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 교회본부



cond="$

[173년07월][30] 교회보 폐인

2012.06.29 10:07

모모 조회 수:2412

명경지수 30

 

교회보 폐인!

                                      박 지 수

 

매달 정해진 코너에 글을 쓴다는 게 지겨워질 때가 있다. 또 힘들고 막막하거나 도망가고 싶거나 할 때도 많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본의 아니게 자기칭찬이나 남을 비판하는 내용도 쓸 수밖에 없어진다. 또 너무나 사적인 일이라 프라이버시문제가 걸릴 때도 많다. 자신의 일이라면 까발려서 나쁜 인연의 씨앗이 싹트지 못하게 하겠지만 함께 걸려 있는 신자나 가족들, 막역한 교우들 일이라 쉽게 쓸 수가 없다. 더구나 글이라는 것이 두고두고 남는 것이라 그 파장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한편으로 인연을 크게 짓는 일이기도 할 테니까. 그렇게 내부검열까지 거치다보면 정말 한 달 쉬고 싶다는 생각이 꿀떡같다. 이번 달도 그렇다.

 

사실 작년 중반까지만 해도 교회보 편집실장인 남편은 월말이 되면 교회보가 나올 때까지 극도로 예민해 졌다. 그 예민함은 20일 월차제를 지나면서 서서히 고조되다가 월말쯤에는 피크에 달한다. 그리고 교정을 보고 마지막 원고까지 다 넘기면 수그러져 교회보 발송작업이 끝나면 사라진다.

 

그 스트레스는 원고가 모이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고, 원고를 제때 써주지 않아서 애가 타고, 채워야 할 지면을 채우지 못할까 전전긍긍한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나와도 주변에서 교회보 필자가 고정적이라서 재미가 없다니, 내용이 거기서 거기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더욱 심해진다.

  필자를 구하려고 많은 사람들을 붙잡고 하소연하고 부탁해도 선뜻 글을 주는 사람은 백 명에 한 명도 안 된다. 다들 비판만 하지 원고를 써주는 성의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 인연이거니 하면서도 이런 대안없는 비판이야말로 교회보를 만들 의욕이 사라지게 만든다. 그럴 땐 힘들어하는 남편 곁에 있는 것조차 겁난다. 마치 금방이라도 베여서 피가 날 것같이 보기에도 무서운 예리한 칼날 위를 걷는 것 같다.

  이 사람이 교회보를 맡더니 성격이 나빠지고 날카로워졌다 싶으니 싫었다. 평소에 화를 내는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이 교회보 작업할 때만 되면 아무 일도 아닌 일에 무섭게 화를 내거나 다그치는 바람에 ! 뜨거.“하는 심정으로 참으면서 함께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면서 혼자 속으로 별 이상한 성격 다보겠네. 교회보는 자기 혼자하나? 교회보 작업에 절반은 내가 하잖아? 저렇게 화를 내거나 짜증내고 까칠하게 굴면 교회보가 저절로 되나? 짜증내서 될 거라면 누군들 못하겠나? 에이구, 성격하고는!’혼자 궁시렁거린다. 물론 안 들을 때 해야지, 궁시렁거리는 걸 듣기라도 했다면 뭐야?, 당신 뭐라고 했어?”하면서 대번에 화를 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누가 건드려만 달라. 대판 싸우고 싶다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남편을 보면 어리둥절하다. 평소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 낯설다. 해서 붙힌 이름, ‘교회보 폐인!’이다.

  교회보가 생각보다 늦어지면 수염도 안 깍고, 안 씻고, 잠도 못 자서 꾀죄죄한 꼴에다 눈에는 핏발이 선다. 폐인 꼴에다 어느 놈이든 걸리기만 해봐라하는 살기등등한 표정이다. 그런 정도는 교회보가 늦어지거나 특히 내가 원고를 안 썼거나 못 쓰겠다고 하면 극도로 심해진다. 

