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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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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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83

 

너나 잘 해!

 

박지수

 

1,305일째 올인하고 있는 천리향에서는 백일마다 전도작정대회가 열린다. 지난 100일의 활동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실천과 마음을 점검하고, 현재 위치를 확인한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 새로운 작정으로 마음을 다지며 나아가고 있다.

작정대회 시즌은 대략 열흘에 걸쳐, 6~ 7군데 지역에서 열린다. 공동 리더들은 자신들의 형편에 따라 참가할 수 있는 지역에 참가해서 그곳 용재들과 교류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함께 포교활동을 전개한다. 그것이 벌써 제14차까지 열렸다.

어떤 일이든지 시간이 지나다 보면 처음 작정한 마음이 해이해지면서 정체되기 십상이다. 나날이 전도활동을 하는 것도 그렇다. 교조130년제를 향해 각자 최선을 다해서 활동해 오다가, 130년제가 지나니 다들 마음을 탁 놓아버린 듯하였다. 우리들의 활동도 상당한 슬럼프에 빠진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너무 열심히 했던 탓인지 모두 쉬고 싶어 하는 듯해서 안타까웠다. 온라인 밴드에는 전도내용, 신앙 내용만 올리도록 정하였기 때문에 각자 활동하지 않으니 올라오는 내용이 확 줄어들었다. 그동안 활기차고, 즐겁게 용솟음치던 밴드 분위기는 어느 순간부터 침울해지고, 활기가 없어졌다.

처음에 작정하였던, 포교구제에 대한 열정들이 무뎌지고, 흥미와 신선함이 퇴색하여 조금씩 활동을 멈추거나 게을리하고 있었다. 몇몇 분들과 우리들이야 10,000일(만일)을 작정했기에 어쨌든 전도활동을 하지만, 그동안 애써 활동해 오던 이들이 주저앉아 쉬고 있었다. 맥 빠진 전도활동과 활기를 잃은 밴드를 보면서 울적하고 비관적인 마음에 서글프고, 우울하였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교조130년제도 지나고 제7차 백일작정대회 시즌을 시작하며 신님께 기원을 드렸다.


“어버이신님, 저희 활동이 보시다시피 우울한 상태, 정체된 분위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모두가 용솟음치게 할 수 있을지 지혜를 주시고 잘 이끌어 주십시오.” 했더니 바로 화살처럼 날아오는 답!
"네가 용솟음치면 된다!"였다.
순간 움찔 놀랐다. 이렇게 기다렸다는 듯이 날아오는 대답은 분명 신님께서 우울한 내 마음을 쭉 지켜보고 계셨다는 증거였다.

“남이 문제가 아니다. 네 마음이 문제지 않느냐. 왜 네 마음을 보지 않고 남을 보느냐? 네가 먼저 용솟음치면 남들도 용솟음친다.” 하시는 것이었다.

‘그렇구나. 이 길은 교조님 한 분에서 비롯된 것이듯이 모든 것은 내 마음에 있다. 이렇게나 간단한 답을!!! 갑자기 어두운 동굴에 햇살이 비취듯이 마음이 환하게 밝아진다. 먼저 내 마음이 용솟음치면 아무것도 걱정할 것도, 주저할 것도 없다. 그래, 그래, 내 마음부터 먼저 용솟음치게 하자. 그러면 신님께서 듭시어 그 모든  지혜를 주시고 시시때때로 적절하게 이끌어주실 것이다. 완전히 의지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자. 나는 어버이신님께 완전히 의지하고 다만 용솟음치면 된다!!!’

바르게 깨달으면 한순간에 마음이 환하게 밝아진다. 웃음이 피어난다. 머리와 마음이 상쾌하면서 시원해진다. 간절히 원하며 사심 없이 하는 기도에는 어버이신님은 언제나 즉답을 해 주시는 것 같다. 이런 어버이신님을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으랴.

그렇게 제7차 백일작정대회를 기점으로 다시 내 마음이 되살아나고 용솟음치기 시작하였다. 어버이신님께서 응답으로 알려 주신 것처럼 다른 이들도 다시 열정과 용기를 가지고 포교구제에 나서 주었다.


