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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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이야기

잠깐 이야기

 

개와 사람의 차이

 

이상봉(고성교회장)

 

이 길에서는 ‘인간의 몸은 어버이신님께서 빌려주신 것이고 마음 하나가 나의 것이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얼핏 이것만 보고 생각해보면 ‘사람만이 마음을 가지고 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17세기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동물에게는 영혼도 마음도 없다. 영혼과 마음은 오로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동물에게도 마음이 있다. 단지 지각하는 능력의 차이일 뿐이다.’라고 얘기합니다. 심지어 식물에도 마음이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교조님께서는 “동물에서 사람으로 환생을 할 때 그 마지막 단계는 개(犬)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람하고도 가장 가깝고 친한 존재라고 생각됩니다. 개를 많이 키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애완견이라는 용어를 썼고 요즘에는 함께 산다는 의미로 반려견이라는 말도 씁니다. 개를 애지중지하면서 키우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개가 사람을 물어 죽인 일이 있어서 개에게 입마개를 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일었던 적도 있습니다.

개에 대해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라로는 미국을 들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사람을 물어 죽이면 그 개는 무조건 안락사를 시키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사람을 한 번 문 개는 계속 사람을 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걸 아예 법으로 정해놓은 겁니다. 또 개가 살 수 있는 아파트와 개가 살 수 없는 아파트가 따로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가 개가 살 수 없는 아파트라고 판단할지 모르지만, 개가 살 수 없는 아파트는 개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는 아파트를 말하는 겁니다. 개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 있는 환경의 아파트인 겁니다. 정말로 개를 소중히 하는 나라입니다. 개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나라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은 개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동물입니다. 무리를 지어서 사회생활을 하는 동물입니다.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무리를 지으면 그 안에 서열이 필요하게 됩니다. 개가 인간 가족과 함께 살고 있어도 개 나름대로 그 안에서 자신의 서열을 정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당연히 개가 가족 중에 서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 개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가족 중에서 1번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자기가 그 집에서 사람보다 위에 있다고 판단하는 겁니다. 낯선 사람을 보고 짖을 때 주인이 그만 짖으라고 명령해도 계속 짖게 되는 경우가 개가 집안에서 서열이 더 높다고 판단하고 있는 경우라고 합니다. 자기의 서열이 1번이라고 생각하니까 그 밑에 있는 인간이 자기에게 명령을 해도 듣지 않는 겁니다. 그런 개가 낯선 사람을 보고 짖고, 결국에는 물게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런 건 서열교육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개를 아무리 소중히 생각하는 미국이라도 사람 밑에 개가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개는 절대로 사람의 위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겁니다. 개는 개같이 살아야 하고, 사람은 사람같이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무리 중에 1번의 서열에 존재하는 개는 스트레스를 엄청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그 밑의 무리를 모두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입니다. 이런 사회성이 인간과 같이 사는 개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합니다. 집안에서 서열 1위인 가장이 되면 식솔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그런 스트레스가 가정폭력의 형태로 이어지는 경우도 생기게 됩니다. 이런 걸 보면 사회적인 동물로서의 개와 사람은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개에게 서열교육을 확실히 해서 사람의 아래에 개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면 인간에게 복종하게 되어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되는 겁니다.

물론 사람은 개와 달리 훨씬 복잡한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동물로서의 체계는 같다고 합니다. 단지 사람이 개보다 나은 것은 이성으로서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겁니다. 천리교의 용어로 말하면 ‘마음작정’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개의 경우는 마음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음작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그런 걸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관계에 있어서 신앙하는 것, 신한줄기의 마음작정을 하는 것 등 사회적인 통념과 반대로 갈 수도 있게 되는 겁니다. 천리교 신앙은 마음작정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게 없으면 사회통념대로 흘러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가 이렇게 하니까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하는 식으로 무리의 관계대로 흘러가는 겁니다. 그런 걸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마음작정입니다.

개도 인간과 같이 정신이상이 오고 우울증도 온답니다. 마음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짐 때문에 오는 겁니다. 사람도 이와 비슷합니다.

사람의 관계를 잘 살펴서 잘 다스려야 합니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나도 즐겁고 만족하고, 상대방도 즐겁고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버이신님께서 바라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기만 즐겁고 만족하고, 상대방은 불쾌하고 부족의 마음을 쌓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가 생기면 사람이 짐승보다 못하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겁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은 함께 더불어서 즐겁게 사는 데 있는 겁니다.

 

 

* 매달 월차제 전날(19일) 저녁 근행 후 교회장님께서는 ‘잠깐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이번 12월 19일 저녁 분을 정리해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