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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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년07월]5푼 5푼의 리 - 이상봉

2019.07.11 16:07

편집실 조회 수:139

6월 부인회 인사말씀

 

55푼의 리

 

  

교회장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6월의 부인제이자 부인회 총회를 겸해서 근행을 올렸습니다. 팔수부터 12장까지 7번 교대를 하면서 근행을 올리기 위해 준비를 해주시고 근행을 즐겁게 올릴 수 있게 해주신 데 대해 대단히 감사하다는 말씀 전해드립니다.

인사 말씀으로서 몇 말씀 전해드릴 테니 끝까지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4)

 

55

 

천리교 신앙을 한다고 하는 것은 교조님이 일러주신 가르침을, 내가 살아가는 가치관의 기준으로 삼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55푼의 리로서 이 세상은 되어있다고 일러주시지 않았습니까. 어버이신님이 인간을 창조하고 사람이 성인될 때도 55푼으로 성인해서 지금의 인간이 되었고, 사람이 살아가면서도 부부가 55푼의 리로서 서로 도와가야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55푼이라는 것은 부부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그런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관습이라는 것에 의해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 자식도 55푼입니다. 자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부모를 섬기고 효도만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부모는 자식을 애정으로 기르고 보살펴주는 것이 더해지기 때문에 55푼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키우는 책무도 다하지 않은 채 자식이니까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하는 것은 55푼의 리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하서에도 서로서로 효도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부모 자식 간에 서로 효도한다는 의미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무슨 효도를 한다는 말인가. 하고 생각하겠지만, 서로 은혜 보답하는 것입니다. 부모라고 해서 반드시 자식에게 보살핌을 받아야 하겠다는 생각은 55푼의 리에서 어긋나는 것입니다. 관습으로 생각하면 부모이기 때문에 무조건 그런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번에 우리 부부가 같이 서울에 갔다가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가 부모님을 모시고 같이 산다고 하니, 그 택시 기사가 하는 말이 요즘 세상에 100명 중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제가 그 말에 제가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살고 있는데요.”라고 답했더니, “무슨 그런 사람들이 다 있느냐?” 하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왜 사회가 이렇게 되었는가. 부모 모시기를 싫어하고 같이 안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도, 55푼에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며느리도 친딸과 똑같이 대해주면 될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자식과 분명히 다르게 대합니다. 한 가지만 예를 들어 생각하면, 딸자식은 부모 앞에 드러누워 있어도 아무 말 안 하는데, 며느리가 누워있으면 안 됩니다. ‘감히 며느리가 대들어.’, ‘말대꾸하느냐.’ 하는 마음이 앞섭니다. 그런 것 하나만 봐도 그렇습니다.

관습에 비추어 보면 당연히 그렇겠지만, 천리의 이치에서 보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런 데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리에 맞춰서 살아가게 되면 그런 일이 생길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부모를 모시고 같이 사는 것도 즐겁고 편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다 같이 살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같이 사는 것이 불편하고 힘들다고 생각하니까 안 살려고 하는 겁니다. 자기 부모와도 같이 살기 싫어하는데 남의 부모와 같이 살고 싶어 하겠습니까.

이것도 천리교의 가르침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관습만 가지고 생각해보면 맞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집터

 

교조님께서는 좋은 집에 살고 싶다. 좋은 것 입고 싶다. 좋은 것 먹고 싶다. 라는 생각만 하지 않으면 여기가 부자집터가 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좋은 것을 먹어봐야겠다. 좋은 것을 입어봐야겠다. 하는 식으로 살게 되면서 세상 살기가 어려운 것이 여러 가지가 나옵니다.

터전에 참배하러 가서 신자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해보셔서 잘 아실 겁니다. 거기 가면 식사 때 밥하고 된장국만 나옵니다. 집에서 먹던 것과 생각하면, 반찬도 없고 입맛에 안 맞습니다. 우리를 홀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일전에 교인강습회 강사로 다녀왔는데, 아침 식사를 본부 1식당에서 합니다. 제일 큰 식당입니다. 거기 가봐도 밥하고 된장국이 나옵니다. 보통 아침 식사하는 인원이 4~5백 명정도 됩니다. 강습생, 전수과 학생들, 근무자들이 먹습니다. 3일 강습회를 하게 되는 날에는 천 명까지도 아침 식사를 한 번에 합니다. 아침 630분에 문을 엽니다. 줄을 서서 밥을 먹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이 새벽부터 이렇게 줄을 서서 먹는 데가 어디 있나? 얼마나 맛집이면 이렇게 새벽부터 줄을 서서 먹겠는가.’ 하는 우스개 생각도 해볼 수 있습니다. 다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왜 이렇게밖에 밥이 안 나오나?’ 하는 생각하는 마음은 스스로 먹는 것을 그렇게 만드는 겁니다.

