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 교회본부



cond="$

2월 월차제 신전강화

 

즐기며 걸어가는 이 길

 

배재기(광일교회장)

 

오늘, 2월 월차제를 맞이하여 여러분과 함께 즐겁게 근행을 올려주셔서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어제 보름이었는데, 보름 밥은 잘 드셨습니까? 옛날, 보름은 설이 끝나고 쉬다가 일하기 시작하는 날입니다.

상급회장님이 평상시에는 말씀을 길게 하셨는데 오늘은 좀 빨리 끝내셨습니다. 저보고 많이 하라는 뜻인가 싶기도 합니다.

한 말씀 드리도록 할 테니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4)

 

여러분, 어떻습니까. 올해는 일이 좀 잘 풀릴 것 같습니까. 올해 여러분 교회, 포교소, 가정의 일이 잘 풀리셨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친필에

가슴속이 월일의 마음에 맞는다면 언제까지라도 확실히 돌봐 주니 13-99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잘 풀리려고 하면 가슴속이 어버이신님의 마음에 맞아야 합니다. 물론, 정초부터 마음을 맞춰서 오셨겠지만, 오늘부터 마음을 맞춰서 지내면 어버이신님께서 확실히 돌봐주실 겁니다. 전석에서 상급회장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초대가 잘해 놓으면 2, 3대 잘 풀리게 되어있다. 수호받게 되어있다.”라는 말씀처럼 언제까지라도 확실히 돌봐주니라고 하셨습니다. 올해만 돌봐주시는 게 아니라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까지, 그뿐만 아니라 자식, 손자 때까지 손손대대로 돌봐주겠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친필에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어버이가 돌봐 주니 명심해 두라 15-8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요즘에 이 두 마디의 신님말씀을 새겨두고 있습니다. 살다 보면 되는 일보다 안되는 일이 더 많습니다. ‘어버이신님을 확실히 믿고 가기만 하면 확실히 돌봐준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은 항상 마음이 우울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마음을 밝게 해서 어버이신님을 의지하고 항상 돌봐준다는 말씀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버이신님의 말씀은 천에 하나라도 틀림이 없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 길을 걸어가면서 확실히 어버이신님께서 수호해주신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조금만 복잡한 일이 생겨도 이겨내기가 어려운 경우도 생깁니다. ‘신앙을 열심히 했는데 왜 이렇노?’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만 정신을 차려서 어버이신님을 의지하고 가야겠습니다. 교조님께서 존명으로 활동하고 계신다, 돌봐주고 계신다는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가면 올해는 확실히 풀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저의 이야기보다도 지난 춘계대제 때 터전에서 표통령 나까다 젠스케 선생께서 하신 감화말씀을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신전강화 앞에 한 말씀은 교조님께서 정월 이십육일에 은신하신 것과 선배 선생님들이 이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오늘 전해드리려고 하는 것은 그중에 중후반의 말씀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표통령님께서 간절하게 이야기하셨기 때문에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한번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략) 교조님께서는 50년간에 걸친 모본의 길을 통해, 우리들이 당당하게 용솟음치며 세계 구제를 향해 나아가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걸어가는 이 길은 진실한 어버이가 가르쳐주신 즐거운 삶의 실현을 위한 구제한줄기의 길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깨달아 봐도 교조님의 의도에 우리들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격차가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을 충분히 납득하고 그 의도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빠뜨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반대로 그 의도와 차이가 나기 때문에 항상 교조님의 의도를 깊이 생각하여 이 진실한 어버이께서 기뻐하실 수 있도록 우리들의 나아갈 바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교조님께서 은신하신 이날을 경계로 그 모습을 감추셨지만, 존명으로 활동해주신다고 일러주셨습니다.

지금 그것은 당연하다는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당시에는 누구도 경험한 적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본석님을 통해 지도말씀을 들을 수는 있었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직접 뵐 수 있었고 직접 들을 수 있었던 그 목소리는 이제 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조님께 구제를 받고 직접 인도를 받은 사실은 사라지는 일이 없었으며 그 어버이마음과 따뜻함에 의지해서 이번에야말로 교조님을 안심시켜 드려야겠다는 일심으로 전도 구제에 동분서주하셨던 것입니다.

