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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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받기 127

 

가혹한 마음, 인자로운 마음 2

 

김위태(칠암교회장)

 

인간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절단하는 행동도 가혹한 행위입니다.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집단과의 관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 인간관계라고 국어사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순간적인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절단하는 경우가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형제간의 재산싸움으로 인한 이별, 부부간의 감정싸움으로 일어나는 이혼, 일시적 감정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 등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이별은 어쩔 수 없지만, 인간 생각을 참지 못하고 인간관계를 청산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행동이며 이로 인하여 주변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이해하고 참으면 결국에는 이해하고 참고 견딘 보람을 느낄 것입니다.

인간관계를 청산한 대부분의 사람이 그때 조금만 참고 견뎠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합니다.

제 친구 중에는 화를 참지 못하고 일찍 퇴직하였기 때문에 평생 건달 비슷하게 살면서 그때 화를 못 참고 퇴직한 것을 많이 후회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우리나라 신혼부부들이 이혼하는 사유 중에 가장 큰 원인은 혼수 문제라고 합니다. 약 50% 이상의 신혼부부들이 혼수 문제 때문에 이혼하고 있다고 하며 자녀가 있는 부부들이 이혼하는 것은 자녀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행동입니다.

양친으로부터 사랑과 애정으로 보호를 받으면서 자라나야 할 사춘기의 아이들이 부모가 이혼하면 계부나 계모 밑에서 자라나게 됩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비정상적으로 되기 때문에 인간성 형성에 많은 문제가 생기게 되며 간혹 이런 문제들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합니다.

젊은 부부들이 나이 많은 부모를 잘 돌보지 않고 그냥 물건 버리듯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이 많은 부모가 외출한 사이 이사를 가버려 부모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경우도 있고, 제주도나 하와이 등 외국에 데리고 가서 그냥 버리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길거리에 버린 자식이 외국에 입양되어 가서 양부모를 잘 만나 크게 성공한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약 200여 명의 어린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버림받는다고 합니다.

부부가 이혼하는 것이나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것이나,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것 등 모두가 가정이 파괴되는 과정이고 인간관계가 파괴되는 과정입니다.

더 크게 말하면 인간의 윤리성과 도덕성이 파괴되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며 우리들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고집을 강하게 부리는 옹고집도 가혹한 마음입니다.

「고설선집」 “부드러운 마음”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님의 일꾼이 되어 이 길을 걸어갈 때는 굳고 딱딱한 옹고집의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이런 굳고 딱딱한 옹고집의 마음으로 이 길을 걸어가면 자기 딴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결과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가혹한 일이 나타나고 만다.

이 길에서 말하는 굳고 딱딱한 마음이란

‘나는 이렇게 하겠다.

‘나는 저렇게 하겠다.

‘내가 하는 것이 옳다.’

하고 자기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하면서 무엇이든 끝까지 고집을 주장하면서 밀고 나가는 것이 옹고집의 건성을 말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 길에는 의약은 필요 없다는 이야기, 또 이길은 구제의 실천만 하면 되는 것이며 다른 것은 필요 없다는 옹고집으로 이길의 지도자들이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교회나 포교소의 책임자가 상급이나 산하 신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너무 옹고집으로 나아가면 교회나 포교소가 어려워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모두의 마음이 모일 때 까지 끝없이 의논하면서 기다린 연후 결정하고 추진해야 신님께서 수호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가정이나 사회의 모든 조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이든 잘되어지지 않는 일의 배후에는 대부분 참모의 의견을 무시하고 옹고집으로 모든 일을 처리한 것이 큰 원인이라고 합니다.

프랑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략하려고 준비할 때 대부분의 참모는 철새들이 일찍 움직이는 것은 올해 추위가 일찍 찾아온다는 증거이므로 올해 러시아 침공을 중단해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나폴레옹은 무시하고 전쟁을 일으켜 결국에는 혹독한 추위 때문에 참패했습니다.

 

자기만 좋으면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마음도 가혹한 마음입니다.

부인과 남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편과 부인 이외의 사람과 불륜을 저지르면 당사자들은 극도의 쾌감을 느끼겠지만, 당하는 남편과 부인은 이 사실을 알면 가혹한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옛날에 어머님께서 저를 보고 하시는 말씀이 남자나 여자가 불륜 행위를 하면 그 배우자들이 느끼는 고통의 강도는 남자나 여자나 똑같다고 하시면서 부인 이외의 여자와는 불륜 행위를 하면 절대로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난 연후 아무리 예쁜 여자를 보아도 여자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집안의 가장인 남편이 집안을 돌보지 않고 매일 자기가 좋아하는 술독에 빠져 산다든가, 도박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있는 것은 가족에게는 많은 고통을 안겨 주는 가혹한 행위입니다.