  그런데 교회보가 늦어지는 일이나 내가 글을 제대 못써 내는 일이 다반사이니 옆에 있기가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말도 제대로 못 붙인다. 교회보가 늦어진다는 건 그 전에 그만큼 많은 일들이 있어 밀렸다는 뜻이니 본인도, 나도 이미 지친 상태이다.

 

한 달이 얼마나 잘 가는 지, 돌아서면 다음호를 준비해야 한다. 교회보 작업을 하는 일이 한 달에 반은 차지한다. 특히나 하순이 되면 전적으로 매달리고 틀어박혀서 작업을 해도 일주일 이상은 걸린다.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하는 나는 며칠을 그렇게 하고나면 코피를 흘리고 진이 다 빠진다. ‘나도 같이 힘든데 자기만 힘드나? 나한테 까칠하게 굴면 어떻게? 나도 힘들다구요!’ 항변하고 싶어도 너무 예민한 상태라 말도 못한다. 다만 언젠가는 제발 평정심을 가지고 마음 편히 회보작업하자고 이야기해야지.’ 벼른다.

 

그럴 땐 지금은 이 사람이 내 남편이 아니다. 지독하고 까칠한 상사같은 교회보 폐인일 뿐이지라고 마음을 다스린다. ‘저렇게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을 좀 바꾸면 좋으련만.’싶어도 내가 이해해야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도와야하지, 별수 있나. 도망갈 데도 없고, 도망간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니....

 

어떤 때는 글감이 있어서 아무런 어려움없이 일필휘지(一筆揮之)로 글을 쓸 때도 있지만 대개는 끙끙거릴 수밖에 없다. 전문가가 아니니 무슨 내용을 어떻게 전개해 나갈지 매번 막막하다. 해서 이번에는 쉬겠다고 하면 남편이 난리를 친다. 한 달에 한번인 그것도 못 써서 쉰다고 하느냐, 성의 없이 게으르다는 둥, 별 것도 아닌 일에 유세를 하는 것처럼 몰아 부친다. 그러다가 또 꼬드긴다. 명경지수코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다린다, 실망시키지 말라, 당신 충분히 능력 있는데 마음을 내지 않는 거 아니냐, 신님이 주신 능력을 잘 쓰지 않으면 신님이 거둬가 버릴 것이라는 협박에다 모든 명작들은 원고 재촉 전화를 받고 급히 쓰여진 글들이라는 둥, 편집실장으로서 교회보 정해진 페이지를 어떻게든 채워야 한다는 중압감을 하소연하며 동정을 구한다.

그쯤 되면 할 수 없이 머리를 싸맨다. 안 하면 안 되는, 안할 수는 없는, 어떻든 써내야 하는 숙제가 된다. 그렇게 짜내어 쓴 원고가 때로는 생각보다 훌륭하게 쓰여 지기도 하고, 뭐 이런 조잡한 글이 있냐 싶게 낯 뜨거운 것도 많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교회보 페이지는 채워야 되고, 원고는 모자라니 할 수 없지. 조잡한 솜씨라도, 익지 않은 속이라도 내 보일 수밖에.

 

작년 9, 극도로 까칠하게 굴고 난 뒤 벼르던 이야기를 했다. ‘이왕 할 회보 작업, 좀 늦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놀다가 늦은 것도 아닌 이상 좀 편하게 교회보를 만들자, 화낸다고 더 잘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좀 늦어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한 달이 잘 넘어가지 않으냐?’ 고 했더니 조금씩 강도가 약해지고 이젠 거의 평상심을 유지하며 회보 작업을 한다.

  이제 남편이 교회보 편집실장을 맡은 지 3년이 다 되었다. 조금씩 성인되어 가는 모습이 반갑다. 마음 졸이며 살았던 날이 언제였던가 싶게 많이 달라졌다. 하긴 그래봤자 더 잘 될 것도 없고, 좋을 게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겠지.

