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 교회본부



cond="$

교조탄생의 달 월차제 신전강화

 

신한줄기에 대한 자세

 

  

오대성(웅천교회장)

 

여러분 반갑습니다.

방금 소개받은 천리교 웅천교회장 오대성입니다.

교회장님께서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셔서 이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 여러분을 작년에 뵙고 다시 이렇게 뵙게 되었는데,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그저께가 교조님께서 탄생하신 경사스러운 날이었습니다. 터전에서는 교조탄생제를 올렸고, 저희도 교조님이 태어나셨던 시기, 모든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에 우리의 신앙도 다시 새로운 싹이 트고, 그것이 좋은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을 수 있는 그런 부분이 있다고 하면 같이 살펴볼까 합니다.

우리에게는 항상 좋은 일이 있어야 되는데, 그 좋은 일이라는 것은 우리가 신한줄기의 마음 자세가 될 때, 그것이 어버이신님의 마음에 맞을 때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신한줄기에 대한 우리의 자세, 마음가짐에 대해 같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4)

 

신한줄기

먼저, 전체 대의에 대해 말씀드리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길의 신앙자 가운데서도 자칫하면 인간생각에서 이쪽으로 향하고, 저쪽으로 향해 제멋대로 걷는 자도 있겠지만, 이 길을 걷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한줄기에 따라 모두의 정신을 하나로 뭉쳐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대가 이 길의 리에 맞지 않는 행위가 굳어버려 반성하지 못하는 상태까지 되어 녹이 스는 결과가 되고 말게 되고 그렇게 되면 신은 그것을 내버려 둘 수 없다고 교조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각자 마음 쓰는 것이 신의 리에 맞지 않는다면 신앙자로서 가장 중요한 사항이 빠지게 되는데, 그래서는 이 길을 잘 가고 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말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 길을 잘못 걷는 일이 없게 하려고 여러 가지로 신한줄기로 나아가는 방법을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의 말에 마음을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실행한다면, 그때야말로 신이 깨우친, 단 한마디의 말에서 자신의 생각, 세속의 만 마디 말보다 더 큰 의미를 찾게 될 것이다.

또 모두가 정신을 하나로 뭉쳐 한마음 한뜻으로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 바로 신의 의도에 따르는 것이 된다. 그것이 또 세상 사람들에게 이 길이 과연 훌륭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고, 이 길을 세계로 뻗어 가게 하는 근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빨리 모두에게 전하여 전 신앙자가 그것을 납득하고 마음에 깊이 새기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각지에 교회 명칭의 리를 내려주고 있는데, 그 교회에는 각각 중심()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신의 이야기는 누구보다 먼저 그 사람들이 납득하여, 거기에 담긴 구제한줄기의 어버이의 의도를 단단히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교회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그런 마음으로 자아하고 일제히 일어선다면 어떤 사람도 어떤 일도 그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자아 자아 모두 용솟음치며 시작하도록 하라. 용솟음치면서 하는 일에 나쁜 일은 없는 법이다.

신한줄기의 마음이 되어 심을 중심으로 각자가 신님의 뜻에 맞는 역할을 해 나아가는 속에서 신이 수호한다, 번창해 간다는 것을 교조님은 일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188818일의 지도말씀의 대의를 살펴보면,

신한줄기의 길은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면 어렵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근본이치를 알게 되면 조금도 어려울 것은 없다. 신한줄기의 길이란 이러한 것이라고 18381026일 이전에는 들려준 적이 없다. 인간을 창조한 으뜸인 장소인 터전에서 인간을 창조한 으뜸인 신인 천리왕님께서 교조님을 통해 이 세상에 나타나서 시작한 것으로서 세상을 다스리는 진실한 길을 밝힌 신이다. 그 근본 유래를 단단히 분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한줄기란, 이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어버이신님의 마음을 밝힌 것이며 바르게 다스리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신 어버이신님의 마음이다.

우리가 항상 느끼고 있는 오늘도 앓지 않고 죽지 않고 쇠하지 않도록 하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바로 신님도 이러한 진기한 수호를 이 세상에서 만들고자 하십니다. 이 어버이신님의 마음에 여기에 맞추려는 마음, 노력해가는 것이 신한줄기입니다.

