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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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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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하나 89

 

천리교 가르침의 뿌리, 으뜸인 리 29

 

이 시 중

 

세계는 하나 우리는 한 형제

 

이 세상을 창조한 신이기에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자녀다 (4-62)

온 세상 신에게는 모두 다 자녀

사람들은 모두 어버이로 생각하라 (4-79)

온 세상 사람들은 모두 형제야

남이라곤 전혀 없는 거야 (13-43)

 

어버이신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어버이와 자식의 관계입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닙니다. 어버이와 자식의 관계라면 자식은 어버이를 한없이 공경을 하고, 어버이는 자식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푸는 사이입니다. 공경에도 다함이 없고, 사랑에도 다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인과 종의 관계란 명령과 복종의 관계입니다. 끊임없는 요구와 끊임없는 순응만이 있을 뿐입니다. 노예에게는 자유의지, 자유자재한 삶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주인의 요구에 순응하며 하고 따를 뿐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어버이신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어버이와 자식의 관계입니다. 자유의지로 서로 공경하고 사랑하면서 자유자재한 삶을 펼쳐갑니다. 여기에 신과 인간이 함께 용솟음치는 신인화락의 즐거운 삶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육친의 부모가 대통령일 수 있고, 환경미화원일 수 있습니다. 도시에 잘 나가는 변호사나 의사일 수 있고, 아니면 시골에 몹시 가난한 농부나 어부일 수도 있습니다. 양친이 모두 살아계실 수도 있고, 아니면 모두 돌아가셔서 안 계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부모는 어버이신님이십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진짜 부모가 어버이신님인 줄 알면 외롭지가 않습니다. 그 누구도 나를 외롭게 할 수도 없습니다. 어버이신님의 그 넓은 품으로 언제나 안아주실 것이니까요. 그리고 어떠한 처지에 놓이더라도 두렵거나 걱정할 필요도 전혀 없습니다. 내 부모가 어버이신님인 줄 알면 그 든든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보다 든든한 빽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들은 흔히 돈빽에 권력빽에 권위나 지위빽을 내세우지만 어버이신님빽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버이신님이 내 삶의 가장 든든한 빽이고 후원자인데 무엇이 두렵고 외롭고 위태로울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어버이신님이 우리들의 진정한 어버이임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으며, 그 생각을 잊지 않고 늘 간직하는 것만큼 든든한 일도 없습니다.

 

그리고 자식은 누구를 닮습니까? 어버이를 닮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내면에는 어버이신님을 닮은 성품, 신성(神性)이 온전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버이신님의 마음, 어버이신님의 정신, 어버이신님이 오랜 세월 기울이신 정성이 고스란히 우리 내면에 다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위대하고 고귀한 존재입니까?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모르는 우리 인간들은 시시때때로 의기소침하거나, 자기 자신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몰아붙이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남도 그런 눈으로 보며 형편없는 사람으로,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함부로 대하기 일쑤입니다.

현실 속에 겉모습이 어떨지라도 한 사람 예외 없이 모두 다 어버이신님을 닮은 신성을 가슴 속 깊이에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 신성이 찬란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나날이 근행을 올리며 마음을 맑히고, 세상 사람들도 그 신성을 살려낼 수 있도록 돕는 것, 이것이 이 길을 가는 우리들의 가장 큰 사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버이신님의 어버이 마음에는 편애가 없고, 차별이 없습니다.

 

다섯 손가락처럼 형제라면 어느 손가락을 깨물어도 다 아프겠지. 이쪽은 세우면서 저쪽은 넘어뜨리려 하지 않겠지. (1899. 12. 27)

월일에게는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자녀

구제하고자 하는 마음뿐이야 (8-4)

 

어버이신님은 우리들의 어버이시기 때문에 이쪽을 세우면서 저쪽을 넘어뜨리려 하지 않으십니다. 남쪽을 세우면서 북쪽을 넘어뜨리는 어버이가 아니고, 왼쪽을 세우면서 오른쪽을 넘어뜨리는 어버이도 아니며, 위를 세우면서 아래를 넘어뜨리는 어버이도 아니십니다. 오로지 자녀 귀여운 까닭에 어느 쪽 할 것 없이 모두를 구제하고자 하는 한결같은 마음뿐이십니다. 그런데 속 좁은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많은 차별심을 가지고 있을까요?

어버이신님께서는 누구도 차별하시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많은 차별상들이 나타납니다. 잘하고도 욕을 얻어먹고, 대충 하는데도 칭찬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부자로 살고, 어떤 이는 가난하게 살아갑니다. 내가 잘하는 것이 있고, 그가 잘하는 것이 따로 있습니다. 이렇듯 차별이 생기는 것은 자유로이 써 온 각자의 마음에 따라, 오랜 세월 동안 써온 마음의 습관, 인연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이지 어버이신님께서 편애하고 차별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지도말씀에서 밝히셨습니다.