  스스로도 교회보를 통해 많이 발전하고 있다 싶어 고맙다. 신전강화나 강의를 푸는 일은 전적으로 내 일인데 그것을 풀기 위해서는 대 여섯 번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 남들은 강의나 신전강화를 한번 듣는 것으로 끝나지만 나는 대 여섯 번 반복해서 듣는다. 듣다보면 이건 내가 듣고 깨달으라고 하는 소리구나싶을 때가 많다. 더구나 그것을 듣기만 할 뿐 아니라, 받아쓰고, 문장을 고치고, 정리하다보면 내가 쓴 글처럼 내 속에서 나온 내용처럼 살갑게 느껴진다. 강의나 강화를 하나 푸는 일은 하루 꼬박 걸리지만 그 고생을 통해 신님의 말씀이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는 건 정말 수호이다. 신님께서 각자에게 맞는 성인의 방법을 주실 텐데 내게는 지금 이렇게 녹취를 푸는 일이 그런 모양이다.

 

그리고 정해진 꼭지의 글을 써내는 일도 지나고 보면 은혜로운 일이었다고 느낀다.

그렇게 닦달하며 글을 쓰라고 하지 않았으면 계속해서 글을 써내진 못했을 것이다. 처음 2년 가까이는 2장 써내는 것도 참 힘들었다. 사실 앞이 캄캄하여 왜 맨 날 나만 가지고 족치는 지화가 날 때도 많았다. 그래도 울며 겨자 먹기로 할 수 없이 쓰다 보니 이젠 4-5장 쓰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넘어갈 때가 많다. 열장을 쓰는 일도 예전 두 장 쓰는 것보다는 쉽게 느껴지니 이거야말로 고마운 일이다.

  글이란 게 쓰면 쓸수록 쓰기가 쉬워지는 것 같다. 이것이 바로 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도록 해 주시는 어버이신님의 고마운 수호가 아닌가. “당신 필력이 많이 늘었어. 대단해.” 하는 아부섞인 남편의 칭찬도 듣기 좋은 일이다. 이렇게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도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새 잘하는 일이 되어 간다.

 

글을 써달라고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면 흔히 아직 신앙이 안 돼서 못 쓴다고 한다. ‘신앙이 안 됐다니! 그럼 글 쓰는 사람은 신앙이 돼서 쓰는 것인가반문하고 싶다. 그렇게 모두가 생각한다면 아무도 글을 쓸 수 없을 것이고, 교회보는 세상에 나올 수 없다. 완성된 인격이나 완전한 마음성인의 단계에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인간이란 그 자체가 미완성인 존재이며, 마음성인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과정 위에 있는 존재 아닌가?

  아무리 미사여구로 꾸미더라도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결국 글쓰는 이의 지금 신앙 정도에서 느끼고 깨닫는 순수 알갱이들이다. 즉 생생한 자기 체험과 현재 단계에서 겪는 신앙이야기이다. 그것이 설사 설익었거나 어쭙잖은 것일지라도 함께 나눌 가치가 있지 않을까. 교회보를 읽는 모든 사람이 다 성인된 게 아니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교회보가 되려면 이런 저런 여러 사람들과 여러 생각들, 그리고 여러 성인 단계의 글들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쓸 때 힘든 것 중 하나는 그것이 그럴듯한 글로만 끝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말은 그 때 뿐이므로 난처할 땐 당신이 잘못 들은 거야. 착각한 거지. 난 그런 말 안 했어.” 할 수도 있지만 글은 두고두고 남는 것이기에 훨씬 어렵다. 파장도 크고, 증거도 확실히 남는다. 그러니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할 수도 없고, 꾸미기도 어렵고, 내 것이 아닌 것을 꺼내놓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100%인 것만을 내 놓을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100% 안 되는 거라도 내놓고, 100%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하게 된다. 일단 쓴 글에 책임을 지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하게 만드는 촉진제가 된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다듬고 다스리는 노력을 통해 다시 조금 더 성인되어 가는 게 아닌가 싶다.

부디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교회보에 실어서 함께 나누며 성인하는 교회보가 되길 기대하면서 어쭙잖은 글을 또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