, 나도 앓지 않아야 되겠다, 나도 죽지 않아야 되겠다, 나도 쇠하지 않아야 되겠다 하는 이 어버이신님의 마음을 그대로 나도 가지고 갈 수 있는 노력 이것이 신한줄이고, 신한줄기를 걷는다고 쉽게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다카야스 초대회장인 마쓰무라 선생님이 몸에 조금 장애가 있어 터전에 돌아와 신님께 여쭈었을 때 이 지도말씀이 계셨다고 합니다.

마쓰무라 선생님은 천성으로 학문을 매우 좋아했으며, 무엇이나 이유를 잘 따지는 성품이었습니다. 어느 날 교조님은 선생에게

이 길은 지혜나 학문으로 되는 길이 아니야. 오는 사람에게 오지 마라고 하지 않는다. 오지 않는 사람에게 무리로 오라고도 하지 않는 거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은 자기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교조님으로부터 깊이 감동을 하여 마음속으로 크게 참회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선생님은 젊었을 때, 신앙문제를 자신의 지식으로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조님께서는 선생에게 이런 말씀을 전하시면서 이러한 신의 마음, 뜻을 자신의 마음에 새기면서 살아가야 하며 매사에 신의 뜻에 기준을 두고 생활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일러주셨고, 훗날 이 길의 주역으로서 초대진주님을 도우면서 신한줄기로서 이 길을 이어나가셨습니다.

이 길은 먼저 신한줄기의 마음이 되어 신한줄기의 실천으로 나아가는 신한줄기의 길이 될 때 바른 신앙이 되고 질병의 뿌리, 액운의 뿌리가 끊어짐으로써 앓지 않고 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진기한 구제를 받아 즐거운 삶의 길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신한줄기의 가르침이 이 세상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마지막으로 해결해 주는, 완성해 줄 수 있는 구극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교조님 장례의 의미

 

교조님 50년의 길은 신한줄기의 길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찾아오는 자녀들에게 어버이신님의 마음 즉, 신한줄기의 마음을 새기게끔 일러주시고 인도해주셨습니다. 자녀가 귀엽기 때문에 25년의 수명을 단축하시면서까지 은신하시기 전 49일 동안의 지도말씀에서 신과 인간, 교조님과 초대진주님과의 질의응답 속에서 신한줄기의 마음가짐, 신한줄기의 믿음, 신한줄기의 실천을 통하여 확고한 신한줄기의 정신을 불어 넣어주셨습니다.

교조님의 신상은 걱정 말고, 법률에 마음을 뺏기지도 말고, 가르쳐주신대로 신한줄기마음인 진실한 마음으로 근행을 올리라고 재촉하셨습니다.

자아 자아, ()이 있으면 실이 있다. 실이라면 모를 터이지. 진실이란 물, , 바람.

거듭 여쭘

자아 자아, 실을 사는 거야. 값으로써 실을 사는 거야.(1887. 1. 13)

라고 일러주시는 어버이마음에 확신을 가지고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만이 근행에 나오라.”는 초대진주님의 말씀에 일동은 마음을 정하고, 근행은 감로대를 둘러싸고 행해졌고, 경관은 끝내 한 사람도 오지 않아 정월 26일 근행은 무사히 마치게 되었습니다.

신님에 대한 믿음, 신님에 대한 의지, 가르침에 대한 믿음과 의지, 신한줄기의 마음만 되면 기적과 같은 수호가 일어난다는 것을 확신을 가지게 하시고 교조님께서는 조용히 현신을 감추셨습니다. 그리고 신한줄기의 길을 걸어간다면 영원히 존명하신 채로 활동해 주신다고 확약해 주시고, 그때그때 신기로운 역사를 해가는 속에서 여쭈면 일러주시고, 신한줄기에서 벗어나지 않게 각한의 지도말씀으로 20년 동안 지켜주신 어버이마음을 되새길 수 있도록 하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매일의 생활 속에서 일상의 작은 일에서부터 온 세상과의 절충에 이르기까지 안팎으로 크고 작은 일은 모두 젊은 초대진주님의 어깨에 달리게 되었습니다.

신이라 우러러 받들고 어버이라 흠모해오던 교조님께서 생각지도 못했던 홀연히 현신을 감추신 황망한 가운데, 울며 슬퍼할 수 있을 틈도 없이 즉시 발생한 일은 교조님의 유해를 매장할 장소에 대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 장례도 신한줄기의 가르침이라는 기준에 맞는 장례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기준은 무엇일까요?

