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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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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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월차제 신전강화

 

큰 마디에서는 굵고 튼튼한 싹이 튼다

 

최영철(문산교회장)

 

화창한 날씨 속에 여러분들과 함께 즐겁게 용솟음치며 근행을 올릴 수 있어서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지명을 받았기에 지금부터 생각하는 바를 잠시 말씀드릴까 합니다.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4)

 

큰 마디에서는 굵고 튼튼한 싹이 튼다

 

어버이신님께서는 한시도 쉬지 않고 우리를 보살펴주고 계신다고 항상 생각합니다. 미우나 고우나, 잘하나 못하나 언제나 자녀 귀여운 일념에서 어버이의 마음에 맞는 마음 쓰기와 노력을 하면 많은 선물을 주시고 자칫 게으름을 피우거나 잘못된 길을 가면 따뜻한 훈계와 손질로서 어루만져 주시고 한시도 눈을 떼지 않으시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감사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어떤 교회장님께서 저에게 회장님은 참 병원을 자주 찾는다.”고 하더군요. 글쎄요, 제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저 나름대로는 신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눈 밖에 나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하는데 가끔 매를 때리시니 저도 감당하기 힘듭니다.

신님께서는 친필 말씀에

나날이 용재에게는 손질을 한다

어디가 나쁘다고 전혀 생각 말라 3-131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어버이신님께서는 늘 눈 밖에 난 자식이 아니라 어버이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용재구나 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만일 신님의 눈밖에 벗어난 용재였다면 벌써 내 몸에서 어버이신님께서 물러났을지 모르는데, 그래도 쓰일 곳이 있으신지 가끔 매질도 하시고 훈계도 하시니 말입니다.

이번 620일로 만 6년이 됩니다만, 6월만 되면 생각이 납니다. 6년 전에 아플 때는 잠깐 잠자다 깨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고 일이 진행됐기 때문에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아프게 매질하시니 그 여운이 오래도록 가시지를 않았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 어리석게 많은 시간만 허비하고 몸만 상하게 하고 화를 키웠습니다. 저는 웬만하면 잘 참는 편입니다. 이것도 알고 보면 잘못된 사고방식입니다. 처음에 무릎이 아파 병원에 가니 연골이 닳아서 그렇다고 해 주사도 맞고 연골주사도 몇 번 맞고 나면 견딜 만해서 전도도 다니고 잘 지내다가 또 좀 무리를 하면 통증이 심하고 물이 차고 했습니다. 이런 생활이 몇 년 반복됐습니다. 시간이 흘러 물도 차지 않고 좀 낫는구나 생각하니 이번에는 엉덩이에서 허벅지 다리를 타고 내려오며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병원에 가서 문의하니, 사진을 찍어보고는 협착증이라고 해서 협착증 주사를 맞곤 했습니다.

제가 제일 힘들었던 것은 고성교회 월차제 제일이었습니다. 전례를 한다. 호자를 한다. 좌근 손춤을 한다. 그 시간을 메우는 게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우리 교회 같으면 양반다리를 한다든지 편하게 앉아 있을 수도 있을 텐데 고성교회에서는 격식을 차린다고 그렇게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맡은 역할은 어떻게 하든 해야 했으니까요.

지난 가을부터 통증이 심해졌지만, 강습소 60주년 행사에 정신없이 쫓아다니다 보니 또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해를 넘기고 새해가 되자 마음에 결심이 서더군요. 다리를 절고 다니는 것도 사람들 보기에 민망하고 이렇게 전도를 다니는 것도 힘이 들고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해서 집사람과 상의를 해서 병원을 찾았습니다.

진주에서 잘한다는 전문병원에 가서 확인하고 수술을 하든, 시술하든 해보자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진주에서 꽤 잘한다는 전문병원을 갔더니 사진을 찍고 초음파검사를 하더니 잘하는 내과 전문병원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소견서를 들고 진주제일병원을 찾았습니다. 내과에 가니 내과에 볼 게 아니라 외과로 가라고 해서 또 정형외과를 가니 MRI를 찍자고 해서 확인을 해보니 고관절에 물이 너무 많이 차고 괘사가 되어 하루속히 수술하지 않으면 다른 장기에 손상이 간다는 말씀과 여러 가지 말씀을 듣고는 터전에 가야 하고 설 명절도 보내야 하고 해서 약만 한 달분을 지어달라고 해서 나왔습니다.

