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 교회본부



cond="$

7월 월차제 신전강화

 

한 가지는 포기하기

 

 

김영진(진양교회장)

 

여러분 반갑습니다. 날씨가 매우 덥습니다. 어제는 기온이 38.5도까지 올라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더운 날씨 가운데서도 월차제에 참배해주시고 끝까지 근행을 올려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아침에 잠시 TV를 보니까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더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피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월차제 근행에 참배해서 근행을 올리고 신악가를 크게 부르고 하는 것이 나름대로 즐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더운 여름에 월차제 근행에 참가해서 영혼적으로도 많이 맑히고 더위를 피해서 즐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잠시 제가 생각하는 바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4)

 

상급회장님께서 순교를 오셔서 감화하실 줄 알고 여유를 갖고 있었는데, 갑자기 올라오게 됐습니다.

저는 예전에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감화 한번 안 시켜주나.’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고 마음속에 용솟음치는 생각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에게도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좀 있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까 내가 한 말의 책임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월차제 근행은 영혼을 맑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마지막 순서인 감화를 하면서 자신감 없는 이야기, 용솟음치지 않는 이야기, 책임을 질 수 없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는 것이 걱정도 되긴 합니다.

친필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염려 말라

무엇이든 만가지를 어버이가 맡았으니 15-62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어버이신님의 생각에 따라, 의도에 따라 나름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가지는 포기하기

 

지난 71일부터 15일까지 고성교회 특별당직 근무를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순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순교를 부탁받은 시간이 좀 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복장을 갖추고, 교복을 가지고 갈 수 있는 상황이 안 되었습니다. 다 챙겨가려면 근행시간에 늦게 됐습니다. 순교를 가는데 근행시간에 늦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고민을 좀 하다가 미리 순교 갈 교회에 전화했습니다. “제가 순교를 가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복장도 평상복에 교복도 챙겨가지 못할 상황이니, 평상복으로 가도 이해해주시고 교복도 좀 챙겨주십시오.” 하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마침 그 교회장님께서 이해해주시고 교복도 챙겨주셔서 순교를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제가 느낀 것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완전하게 하고 싶고, 완벽하게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바쁘게 살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몸이 바쁘고, 힘들고, 괴롭게 됩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것을 조금 내려놓으면 어떨까요. 두 가지를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고 한 가지는 좀 포기한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복장을 챙겨 입고 가는 것을 포기하고 가니까 오히려 근행에 더 일찍 도착해서 나름대로 여유 있게 순교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던 겁니다. 많은 사람이 저를 보고 진양교회장은 항상 늦게 오는 사람이다.” 하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저도 그렇게 안 하려고 해도 자꾸 그렇게 됩니다. 어디에 시간 맞춰서 가려고 하면 좀 빨리 출발해도 뭔가를 빼놓고 와서 되돌아가기도 하고 해서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뭐든지 완벽하게 하려고 하다 보니 피곤해지는 겁니다. 모자란 부분도 스스로 인정하면 부담이 줄어드는데 두 가지, 세 가지를 모두 잘하려고 하다 보니까 마음을 괴롭고 힘들게 만드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오늘 어디서 읽은 글귀 중에 지식은 채우는 것이고 지혜는 버리는 것이다.’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것을 보고 이런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버이신님께서 3천 년에 걸쳐서 지혜를 가르쳐주셨다고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어버이신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였습니다. 지식은 노력을 통해서 얼마든지 채울 수 있는 것입니다. 책을 통해서나 다른 사람의 말이나 경험을 통해서 배울 수가 있습니다. 지식은 채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버이신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였습니다. 지혜는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개인적으로 보면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완벽해지려고 하다 보면 내 몸이 힘들고 주변 사람들도 어렵게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약간 모자라면 모자란 그대로 보여주다 보면 내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있게 됩니다. 한쪽은 포기를 하고 마음을 버리게 되면 내 마음도 가볍고 즐겁게 할 수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 방법,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지식이 아니라 지혜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음을 낮춰라.” 하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게 어떤 것인가? 이런 말씀에 함축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가 운동을 한다고 탁구를 좀 치고 있습니다. 탁구장에 탁구대가 여러 대 있습니다. 탁구를 하다 보면 공을 주우러 가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공을 주우러 공을 쫓아가다 보면 옆 탁구대에서 흘러나온 공을 동시에 주워주는 경우가 생깁니다. 두 개의 공을 다 잡으려고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몸은 하나인데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가는 두 개의 공을 동시에 주우려고 하다 보면 두 개 모두 잡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것도 보면 사람이 두 가지 일을 다 하려고 하다 보니 잘 안 되는 겁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뭔가를 한 손에 쥔 상태에서 다른 일을 동시에 하려고 하다 보면 걸려서 일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손에 쥔 물건을 잠시 내려놓고 하고자 하는 일을 두 손으로 하게 되면 일을 쉽게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의 마음이, 하고자 하는 일이 별 것 아닌 것 같아서 손에 물건을 쥔 상태로 다른 일을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월하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근행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손춤을 추면서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면, 매일 해서 만만하다고 생각하는 손춤 동작도 순간 헷갈리기도 하고 바른 자세가 나오지 않는 것도,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도랑 치고 가재를 잡으면 참 좋은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 자신도 마음속에 있는 것을 혼자서 다 하려고 하는 저 자신을 들여다보면, 능력도 부족하고 잘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다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라도 제대로 하려고 하면 내려놓는 연습, 마음을 버리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한 때는 저 일은 나 아니면 안 된다.’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그 일을 하게 됩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내가 아니더라도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물론 자신이 할 수 있고 할 상황에 있으면 최선을 다해야겠지요.