장례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의 기준은 그동안 세상에서 하는 관습대로 해야 하느냐, 아니면 신님께서 바라시는, 신님의 마음, 의도에 맞는 장례는 어떻게 치러야 할지에 대한 신한줄기의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상황을 초대진주님의 전기에서 살펴보면,

할머니라고 흠모하고 신님이라 우러러 받들던 교조님께서 현신을 감추시고 더없는 비탄에 빠졌을 때, 그 유해를 어디에 묻을 것인지 하는 매장지 문제가 가장 먼저 발생했습니다.

사람들은 115세까지 살며 활동해 주시리라 굳게 믿고 있던 교조님의 묘지 따위는 분명히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월일의 현신으로서 50년이라는 오랜 세월, 온갖 어렵고 힘든 노고를 넘어서 활동해 주신 교조님께 걸맞은 묘소의 준비 따위는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나온 의견이

첫째, 집터 내 매장설이며, 두 번째는 마을 내 매장설, 세 번째는 화장설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한 가운데 일체의 책임을 지고 있던 초대진주님께서는 220(음력 정월 28) 작은 2층 방에서 강장, 전갈인이 모여 회의를 열었습니다.

집터 내 매장설은 가장 정()과 리()를 겸한 안() 같았으나 법률상 묘지 인정의 가능성이 낮은 안이고, 또한 교리상 유해와 감로대의 터전의 필연적 결합에도 고려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집터 안에 매장하는 것은 법률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 누구는 새 묘지를 지어서 정부의 허가를 받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적으로 힘든 이야기였습니다. 또 일시적으로 즈코지 산에 매장하고 때를 기다려 새 묘지를 지은 다음 옮기자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와 같이 강장, 전갈인들의 의견이 모아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도 위원을 결성해, 꼭 집터 내에 매장해주기를 바라며, 그렇지 않으면 마을 내 어딘가에 묻어달라고 했습니다. 마을 내 매장설은 가슴 깊이 흠모하는 인정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하지만, 한편 마을의 번영을 고려한 상황에서 나온 의견이라는 것도 간과할 수는 없으며, 아니 오히려 그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지도 모릅니다. 일찍이 마을 사람들의 대표는 마침내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화장을 해서 뼈라도 마을에서는 내보내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에 대해 초대진주님께서는 크게 화를 냈다고 당시의 문헌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이 여기에 이르러 격노로써 대답한다. 당신들은 망설을 삼가라. 애당초 교조님께서는 부인이라고는 해도 이 길에 있어서 시조(始祖), 전도주(傳道主)이시며, 천하에 다시없는 분인데, 이와 같은 분을 화장하는 것과 같은 혹심한 처사는 우리에게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당신들은 또한 말을 삼가라. 교조님을 화장하는 것은 우리들의 자유이며, 말참견을 받을 이유가 없다.”

그 점에 대해서는 초대진주님의 수기에도

천하에 한 분뿐인 나의 은인, 노모(老母)를 화장하는 것은 잔혹하며 하기 어렵다.”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화장은 일축되었습니다.

의논을 거듭한 결과 최종적인 결정은 신의 뜻에 맞는 기준에서 일을 진행해야 하므로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지도말씀을 여쭈었더니,

몸은 감추지만 혼은 이 집터에 머물며 생전과 같이 만가지를 구제한다. 이 몸은 마치 몸에 걸치고 있는 의복과 같은 것, 오래되면 벗어던지는 것. 버린 의복에는 아무런 리가 없으므로 어디에 버려도 좋다.”(한마디 말씀 2)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드디어 유해는 오래된 옷과 같다는 이치에서 결심을 하게 되며 당시의 묘지로써 나까야마 집안 선조가 안치되어 있는 즈코지(頭光寺)산의 묘소에 묻기로 정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장례의 준비를 시작, ()도 특별히 견고하고 튼튼하게 만들었으며, 산하에도 통지해서 장례를 거행한 것은 223(음력 21)이었으며 6일장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교조님의 장례는 마쳤습니다.