사람 마음에 따라가는 겁니다. 부족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이 모두 부족해 보이게 됩니다. 내 입에 들어가는 것도, 몸에 걸치는 것도 부족하고, 사는 것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도 모두 마음에서 오는 겁니다. 내 마음만 바꾸게 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됩니다. 마음만 바꾸면 세상은 얼마든지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고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라고 느껴지게 됩니다. 이런 게 바로 우리가 가르침을 살아가는 기준으로 삼아서 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도 왜 반찬이 이것밖에 안 되나 하고 생각하면, 그것은 가르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입맛에 맞춰야 하고, 내가 하던 대로 해줘야 한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신앙하는 길에서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머니의 사랑

 

어버이신님께서 교조님, 나카야마 미키님 몸에 듭셔서 이 세상을 다스리는 진실한 길을 일러주신 이유는 무엇일까. 태초에 인간을 창조할 때 10가지 어버이신님의 수호의 리가 활동을 했습니다. , 그중에 유독 여자추형묘상의 리인 교조님의 혼을 지니신 분을 터전에서 교조님으로 삼아서 일러주셨을까.

당시를 생각해보면 여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시의 신분 사회를 생각해보면 여자라는 입장은 사회적으로 제일 약자입니다. 어디 가서 공부를 제대로 한 것도 아닙니다. 어디를 보러 가서 견문을 넓힌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 사람 몸에 들어가서 이 세상을 다스리는 진실한 길을 편 이유를 분간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은 돈이나 체면이나 지식이나 학문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때그때 교조님이 보여주신 길이 이 세상을 다스리는 진실한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쳐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좋아졌지만, 지금도 여자, 어머니로서의 입장이라는 것이 좋지 못한 사회도 아직 많이 있습니다. 중국에 조선족들이 많이 사는 연변에 가면, “소 새끼로도 못 태어나서 여자로 태어난다.”라는 말이 있답니다. 여자의 신분을 대변하는 말입니다. 소로도 태어나지 못해서 여자로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여자로 태어날 바에는 차라리 소로 태어나는 것이 살아가는 데 훨씬 낫다는 겁니다. 그만큼 여자들이 당하는 차별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전에는 그런 관습에 의해서 여자를 천대시하는 곳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가지고 있는, 남자로서는 흉내 내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로서 가지는 힘입니다. 어머니로서의 사랑입니다. 이 세상에 사랑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베푸는 사랑만큼 강한 것은 없습니다.

임재범이라는 가수가 부른 사랑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생뚱맞겠지만, 그 가사를 조금 보면,

 

사랑 그 사랑 때문에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지금껏 살아서

 

오늘 오늘이 지나서

그 사람 다시 볼 수 없게 되면

다시 볼 수 없게 되면 어쩌죠

 

그 많은 인연에 왜 하필 우리 만나서

사랑하고 그대 먼저 떠나요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함께한 시절

잊진 못할 거야

 

늘 곁에서 함께 하잔 말도

내 목숨처럼 한 그 약속도

해줄 수 없어서 난 지킬 수 없어서

미안하단 말도 해줄 수 없을 것 같다

 

(중략)

 

그대만 알아요

내 사랑 결코 바보같진 않아

결코 바보같진 않아 그대여

 

저도 처음에는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가사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노래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대는 어머니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베풀어준 사랑을 얘기하는 겁니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그 어떤 사랑보다 강합니다. 교조님 모본 50년의 태도를 보면,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남을 생각하는 이타적인 태도는 모든 사람을 자기 자녀로 보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기 친자식보다 남을 더 자기 자녀처럼 여기고 사랑을 베풀어주는 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보통사람은 따라가지 못할 일들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한 가정의 어머니가 아니라 모든 이들의 어머니로서의 삶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모본으로 여긴다면 천리교의 부인들도 자기 자녀만 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오는 모든 이들의 어머니와 같은 태도로서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이 모본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교조님이 월일의 현신이 되시고 나서 처음 하신 일이 가난에 빠진 것입니다. 이것은 재산이나 물질뿐만 아니라 집안의 체통이나 명예, 자식들의 안위, 자기가 바라는 정신적 가치도 모두 버린 것입니다.

교조님이 보여주신 이런 이타주의에 반하는 이기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기주의라는 말은 나만 잘되면 된다. 나 자신만 잘되면 된다. 내 가족만 잘되면 된다. 또는 내가 바라는 정신적인 만족만 채우면 된다는 태도입니다. 하지만 교조님 모본의 이타주의라는 것은 결국 그런 것이 아닙니다. 흔히 우리는 인색 업적을 내세우고 자랑하는 태도로서 성취를 이루고 그것을 드러내는 태도로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결코 교조님의 모본과 맞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서전을 적는 것이나, 살아있으면서 동상을 세운다든지, 화려한 묘소를 만든다거나 하는 것은 결코 교조님이 보여주신 태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교조님 살아생전에는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교조님 존명 하실 때는이라는 말을 씁니다. 교조님 존명 하실 때는 결코 자신의 사진을 찍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았답니다. 초상화라는 것은 형태로서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 교조님이 은신하시고 난 후에 시신은 쓰레기통에 버려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시신으로 무덤을 만들고 거기에 절을 하고 숭배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교조님의 유언이었습니다. 지난 4월의 신전 강화에서도 말씀을 들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 것을 기념하는 것을 남기는 것을 절대 허락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형태로 뭔가를 남기는 일, 명예를 세우는 일 따위는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천리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생명의 본질은 태어나고 죽는 것입니다. 형태가 있는 것은 반드시 없어지는 것이 천리의 이치입니다. 없어져야 할 것을 굳이 남겨서 기념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의 욕심 때문입니다.