교조님께서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존명으로 우리들을 이끌어 주십니다.

자아 자아, 이제까지 살고 있다. 아무데도 가지 않았어. 아무데도 가지 않았어. 나날의 길을 보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1890. 3. 17)

우리들이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려는 방법으로써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교조님께서 존명으로 활동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나날이 교조님의 온기를 느끼려고만 한다면 반드시 우리들을 감싸 안아 주듯이 확실한 길로 인도해주시는 교조님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나날을 되돌아보면, 여러 가지 일들을 생각하고 기원하며, 그렇게 기원한 대로 수호받기를 바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어버이신님의 인도라고 받아들여 순직하게 단노의 마음으로 걸어가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노력이 어떠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데에는 그렇게 되지 않는 이유, 즉 원인이라는 게 있기 마련입니다. 기원이 교조님의 의도에 맞는 것이었는가. 맞는 것이었다면 교조님께서 받아들이실 만큼의 마음을 작정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호를 받으려는 생각이나 마음작정이 자기 자신만의 것은 아니었던가 하는 점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자신의 깨달음이 바르다고 하는 생각에 치우치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는 그저 자만심에 빠져 버려 그 이상으로 깨달을 가능성을 부정해 버리게 됩니다.

교조님을 걱정하신 선인들은 어디까지나 교조님의 의도를 추구하며 마음을 낮추고, 서로가 깊이 의논하면서 나아가셨습니다. 우리들도 모본에 의지하여 마음을 낮추어 생각하고, 교조님의 의도를 추구하며 나아가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어떠한 모습으로 수호를 보여 주시는가 하는 것은 어버이신님께서 인도해 주시기 나름입니다.

이 길은 즐기며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때로는 험난한 길이라 할지라도, 즐기며 걸어가려고 마음의 방향을 바꾸면 어버이의 마음이 사무치게 느껴질 것입니다.

예를 들면, 최근에 스포츠 선수가 시합에 들어가기 전에 시합을 즐기려고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즐기겠다고 말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진지하게 긴장감을 가지고 필사적으로 임하겠다.”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만, 최근의 이 즐긴다고 하는 말에는 진지함도, 긴장감도, 필사적인 자세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덧붙여 말씀드리면, 시합이 있기까지의 피나는 고생과 노력이라는 뒷받침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며, 그것까지도 포함하여 즐기겠다고 하는 자세야말로, 큰 무대에서 긴장감을 뛰어넘어 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므로 즐긴다는 말의 무게를 느끼게 됩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모본을 직시하며 똑바로 걸어간다면, 역시 힘들고 고생이 되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끝까지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길을 걸어가야만 신앙의 즐거움이나 구제한줄기의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한마음 한뜻으로 마음을 모아서 모두가 마음을 작정할 수 있는지입니다. 거기에도 모본이라고 하는 본보기가 있습니다.

교조님의 50년간의 모본을, 고생을 이겨내기 위한 길이라고 받아들일 것인지, 앞으로 다가올 기쁨을 기대하는 모본이라고 생각할 것인지는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의 마음 나름입니다.

각자 주어진 입장에서, 교조님께서 자신에게 뭘 원하시는지, 그리고 어떻게 되기를 바라시는지를 잘 깨닫고 서로가 의논을 거듭하면서 나아갈 방향을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는 열심히 하더라도 나아갈 방향이 제각기 다르다고 한다면 교조님의 마음에는 맞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저는 표통령이라는 입장에서 본고장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자주 가집니다. 우리들 본고장에 있는 사람은 언제라도 감로대 앞으로 달려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속교회나 부모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터전에 있는 제게 바로 연락을 주십시오. 기원을 드리러 감로대로 달려갈 테니.’라는 말을 꼭 전해 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나이를 먹은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본고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길은 혼자서 걷는 길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 함께 활기차게 걸어가는 길입니다.