그러나 월일의 마음은 살아서 으뜸인 집터에 머물며 언제까지나 세계구제를 위해 활동해 주시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장례를 마쳤다고 해도 월일의 현신이신 교조님의 묘소라는 점에서 생각하면, 이장(移葬)은 무언 중에 사람들의 마음에 있었고, 특히 초대진주님은 가슴속 깊이 훗날을 맹세하며 이 궁벽하고 누추한 묘소에 잠시 머물러 주실 것을 교조님께 부탁드렸습니다.

그러던 중 세월이 흘러 5년제를 마치고 새로운 기획은 차례차례 시작해갔습니다만, 초대진주님의 가슴속 깊숙이 마음에 걸려서 도저히 어쩔 수가 없는 일대 안건이 남아있었습니다. 그것은 교조님의 묘지 건이었습니다.

아무리 낡은 옷과 같다고 해도 단순한 낡은 옷이 아닙니다. 월일의 현신이신 교조님의 유해를 누추한 시골의 좁은 묘지, 하물며 즈코지산의 한쪽에 마련해서 가장례식만 마친 상태로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저기 마음을 쓰고 또 입수할 수 있는 산이 있다면 매입해왔습니다. 그런데 5년제가 끝난 다음해(1892. 2. 26) 초대진주님께서 앞서 구입한 도요다(豊山)산의 일부인 고마쓰산을 실제로 답사하고 있을 때, 뜻밖에도 심금을 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 그날 초대진주님께서는 마쓰무라 기치타로, 야마모또 리사부로를 데리고 도요다산의 정상에 올라 사방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웅대한 야마토 평야의 전모가 눈앞에 펼쳐졌을 때, 남쪽 멀리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교조님의 유해가 안치된 누추한 즈코지산이었습니다.

그때, 초대진주님의 가슴에 꿈틀거리는 결의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산을 내려가서 집터에 돌아가자마자, 다음 27교조님 묘지용도 도요다산 매입에 대해 여쭙고 허락받아 그날 밤 즉시, 역원회의를 열어 도요다산의 더 많은 곳을 구입하는 건을 가결하고 매입에 착수하고 묘지공사를 시작하여, 드디어 18921024일 옛 묘지에서 발굴하여 관은 그대로 새로운 관에 넣고 1025일 새 묘지에 관을 새 무덤에 안치했습니다.

다음날 1026일 추계대제를 집행하고, 오후 초대진주님 이하 일동은 성묘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교조님의 장례, 이장까지 모두 마치게 되었으며, 초대진주님은 마음의 짐을 하나 덜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들이 참배했던 지금의 묘소입니다.

초대진주님께서는 여쭈고, 허락받아 오시면서 가르침대로 모두와 함께 신한줄기로서 문제들을 해결해오셨습니다.

훗날 2대 진주님께서는 혼과 유해의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설명해주셨습니다.

근본적인 리()에서 말한다면 대체 유해에 절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혼에 의탁하고 영전에 우리들은 인사를 드리지마는 버린 유해에 절을 한다는 마음이 생길까. 어떨까. 이론적으로 말한다면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에서 본다면 묘지참배로서 돌아가신 분의 모습을 그릴 수 있는 것입니다. 교조님은 별문제로 하더라도 부친의 모습은 묘소에 가서 뵈옵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들 인간의 심정입니다. 그 실제의 심정에서 생각할 때, 묘지의 존재를 저는 그렇게 부정하지는 않으나, ()에서 생각한다면 쓰레기통에 버린 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지도말씀 가운데도 있습니다마는 휴지통에 언제나 미련을 두고 둘러본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인 것이고, 참된 정에서 본다면 머물고 계시는 영전에서 교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신한줄기가 아닌가고 생각하는 것입니다.”(16회 교의강습회 제1차 강습초록 375p)

교조님께서 가르쳐주신 혼과 유해, 묘소의 문제도 우리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항상 접하고 있는 자신과 가족, 세상사람들이 해결해야 하는 만가지 구제 중의 한 부분이며, 신앙하는 우리들은 세상사람들과의 교류 속에서 이러한 이치도 전하고 해결해 가는 것이 신한줄기로 걷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잘하는 신앙입니다.

모두 하나 하나 모본의 길이 있다. 모본의 길을 걷지 못한다고 해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 (1889. 11. 7 각한)

라고 말씀하셨듯이 그때 그때 하나 하나에 신의 뜻, 가르침대로 해결해가는 마음가짐과 행동이 신한줄기의 길을 걷는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이 마음 쓴 대로 수호받는다는 것입니다.

