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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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월차제 신전강화

 

대물차물과 인연

 

최영철(문산교회장)

 

여러분 반갑습니다.

전석에서 상급회장님께서 세월이 빠르다고 하는데 진짜 세월이 참 빠릅니다. 1년이 지나 다시 3월이 되어 다시 감화자리에 서게 됐습니다. 어제도 비가 왔고 내일도 비가 온다는데 그사이에 바람이 좀 불긴 해도 좋은 날씨를 수호받아 즐겁게 근행을 올릴 수 있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오늘도 제가 맡은 시간에 최선을 다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박)

 

오늘은 대물차물과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어떠한 일도 모두 세상에 비치고 있다

 

일찍이 선배 선생님들은 ‘대물차물의 이야기를 천 번 듣고 천 번 깨우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가르침이며 일상생활에서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이 길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정을 생각해 볼 때, 그 가르침의 원점으로 돌아가서 기초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라고 깨닫습니다. 대물차물의 가르침 즉, ‘우리 몸은 빌린 것이고 우리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도 어버이신님께서 빌려주신 것이다. 마음 하나만이 나의 것이다. 마음의 자유를 받아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가 늘 듣고 배우는 가르침입니다.

지도말씀에

각자는 차물임을 안다. 차물임을 알아도, 차물의 리가 자유자재라는 걸 모르면 아무것도 안 된다. 차물인 몸에 조금 표시가 나타나면 참으로 단노하도록. 그것을 어쭙잖은 것이라고 인간 생각으로 하면 신의 뜻을 저버리게 되는 거야. (1887. 10. 12)

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버이신님께서 빌려주신 육체와 혜택을 우리는 즐겁게 누리면서 차물의 리를 잘 분간해서 깨달아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님께서는 여덟가지 티끌을 가르쳐주시고 삶에 방해가 되는 마음 씀씀이, 여덟가지 티끌을 자신도 자제하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쌓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일러주셨습니다. 그것이 곧 인연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알게 모르게 써 온 이 마음씨 덕에 모든 운명이 엇갈리고 마는 것입니다.

지도말씀에

몸은 대물이야 차물이야. 마음 그대로 모두 세상에 비치고 있다. 세상에 몇 번이나 환생할지라도 마음 그대로 모두 비치고 있다. 각자 저런 몸 같으면 하고 생각해서, 단노하는 마음을 정하라. 어떠한 일도 모두 세상에 비치고 있다. 아무리 보배가 있어도 몸이 병들면 그처럼 부자유한 것은 없을 것이다. 자유자재란 마음에 있다. 이 리를 잘 깨달아라. (1988. 1. 8)

인간은 모두 신의 대물. 어떤 리도 일러줄 것이니 분간해 들어라. 마음의 정성이 자유자재라는 것을. 자유자재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정성스런 마음에 있는 거야. 몸은 신의 대물, 마음은 제 것, 마음에 따라 몸을 빌려주는 리를 분간하라. (1888. 2. 15)

우리들이 살아가며 좋은 씨앗이든 안 좋은 씨앗이든 한 번 뿌려지면 세상에 몇 번을 환생할지라도 우리 몸에 그대로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예사롭지 않게 나도 모르는 사이 뿌려진 씨앗일지라도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도 모두 세상에 비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버이신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며 마음 씀에 따라 몸을 빌려주시는 리를 잘 분간하라고 하셨습니다.

 

인연

 

우리 인간들의 몸은 어버이신님으로부터의 차물이며 마음 하나가 나의 리입니다. 나의 리인 마음 하나로 인간들은 여러 길로 마음을 쓰면서 걸어왔습니다. 과거는 결코 단순히 그냥 지나가 버린 시간이 절대 아닙니다. 과거에 뿌린 씨앗 즉 마음가짐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싹트게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곧 인연으로써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간은 1대로써 끝난 것이 아니고 몇 번이고 환생을 거듭하면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연이라 하는 것은 금생뿐만 아니라 전생에서의 인연도 있습니다. 금생의 기억밖에 할 수 없는 우리에게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그 인연에 따른 생활이 현재의 자신들에게 주어진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나타나는 리를 보고 조용히 자신의 인연을 자각하고 전생에 어떠한 마음 씀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며 그것을 반성하는 하나의 실마리로 삼으라고 어버이신님께서는 우리에게 인연과 사정이라는 것을 보여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지도말씀에

인연이라 해도 모르겠지. 이 세상은 모두 거울, 인간은 모두 몇 번이나 환생하더라도 마음 그대로 모두 몸에 비치고 있으므로 잘 분간하라. 고생 위에 더한 고생, 부자유 위에 더한 부자유도 있다. 대저 부부 사이에 자식이 없는 것도 잘 분간하라. 인연이란 것을. (1880. 2. 15)

라고 가르쳐주셨듯이 인연이라고 해도 잘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세계에 비추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잘 깨닫도록 해다오. 모두 각자의 마음을 비추고 있으므로 자신의 인연을 깨달아주기 바란다. 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에는 고생 위에 고생, 부자유함 위에 더 부자유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부 사이에 자식이 생기지 않는 것도 인연이라 하시면서 우리에게 인연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인연에는 나쁜 인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인연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티끌의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을 스스로 깨달아 털어내야만 됩니다. 그대로 내버려 두게 되면 냄비 바닥에 눌어붙듯이 들러붙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좀처럼 제거할 수 없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나쁜 인연입니다.