다음날 병원을 찾아 물인지 염증인지 재검사를 했습니다. 다행히 염증이 아닌 물이 고였다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사진 복사를 한 부 해서 처음에 갔던 전문병원을 다시 찾았습니다.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전문병원을 찾았는데 왜 내과 전문병원을 소개해주셨는지 따질 겸 다시 갔던 겁니다. 관절 전문병원 의사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처음엔 물이 너무 많이 고여 있어서 혹여나 창자가 밀려내려 왔는지 의심이 되어 그랬답니다. 이곳은 관절만 보기에 혹시나 해서 그쪽으로 보내드렸다면서 미안하다고 하며 상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처음엔 시간과 금액까지 따지러 갔는데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신뢰가 가더군요. 날짜는 잡지 않고 명절을 지내고 하겠다고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원단제 다음날 전도청 당직이라 갔다가 청장님께 사정 말씀을 드렸습니다. 수술하면 전도청 제일을 못 본다는 말씀을 드리고 수훈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7일에 고성교회 부인회 날 회장님께도 사정 말씀을 드리고 수훈을 받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터전을 가게 되었습니다.

대교회 춘계 대제 날 근행복을 입으면서 고성교회장님께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수술을 받아야 할 것 같다고 말씀을 하니 병원을 정했느냐고 묻길래 아직 결정을 못 했다고 하니 느닷없이 하시는 말씀이 대학병원에서 하지요.” 하시는 것입니다. 대학병원은 생각도 못 했는데 내 생각에 , 신님의 말씀이구나.’ 하고 바로 마음을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마음이 개운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저기 물어보기도 하면서 부산을 갈까 진주에서 할까 하고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교회장님께 수훈을 받고 순서참배도 마치고 그다음 날도 원화분교회로 해서 신전을 오르내리기도 하면서 참으로 많이도 걸었건만 청장님, 고성회장님, 대교회장님 세 분의 수훈을 받은 덕분인지 통증 없이 터전에서 잘 지냈습니다.

마지막 날 아침 7시에 공항으로 출발한다기에 일찍 신전에 가서 참배하고 와야겠다고 남문 신전에 앉아 좌근 근행을 혼자 보는데 왜 그리도 눈물이 나오는지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 몸 일부가 수술을 안 하면 안 될 지경에 이르다니 왜 이렇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뼛속에도 피가 통해야 하는데 통하지 않으면 썩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뭔가 내 마음속에 통하지 않는 것이 뭘까 곰곰이 생각하니 그런 면이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신앙하면서 말을 섞지 않는 사람, 아예 피하고 싶은 사람,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렇게 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미워하고 원망하기보다 말을 섞지 말자 하고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이 한두 사람 있었습니다. 알고 보면 모두가 나의 인연인 것을. ‘어버이신님 정말로 잘못했습니다. 진심으로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하고 참회를 했습니다. 내가 내 마음을 잘못 써서 내 몸 일부가 망가졌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더 났습니다. 한참을 그러고 엎드려 있는데 내 몸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짜릿한 전율이 흘렀습니다.

참배를 마치고 일어서려니까 왠지 몸이 가뿐하였습니다. 교조전으로 해서 조령전으로 한 바퀴 돌고 숙소를 내려오는데 왜 그렇게 발걸음이 가벼운지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터전에서 돌아와 명절도 잘 지내고 우리 교회 월차제도 잘 모시고 다음 날 곧바로 213일에 병원에 입원해서 무사히 수술을 잘 받았습니다.

처음엔 겁을 많이 먹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이것저것 알아보니 일반 관절보다 고관절이 어렵다는 것을 보고 많이 두렵게 생각했습니다. 수술하고 나면 근행이라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많이 아플까도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다행히 하반신 마취를 해서 그런지 아픈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둔탁한 기계 소리, 망치 소리를 들으며 저는 계속 12장 근행을 보았습니다. 12장 근행을 2번 보고 나니 수술이 끝났습니다. 마취 깨는 시간을 포함해서 2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불안했던 마음도 잠시, 안도의 마음과 동시에 편안한 병원 생활을 했습니다. 신님의 수호와 주위 많은 분의 정성에 힘입어 걱정과는 달리 빠르게 회복을 했습니다. 퇴원하고 한 달 만에 고성교회 월차제에서 전례를 했습니다.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꿇어앉지 마라. 다리를 꼬지 마라. 양반다리를 하지 마라.”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주의사항이었습니다. 한 이틀 연습을 하고 어떻든 견뎌야 한다는 마음으로 월차제에 참가해서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근행은 중요합니다

 