교조님께서는 우리에게 몸의 원리, 마음의 원리, 마음을 다스리는 원리, 우리가 세상을 보고 깨닫는 원리, 질병(사정)의 원리, 만사를 해결하는 원리, 구제받는 원리, 즐거운 삶을 누리는 원리들을 밝혀주시고, 이러한 신앙의 근본적인 사실을 집안에서부터 잘 전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188818일 마쓰무라 선생에 전하신 말씀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집안에도 전하라, 몸은 대물이야 차물이야. 마음 그대로 모두 세상에 비치고 있다. 세상에 몇 번이나 환생할지라도 마음 그대로 모두 비치고 있다. 각자 저런 몸 같으면 하고 생각해서, 각자 단노하는 마음을 정하라. 어떠한 일도 모두 세상에 비치고 있다. 아무리 보배가 있어도 몸이 병들면 그처럼 부자유한 것은 없을 것이다. 자유자재란 마음에 있다. 이 리를 잘 깨달아라. 또 집안에도 각자에게도 좋아지는 날이 있다. 각자 참말이구나 하고 생각되거든 찾아오라.

쉽게 대의를 풀이하자면,

이러한 신앙의 근본적인 사실은 집안에도 잘 전하라. 인간의 몸은 신이 빌려 준 것이고, 인간으로서는 신으로부터 빌린 것으로서, 모든 것은 각자의 마음에 따라 나타나므로, 신은 그 마음의 모습대로 몸을 수호하는 것이다. 설령 몇 번 환생한다 할지라도 너희들의 마음 그대로 세상에 비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남을 보고 몸이 저래서야 하고 안타깝게 여기겠지만, 어떤 것도 각자의 마음쓰기에 따라 세상에 비치고 있는 것이므로, 그것을 잘 생각해서 단노하는 마음을 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몸이 병들면 이보다 더한 부자유는 없을 것이다. 어떤 일도 각자의 마음에 대한 신의 수호이기 때문에 자유자재를 누릴 수 있는가 없는가는 오직 각자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 이것을 잘 분간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점을 가슴에 잘 새긴다면, 집안에도 각자에게도 즉시 수호가 나타날 것이다. 모두들 과연 그렇구나 하고 생각된다면 본고장으로 찾아와 다시 깊이 들어주기를 바란다.

여러분들께서도 영전에 돌아가신 분들의 영을 모시고 춘계영제, 추계영제를 올리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다시 환생해 오더라도 이생에서의 내 혼, 내 마음쓴 것이 저장되어있기 때문에 그것이 살아있는 자손들, 가족들이 같이 참배해서 돌아가신 분들의 티끌을 털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생에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지금과 같은 힘든 생활을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니까, 영제를 통해서 환생할 때까지 끊임없이 티끌을 털어서 후생에 다시 돌아왔을 때, 이생보다 더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장례가 끝난 후에 몸은 관계없이 혼을 모셔서 같이 지내가고 있습니다.

화장을 한다. 매장을 한다. 풍장을 한다거나 요즘은 수목장도 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유해를 처리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일 뿐이고, 실제 라는 내 혼이라는 것은 계속 살아있고 죽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몸에서 벗어나면 어버이신님의 수호가 끝났다 하면 이미 몸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그 쓰레기를 어떻게 주위에, 남에게 지장을 초래하지 않도록 처리하는 절차가 장례일 뿐입니다. 화장을 한다거나, 풍장으로 산에 버린다고 해도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단지, 내 마음, 혼만 이생에서 잘 닦고 또한 가족들에게 이 이치를 전해서 가족들도 티끌을 털면서 혼과 같이 후생에서 더 티끌없는 만남을 만들어 가는 이 뜻을 가족들이 신앙을 하지 않더라도 유언으로라도 남겨두십시오. 나중에 영제를 모셔달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다음 생에서 같이 만나면 이생에서보다 더 좋은 생을 만들자 하는 것을 가족들에게 뜻을 남기라고 하는 의미도 교조님께서 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마음을 가족들에게 전하는 마음도 신한줄기의 자세입니다.

