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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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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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 이야기

 

류정환(본성교회)

저는 두 살 때 양쪽 귀에 물이 나왔습니다. 동네에 의사 한 분이 있었는데, 매일 치료를 받았으나 낫지 않았습니다. 6.25사변 전까지(6~7) 치료를 받았는데 낫지 않고 계속 귓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11살 때는 몸이 많이도 아팠습니다. 병원에도 못 가고, 약도 먹지 못하며 그렇게 허송세월하였습니다. 20대 초반에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이웃집 아주머니를 따라서 어머님이 천리교에 갔다 오시더니 저도 천리교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어머님도 위장이 안 좋으셔서 설사를 자주 하셨는데, 천리교에 갔다 오신 사흘 만에 설사병이 나아서 그걸 보고 저도 어머님을 따라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가서 보니 신자분이 사, 오십 명 되었고, 본성 전 회장님 부군 혼자서 포교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 이듬해 신자분이 자기 집 앞에 터를 주어서 세 칸 집 교회를 짓고, 본성회장님 부부가 같이 포교를 하셨습니다. 회장님은 저를 보고 전생 인연으로 몸이 안 좋다고 하면서 열심히 다니면 몸이 좋아진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전생 인연이 뭔지도 모르고 교회에만 열심히 다녔습니다.

 

고성교회 초대회장님이 순교를 오셔서 저를 보고 첫마디에,

니가 죽을래? 살래? 니 몫을 가지고 학교 짓는데 희사를 해라.”

하시면서 물질적, 육체적, 정신적 히노끼싱을 하라고 하셔서 밤중에 일어나 동네 청소를 하고, 여름에 풀도 뽑고, 소똥도 치우고, 삼 년을 실천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까, 어버이신님의 수호로 왼쪽 귀는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선생님이 자기 아들이 세 살 때 눈이 안 보여서 고성교회에서 눈을 떴다고 하면서 열심히 교회에 다니라고 용기를 주셔서 제가 그 말을 듣고 열심히 교회에 다녔습니다. 겨울에 아침저녁으로 덕청강에 냉수 목욕도 많이 했습니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다니고 있는데, 몸이 더 아파서 고성교회에 삼 개월 작정하고 가서 한 달 있다가 집에 와서 덕산교회에서 2개월을 마치고 열심히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파출소에서 나와서는 교회 정문 앞에서 기다리다 교회에 오는 사람들을 다 돌려보내고, 기독교에서 천리교를 일본 종교라고 해서 신자들이 다 떨어지고 교회에 오지 않았습니다. 본성 전 회장님이 진주로 나왔습니다. 덕산교회는 조응상 선생님이 포교하시다가 출직하시고, 교회가 없어졌습니다. 우왕좌왕하다가 진주로 나왔습니다. 저는 본성 전 회장님 부군 밑에 따라다니면서 페인트칠하고 지냈습니다.

28세 때 고성교회 초대회장님한테 인연판단을 받았습니다. 회장님이 저보고 수입이 생기는 대로 음덕을 하라고 하시면서 삼 년을 실천하면 아무것도 없어도 덕자가 들어온다고 하시며 절대로 부족 사지 마라. 부족사면 삼 년 천일이 허사다.”고 하셔서 회장님 말씀을 100% 실천은 못 했지만, 50%는 실천을 했습니다. 백 원 생기면 오십 원을 음덕하고, 마지막에는 십만 원을 음덕 했습니다.

회장님이 강금자 씨와 저를 중매를 서셨습니다. 본인이 승낙해서 저는 너무 과분했지만, 여자 쪽 집에서는 저를 반대했습니다. 제가 31, 강금자 씨는 23살이고, 515일 날 본성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신혼여행도 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생활 3년째에 고성 초대회장님이 본성교회에 순교를 오셔서는 저에게 삼 년 후에 집사람하고 헤어질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서 헤어지지 않는 방법을 여쭈었고, 회장님께서는 덕을 쌓으라 하셨습니다. 마침 원남성교회 역사가 시작되어 저는 부지 다섯 평을 사기로 했습니다. 그때는 당장 돈이 없어서 일거리를 알아보다가 삼 칸 집 한 채에 2000원씩을 가을에 받기로 하고 페인트칠을 했습니다. 일은 한여름에 하고 가을에 수금하니까 재룟값 주고 다섯 평 값 십만 원이 남아서 회장님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건축이 마무리될 때가 여름이었습니다.

고성 초대회장님이 이틀에 하루는 노임을 주신다고 하셔서 일하고 있는데, 꿈이 이상해서 집에 와보니 쪽지 한 장만 써놓고는 집사람이 집을 나갔습니다. 하늘이 노랬습니다. 그 당시 부부 사이도 안 좋고 자식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집사람이 일주일 후에 집에 와서는 이혼을 하자고 하기에 합의이혼을 했습니다. 그 후로 7, 8개월이 지나 고성 초대회장님이 출직을 하시고 나서 집사람이 회장님 꿈을 꾸었답니다. 회장님께 이혼했다고 꾸중을 듣고는 재결합하여 자식도 둘 낳고 어버이신님의 수호로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90년도 4월에 외가 형님의 사위 집이 의곡사 앞에 있었는데, 그 집을 사라고 해서 돈이 없어서 못 산다고 하니까, 이전부터 해둘 테니 대출을 해서 사라고 했습니다. 대출하려면 집을 담보로 잡아야 하고 보증인도 한 명 있어야 하는데 안 되어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페인트 사장님이 보증을 서 준다고 계약을 하라고 해서 그 집을 계약했습니다.

다음 해 집안사람 소개로 집을 한 채 페인트칠했습니다. 그 집은 철학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옥상에서 계단으로 칠을 하고 내려오는데, 뒤로 넘어져서 계단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피가 났습니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마무리를 하고는 철학관 주인에게 집 계약한 이야기를 하니까, 그 집에 가면 바로 죽는다고 해서 어떻게 하면 면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부적을 한 장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금액이 오십 만원이라고 해서 그 당시 집사람이 반지 계를 해서 반지 5돈짜리를 받아 그날 저녁 신님께 올렸습니다.

7월에 그 집으로 이사를 했는데, 옆집 사람이 그 집터가 세다고 했지만, 저희 부부는 신님만 믿고는 그냥 있었습니다. 그러다 12월에 자다가 심장마비로 거의 죽다가 살아났습니다. 병원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퇴원하여 바로 일을 하러 갔습니다. 그 뒤로 늘 심장이 두근거리고 이상 증상이 생겼습니다. 20088월까지 심장이 계속 안 좋았는데, 그래도 전도할 때는 신기하게도 심장에 이상증세가 없었습니다.

201479일 날 신님을 모시고 1026일 날 어버이신님께 큰 매를 맞고, 20161월에 경남교구로 3개월 강습을 받으러 갔습니다. 20177월에는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니 손가락 두 개가 마비되어서 한의원에 갔더니 증세를 묻고는 바로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병원에서 3개월 20일 정도가 되자 완전히 나았습니다.

그리고 야기 대교회 백 주년 때 참배를 하고 나서부터 신님의 수호로 오른쪽 귀에 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신님만 의지하며 걸어왔습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이 글은 류정환 님이 직접 글을 적어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이 글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음성으로나 글로 적어 주시면 교회보에 실을 수 있습니다. 글을 잘 쓰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 수기를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배우고 싶은 점은 배우고, 고칠 점을 고칠 수 있다면 좋은 형제의 역할을 다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많은 분의 참여 부탁드립니다.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