가 인식하고, 이것이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이구나. 하고 생각해서 좀 더 자신을 진솔하게 되돌아보면서 신앙을 이어 나가면 여러 가지 얽히고설킨 일들도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신님의 작은 메시지, 언질을 모르고 내버려 두면 크게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행동, 함께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우리는 일렬형제라는 사실입니다. 구제란 서로 도웁기입니다. 서로 깨우쳐 주는 겁니다. 모르면 서로 깨우쳐 주고, 부족하면 서로 도와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데 좀 더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키움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를 키우고, 성장시키는 것도 그렇습니다.

지도말씀에

연수가 오래된 용재만을 갖출 수는 없다. 나머지 부족한 것은 연수가 쌓이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연수가 지나야만 용재라고 한다.

용재는 아무리 조급하게 굴어도 안 된다. 그래서 이렇게 해 볼까 저렇게 해 볼까고, 각자 멋대로 하려는 것은 속된 생각이라서 잘되지 않는다. 아무리 해도 안 될 것은 안 된다. 가만히 있어도 될 것은 된다. 이렇게 해 달라고도 저렇게 해 달라고도 하지 않는다.

말 하나가 용재의 힘,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다. 모두 거기에 의지해서 어린 나무들이 자란다. 세상 여기저기서 얼마나 자랄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세상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다.

지금부터 서두르고 서둘러 얼마나 서두를지 모른다. 세상에는 새로운 길이 천 갈래나 생겨났다. 어떤 용재가 나올지 모른다.

이쪽에서도 용재, 저쪽에서도 용재, 높은 산에도 산 중턱에도 골짜기에도 있다. 낮은 데서 끌어올리려면 어렵다. 높은 데서 끌어내리면 빠르다 빠르다. 높은 데 있는 용재는 줄줄 내려온다. 어떤 용재를 모아서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

작은 마음은 버려 다오. 의심하는 마음은 버려 다오. , 인색, 원망, 시기하는 마음 버려 다오. 그러니 석의 리를 잘 분간해 다오. 이것 한마디 해 둔다. (1895107)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한마음 한뜻으로 사람을 키워나가고 서로가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서로가 협력,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타나는 리를 통해서 그것을 잘 생각해서 각자가 스스로 노력함으로써 필요한 수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 달, 82일부터 4일까지 고성교회 신앙수련회가 개최됩니다. 아무쪼록 집안에, 주변에 있는 아이들, 손주들을 하루라도 좋고 잠시라도 좋으니 같이 와서 보고, 들어서 이 길의 향내가 조금이라도 묻어서 갈 수 있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만 사람이 원하고 함께 갈 수 있는 이 길의 밝은 미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것으로 부족하나마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