 

가르침이 바뀌지 않도록

 

교조님께서 세계인류를 구제하겠다.”라고 하신 입교의 목적은 바로 가족부터 세계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입니다. 가족, 나아가 세계인류에 이르기까지 어버이신님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가족 신앙도 상당히 힘이 드시지요?

신한줄기에 대해서 초대진주님께서는 잡지 발간에 대한 뜻을 밝혀주셨습니다.

지금까지는 신자가 적어서 여유가 있어 산하 교회를 순회해서 교리(어버이마음)를 설명해왔지만, 앞으로는 본부의 일도 바빠지게 되어 교회 순회를 못하게 되므로 잡지(미찌노토모)를 만들어 장래 교리에 대한 이야기를 가득 채워서 일반 신자들에게 마음의 양식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고, 신한줄기의 향내를 널리 전세계에 전하려는 목적으로 189184일 교회에서 잡지 발간을 여쭙고 허락을 받아 1228일 발간해서 지금까지 어버이신님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전해오고 있습니다.

초대진주님께서는 실려있는 내용이 만약 한 마디라도 틀린다면 많은 사람에게 그 만큼의 잘못을 전하는 것이 되므로 앞으로도 충분히 주의해서 바른 교리를 전할 수 있도록 그 뜻을 전하셨습니다. 특히, 세간에서 이 길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보고, 잡지를 통해 이 길에서도 반박을 해야 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만, 이것(세상에서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도 여기에 이런 것이 실려(쓰여)있구나. 그렇다면 우리도 거기에 대해(이 길에 대한 비판 따위) 우리도 이런 것을 주장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겠지만, 그러한 세간의 반대 따위는 조만간 신이 수호해서 다스릴 것이니, 일일이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잡지 간행에 대해서도 매사를 잘 분간해서 거리낌없이 신한줄기의 가르침만 바르게 전하도록 하라는 교조님의 뜻을 초대진주님께서는 확실히 일러주셨습니다.

또한, 신한줄기의 제일 기본이 되는 정확한 신님의 마음인 가르침을 글자 한 자라도 틀리게 적고 또 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의 지도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교조10년제가 끝나고 6개월 후 1986년 일본정부로부터 내무성훈령이 내리고 격심한 간섭과 탄압 과정에서 12장 신악가 책에서 원문에서 글자를 고쳐서 사용하라는 내무성 지시에 따른 여쭘에 대한 지도말씀입니다.(이것은 정부에 안 맞으니까 세상 사람들을 현혹하려는 표현이니까 이것을 고쳐서 사용하라. 이것이 일본 정부의 방침이 내려진 것입니다.)

이 지도말씀에 대한 대의를 살펴보면,

리라는 것은 고치려야 고칠 수 없는 것이다. 신의 리를 고쳐서 이 길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리를 고친 것이 세상에는 더러 있다.

이 길은 어떤 길인가. 말할 나위도 없이 신의 의도를 일러주는 것이 이 길의 근본이다. 이것을 잘 분간하기 바란다.

글자를 보태거나 없애든가, 또 위의 글자가 밑으로 가고 밑의 글자가 위로 가도, 말의 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면 얼마간 정정을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가령 한 자를 더하거나 빼기만 해도 리가 바뀐다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엄중히 경고해 둔다. 만약 리가 바뀌게 되면, 그야말로 이 길에 녹을 슬게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가령 여기 도구가 많이 있어도,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쓰일 중요한 도구가 빠져 있다면 그냥 둔 채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신의 리에 맞지 않는 마음이라면, 모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였더라도 신의 일에 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신의 리를 손상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신님의 일을 그때그때 해야만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데, 많은 목수의 연장이 있다 하더라도 못을 뺄 수 있는 드라이버가 없다든지 못을 뺄 수 있는 도구가 없다하면 그 못은 빼지 못하고 그대로 둬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일의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길을 걸어가면서 신님 일을 해나가고 있지만, 우리 각자가 신님의 도구로써의 신님 뜻에 맞지 않는 것을 한다고 하면 수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근행에 빠진 데가 있더라도 마음속으로 부르면 마찬가지다.”라고 인간마음으로 이렇다저렇다 하는 것은 신의 마음에 맞지 않는다.

