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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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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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제7장(1수~5수)

 

하나에 한마디의 말씀은 히노끼싱

가르침 만이라도 전하여두자

 

“한마디의 말씀은 히노끼싱”에는 두 가지의 해석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한마디 말씀, 즉 어버이신님의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은, 어버이신님에 대한 은혜보답. 즉 히노끼싱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도말씀에,

이 사람에게 향내를 풍겨야겠다고 생각되면 길거리에서 만나더라도 전해 다오. 이제부터 이것이 일인 거야. (1907. 4. 7)

라고 깨우쳐 주십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구제 받기를 바란다면, 진실을 담아서 신님의 이야기를 한마디 전해 준다. 이 한마디 말씀의 향내를 풍기는 것이야말로, 우리들 용재가 어버이신님으로부터 직접 부여받은 일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크나큰 은혜보답이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의 해석은, 한마디 말씀을 하시는 것은 어버이신님이시며, 이 7장에서 어버이신님께서 하시는 “한마디의 말씀은 히노끼싱”에 관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즉 7장에서는 조금 뒤에,

셋에 온갖 세상사람 마음속에는

전답을 마다할 사람은없다

라는 말씀으로 시작되는데, 전답과 씨앗 뿌리기에 비유하여 터전에 대해 다하기 · 나르기에 대한 소중함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만,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히노끼싱의 리(理)”에 대하여 가르쳐 주셨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두 번째의 해석에서는, 「한마디 말씀을 한다」는 것도 어버이신님이며, 「향기(가르침)만이라도 전하여 둔다」는 것도 어버이신님이라는 것입니다.

즉 7장에서는 어버이신님께서 사람들에게 “터전에 대한 히노끼싱”을 재촉하고 있다(한결같이 사람들에게 ‘향내’를 풍기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칫하면 자신이 전도했다고 생각하기에 십상입니다만, 지도말씀에,

내가 전도했다. 이것은 내가 넓혔다고들 한다. 이것도 하나의 리이지만, 기다리고 있기에 하나의 리도 전해진다. (1892. 6. 4)

라고 깨우쳐 주시는 것처럼, 어버이신님께서 방방곡곡에 우리들보다 먼저 가셔서 구제를 도와주시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향내가 전해지고, 이 길이 넓혀져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세계구제를 추진하시는 어버이신님의 심부름꾼, 즉 “용재”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가르침 만이라도(전하여두자)”의 손짓은 “모든나라 까지에도 (도와가리라)”(5장-8)과 똑같은 손짓을 합니다. 이 손짓에서도, 가르침 만이라도 전하여 두는 것, 모든 나라까지 구제하는 것은 어버이신님이지 우리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853년 고칸님은 교조님의 말씀에 따라서 나니와(현재 오사카)에 (모든나라까지에도) 어버이신님의 신명을 (가르침만이라도) 전하러 가셨습니다.

현재 오사카는 교회 수 및 신자 수에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지역이라고 합니다. 향내 풍기기(전도)라는 것은, 미리 어버이신님께서 활동해 주실 것을 고대하며, 용재가 손발이 되어서 수행해야 할 진정한 생활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둘 에 뜻깊은 마음이 계신것이니

아무도 말려서는 안될 것이다

 

먼저 누구의 “뜻깊은 마음”일까요. 우선 떠오는 것은 어버이신님의 뜻깊은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에 한마디의 말씀은 히노끼싱”이 어버이신님께서 히노끼싱에 대해 한마디 하시는 말씀이라면, 그것은 어버이신님의 뜻깊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누구도 말리거나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런데 “아무도 말려서는 안 된다.”라는 것에 대해서 친필에,

무엇이든 구제한줄기 멈추게 하면

신의 섭섭함이 몸의 장애로 나타난다 3-78

월일의 지시에 따라 한 일을

이것 멈추게 하면 제 몸도 멈춘다 9-50

라며 만약에 멈추게 한다면, ‘몸의 장애로 나타난다.’ 또는 ‘제 몸도 멈춘다.’라고 말씀하시고, 상당히 엄중하게 주의를 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러한 어버이신님의 어버이마음을 몰라서인지, 교조님께서 남기신 50년간의 모본에서 보면, 사람들이 거듭하여 구제한줄기의 길을 멈추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외부로부터의 최초의 반대 공격은 1862년경의 난마츠 마을의 이나리(쌀과 술의 신)를 모시는 사람이 자신의 세력권을 침범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금전을 요구해 왔습니다.

또 사람들이 신기한 구제를 바라며 교조님 곁으로 모여오게 됨으로써 주변의 신직자, 승려, 야마부시(수도자), 의사 등이 자신들에게 와야 할 신자, 환자들을 빼앗겼다고 도리어 원한을 품고, 차례차례로 교조님께 찾아와서 폭언을 일삼거나 트집을 부렸습니다. 그리고 1866년에는 승려와 수도자가 터전으로 찾아와서는 트집을 부리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다다미와 미닫이문을 찢고, 북을 찢는 등의 행패를 부리는 사건까지 발생하였습니다. 더군다나 당시 열심히 신앙하고 있던 신자의 집까지 난입해서 어패를 뽑아 버리고 폭력을 행사한 후, 발길을 후루이찌 대관소로 가서 허가 없이 신앙 활동을 하고 있다며 터전을 고발했습니다.