그러나 지도말씀에

자아 인연의 사정 서로 도웁기, 서로 도웁기다, 세상에서 보고 과연 그렇구나 저것이야말로, 하는 마음을 각자 갖는다면 나날이 모두 받아들인다.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다. 속히 선명하게 소원대로 다스려진다. 소원대로 다스려지는 거야. (1890. 5. 6)

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인연이란 인간을 창조해주신 어버이신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괴롭히고 고생시키기 위해 나타내 보여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나타내 보여주시는 모습을 통해 조금이라도 마음을 다스리도록 하라는 신의 말씀입니다. 바꿔 말해보면 마음의 성인을 이룩하도록 깨우쳐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길을 신앙하는 우리들은 인연으로 인해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타내 보여주시는 모습을 통해 어버이의 의도를 깨닫고, 사정이 좋은 것이든 좋지 않은 것이든 모두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인 단노를 새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노는 전생 인연의 참회’(천리교교전, 제8장 마음성인의 길) 라고 가르쳐 주셨듯이 단노의 마음을 정함으로써 전생으로부터의 악인연도 좋은 인연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을 구제하겠다는 마음을 확실히 새기게 되면 “소원대로 다스려진다. 소원대로 다스려지는 거야.”라고 가르쳐 주셨듯이 인연으로 인해 나타나는 모습은 우리 스스로가 마음을 다스려 이른바 성인을 이루기 위한 거름이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길을 가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크고 작은 인연의 마디에 부닥치게 됩니다. 그러나 절망할 것은 없습니다. 자유자재란 마음에 있다고 하셨듯이 일상생활에 불쑥불쑥 나타나는 인연의 모습을 보고 단노하면 좋은 인연의 모습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길을 모르는 사람들은 안 좋은 사정이 나오면, ‘왜 나에게만 이런 나쁜 일이 생기는가?’ 하고 의문을 가지지만 우리들은 인연에 대해 알고 그 악인연을 털 방법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면서도 안 되는 것이 마음 씀씀이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타고나면서부터 가지고 옵니다. 그것이 인생을 좌우합니다. 쉽게 바꿀 수는 없지만, 이 길에는 차츰차츰 이라는 말과 같이 조금씩 끊어가는 것이지 신앙을 한다고 해서 당대에 다 끊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아주 큰 마디에 봉착했지만, 인연을 깨닫고 그 마디를 싹틔우며 걸어온 결과 오늘날과 같은 좋은 모습으로 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도말씀에

보잘것없는 조그마한 마디에서는 작은 싹이 트지만, 큰 마디에서는 굵고 튼튼한 싹이 튼다. 굵은 싹은 여간해서는 부러지지 않는다. (1888. 3. 8)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요즘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인생 살다 보니 별것 아니더군요. 눈 하나 감으면 저세상이요, 눈 뜨면 이 세상인 걸 인간의 힘으로는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것을.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고 배웠으면 또 얼마나 배웠다고 큰소리치며 살아갑니까?

사람들은 외모나 잘 생긴 것을 추구하고 돈이나 물질이나 능력이 많으면 그것이 세상을 잘 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무리 외모를 가꾸고 추구한다고 해도 나이가 들면 감출 수 있는 것이 자꾸만 없어지게 됩니다. 세월이 이렇게도 빠른데 젊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별일도 아닌 것을 네가 옳네, 내가 옳네 하며 지지고 볶고 마음을 상해가며 살았던 게 바보스럽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남편의 역할, 아버지의 역할, 교회장의 역할을 제대로 하며 후회 없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행복이란 마음먹기 나름이고 불행은 남과의 비교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순간 찾아온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늘 함께했던 교우 한 분이 그저께 우리들 곁을 영원히 떠났습니다. 어제 팔수를 부르고 왔습니다만, 지역에서 늘 함께했던 분입니다. 가고 싶어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한편 생각하면 인생은 참 허무하다고 느껴집니다. 어제 함께 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 내 곁에서 사라지곤 합니다.

여러분의 지금 이 순간순간도 소중한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 늦기 전에 이제는 인생을 즐기세요. 끝없이 오래 살 것처럼 행동하면 그것같이 어리석은 일이 없습니다. 살면서 없다고 칭얼대며 가는 것 보다 웃으면서 주위를 기쁘게 하며 가는 것이 좀 더 나은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 용재라면 늘 감사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함이 우러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고 봅니다. 어떠한 큰 마디가 와도 단노하며 즐겁게 헤쳐 갈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힘이란 덕의 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지 않으면 눈앞에 닥친 마디를 차고 넘기란 참 힘이 듭니다. 자칫 잘못하면 좌절하고 주저앉기 마련입니다. 신앙을 오래 했다고 해도 한순간에 좌절하고 주저앉아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어버이신님을 찾던 사람도 한순간에 돌아서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다소 불만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있는 그대로 자연의 순리에 따라서 마음과 몸을 쓰면서 사는 것이 천리에 따라 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무리한 욕심은 화를 부릅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신님의 말씀이 있듯이 덕과 행복이란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부러워 말고 살아가면서 틈틈이 덕을 쌓고 좋은 씨를 뿌리고 적금 들 듯이 습관적으로 신님의 마음에 맞는 마음 쓰기와 일을 해놓으면 언젠가 신님께서는 일립만배로 되돌려주시리라 믿습니다.

늘 받으려고 하는 입장보다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처지가 되면 더 좋겠죠. 신앙인이라면 더욱더 우리 모두 그런 입장이 되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두서없는 말씀입니다만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4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