유명한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밀알이 썩어야 풍성한 수확을 거둔다. 하지만, 이기적인 사람은 결코 자기가 썩으려고 하지 않는다.”

위의 말과 상통하는 말입니다.

 

장수의 가치

 

우리도 교조님이 걸어가 주신 모본의 길이 있으므로 오늘날 이 길을 감사하게 걸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은 우리가 100세까지 사는 시대라고 하지만 이것도 천리의 이치에 비추어 본다면 과연 오래 사는 것이 좋은 것인가. 오래 살아서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고 고통을 준다면, 그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얼마나 불행하고 저주스러운 인생과 사회가 되겠는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때까지 사는 것이 최상의 인생이라고 생각됩니다. 장수보다 더 많은 일로 남에게 도움 되는 일이 되기를 자기 장수의 가치와 의미로서 삼는 것이 중요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연세대의 유명한 명예 철학 교수인 김형석 선생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올해 100세가 되셨는데, 그 나이에 재작년까지만 해도 한 해에 180회의 강연을 하고 다녔답니다. 이제껏 100세까지 살아보니, 살면서 여러 풍상을 겪고 고생을 했지만, 사랑이라는 가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올 수 있었다. 죽을 때까지 그 마음만 간직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잃어도 그보다 몇 배나 더 소중한 것을 찾아 지니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 있는 사람은 자기를 위하게 되어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결코 이기주의적인 삶의 태도는 오래가지 못한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을 보아왔지만, 돈을 쫓아 사는 사람도, 명예를 쫓아 사는 사람도 결코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없어지게 되어있다. 그런 허무한 것을 위해 살지 말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고생을 하더라도 내 삶의 가치로써 삼아야 한다.

라고 했습니다.

 

모든 이를 자녀로서

 

, 교조님께서는 이 세상은 어머니의 정이나 사랑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리에 따라서, 정해진 인연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다. 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교조님의 자녀들에 얽혀진 일화를 보면 그렇습니다. 장남 슈지씨도 출직하는 과정을 보면, 당시에 천리교 신앙하는 것이 정부로부터 많은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탄압을 피해 편하게 하려고, 처음에는 요시다신기관령이라고 하는 교토에 있는 신사에 등록했습니다. 탄압을 피해 보려는 의도였습니다. 교조님이 반대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곤고잔 지후쿠지에 있는 산하로서 덴린오강사를 만들어서 탄압을 피해 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교조님이 결코 그런 일을 하면 신이 물러난다고 말렸습니다. 강장이 된 지 1년 만에 슈지씨가 출직을 했습니다. 덴린오강사 2대 강장이 된 부인 마쓰에씨도 다시 1년 만에 출직을 했습니다. 3대 강장이 된 사람도 1년 만에 출직을 했습니다.

자녀와 며느리의 출직으로 보여주시면서 이 길은 리를 따라 걷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정해진 인연이나 리에 따라 걷는 것이 이 길을 가는 태도라는 가르침을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자녀를 통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친필에

이 이야기는 남의 일이 아닌 만큼 신한줄기로서 이것은 자신의 일이야 1-50

이 이야기는 남의 일이라 생각 말라 모두 각자의 집안 이야기야 7-31

지도말씀에도

이 길은 전생에서 금생, 또 환생해서까지 깨우치는 리이다. (1898. 3. 26)

이 길은 자신과 집안에서 나타나는, 금생에서 나타나는 인연을 통해 전생을 깨닫고 또, 금생에서 나타나는 인연을 해결하지 못하면 후생에 까지도, 자손에게까지도 나타나기 때문에 신한줄기의 가르침으로서 가정에서부터 부모에서 자녀로 이어져 오고, 이어져가면서 인연을 해결해야 이 길의 신앙은 어버이에서 자녀로 이어져가면서 어버이신님 교조님의 가르침으로써 해결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 태초에 어버이신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의 이야기를 마음에 잘 새겨주지 않으면 자녀를 키워갈 수 없는 거야. 자녀를 키워갈 수 없으면 어버이의 은혜를 갚을 수 없는 거야. 자녀를 키움으로써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는 거야.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의 정으로서 자신의 자녀도 물론 신님의 자녀로, 용재로서 키워야 하겠지만, 교회에, 이 길에 이어지는 모든 사람, 나와 인연이 있는 모든 사람을 교조님과 같이 모든 이의 어머니와 같은 태도로 키워야 합니다. 단지 정으로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연을 납소해서 행복한 길로 가기 위한 이 길을 이어가기 위해서 이것을 명심하고 평소에 교조님의 모본을 가치관의 심으로 삼아서 따라가는 데 부인 여러분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단지 이것은 부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55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써 오늘의 저의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