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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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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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하나 85

 

천리교 가르침의 뿌리, 으뜸인 리 25

 

이 시 중

 

 

월일, , 도구

 

교전에서는

이 세상의 진실한 신은 月日이니라

그 밖에는 모두 도구들인 거야 6-50

이 세상의 으뜸인 신, 진실한 신은 월일 어버이신님이신데, 달님을 월덕수기의리(月德水氣), 해님을 일덕화기의리(日德火氣)라 일컫는다. 그 밖에는 모두 본이요, 도구이다.

고 밝히고 있습니다.

달님은 월덕수기의리, 해님은 일덕화기의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인어와 흰뱀은 부부의 본입니다. 다시 인어에 범고래를 끌어넣고, 흰뱀에 거북을 끌어넣어서 각각 남자추형종자의리, 여자추형묘상의리라는 이름을 붙여 남녀의 본이 됩니다. 범고래는 지탱수호의리로 남자의 도구와 뼈 및 버팀, 거북은 결합수호의리로 여자의 도구와 피부 및 연결이라 합니다. 그 외에 먹고 마시고 내고 들이는 도구인 수기승강수호의리,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도구인 풍기수호의리, 끌어내는 도구인 인출수호의리, 끊는 도구인 절단수호의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것을 통칭 십전 수호의 리라 하며, 온전한 수호 완벽한 수호를 나타냅니다.

월일 본 도구, 이렇게 말하다 보면 월일 따로, 본 따로, 도구 따로인 것처럼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월일은 격이 높고, 본은 그 아래 격이고, 도구는 그다음 격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렇게 나아가다 보면 인간 세상에서도 뭔가 격이 높고 낮음, 지위의 높고 낮음, 존비귀천이 있다는 것이 당연하고, 그에 따른 차별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처럼 받아들여질 위험이 있습니다.

사실 사람에 따라 성품의 격이 다르고, 생각하는 차원이 다르고, 하는 역할이 다 다릅니다. 여러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자니 당연히 질서가 생겨나고 그에 따라 지위가 생겨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습니다. 문제는 그 다름을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느냐 아니면 차별대우를 하느냐 하는 점입니다. 만약에 차별대우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된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교조님의 모본과 가르침에 극명하게 배치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이 길의 여명을 연 첫 신호탄이 된 것은 잘 아시다시피 순산허락입니다. 많고 많은 일 중에 왜 순산허락이었을까요. 물론 지도말씀에서는 이것은 어버이가 인간을 창조한 첫째가는 증거.’(1889. 9. 23)로써 출산에 대한 두려움과 어려움을 가볍게 해 주신 것이라고 합니다. 거기다가 또 중요한 사실은 여성해방에 있다는 것도 주목해 봐야 합니다. 그 당시 여성들은 사람대접받지 못하는 매우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월경은 지저분한 일로 여겼고, 출산 역시 더러운 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것도 피하고 저것도 피하라. 혹은 이것을 의지하고 저것을 의지하라는 것이 많았습니다. 거기다가 아이를 낳을 때는 자기 집 안방에서 낳지를 못하고, 별도의 산실을 지어 거기서 낳도록 했습니다.

기독교 창세기에서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가 하느님의 명을 거역한 죄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죄의 대가로 남자는 땀을 흘리며 평생 일하는 고역을, 여자는 아이를 낳는 고통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조님께서 순산허락을 내리십니다. 이것을 첫 신호탄으로 하여 이 길의 여명을 열어 가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생명존중 여성존중의 사상이 담겨있으며, 여성에 대한 부당한 차별대우를 없애는 일부터 시작하신 것이지요. 하느님이 원죄로 뒤집어씌운 일을 교조님께서 아주 명쾌하게 해방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교조님의 은신 하루 전에 하신 말씀(유언), 그리고 은신 이후 본석님을 통해 일러주신 첫 말씀 속에 평탄한 땅으로 밟아나간다'는 것이 있습니다. 교조님께서 걸어주신 50년간 모본, 숱하게 남기신 말씀, 적어두신 모든 말씀을 단 한마디로 한다면 무어라 할 수 있을까요. 평탄한 땅으로 밟아나간다에 모두 다 집약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탄한 땅이란 무엇입니까. 높고 낮음이 없는 세상, 차별하거나 차별받지 않는 세상, 누구나 즐겁고 누구나 행복한 감로대 세상을 말하는 것 아닙니까. 높고 낮음이 있다는 것은 끊임없는 티끌, 끊임없는 분쟁과 모반이 일어나게 하는 근본 원인이 됩니다. 높은 자는 낮은 자를 무시하거나 부당한 대접을 하고, 낮은 자는 높은 자에 대한 시기 질투 원망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높은 자는 그 높음을 유지하기 위하여 무리한 가치체계와 이념을 낮은 자에게 주입하면서 억압을 하고, 낮은 자는 그 낮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리한 욕심을 부리거나 판을 뒤집는 행동을 서슴지 않습니다. 평탄한 땅이 된다는 것은 이러한 모습이 모두 사라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친필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모반의 뿌리는 끊어져 버려’(13-49)서 지극히 평화롭고 더없이 즐거운 신인화락의 감로대 세상이 열리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교조님의 모본과 가르침에 어긋나는 논리나 해석은 전개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월일, , 도구는 어떻게 해석해 볼 수 있을까요.