 

신의 마음에 격차는 결코 없다. (……) 격차가 생기는 것은, 그 하나는 전생 씨앗에 인함이요, 다른 하나는 제각기 마음에 인한다. (1887. 12. 1)

 

그리고 우리 인간은 모두 어버이신님한테서 물 불 바람 십전의 수호로 생명을 부여받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버이신님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고, 우리는 어버이신님의 소중한 자녀이며 서로는 형제자매입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이 지구상에 사는 모든 민족, 인종, 피부 색깔, 언어, 풍습이 다르더라도 한결같이 어버이신님의 귀여운 자녀이고, 서로는 형제자매입니다. 남이라곤 전혀 없습니다. 여기에는 선택된 민족, 선택된 가문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으뜸인 어버이는 하나이십니다. 태양이 하나고, 달도 하나고, 지구도 하나입니다. 공기도 하나고, 바다도 하나고, 생명도 하나입니다. 바람에 국경선이 없고, 비구름에 국경선이 없고, 날아다니는 새에 국경선이 없습니다. 세계는 하나고, 우리 모두는 한 형제입니다. 남이라곤 전혀 없는 한 생명공동체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거나 망각한 사람들은 사람 사이에, 집안 사이에, 지역이나 나라 사이에, 계통이나 종교 사이에 여러 경계를 만들고 벽을 둘러치고 살아갑니다. 여러 경계선과 벽을 둘러치는 것만큼 경쟁과 편애와 배제의 논리가 판을 칩니다. 여기에는 신인화락(神人和樂)하는 즐거운 삶은 없고, 나만의 즐거움 혹은 우리끼리만의 즐거움이 있을 뿐입니다. 거기에 시비가 엇갈리고, 이해관계가 대립하면서 갖가지 분쟁과 전쟁과 모반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교조님께서 이 길을 여시면서 세계구제를 향한 모본의 첫걸음으로 이런 경계선과 담을 허무는 극빈의 길을 담담히 걸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남을 구제한다는 것도 사실 알고 보면 이런 경계와 담을 허무는 끊임없는 작업의 연속이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형제라면 서로 돕고 서로 위하고 서로 세우는 게 형제입니다. 누구 하나 소외시키지 않는 것이 형제의 도리입니다. 그리하여 높고 낮은 것을 골라 평탄한 땅으로 하여 누구 하나 차별 없이 화목하게 살아가고, 누구 하나 빠짐없이 신명 나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어버이신님의 유일한 바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마음이 어떠한 것에도 구애됨이 없이 크게 열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마음이 닫혀 있으면 그 누구도 도울 수가 없습니다. 위할 수도 없고, 세울 수도 없습니다. 조금 열리면 조금 도울 수 있고, 조금 위할 수 있고, 조금 세울 수 있습니다. 크게 열리면 크게 도울 수 있고, 크게 위할 수 있고, 크게 세울 수가 있습니다. 어떠한 것에도 걸림이 없도록 크게 열어가는 것, 이것이 마음성인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디 쉽습니까. 말이야 누구나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이 한없이 좁고 닫혀 있고 막혀있습니다. 당연하지요. 우리가 지금 마음성인이 다 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마음성인이라는 그 궁극을 향해 나날이 노력하는 그 과정에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지금 내 마음이 작다고, 닫혀 있다고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음성인을 향한 길을 멈추는 것, 노력하지 않는 것, 이것은 분명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인간이란 한순간에 태어난 것이 아니며, 자기 자신의 힘만으로 여기까지 성인해 온 것도 아닙니다. 무수히 오랜 세월 동안 어버이신님께서 온갖 마음을 다 기울여 키우고 보살펴주신 덕택으로 생겨난 인간이고, 어버이신님의 진실한 정성으로 여기까지 성인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며, 내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또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흔히 뛰어난 건축가가 지은 건축물을 보고 감탄합니다. 훌륭한 음악가가 연주하는 곡의 선율을 듣고 깊은 감동에 젖기도 합니다. 기발한 작가가 지은 문학작품에 매료하여 환호성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것도 어버이신님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 만드신 이 인간보다 더 위대한 작품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작품을 제대로 볼 줄 모르고, 제대로 대할 줄 모른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만큼 어버이신님의 존재를 모르고, 그 마음도 모르고, 그 섭리의 세계를 모르는 탓이겠지요. 그만큼 미숙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바르게 알려주기 위해 교조님을 통해서 으뜸인 리를 알려주신 것이지요. 으뜸인 리는 우리에게 으뜸인 어버이를 알리고, 세계는 하나 우리는 한 형제라는 자각을 철저하게 일깨워줍니다. 그 자각이 지금까지 없었던 진실한 구제로 나아가게 하는 바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없었던 구제를 하므로

근본을 알려 주지 않고서는 (9-29)

지금까지 모르던 일을 가르치므로

으뜸인 어버이를 확실히 알린다 (9-30)

월일은 이 진실을 온 세상에

어떻든 명확히 알리고 싶다 (13-48)

이것만 명확히 알게 되면

모반의 뿌리는 끊어져 버려 (13-49)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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