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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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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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88

 

버텨내기, 견뎌내기

 

박지수

 

수련원 - 오랜 꿈

 

우리는 오래전부터 꿈꾸어 왔던 수련원 역사를 하고 있다. 상급교회인 고성교회 교육부에서 13년간 여러 가지 수련회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언젠가는 수련원을 만들고 싶다. 언젠가는 만들겠다.’는 꿈을 꾸었다. 우리가 담당했던 수련회는 이 길의 용재들이 스스로 자신을 갈고닦아 신앙을 재충전하고, 종교인으로 자질을 향상하게 시키고, 깊이 신님, 교조님을 만나는 시간을 제공하는 기회였다. 이런 수련회를 진행하면서 주기적으로 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그래야 용재가 초심을 잃지 않고 이 길을 끝까지 잘 나아가지 않을까 싶었다. 다니다 보게 되는 기독교 교회에는 거의 모든 교회마다 근사한 교육관이 있는 걸 보고 정말 부러웠다. 그리고 우리 천리교라고 교육관, 수련원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지!’라는 패기 어린 결심을 마음 깊이 새겼다.

그러나 생각은 있되, 엄두를 내지 못했다. 교세 없는 작은 포교소에서 무슨 수련원 역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포교소 유지하기도 버거운 일선 포교사가! 하지만 꿈을 꾸고 있었기에 10여 년 전 우리 포교소 리모델링을 할 때는 부족하나마 10여 명이 모여서 수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기존에 해오던 수련회를 비정기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33야 기원수련, 단식수련, 구구전도수련, 명상수련 같은 여러 가지 수련과 모임들이 두세 달에 한 번씩 열렸다. 그리고 동네 분들을 대상으로 요가 교실도 열었지만, 교회 신전에서 하는 일이라 어려워서 오질 않았다. 할 수 없이 경로당에 가서 어르신을 대상으로 요가 히노끼싱을 해 보았지만, 형편이 좋아지지 않았다.

그렇게 또 몇 년이 지나 드디어 올해 3월 하순부터 조그마한 수련원 역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60평의 2층 건물로 봄에 시작하여 여름, 가을이 지나가는 지금은 70% 공정을 넘어서고 있다. 너무나 고맙게도 오래전부터 수련원 같은 천리교 교육 시설을 짓는다면 자신의 땅을 기꺼이 희사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신자분이 기증해 주셨다. 땅은 생겼지만, 우리에겐 모아둔 공사비 한 푼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뜻 있는 용재 분들과 지인들이 한 푼, 두 푼, 정성을 모아 지난 3월에 역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시작한 역사인지라 말로 다 못할 고초들이 많았다. 돈을 모아놓고 시작하는 일반건축이 아니라 돈 없어도 뜻으로 마음으로 이루어내야 하는 역사라 어렵고 힘든 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형체의 역사를 통해 마음의 역사를 이룬다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되었고, 순간순간 그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만약 돈을 모아서 시작한 것이라면 훨씬 쉽고, 빠를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업자들에게 견적을 냈을 때 장마철이 오기 전에 짓는다던 건물이 여름, 가을, 겨울이 시작되려는 지금도 70% 공정에 머물러 있다. 물론, 천리교 역사가 돈 있다고 되고 돈 없다고 안 되는 역사는 아니다. 지금껏 그렇게 살았듯이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믿고, 함께 뜻을 모은 이들과 굳게 손잡고 시작한 날들이 이제 7개월이 지났다.

 

역사를 하면서 그야말로 넘치는 신기로운 수호와 고생이 함께 하였다. 역사를 하도록 신님께서 강하게 밀어서 결국 여기까지 왔지만, 그때마다 우리들의 마음을 테스트하시고, 성인시키기 위한 수많은 마디와 장치들, 고통과 고난, 사정과 신상이 나타났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당연하기도 하다. 우리를 손질해서 마음을 만들어 성인시켜야 하니까. 순탄한 과정에서는 무엇이 마음 성인이 되겠는가. 돈이 많다면 역사과정에서 마음을 낮추고, 머리를 숙이는 일은 그다지 없게 된다. 우리는 없는 상황이니 수시로 머리를 숙여 부탁하고 사죄드리고, 마음을 최대한 낮출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상황들을 예상하기도 하고, 각오하기도 하였지만 당하게 되니 말처럼 그렇게 편안히 되지가 않았다. 생애 처음 겪는 일이기에 너무 버겁고, 저절로 통곡이 나올 상황도 많이 당하였다.

어버이신님께서는 그렇게 힘든 상황으로 밀어 넣고서는

이래도 네가 즐거운 마음, 용솟음치는 마음을 유지하며 역사할 수 있느냐?

이래도 이 괴로움을 기쁘게 이겨내고, 고통을 견뎌낼 수 있겠어?

이것까지도 절망하지 않고 나를 믿고 끝까지 버텨낼 수 있겠니?’

하신다. 작은 마디에서, 큰 사정까지 헤쳐 나가야 할 미션들을 마구 던져 주시며, 물어보신다.