말을 들어다오의 손짓이 손을 입에 대고 귀에 대는 것을 정확하게 하지 않고, 마음만 말을 들어다오 하며 신악가를 부르고 근행을 본다고 해서 그것은 근행이 아니다 하는 얘기입니다. 그래서는 신님의 수호를 받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교조님께서는 근행의 손짓 하나라도 틀리면 명이 바뀌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운명과 생명을 바꿀 수 없다. 이것은 하고 이것은 안 하면 안 된다고 하시며 교조님께서는 이런 부분까지도 명확하게 확실히 일러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실제 이런 것을 명확하게 마음에 새기고 이런 자세로써 신앙하고 있는가 없는가를 저 스스로도 그때그때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손짓을 잘한다. 신악가를 부른다고 하고 있지만, 그 손짓이 교조님께서 가르쳐 주신 손짓에 맞나 안 맞나, 빠지고 있지 않나 하는 이런 부분들이 정확하게 가지 않으면 실제 근행을 해서 마음의 티끌을 털고, 만가지 구제의 길을 여는 것이 쉽게 길이 열어지겠느냐는 것입니다. 근행은 열심히 했는데, 고생은 했는데, 힘들게 했는데, 나는 정성을 들였다고 했는데 결과는 실제 나타날 수 있겠는가. 이 부분을 교조님께서는 분명하게, 아주 단호하게 일러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교조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을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 해 가지고 새로 신악가를 만들어야 됩니까 하고 여쭈었을 때

노래에 담긴 신의 의도를 바꾸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위의 글자가 밑으로, 밑의 글자가 위로 가도 좋다. 부디 리가 바뀌지 않도록 하기 바란다.

또 바꿔서 인간 생각으로 설명을 붙여서, 해설을 해서 내려줄지 어떻게 해야 될지 물었을 때

자아 자아, 지금 묻고 있는 일은, 지금 당장 어떻게 하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지금은 잠자코 있는 것이 좋다.

지금 세상은 이 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로 주시를 하고 있는 때이다. 리라는 것은 그때그때 읽는 방법에 따라 바뀌므로, 해석 같은 것은 안하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당분간은 그대로 두도록 하라.

세상은 그 시대에 따라 사고방식과 관점이 바뀐다. 지금 이 길에 대한 세상의 공기는 매우 탁하다. 그러나 이것도 조만간 바뀐다. 그렇게 되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선의로 이해해 줄 것이니,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절대 인간생각으로 세상에 부합해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길의 일파독립운동, 천리교 단독의 종파로 허가를 받기 위해 노력할 때, 마쓰무라 기치타로 선생이 도쿄에 일을 보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일본 국회에서 우리가 도와줄게라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그때 우리가 정계에 뒤를 봐줄 사람도 마땅히 없는데, 이렇게 도와준다고 하니 잘 된 일이 아니냐?”라는 생각들이 많았는데, 그런 제안이 들어왔을 때 마쓰무라 선생은 바로 거절을 했다고 합니다. “교조님의 뜻은 5, 6년이 늦어지고 1, 2년이 빨리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과는 함께 하면 안 된다.”라는 말씀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일을 초대진주님께 여쭈었더니, 초대진주님도 이에 동의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오직 신한줄기. 신님의 뜻대로만 정확하게 조금 늦더라도 바르고 진실되게 천리교가 정말로 이 세상을 다스리는 가르침이고 만가지를 구제받을 수 있는 가르침이라는 확신을 하나, 둘 심어가며 이해시키며 걸어가는 것이 이 길을 걸어가는 바른 신한줄기의 길입니다.