지금은 옛날과 달라서 편리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금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전도나 구제 활동도 많이 있습니다. 서로 힘을 합치는 방법에도, 한마음 한뜻의 형태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므로 서로가 지혜와 힘을 모아서 노력을 거듭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 길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을 기뻐하며, 존명하신 교조님의 슬하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한 걸음씩 전진해 주셨으면 합니다. 선인들과 비교하면 뒤떨어지지 않도록, 값으로써 실을 수호받을 수 있도록, 나날이 전도 구제를 위해 단단히 고생을 해야 합니다.

오늘은 진주님께서 조금 전까지 근행에 나와 참배를 하셨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더 마음을 모으고 열심히 노력하면서 계속하여 진주님의 쾌유를 기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고대하며, 마음을 모아서, 순직하게 용솟음치며 나아갑시다. (입교 182년 교회본부 춘계대제 신전강화 중)

 

시간이 길었습니다만, 터전에 참배하신 분들이나 얘기를 통해 아시겠지만, 이번에 진주님께서 근행에 나와주셔서 정말 마음이 기뻤습니다. 진주님을 위해서 여러분들도 다 같이 기원해주시고 계실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기원해서 신님의 수호가 나타났다고 하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저도 진주님께서 쾌차하셔서 중심의 기둥의 역할을 해주실 것을 기원을 드립니다. 이번에 근행에 나오셔서 좌근만 보고 들어가셨습니다만, 정말로 우리들의 기원의 효과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안 되겠습니다만, 진주님은 참으로 덕이 있으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수백만 명이 진주님을 위해서 기원을 드리지 않습니까. 제가 몸이 안 좋다면 저를 위해서 기원해줄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있겠습니까. 이런 걸 생각해보니까. 저도 덕을 많이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모아서 진주님의 건강에 대해 기원한 덕분에 이 만큼 회복이 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머지않은 시간 안에 진주님께서 회복되셔서 수훈의 리도 내리시고 다시 중심의 역할을 하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주님께서 수훈의 리를 못 내리시니까 수훈의 리를 받을 사람이 많이 밀려있습니다. 전도청장님이나 위에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이, 수훈의 리를 못 내리는 것은 우리가 교조님께서 내려주신 수훈을 많이 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도 구제의 활동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 말씀들을 들을 때마다 우리가 열심히 전도 구제를 하고 수훈을 전하면 어버이신님께서 진주님께서 수훈의 리를 다시 내려주실 수 있도록 수호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데에 중심을 두고 열심히 해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표통령님의 이번 말씀을 제가 정리해보면, 첫째, 이 길의 신앙은 즐기면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힘들다 고생스럽다.’ 하는 때도 있을 것입니다. 운동선수가 피나는 고생과 애로가 있지만 그런 것까지 즐긴다고 한다는 말처럼 우리가 즐긴다.’고 하면 쉬운 길은 아니지만, 그런 마음가짐으로 이 길을 가야겠습니다.

둘째, 수훈을 받기 위해서 자기 생각이나 마음작정이 교조님께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교조님을 기쁘게 해드리고자 하는 마음과 모습에 있는 것입니다. 바꿔 얘기하면, 우리가 나 자신의 인연의 무게, 그 수호 받을 것에 대한 무게에 대해 이런 정성이면 되겠는가. 이 정도로 교조님께서 활동해주시겠는가.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셋째, 깊이 새겨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 본 고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터전, 감로대에 가까이 근무하고 있으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감로대에 빨리 가서 기원할 수가 있다. 그래서 터전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소속교회나 상급교회에 무슨 일이 있다고 연락이 오면 바로 감로대에 달려가서 기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단 터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각 교회, 포교소의 용재들이 이런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자들이 몸이 안 좋다고 할 때, 교조님께 하는 기원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얘기를 들으면 바로 기원을 하고 수훈을 전하러 가야 됩니다.