 

교조전을 펼치고

 

힘들, 괴로울 때마다 친필을 읽고, 지도말씀을 읽고, 힘을 얻는다. 격려를 받는다.

그리고 교조전을 펼친다. 교조님께서 우리를 위해 걸어주신 모본을 찾아 읽는다.

교조모본의 길의 전반 25년 동안은 많던 전답과 살림살이를 다 베풀어 서서히 극빈으로 빠져들었다.

[교조님 56세부터 약 10년 동안은 참으로 어려운 고난의 길이었다. 한창 시절의 슈지도, 한창 피어나는 처녀 고칸도, 단 하루도 좋았다고 생각되는 날이 없는 가운데 오로지 교조님께서 의도하시는 대로 순직하게 따랐다. 고칸님이 가을 축제일에 동네처녀들이 좋은 옷을 차려입고 즐겁게 놀 때, 나는 지나가는 축제 행렬을 홀로 쓸쓸히 바라보고만 있었어.”라고 술회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60 고개를 넘으신 교조님께서는 더욱 혹독하게 몰아치는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구제의 여가를 틈타 바느질과 물레질에 밤을 세우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 중략 -- 여름에는 지독한 모기떼에 시달리고, 겨울에는 가랑잎과 나뭇가지를 태워 겨우 추위를 견디면서 밤늦게까지 일에 골몰하셨다. -- 중략-- “전략-- 물을 마시면 물맛이 난다. 어버이신님께서 고맙게 보살펴주고 계시는 거야.”라고 타이르시고, 아무리 서글퍼도 서글프다 하지 마라. 거지노릇은 안 시킬 테니.”라고 격려하셨으므로, 자녀들도 쓰러지려는 마음을 되살려 교조님을 따랐다. -- 중략 20 수년에 걸친 기나긴 행로를 걸으신 뒤에야 가까스로 어버이신님의 의도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고본 천리교교조전 p 32~34)

교조전일화편도 힘들고 어려울 때 자주 찾아 읽는다. ‘일화편 4, 일립만배로 돌려 준다에서도 힘을 얻는다.

가난에 빠져라, 가난에 빠지지 않으면 어려운 사람의 사정을 모른다. 물이 떨어지면 튀어 오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일립만배로 돌려준다.

 

교조전, 일화편 등을 읽으면서

그래도 교조님보다는 훨씬 낫잖아. 교조님의 노고보다는 백배, 천배나 상황이 낫잖아. 교조님께서 미리 걸어주신 거야. 감사하다.’ 다시 용기를 낸다.

그러다가 너무 힘들면 어버이신님 앞에 엎드려 울면서 하소연하고 떼를 쓴다.

어버이신님, 참 너무 하십니다. 저더러 더 이상 어찌하라고요? 제가 그렇게 대단한 인간이 아니거든요. 저는 이젠 더 할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으니 알아서 하세요.”

어버이신님 집이고 신님이 역사를 하도록 하셨으니, 신님이 알아서 다 해결하세요. 신님이 건물주잖아요? 그러니 건물주인 어버이신님이 알아서 공사비 결제하세요. 저희는 단지 심부름하는 사람이잖아요!”

울고불고 하소연하다가 맹자님 말씀에서도 위로를 받는다.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사명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며 그 몸을 지치게 하고, 그 육체를 굶주리게 하며 그 생활을 곤궁하게 하여서 하는 일마다 어긋나고 뒤틀리게 하나니. 이는 그의 마음을 두들겨서 그 성질을 참게 하여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버텨내기, 견뎌내기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모본의 길 가운데 버텨내기, 견뎌내기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교조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은 어떠한 고생, 간난고초의 길을 걸었어도 끝까지 견뎌내며 기꺼이 신한줄기로 나아가는 모본, 구제한줄기로 나아가는 모본이 아니던가.

봄에 콩 씨를 뿌리거나 가을에 시금치 씨를 뿌려도 바로 싹이 나는 것도 아니고, 수확을 하는 것도 아니다. 봄에 뿌려 가을에 거두거나 가을에 뿌려 겨울 지나 봄에 수확하는 것이다. 그렇게 씨앗을 뿌려놓고 수확할 때까지 수리거름 하면서 기다리는 시기, 그것이 버텨내기, 견뎌내는 시간이 아니겠는가.

나무 역시 마찬가지이다. 씨앗을 심어서 바로 싹트는 나무도 있지만 몇 년 몇십 년 걸려 싹트는 나무도 있다. 씨앗에서 싹트기까지 시간도 필요하지만 싹 터서 열매가 열리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런 시기가 견뎌내고, 버텨내는 시기가 아닐까.