또한, 이때부터 하리가벳쇼 마을의 스케조와 같이 구제받은 사람 중에서 이설을 발설하거나 가르침을 저해하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메이지시대에 들어가면서 관헌에 의해 박해와 간섭이 심해지기 시작합니다만, 1874년 12월에는 정부(나라중교원:奈良中敎院)로부터 특히 열심히 신앙하는 신자 3명이 호출을 받아서 “천리왕님이란 신은 없다. 신을 모시려거든 큰 신사의 신을 모셔라. 일을 거들려거든 중교원의 일을 거들어라.『고본천리교교조전』 제6장 터전결정)”라고 신앙을 못 하도록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처럼 여러 번 구제한줄기의 길이 저지당했습니다만, 친필에

이곳에서 구제한줄기를 저지당해

어떻든 갚음을 하지 않고서는 못 배겨 6-114

이제까지는 무엇을 해도

저지하고 배반만을 일삼고 왔으므로 14-82

그런데도 아무것도 모르는 자녀에게

북을 저지당한 이 섭섭함을 보라 16-54

라고 일러주시는 것처럼, 사람들에 의한 제지가 얼마나 어버이신님께 유감스러움을 끼쳤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뜻깊은 마음’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뜻깊은 마음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예컨대 어떤 선배 선생님은 뜻깊은 마음이란, 이 길의 감사함을 알고, 어떠한 반대가 있어도 조금도 개의치 않고, “이 길을 흠모하며 나르기, 다하기의 진실한 마음”「모로이 마사이치(諸井政一:정문유운正文遺韻)」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악인연에 져서, 그러한 처음의 뜻깊은 마음(은혜보답의 마음)을 잊고 말아서, “끝내는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모른다며 의심하는 마음을 품고, 각자 제 쪽에서 멈추기 쉽다.”「모로이 마사이치(諸井政一:정문유운正文遺韻)」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서두의 신악가에서 신님 쪽에서 멈추게 하는 일은 없기 때문에, 각자 악인연에 져서 스스로 신앙의 길을 멈추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어버이신님의 구제한줄기의 길을 저지하는 것은, 반드시 정부나 세상 또는 가족이나 친구 등 외부로부터의 반대 공격뿐만 아니라, 자기 ‘신앙심의 부족함’ 또한 큰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셋 에 온갖 세상사람 마음속에는

전답을 마다할 사람은없다

 

넷 에 좋은전답 있으며는 세상사람들

누구나 가지고자 할것이겠지

 

다섯에 누구이든 사람은 같을것이니

나역시 그런전답 갖고싶거늘

 

먼저 “세상사람 마음속에는 전답을 마다할 사람은없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전답이란, 논을 말합니다. 논에서 벼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괭이를 이용해서 땅을 일구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그 때문인지 ‘역사’의 손은 도끼를 잡고 나무를 자르는 모양을 하는데 비해서 ‘전답’의 손은 괭이를 잡고 땅을 일구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전답의 중요성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모두가 자신의 논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같은 농민이라도 자영농과 소작농이 있었습니다.

소작농의 경우, 원래부터 토지대장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예속적인 농민이거나, 자영농에서 몰락한 사람, 또는 토지를 상속받지 못한 농민의 차남이나 삼남 등, 그 이유는 다양했던 것 같습니다.

어찌 되었든 논밭을 갖고 있지 않은 한, 대가를 지급하고 다른 사람의 토지를 빌려서 농사를 짓거나, 돈벌이하러 나가거나 날품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어서, 토지를 소유한 사람들보다 훨씬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것을 고려하여 생각해 보면, “전답을 마다할 사람은없다”라는 노래는 실로 당시 사람들의 심정을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삽화〕

야마토 지방의 괭이

그리고 이어서 “좋은전답 있으며는 세상사람들 누구나 가지고자 할것이겠지”를 다 함께 고려해 볼 때, 사람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잠재하고 있는 욕구를 몇 번이고 천천히 확인하면서 끌어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즉 같은 넓이의 논이라도 기름진 땅인지, 물(水原)이 가까운지, 또는 양지바른 곳인지에 따라서 수확량에 차이가 있으므로, 어차피 벼를 재배한다면 당연히 누구라도 좋은 조건의 땅(좋은 전답)을 가지고자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참고로, 쇼야시끼에 살았던 노인의 말에 따르면, 집터 주변의 논은 물이 말라 갈라진 논으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바로 말라 버려서 모내기할 때에는 계속 물을 대지 않으면 안 되는 땅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전답이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좋은 전답이 있다면, 당연히 누구라도 그것을 갖고자 할 것이라는 ‘전답’을 둘러싼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누구이든 사람은 같을것이니 나역시 그런전답 갖고싶거늘”이라는 노래로 농사를 짓는 사람에 국한하지 않고, 누구나가 ‘자기 일’로서 받아들이도록 재촉하시고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즉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전답은 ‘가게’에 해당할 것이며, 직장인이라면 그것을 ‘회사’로 바꾸어서 생각하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자신이 일할 장소를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고, 만약에 그것이 좋은 일자리라면, 당연히 누구나가 갖고자 생각할 것이며, 그런 ‘좋은 전답’을 한 사람 한 사람이 “나 역시 갖고 싶다”라는 마음을 끌어낸 다음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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