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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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85

 

 

한때나마

 

박지수

 

몇 년 전에 조카를 데리고 있었던 때 일이었다. 서울에서 통영으로 전학 오고 나서 한 보름 지났을 때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나 아빠, 오빠 안 보고 싶어?"

"아니, 전혀 안 보고 싶은데요."

"그래? 캠프나 뭐 그런데 가서도 보고 싶은 적 없었어?"

"!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하면 (부모님들이) 상처받으니깐 보고 싶다고 해줘요."

"예의상 말이지?"

", ㅎㅎ 그런데 보고 싶지 않은 게 이상한가요?"

"아니, 그럴 수도 있지. 이모도 그랬거든...."

조카의 여러 이야기 속에 이런 생각이 있었다.

'엄마, 아빠는 보고 싶고 사랑한다면서 내가 조금만 잘못해도 왜 그렇게 야단치는지, 자기들 기분 나쁘다고 왜 나한테 화풀이를 하면서 그렇게 상처 주는 말을 함부로 하는지, 또 엄마 아빠 둘이 싸우면서 왜 불안하게 만드는지.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말들을 하지만 그게 사실인지 거짓말인지 정말 모르겠다. 그렇게 보고 싶고 사랑한다면 평소에도 잘해 줘야지.'

아이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예전에 내가 느꼈던 것이 생각났다.

 

손윗 형님은 결혼 후 곧바로 십여 년을 어머니를 모시고 사셨다. 그때 어머니는 형님에게 모질게 대하고, 시집살이를 호되게 시키신 것 같았다. 그래서 형님은 막내 동서와 나에게 어머님에 대해서 원망을 많이 하셨다.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리는 일들도 많았다. 그 생각하면 어머니를 다시는 보고 싶지도 않고, 말도 하기 싫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막상 어머님을 만나면 형님은 그럴 수 없이 착한 며느리로서 시어머니 봉양을 아주 잘 하셨다. 평소에 형님께 원망의 말을 많이 들어 온 내겐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모습이었다. 뒤에선 그리 원망과 분노를 말하면서 앞에선 저리 공손하게, 깍듯이 모시다니 참으로 겉 다르고 속 다른 위선자, 이중인격자 같았다. 180도 다른 말과 태도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 형님도 이상하시네. 어쩌면 입으로 아까 하신 말씀과 지금 행동이 저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형님의 그런 변신이 놀랍기까지 했다.

저렇게 세상을 살면 잘 사는 것인지, 처세술에 능한 것이지. 참 대단한 능력이구나.’ 싶어 형님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위선이나 가식은 아닌 듯했다. 이해하기 위해 여러 해 형님의 모습을 계속 관찰했다.

그러는 사이 인간의 심리에 대해서 더 이해하게 되었고, 형님의 생각과 감정도 서서히 파악하게 되었다. 형님이 예전에 시집살이할 때를 생각하면, 어머니께 너무나 서운하고 원망스럽고 미운 감정이 일어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고, 또 실제로 뵙게 되면 연세 드셔서 약해지신 모습이 안쓰럽고 불쌍해서 뭐라도 좀 더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도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이렇듯 상반되는 감정들이 교차하는 것이 인간이지 않은가.

과거에 핍박받았던 때를 생각하면 당연히 미움이 일어나고, 지금 연로하신 모습에는 연민이 생겨 더 잘해드리고 싶은 것이었다. 그 순간, 순간의 마음이 모두 진실이고, 진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진실, 그 진심이라는 게 항상 변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남들이 보기엔 위선으로 혹은 이중인격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그 순간만은 진실이고 진심이지 않은가.

 

조카처럼 예전의 나 역시 사랑한다면 항상 좋은 얼굴로 칭찬하고, 다정하게 대하고, 격려해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사랑조차도 그렇지 않던가? 너 없이 못산다며 그렇게 죽자 살자 사랑한다고 목을 매어도, 결혼해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다투게 되고, 무슨 원수처럼 여겨지는 때가 온다.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을 만큼 말도 하기 싫고, 꼴 보기도 싫어 얄미운 마음으로 가득 차는 때가 있다. 젊은 시절 한때는 그런 것이 참 힘들었다. 결혼에 회의가 들었고, 사랑이란 것에 의심과 불안이 생기기도 했다.