어느 지인이 다니는 회사는 사람을 퇴직시킬 때 먼저 무언의 압력을 넣고는 한 주쯤 지나면 일방적으로 갑작스레 책상을 빼어버린다고 한다. 자리를 없애며 이제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나고, 남부끄러워서 그만둔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분은 그렇게 책상을 없애버렸는데도 계속 줄기차게 출근을 해서 한쪽 모퉁이에 의자 하나 가져다 놓고 지냈다 한다.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모든 부끄러움을 내려놓고, 아주 보잘것없는 일이라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며 온갖 수모를 견뎌냈다고 한다. 책상도 없지만, 간이의자에 앉아서 버텨내었단다. 그렇게 두세 달이 지났을 때, 회사에서 책상을 다시 넣어주고, 자리를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버텨낸 사람이 지금은 승진까지 해서 잘 나가는 임원이 되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 버텨내기란 보통 사람은 못 할 것 같다. 이분은 버텨내기로 승리한 케이스다.

 

신한줄기로 가는 용재의 버텨내기, 견뎌내기

 

교조모본에서 견뎌내기는 평생에 걸쳐 있다. 초기에는 이해받지 못한 채 걸어주셨고, 멸시와 조롱도 견뎌내셨다. 나중에는 극빈에 빠져 가난조차 즐겁게 견뎌내셨고, 그다음에는 승려와 신직자들의 방해와 괴롭힘 공격에서 버텨내는 시기도 있었다. 그리고 국가의 억압과 탄압에도 견디고 버텨내며 이 길을 넓혀주신 시기도 있었다.

이런 모본을 보면서 포교사는 모름지기 2~30년을 온갖 상황과 어려움에 부닥쳐도 버티고, 견디면서 신한줄기로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교조님께서 월일의 현신으로 정해지실 때 신님께서는 ‘20, 30년이 지나면 모두 과연 그렇구나 하고 생각할 날이 올 것이다.’고 납득을 시키며 깨우치셨다고 하는 것을 봐서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 길, 불안한 길도 있지만 든든한 길도 있다. 불안한 길을 견딘다. 이길 어려운 것은 필요 없다. 견디는 것 이길을 충분히 시작하는 것이라 한다. 잘 물으면서 시작해왔다. 서로 견디면서 이어 간다면 충분한 길. 견딘다는 것은 정성 하나의 리, 하늘의 리라 깨우쳐 둔다. 견뎌내는 리를 정한다면 넓고 큰 리가 된다.(……) 마음으로 잘 견디면서 지낸다면 맑은 하늘같은 하나의 리라고 깨우쳐 둔다.(1893. 7. 12)

 

모가 고생을 했기 때문에 각자 오늘이 있다. 노력과 효능의 리를 쌓아야만 각자의 길이 있다. 부모들이 정성을 다한 리로써 맺어진 연이다. 인연없이 모일 수 없는 거야.(1895. 8. 3)

 

어렵고 부자유해야만 리의 씨앗이라 한다.(1897. 10. 12)

충분히 다하고 충분히 나르고, 연수가 지나야만 언제까지나 이어진다.(1897. 11. 13)

 

고생 부자유 간난고초의 길 데리고 지났기에 씨앗이 된다. 씨앗없이 열매는 맺지 않겠지. 이 리를 통해 어떠한 일도 분간해 들어라. 지금까지 간난신고의 씨앗, 그 씨앗에 여러 가지 마음의 리가 쌓이게 되면 거기서 어떠한 것도 싹트게 되는데, 그 가운데는 마음의 리에 따라 싹트지 않은 씨앗도 있겠지. 이길에서는 나()라는 리를 앞세워서는 안 돼. 나는 필요 없어. (1897. 11. 27)

 

자녀들도 쓰러지려는 마음을 되살려 교조님을 따랐다는 말이 교조전에 나온다. 자녀인 고칸님, 슈지님처럼 나 역시 교조님의 말씀, 모본에 의지해서 버텨내고, 견뎌내며 용솟음치려고 갖은 애를 쓰는 중이다.

 

 

마음성인의 역사를 향해

 

어버이신님께서 수련원 역사를 하게 하시고, 시순에 맞춰 수호를 해 주시면서 마음성인의 역사로 이끌어주신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 몸으로 마음으로 힘들고 괴로울 때도 많지만, 그 믿음 하나에 의지하여, 여기까지 버티며 용솟음쳐 왔다.

신님께서 맡겨주신 수련원 역사이니까, 당연히 어떠한 어려움도 감당해낼 수 있는 역량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손잡고 나아가고 있으니 마음 든든하다. 어버이신님께서는 이 역사를 통해 각자 자기에게 알맞은 마음성인의 과제를 주셨을 것이다. 그래서 힘들고 괴롭고 어렵더라도 피하거나 숨거나 도망가지 않는다. 당당히 맞서고, 직시하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마디를 감당하며 나아간다. 그것이 지금 내가 걷고 있는 버텨내기, 견녀내기모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교조전, 일화편, 지도말씀과 친필을 읽으며, 그리고 나날이 실천하는 전도와 기원근행을 통해서 용기와 격려를 해주시는 어버이신님의 음성을 듣는다. 그리고 언제나 앞서서 손잡아 이끌어 주시는 교조님의 손길을 느끼며 마음성인을 위한 역사에 파이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