내가 아무리 잘해도 남들도 나만큼은 한다는 사실을 요즘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완벽하고 책임감이 있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생각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연습을 하다 보면 나에게 주어진 하나의 일을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속 털어내기

 

오늘 아침에 근행을 보러 가다가 동쪽에서 해가 올라오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옛날에 제가 고성교회에 신앙하기 전, 남산 아래에서 살 때, 중학교, 고등학교 때 남산 뒤쪽에 자주 갔습니다. 거기 가면 옛날에는 아무것도 없는 들판이었습니다. 거기에 서 있으면 아침에 거류산 쪽에서 해가 올라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해가 올라오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아서 아침마다 거기에 가서 해오름을 봤습니다.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그 해가 내 몸속에 들어온다는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아침 해는 맨눈으로 볼 수 있으니까 해를 보면서 눈을 부라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시력이 아직 괜찮습니다. 해를 맞이하는 습관이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고등학교 졸업할 즈음 천리교에 처음 참배할 때 본부가 동쪽에 있어서 동쪽을 보고 참배한다는 얘기를 듣고 천리교 신앙을 하기 전부터 동쪽으로부터 그런 기운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그때 신찬 할머니가 계셨는데, 저희가 전세 살 때 주인집 할머니가 그 신찬할머니였습니다. 그 할머니는 저에게 천리교에 가자던가 하는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천리교에 대해 모르고 있었을 때였는데, 새벽에 나가시는 모습을 종종 보면서 컸습니다. 나중에 고성교회에 와서 보니 그 할머니가 신찬 할머니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그런 분에게서 천리교에 가자는 이야기를 직접 듣진 못했지만, 그분이 항상 마음속으로는 기원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군대 가기 전에 인사드리러 갔더니, 큰 솥에 곰국을 끓이고 계셨는데, 그거 먹고 가라면서 큰 그릇에 떠주신 곰국을 먹고 왔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볼 때도 해를 맞는 나름의 습관이나, 신찬 할머니를 통해서 느꼈던 것들이 저를 천리교로 오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천리교에 온 게 벌써 30 몇 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해를 맞이한다고 했는데, ‘는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지는 해를 보면서는 희망에 관해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해가 뜨기 직전의 상태는 어두운 상태입니다. 어두운 상황에서 밝은 해가 떠오르는 모습에서 희망을 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에 뜨는 해를 보면서 제가 그 어렸을 때, 중고등학교 때 해맞이를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생각을 해보니, 해가 뜨기 전의 제 마음 상태가 그런 어두운 상태 같습니다. 어릴 때이지만 남에게는 이야기하지 못했던 마음속의 응어리가 있고, 그런 것을 풀 수 있는 계기가 없었기 때문에 그 해맞이가 그런 응어리를 풀고, 밝은 태양을 마음속에 간직하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는 그런 행동을 하면서도 그 이유를 몰랐는데 오늘 아침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가난했지만 불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주위에서 우리 집을 보고 저 집은 웃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집이라는 얘기를 많이 했던 것으로 봐서 우리 집은 가난하지만 불우하지는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희가 세 들어 살 때 주인집에 저보다 한 살 적은 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한 살 적지만 그 아이에게 비굴하게 굴어야 했습니다. TV가 흔하지 않던 시절 우리 집에는 TV가 없고, 그 주인집에는 TV가 있었기 때문에 그 집에 가서 좋은 자리에서 TV를 보기 위해서는 그 주인집 아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애썼던 모양입니다. 그런 이유로 자신감도 없고 해야 할 말도 하지 못하는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중에 태양을 맞이하면서 어린 마음에 그런 마음의 응어리를 풀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두 번째 고성교회에 참배했을 때 악한 것을 제거하고의 손춤을 배우게 되었는데, 그게 태양을 맞이했던 행동과 일치되는 점이 있었습니다. 내 마음속의 안 좋은 것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천리교에서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리교에서만이 저의 마음속에 담겨있는 우울한 생각들을 없앨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좌근을 올릴 때마다 그런 마음을 없앨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스럽고 감사하게 생각됩니다.