 

자기의 권리는 주장하지만 남의 권리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가혹한 마음입니다. 여름에 가뭄이 심할 때 상류 지역에 있는 농부들이 물을 독차지하면 하류에 있는 농부들에게는 가혹한 고통을 주게 됩니다.

물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서로 양보하여 골고루 사용하게 되면 평화로운 관습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물질문명의 발달로 주거환경이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아파트를 주거공간으로 사용하는 세대들이 늘어나면서 층간 소음문제로 많은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신의 위층 사람이 소음을 일으키면 자신의 가족들이 피해를 보게 되며 또 자신의 가족들이 소음을 일으키면 아래층 사람들의 가족들이 고통을 받는 사실을 알고 서로서로 조심하면서 살아가야 할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해 남을 모함하여 피해를 주는 것도 가혹한 행위입니다. 선거철이 되면 상대방 후보가 하지 않은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낙선시키는 것도 상대방에 대한 가혹한 행위가 되고 후일 허위 사실이 드러나면 큰 망신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거 때 상대방 후보의 문제점을 사실과 다르게 퍼뜨린 것이 당국의 수사로 허위로 확정되면 법적 처벌을 받는 괴로운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기업들 간에 경쟁이 심해지면 상대방 상품의 약점을 허위로 발표한 것 때문에 당국의 수사를 받게 되는 경우도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지만, 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생존을 위한 경쟁에서 낙오되면 견딜 수가 없게 되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경쟁을 하고 또 내부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치열한 연구와 자기 성찰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들은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체면을 손상했다고 남을 원망하는 것도 가혹한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누구보다도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상대방이 자신을 대접하고자 할 때 고급 식당이나 고급 술집에서 초청해야 자신의 체면에 알맞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보통 서민들이 사용하는 식당이나 술집에 초청하면 자신의 체면에 먹칠했다고 하면서 화를 내는 경우도 있고, 초청한 사람에게 망신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어떤 명문가 집안의 사람들은 자신의 집안이나 자신의 체면에 알맞은 직장을 구하려고 하다가 직장을 구하는 기회를 놓쳐 평생 건달로 살아가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어릴 때 친구들이 지나가다가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을 보고 그 사람의 흉내를 내면서 걸었더니 장애인이 분노하면서 친구들을 혼내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 자신의 모습을 따라 하는 아이들 때문에 자신의 체면이 많이 손상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가혹한 행동입니다.

교회나 일반 사회조직 내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폭언이나 폭력을 쓰는 경우도 있으며 또 아랫사람이 윗사람에 대한 거짓 정보를 만들어서 퍼뜨리면 윗사람은 많은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터전에서 교조님의 뜻을 무시하다가 이즈쓰씨가 복통을 일으켜 쓰러진 경우가 있습니다. 1885년 3월 7일 교회 창립 사무소에서 신노스케님 등 여러 사람이 모여 회의를 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후지무라 등이 회장과 간사의 선출을 투표로 할 것인가의 여부와 월급 제도의 채택 등을 회의 안건으로 제출하였습니다.

이때 의논이 구구하여 쉽사리 결정을 못 하고 있는데, 이즈쓰씨가 심한 복통을 일으키면서 쓰러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교조님께 여쭈어본즉

“자아 자아, 지금의 진주는 가느다란 거야. 그러나 살을 붙이면 얼마나 훌륭하게 될지 모르는 거야.”

라는 지도말씀을 듣고 모두가 회장과 간사의 선출 그리고 월급제 문제를 다루는 것은 신님의 뜻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교조님께서는 신노스케님을 이길의 진주로 생각하고 있는데 진주를 투표로 결정하는 것은 교조님의 마음을 괴롭힌 것이기 때문에 이즈쓰씨를 쓰러뜨려 교조님의 마음을 알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길의 신자나 용재들이 교조님의 마음을 괴롭히는 말과 행동을 하면 큰 고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직장에 있을 때 아랫사람으로부터 봉변을 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으로부터 봉변을 당했을 때는 너무나 참담한 것입니다. 그러나 봉변당한 일을 크게 확대하면 더 큰 망신을 당하게 됩니다. 그냥 있어야 조용히 해결됩니다.

윗사람에게 봉변을 준 사람의 마음도 오랫동안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