좀 전에 그렇게 사랑한다고 난리더니 금방 자기 맘에 좀 안 드는 짓 했다고 저렇게 버럭 화를 내는 것 좀 봐! 저게 무슨 사랑이야? 사랑한다면서 그럴 수 있어? 참으로 이기적이고, 순간적인 사랑이군.’ 그런 생각으로 괴로워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사람의 감정은 언제나 변하고 변해 가는 것. 나이가 들면서 경험으로 지혜로 알게 되었다. 상황에 따라 시시때때로 감정이 변한다. 아무리 사랑한다 하더라도 다음 순간 화를 무섭게 낼 수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 불같이 화를 낸다 하더라도 사랑한다고 했던 그 순간에는 그 말이 지극히 사실이었다는 것을. 그 순간만은 그게 진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깨달음이 그 순간, 순간에 일어나는 감정에 너무 빠지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데 상당 부분 도움이 되었다.

 

전도포교 모임인 천리향 활동을 1423일째 하고 있다. 구제활동에 필요한 도움을 서로 주고받으며, 함께 이 길을 즐겁게 가고자 한 모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다 보니 아무리 좋은 뜻으로 만났다 해도 그 속에서 작은 갈등이나 대립이 생겨났다. 그러다가 어떤 이유에서건 활동을 그만두는 사람이 생겨날 때는 마음에 생채기가 일어났다. 특히 아주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분이 모임을 떠나갈 때는 마음이 너무나 쓰라렸다. 함께 할 때는 그렇게 좋아하고 즐겁다고 했는데, 떠나면서 비난하거나 좋지 않은 여운을 남긴다. 그로 인해 받는 마음의 상처와 상실감이 너무나 컸다. 물론 떠나는 처지에서 보면 자기 나름대로 떠나는 이유와 변명거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아있는 자에게는 분명 상처와 상실감이었다.

사람이란 늘 성장하는 과정에 있다. 그래서 때때로 생각이 변하고, 마음도 변한다. 그러니 떠날 수도 있고, 떠나는 게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즐겁게 활동하고, 성장했던 그곳을 나쁘게 말하거나 비방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부정하는 꼴이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당하는 쪽에서도 서운하고, 배신감이 들고,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이 오래가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상처받은 자신을 달래가며 그가 베풀어 준 은혜와 친절을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주고받는 것이기에 누구와도 좋았던 기억이 있기 마련이다. 상처를 남길 정도의 관계라면 당연히 좋은 추억들도 많이 있지 않겠는가.

한때나마 친하게 지낸 리가 있다. 한때나마 서로 챙겨주고, 보살펴준 리가 있다. 한때나마 서로 위로해 주고, 공감하며 힘이 되어 주었던 일이 있다.

 

한때나마 독실했던 리가 있다. (1888. 11. 7)

한때나마 작정한 진실한 마음. (1890. 7. 7)

 

그것을 떠올리면 고마움이 절로 가슴에 고이고, 마음도 다시 밝음을 되찾으면서 따뜻해져 온다. 비로소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그에게 축원을 보내게 된다.

그가 내게 보내주었던 수많은 격려와 지지들, 함께 해서 즐거웠던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고맙다. 그로 인해 나는 얼마나 성장했던가. 비록 지금은 그 전처럼 만나지 못하는 사이가 되었다 해도 그가 선 자리에서 진정 행복한 용재가 되기를, 진정 건강하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를~.......

가슴이 설레고 따뜻하다. 세상이 정말 아름답고, 누구라도 다 안을 수 있을 것처럼 한없이 넓어지는 것 같다.

 

십전수호의리 중 7번째 절단수호의리를 설명할 때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과 같다. 한 과정을 마치고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는 중간 마무리로 졸업이라는 게 있다. 절단수호 역시 마찬가지다. 중학교 과정을 끝내고(자르고), 다음 단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다. 절단을 통해 다음 단계로 성장하고,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감사하게 끊고, 기쁘게 나아간다.”

라고 비유하여 말한다.

그것을 생각하면 인간관계가 변해갈 때 어떤 마음으로 처신해야 할지 깨닫게 된다. 서로 마음의 상처를 주고받으며 끝낼 것이 아니라 서로 감사하게 여기면서 다음 단계로 기쁘게 나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