흔히 월, 일이 각각 다른 두 존재처럼 자꾸 착각하지만 원래 하나입니다. 하나 속에 월일로 대표되는 특성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이지요. 사실 달님은 차가운 느낌, 해님은 뜨거운 느낌이 있습니다. 그런데 해님이 없는 달님, 반대로 달님이 없는 해님만의 세상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뜨거움이 없는 차가움, 혹은 차가움이 없는 뜨거움만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습니까. 따로따로 다른 존재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머리와 심장이 함께 어우러져 생명 활동을 하듯이, 머리와 심장을 따로 떼 놓았을 때는 아무런 의미가 없듯이 분리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의 유일한 절대 존재 속에 월일이 있는 것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인어와 흰뱀, 거북과 범고래, 그리고 장어 가자미 검은뱀 복어도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절대 존재 속에 내포된 것입니다.

친필에

차츰차츰 무엇이든 이 세상은

신의 몸이야 생각해 보라 (3-40, 135)

고 하십니다.

이 모든 것들이 신의 몸속에, 신의 품속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무슨 차별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격이 다르고 지위가 다르고 역할이 다르지만 모두 하나 속에 녹아있기 때문에 저마다 존재 이유가 있고, 제 나름의 특성을 살려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월일 어버이신님께서는 범고래 거북 장어 가자미 검은뱀 복어를 불러들이고 납득을 시키고 먹어서 그 마음씨를 알아보셨습니다. 범고래를 인어에 끌어넣고, 거북을 흰뱀에 끌어넣습니다. 그 인어에 달님이 들어가고, 흰뱀에 해님이 스며들어 갑니다. 그리고 그 인어와 흰뱀이 부부로 하여 짝짓기를 합니다. 이리하여 인간창조가 시작됩니다.

이와 같이 인간창조에 참여하는 월일 본 도구는 먹고 먹히고 붙고 스며들어 가는 양상을 보입니다. 즉 따로국밥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입니다. 월일과 본과 도구는 처음부터 절대 존재 하나 속에 내포되어 있었고, 그것이 때에 따라 필요에 따라 등장하였다가 다시 하나 속으로 모두 융합 융해 혼연일체가 되어 버립니다. 너 내가 따로 없는 것이지요. 너 내가 본래 따로가 아니었고, 잠시 이름과 역할을 부여받아 모습을 드러내었다가 새로운 창조 속으로 하나가 되어 모습이 사라져 버립니다. 십전수호로 온전하게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그러므로 별도로 하나하나 떼어놓을 수도 없고, 떼어놓아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머리, 심장, 뼈대, 피부연결, 섭취 소화 흡수 배출, , 나고 자라는 것, 죽고 조절하는 것 역시 별도로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두가 원래 하나에서 나왔고, 결국 새로운 인간으로 새로운 세상 속으로 또다시 하나 되어 녹아 들어가면서 통합되어 갑니다.

 

월일 본 도구를 또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고 여겨집니다. 월일은 인간 창조와 즐거운 삶이라는 의지와 뜻으로, 본은 변함없이 지켜가는 중심으로, 도구는 그것을 실현해 나가는 손발로 한다면 어떨까요. 뜻이 있어도 중심이나 손발이 없어도 안 되고, 중심이 있어도 뜻과 손발이 없어도 안 되며, 손발이 있어도 의지나 중심이 없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뜻도 있어야 하고 중심도 있어야 하고 손발도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따로가 아니라 모두 하나로 융합 통합되니까 비로소 생명 활동이 시작되고, 유지가 되고, 서로 교류하면서 신인화락하는 감로대 세상을 열어가는 것도 가능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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