어버이신님께서 저에게 크나큰 시련을 주실 적에는 몸의 절박한 사정을 통해 마음의 리를 분간하여 새롭게 마음을 바꾸어 몸에 자유자재한 수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키시며 교회장으로서의 깨우침을 통해 새롭게 출발하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나에게 불어닥친 이런 큰 마디를 전화위복으로 삼으며 새로운 싹을 틔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마디를 만날 때마다 슬기롭게 헤쳐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12장 근행을 변함없이 꾸준히 보아온 탓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저는 12장 근행을 교회장이 되고 나서부터 꾸준히 보아왔습니다. 그저, 이제는 습관처럼 되어버렸지만, 지금까지 보아오면서 참으로 힘이 든다는 느낌도 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온종일 움직이고 늦게 근행을 볼 때는 보기 싫을 때도 있었습니다. 다리가 아플 때는 앉아서 볼 때도 있었습니다. 그것도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 상급이나 다른 데 월차제 근행을 보고 나면 쉬고, 외부에 나가서 묶게 되면 안 보고, 하지만 교회에 있을 때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한 번은 꼭 보았습니다.

12장 근행의 매력은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조용히 기원하는 그 시간이 참으로 매력입니다. 예전에 원남성교회장님께서 12장 근행을 통해 수호를 받았다는 말씀을 한 적이 있습니다만, 우리 용재는 대부분 어떠한 다급한 일이 있으면 12장 근행을 작정해서 보는 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용재는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꼭 급할 때만 신님을 찾기보다는 늘 변함없이 기원을 드리고 자기반성을 할 겸 명상에 잠겨 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주제넘은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각자 각자의 실천과 기원방법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또한, 그렇게 한다고 해도 같은 수호가 난다는 보장도 없지만, 변함없이 꾸준히 이어가는 실천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근행의 중요성은 누구나 들어서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터전에서 올리는 여러 가지 종류의 근행이 있습니다. 어버이신님께서는 근행은 아무것도 없는 데서 인간세계를 창조하신 태초의 진기한 섭리를 이번에 구제 한줄기에 나타내려고 가르치신 것이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 ‘이 근행에 의해서 의도하시는 즐거운 세계로 바뀌게 된다.’라고도 하셨습니다.

친필말씀에

이 근행은 온 세상을 구제하는 길 벙어리도 말하게 하리라 4-91

이 근행 어떤 것이라 생각하는가 세상을 안정시켜 구제할 뿐이다 4-93

이 근행만 시작하게 된다면 무엇이든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는 거야 9-54

나날이 어서 근행을 서둘러라 어떤 재난도 모두 면하리라 10-19

아무리 어려운 질병도 근행 하나로 모두 도움받으리라 10-20

라고 하셨듯이 근행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두 잘 알고는 있지만, 늘 올리는 근행이라 가끔 정성이 부족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 악기가 틀리면 신경이 거기에 쓰여 곤두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때문에 되레 제가 틀리게 되는 일도 자주 생깁니다.

교조님께서는 리의 노래야 리에 맞추어 추는 거야. 그저 추는 것이 아니고 리를 손짓하는 거야. 근행에 손이 흐늘흐늘하는 것은 마음이 흐늘흐늘하기 때문이다. 손짓 하나가 틀려도 좋지 않아. 이 근행으로 명이 바뀌는 거야. 소중한 근행이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터전의 리를 받아 올리는 월차제 근행과 조석으로 올리는 근행, 또한 작정해서 올리는 12장 근행이든 모두 정성을 다해 올리다 보면 틀림없는 신의 혜택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마디를 한 번씩 겪을 때마다 주위에 걱정을 시켜서 죄송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성숙해 가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저를 위해 정성을 써주신 여러분들이 계셔서 더 행복합니다.

생각하기 싫지만, 때로는 만약에 6년 전에 이 세상에서 라는 존재가 없어졌다면 지금 문산교회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해봅니다만, 이제는 더 이상 걱정시키는 일이 없어야 하겠지요.

저는 마디를 겪을 때마다 늘 지도 말씀을 떠올립니다.

보잘것없는 조그마한 마디에서는 작은 싹이 트지만, 큰 마디에서는 굵고 튼튼한 싹이 튼다. 굵은 싹은 여간해서는 부러지지 않는다. (1888. 3. 8)

괴로운 것이 마디, 마디에서 싹이 튼다. 이거 마디야, 마디야, 낙이야 하고 큰 마음을 가져다오.(1894. 3. 5)

라고 하셨습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듯이 전화위복으로 삼아 정말로 굵고 튼튼한 싹을 틔우려고 노력하며 인생을 새롭게 사는 만큼 더 열심히 보람있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길만이 저에게 정성을 써주신 많은 분께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