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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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년04월]느리게 걷기 - 전인수

2018.04.08 11:26

편집실 조회 수:44

느리게 걷기

 

전인수(편집부 실장)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이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리라고 예상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다가오는 오늘날은 모든 것이 매우 빠르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컴퓨터가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이제는 컴퓨터가 없으면 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점점 작아져 가던 휴대폰들은 스마트폰이라는 형태로 바뀌면서 점점 그 크기가 커지고 있습니다. 또 체스와 바둑은 AI에게 사람이 이길 수 없게 되었으며, 이 AI를 응용하여 인간이 운전을 직접 하지 않아도 되는 무인 자동차도 등장하였습니다.

이런 시대를 함께 하면서 점점 사람들의 발걸음도 바삐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변화에도 점점 무디어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또 어디를 갈 때 대부분 차를 이용하다 보니 주변을 되돌아볼 기회가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지난해 이맘때쯤 은행에 볼일이 있어서 볼일을 마치고 나오다 우연히 낮은 건물들 위로 보이는 산의 모습에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집 앞이 논이다 보니 멀리 산이 보여 사시사철 계절이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논들에 빌라가 들어서 있다 보니 산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은행에서 나오면서 보이는 산의 모습은 노란색, 분홍색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때 ‘아! 봄이구나.’ 싶었습니다.

그 산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천천히 걸었음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건물들에 가려 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느린 걸음으로 바라보는 거리와 건물, 골목길은 또 다른 느낌을 주었습니다. 평소 차로,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다닐 때는 미쳐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거기서 새롭게 느껴지는 거리, 건물, 골목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래 여기는 예전에 이랬는데, 지금은 이렇게 바뀌었구나, 어! 저 건물은 언제 들어섰지, 여기 담이 이랬나 하며 평소 그냥 지나다녔던 거리에 애정도 생겼습니다.

일이 많다 보니 바삐 움직이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또 요즘은 스마트폰이 있어 스마트폰의 화면을 쳐다본다고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또는 음악을 듣는다고 그냥 지나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애정을 가질만한 것들도 적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바라볼 때 나에게 의미가 있는 꽃이 되지만, 관심을 가지기 전에는 그냥 그 무언가에 그치고 만다는 것입니다.

내 주변의 것들을 관심을 가지고 천천히 살펴본다면 평소 못 보던 것을 볼 수 있고, 이것들이 모여 내 주변 것들에 애정을 만들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 뛰어놀던 옛 고향이 그립고, 어릴 적 가지고 놀던 투박했던 장난감들이 그리운 것이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과의 관계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친구가 그립고, 가족이 그리운 이유 역시 오랜 시간 그들과 생활하면서 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요?

모든 것이 바쁘게 흘러가다 보니 사람과의 관계도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잠시 만났다 헤어지는 관계가 되다 보니 상대에 대해 알 시간도, 또 알려고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한, 물건에 대해서도 잠시 쓰고 마는 도구로만 인식하다 보니 예전처럼 애정을 가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이다 보니 어쩌면 느리게 걸으면서 주변에 관심을 두기도 귀찮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느리게 걸으면서 주변에 더욱 관심을 두려고 노력하고, 오랫동안 만져서 애정을 가져야 하고, 오래오래 사귀어서 많은 친구를 주변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