저는 이런 말씀들이 간절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요즘 정말 천리교 하기를 잘했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인연이 정말 중한데 천리교를 하지 않았으면 이런 중한 인연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겠는가를 생각해보면 정말로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환경은 나를 중심으로 모두가 엮여있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각자의 그릇대로 가족이나 이웃, 일가친척 등의 인간관계가 엮여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내 마음속에 부족 불만이 없어야 합니다. 첫째는 마음가짐입니다. 어버이신님이 보실 때 그 마음가짐이 그럴듯하다.’ 하는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실천하고 작정하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평소에 갖는 마음가짐이 바르지 못하면 어버이신님의 마음과 멀어져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 주위환경이 이것밖에 안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만 내 그릇을 바꾸지 않는 이상 어렵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서두에 말씀드렸습니다만, 어버이신님의 마음에 맞추기만 하게 되면 이런저런 상황을 어버이신님께서 돌봐주고 책임져주신다고 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필요 없게 되는 것입니다.

상급회장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덕을 쌓는 것밖에는 길이 없습니다. 덕을 쌓는 내용에 대해서는, 도우지 2월호에 터전에 이바지하신 본석, 이부리 이조오 선생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안 읽어보셨다면 오늘 당장 한번 읽어보시고 덕을 어떻게 쌓아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마음이 새겨보시기 바랍니다.

이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은 자신의 마음을 갈고 닦아가면서 전도 구제에 힘써야 합니다. 요즘, 교회에 근행봉사자가 자꾸 줄어드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전도하지 않는데 교회에 사람이 오겠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전도하지 않는데 교회에 사람이 오겠는가. 교회에는 사람이 와야 합니다. 또 그런 사람들이 수호를 받기 위해서는 자꾸 교회에 발걸음을 이어가고 날라야 합니다. 신자가 뜸한 곳에 가보면 내가 교회는 못가도 마음은 교회에 가 있다.”라고 얘기합니다. 그런 마음을 1, 10, 20년 가지고 있어 봐야 실제로 교회에 방문을 하지 않는 이상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몇십 년 경험을 해보니까, 아이들도 교회에 방문을 하지 않는 이상 신앙이 이어지지 않는다고 생각이 듭니다.

어려운 이야기지만, 작년 목표로 우리 교회에 한 사람이 한 사람 전도하기를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부터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원단제에도 한 사람 전도하기를 작정했습니다. 우리 교회에 용재님, 신자분들이 있으시지만, 그분들에 앞서 나부터 전도해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도 같은 목표를 내걸고 나 자신부터 노력하자는 작정을 했습니다.

한 사람 구제하면 만사람 도움받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구제되면 만 사람이 그 한 사람에 의한 것이 됩니다. 한 사람을 구제하게 되면 우리 용재들은 마음이 하늘을 찌를 듯 용솟음치게 됩니다. 그렇게 한 사람만 구제하게 되면 방법도 알게 되고 용기도 생기게 됩니다. 그 첫 뚜껑을 잘 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달 도우지에 가와라마치 대교회 초대회장님이신 후카야 겐지로 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현재, 본부 산하에 150여 개소의 대교회가 있습니다만, 그중에 36개의 대교회가 가와라마치 대교회에서 나왔습니다. 가와라마치 현 회장님이 감화말씀을 했습니다만, 이번에 본부 청년회 100주년을 하는데 8,700명의 청년을 수호받았다고 합니다. 한 교회당 35명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제가 계산을 해보니 그렇게 하면 240여 교회를 설립할 수 있을 정도의 수치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읽어보고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35명은커녕 단 한 명도 전도하지 못해서 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마음을 가다듬어서 표통령님께서 하신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이 길을 먼저 걸어주신 선배 선생님들의 구제 정신을 받들어서 선배 선생님들에게 뒤지지 않는 용재가 되는 길로 나아가야겠습니다.

전도 구제의 활동에는 그 방법이나 형태가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나름대로 할 방법을 모색해서 발버둥을 쳐야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올 연말에는 조금이라도 실적이 나타나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감사합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