우리도 이 길을 걸어가는데 있어 신의 힘에만 의지하며, 가르침에 의지해서 걸어가느냐, 아니면 세상의 연줄에 의지해서 힘을 빌리면서 가느냐 이런 부분들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뒤에 잘못하면 그것이 끈이 되어서 엄청난 힘든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시대가 바뀌면 이 길의 가르침도 바꿔야 한다는 것은 이 길에서 벗어난 신용이 없는 가르침이 되며, 구제할 수 없는 가르침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옛날과 지금이 다른데, 이 길도 뭔가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길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옛날에 문명이 지금보다 발전하지 못했던 시기의 말씀이지만, 현대에 문명이 아무리 발전을 하고 사람이 달에 가고 화성에 가거나 은하에 간다고 해도 이 가르침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길의 힘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고, 내 마음이 약해지고 다른 데서 힘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이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벗어나게 되면 수호가 나지 않습니다. 이 길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 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실제 터전을 보면 어떻습니까? 교조님 재세시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때의 초대 대교회장들이 신한줄기의 확신은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되어진 모습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의 고성교회도 초대 때부터 열심히 해서 지금의 여기까지 왔다는 것, 터전도 시골에서 가르침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비방받고 조롱받던 가르침이 지금에 와서는 엄청나게 세계화가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현재 보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마음은 옆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님의 뜻에 의지하지 못하고 있는 한 부분들이 있지 않나 이것을 우리는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조님께서는 이 길의 가르침대로 가야 번창해진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교회가 번창되고, 가족이 번창하고, 내 자신이 번창하고. 내 자녀들이 번창하는 집안을 만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수훈을 내려준 다음에 교조님께서 이런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사정 빨리 깨우치려고 생각하지만, 대충 대충 하니까 아무것도 안된다. 지도말은 잘 분간해 듣지 않으면 안된다. 지도말은 틀림없다, 지도말에 없는 말을 붙인다. 이것 아무것도 안된다. 이제부터 장래에 대한 마음이라 한다, “라고 하거든 라고, 이 마음으로 받아 다오. 이것으로 만사 깨우치지 않으면 안된다. …… 이제부터 많은 사람 가운데 얼마나 데리고 돌아올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자에게 틀려지는 리 갖고 보내서는 모든 리도 틀리는 것. 이것만 단단히, 되풀이해서 깨우친다 깨우친다. 들어 다오.

(1900.10.07)

대의를 살펴보면

날을 정해서 수훈을 내려주지만, 나날의 별석에서는 수훈을 받는 그 날의 마음을 만드는 데 대해 차근차근 잘 깨우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을 깨우치는가 하면 너희들이 수훈에 대한 신의 의도를 잘 분간해서 이를 속히 깨우치는 것이다. 신앙의 연수가 오래되었다 해서 신의 리에 맞게 행하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으며, 리를 분간치 못하고 인간생각으로 흐르는 사람도 있다. 이래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 그러므로 항상 신의 지시를 분간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의 지시에는 잘못된 것이라곤 없다. 그러나 너희들은 신의 지시에서 깨우치지도 않은 것을 마음대로 덧붙여 인간 생각으로 지시를 흐리게 하는 일이 있다. 이래서는 아무리 신이 깨우쳐도 그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앞으로 먼 장래에 걸쳐 너희들은 신이 하면 그대로 하고 마음에 새겨, 순직하게 신의 지시대로 행하겠다는 마음을 작정해주기 바란다. 이제부터 여러 가지로 깨우치겠는데, 그러한 마음으로 들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터전에 돌아올지 모른다. 돌아온 사람이 신의 리에 어긋난 말을 듣고 각지로 돌아가게 되면 마치 잘못된 것을 갖고 돌아가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점을 되풀이 단단히 너희들에게 깨우치고자 한다. 그러니 잘 듣고 마음에 깊이 새겨주기 바란다.

글자도 하나 틀리면 안된다. 섞지도 말고 전하지도 말고 반대도 하지 말고 덧붙이지도 마라. 내 생각, 세상의 기준들도 섞지 마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인간생활 속에서 문제 해결의 능력도, 한마디의 말씀을 전하고 글자를 통해서 전하는 것도, 터전에 귀참해서 전하는 것도, 교회에서 오는 사람에게 전하는 것도 어떻든 신한줄기의 정신을 갖고 인간생각에 흐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이 잘되지 않고, 밝은 길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을 해가는 도중에 신한줄기의 리로 바르게 나가면 결코 좌절하는 일이 없지만, 세상의 리에 흘러 인간생각으로 나가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우리들이 여기까지 신앙을 해오면서 잘 안되는 것에는 신한줄기의 하나하나의 마음가짐, 태도에 문제가 있지 않은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의 마음에 맞지 않는 마음이라면 모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였더라도 신의 일에 쓸 수 없는 것이다. 라는 말씀을 깨달아보면서 신의 마음에 맞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된 자녀로서 성인될 수 있도록 저 자신이 먼저 다짐해 봅니다.

 

오늘 부족한 소인에게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신 교조님께 감사의 마음을 올리며 경청해주신 여러분께도 감사의 마음을 올리면서 제 시간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