이제는 제14차 백일작정대회 시즌도 끝났다. 그런데 작정은 하였지만 실천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몇몇 사람이 있어서 화도 나고, 애가 탔다. 말이나 하지 말지, 말로는 온갖 것을 다할 듯하면서 정작 행동을 하지 않는 이들을 보면서 기가 막히고 답답하고 속상하였다. 다 같이 노력하자고 해놓고는 움직이지 않으면 어쩌란 말인가. 말만 해서는 아무것도 되어오는 것이 없는 데도 그러고 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용이 많이 쓰여서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언제나처럼 어버이신님께 기원한다.
“어버이신님, 지금 상황 보고 계시죠? 저렇게 안 움직이는 분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막막한 심정으로 여쭈니
“너나 잘 해!” 하신다. 나도 모르게

“엥? 신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몸살이 날 정도로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요? 그런 말씀 억울해요~” 반문하였다. 그러나 어버이신님은

“정말 그러냐?”고 물으셨다.

“정말이냐고요?” 순간, 머릿속이 ‘띵~’하였다.

나는 내가 잘하고 있다고 확신하며 너무나 강하게 자신을 믿고 있었다.

그런데 어버이신님께서는

“왜, 남을 보니? 너만 즐겁게 실천하면 돼.”하신다.

‘그렇구나. 내가 즐겁게 나날이 실천하는 것이 관건이지. 왜 남을 보지? 남이야 제 사정도 있을 테고, 내가 즐겁게 실천하다 보면 그것이 비쳐서 저절로 남들도 움직일 텐데 왜 내가 걱정하고 난리지? 내 마음대로 다른 사람을 부리고 싶어 하는 것, 남더러 이래 줬으면 저래 줬으면 하고 기대하는 것, 이게 다 탐이지 않는가.’
뜻밖의 말씀에 한 대 맞은 듯 얼떨떨하지만, 다음 순간 머리가 확 밝아진다.
“아, 어버이신님, 고맙습니다. 저의 탐내는 마음과 교만을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신앙이란 늘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성인 시켜 가는 길이다. 나날이 쌓이는 티끌을 털어서 자기 마음을 먼저 맑히고, 세상을 밝혀 나가는 것, 이것이 신앙이 아닌가. 이것을 늘 마음에 새긴다 하면서도 어느새 타인을 향해 있는 시선을 깨달았다. ‘너나 잘 해!’라는 말씀을 듣고, 밖으로 향해 있던 시선을 자신에게 되돌린다.

오래전, 포교 초창기에 상급교회 상단에서 저녁 근행을 올릴 때였다. 현종을 치며 근행을 올리던 중에 옆에 제금을 맡은 어떤 선생님이 자꾸 제금을 틀리셨다. 작은 포교소의 소장님이셔서 평소에 늘 박자목만 치시는 듯, 제금을 박자목 리듬으로 치고 계셨다. 근행악기가 맞지 않으니 자꾸 신경이 쓰이고 ‘제금을 틀리게 치네. 어려운 것도 아닌데....... 아유, 옆에서 틀리니 정신이 없네.’ 싶었다. 그렇게 틀린 것에 신경 쓰다 보니 어느 순간 나도 현종을 틀리게 치고 말았다. 순간, 깜짝 놀라 진땀을 흘리며 정신을 차렸다. 남의 잘못에 신경 쓰다 보니 내가 흐트러지고, 잘못하게 되는 일을 당한 것이다. 이유가 어떻든 간에 저분도, 나도 틀린 것이다. 이런 일은 누구나 다 한두 번 경험하게 되는 일이다. 그때부터 다시는 누가 틀리더라도, 그에 아랑곳없이 나라도 제대로 하려고 노력하였다.

남 탓을 하고 있다는 것은 역시 내 마음이 흐려져 있다는 반증인데도 그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자신의 교만과 어리석음을 확인하고 참회하였다. 어버이신님도 참 힘드시겠다. 이렇게 우매하여 알다가도 어느새 잊어버리고 또 티끌을 지으니 말이다. 항상 지켜보고 깨우쳐 주시는 어버이신님이 곁에 계신다는 것을 느끼니 정말로 고맙고 감사하면서도 얼마나 죄송한지 모르겠다. 이렇게 마음성인이 더딘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기막히다.

‘너나 잘 해!’ 하시는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