조금 전에도 신악가를 부르면서 생각해보니 신악가 소리도 중얼중얼하는 것보다 마음을 다해서 크게 부르는 것도 중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에는 신상은 병원에서 웬만하면 치료를 다 합니다. 하지만 사정은 병원에서 치료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내 마음속에 쌓여있는 꽉 차 있는 스트레스를 풀어낼 방법도 천리교에서 가능합니다. 좀 고음인 신악가를 소리 내서 부르면서 그런 걸 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옛날에 터전에 가면 표통령이셨던 이부리 선생이 창인 하는 것을 가끔 봤습니다. 그분 창인 하실 때 보면 온몸에 있는 걸 끌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고함을 지른다고 할 정도로 마음속에 있는 것을 끌어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 걸 보면 천리교가 내 마음속에 있는 것, 그대로 두면 사정으로 표출될 만한 부분들을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종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좌근을 통해서 마음속의 악한 것을 털어내고 신악가를 소리 높여 부르면서 온몸에 있는 것을 끌어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판소리 같은 것을 보면 단전에서 소리를 내야 한다고 합니다. 보통의 경우는 입, , 가슴을 통해서만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단전에서 소리를 낸다는 것은 아래에서 시작해서 몸속의 모든 호흡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저는 음악을 전혀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내 마음, 몸 안의 모든 안 좋은 것들, 스트레스, 찌꺼기, 우울한 생각들을 소리를 통해서 끌어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가 그런 생각이 기본 바탕이 돼서 지금까지 신앙을 이어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성원 회장님께서 좌근 창인을 하셨는데, 그때 제가 청년 근무를 시작해서 얼마 안 됐을 때인데, 제가 2창인으로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성원 회장님이 가슴속의 모든 것을 털어낼 수 있을 정도로 힘차게 불러보자는 말씀을 해주셨던 게 기억납니다. 그때의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창인을 할 때 보면 잘 못 하고 힘들게 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힘들게 하면 할수록 내 몸속의 안 좋은 것을 더 많이 덜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른 분들은 좀 거북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저 스스로에게는 홀가분하게 창인을 하고 내려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계 어떤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분들 누구나의 마음속에 쌓여있는 덜어내지 못하는 부분을 발산해내고 내 마음속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찌꺼기까지 털어낼 수 있는 것이 천리교 신앙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학생회 활동을 통해서 천리교 고성교회에 연이 닿아서 신앙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달 727일부터 29일까지 어린이, 중고등학생, 대학생, 어른들까지 참가할 수 있는 신앙수련회가 고성교회에서 열립니다.

저는 학생수련회를 통해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습니다. 대학교 때, 대학 졸업장도 필요 없다고 할 정도로 학생회에 빠져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수련회가 신앙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주변 사람들이 많이 참가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기를 부탁드리면서 부족한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