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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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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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제5장(7수~10수)

 

일곱에 어쨌든 고생은 안시킬테다

도움 한줄기의 여기이곳은

하나에 널따란 이세상의 가운데라서

도와주는 곳들이야 더러있겠지

둘 에 신기로운 도움은 이곳이로다

출산도 마마병도 건져주리라

셋 에 청수와 신님과는 같은이치야

마음속의 더러움을 씻어주리라

넷 에 사욕이 없는자는 없을것이나

신님의 앞에서는 사욕이없다

다섯에 오래오래 신앙을 하였더라도

즐거움 만으로서 가득해야지

여섯에 가혹한 마음을랑 털어버리고

인자로운 마음으로 되어오너라

 

여기서 월일·어버이신님께서는, 온세상 인간들을 구제하기 위해 나타나신 바로 “이곳”에서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고생은 시키지 않겠다고 하시며, 만가지 구제를 힘차게 맡아주시고 있습니다.

친필에도,

어떤 구제를 하는 것도 진실한

어버이가 있으니 모두 맡는다 7-101

라고 일러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신악가의 말씀 그대로, 월일의 현신으로 정해지신 교조님께서는 집터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곡식, 의복, 금전 등을 베푸시고, 순산허락과 마마의 수호부를 전해 주시는 등, 당시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던 것들을 차례차례로 구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위에서 손을 내미는 그러한 방법이 아니라, 평소에 상대의 입장에서 낮은 마음과 상냥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의 고생을 구제해 주셨던 것입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대목은, 교조님께서는 어려운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어려움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내일 먹을 쌀이 없을 만큼의 극빈 속에서도 “밥을 줄이고 옷을 벗어 가난한 사람에게 주시는 것이 예사였다.(『고본천리교교조전』 제3장 행적 )” 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참으로 “무엇이든”(내 몸, 내 집은 어떻게 되어도)이라는 정신으로 구제한줄기의 길을 걸으셨던 것입니다.

이 “모본”을 따라가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고생하지 않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언제까지나 교조님의 어버이마음에만 의지한 채 자신의 고생, 부자유에 대해 구제받기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교조님의 어버이마음을 알고 조금이라도 그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하면서 고생, 부자유스러운 사람을 구제하는 가운데 진실로 좋아지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지도말씀에,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어버이의 리로서 한다면, 어떠한 일도 고생하려고 해도 고생은 하지 않는다. (1890. 12. 31)

라고 깨우쳐 주고 계십니다.

1876년 교리에 감명을 받아서 입신한 이타쿠라 쓰치사부로(板倉槌三郞, 당시 17세)에게 어떤 사람이 “선생님은 몇 번이나 경찰서에서 고초를 겪으셨는데도 신앙을 잘 지켜오셨군요.”라고 말하자, 쓰치사부로는 “내가 집터에 세 번째 돌아왔을 때, 경관 세 사람에게 붙들려 단바이치 분서에 유치되었지. 그때 같이 유치된 사람과 신앙을 그만두자고 밤새 의논을 했지만, 한 번만 더 교조님을 만나 뵌 다음에 그만두자는 생각에서 집터로 되돌아왔어. 그때 교조님께서는

‘어젯밤에는 수고가 많았구나.’

라고 자상하고 인자롭게 위로해 주셨어. 나는 그 한마디 말씀에, 오히려 지금부터는 몇 번이라도 고초를 더 겪자는 마음이 되더구먼. (『고본천리교교조전일화편』56 어젯밤에는 수고가 많았구나 )”

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어버이의 마음을 느끼며 “고생, 수고”의 의미가 바뀌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여덟에 터전에 한정된 것 아닌것이니

모든나라 까지에도 도와가리라

아홉에 여기는 이세상의 근본의터전

진기한 이곳이 나타났도다

 

이 신악가가 만들어진 1867년 당시 참배자에 대해 기록한 “어신전명기장(御神前名記帳)을 살펴보면, 연인원 2천 명 이상의 사람이 여러 곳의 마을에서 터전에 참배를 왔습니다. 어디에서 참배하러 왔는지 살펴보면, 야마시로(山城), 가와치(河內), 현재의 도쿠시마(德島)현의 지명도 몇 군데 보이지만, 거의 야마토(大和 :현 나라현)의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 나라현 중에서도 전 지역이 아니라, 북쪽으로는 현재 나라시 한야지(般若寺), 동쪽으로는 우다(宇陀)시 무로우타키타니(室生滝谷), 서쪽으로는 이코마군(生駒郡) 산고초(山鄕町) 미나미바타(南畑), 그리고 남동으로는 요시노군 요시노죠 고나(吉野君吉野町小名)라는 지역인데, 멀어도 터전에서 30킬로 범위 내의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야지(般若寺)

 

미나미바타(南畑) 터전 타키타니(滝谷)

 

고나(小名)

 

그런데 『고본 천리교교조전』에,

“1870, 71, 72년에는 진기한 구제가 잇달아 나타나, 어버이신님의 가르침 을 야마토 지방뿐만 아니라 가와치, 셋쓰(攝津), 야마시로(山城), 이가(伊 賀) 등, 인근 각 지방으로도 널리 퍼졌다.”

(『고본 천리교교조전』 제6장 터전결정 )

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1870년 무렵에는 12장 손춤근행을 사람들이 올리게 됨에 따라서 신앙의 길도 터전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각 지역)까지 널리 퍼져 나갔던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아무리 이 길이 널리 펴져 나간다고 해도, 신기로운 구제를 받았던 것은, 당사자나 가족이 열 일 제쳐 두고 터전에 돌아오거나 터전을 향해서 3일 밤낮으로 기원을 하는 등, 어쨌든 터전에 마음을 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모든나라 까지에도 도와가리라”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진기한 장소인 으뜸인 터전이 나타났다는 것을 전하고 널리 알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여덟에 “도와가리라”와 아홉에 “나타났도다”의 손춤 동작이, 도는 손을 하며 발동작도 같은 것에서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으뜸인 터전은 말할 필요도 없이, 어버이신님·교조님을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 없으며, 사람이 터전으로 마음을 연결하고 교조님의 어버이마음을 느끼며 “나무 천리왕님이시여”라고 한줄기로 어버이신님께 의지했을 때, 신기한 구제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가와치(河內) 지방 가시와라(柏原) 마을의 야마모토 리사부로(山本利三郞)는 1870년 가을 21세 때, 마을 씨름판에서 씨름하다가 가슴을 다쳐 3년 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다. 구마(熊)라는 사람으로부터 신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 리하치(利八)가 대신으로 곧장 터전에 돌아오자, 교조님께서는

“이 집터는 인간을 창조한 곳이야. 안태본인 거야. 어떤 병이라도 구제받지 못하는 것은 없다. 빨리 아들을 데리고 오너라. 자네가 오기를 오늘일까, 내일일까 하고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어.”라고 고마운 말씀을 듣고는 그 말씀을 순직하게 받아들여서 평소라면 중병으로 안정을 취해야 할 것을 목숨을 걸고 야마모토 부자가 터전으로 돌아왔을 때, 교조님께서

“걱정할 것 없다. 이 집터에 평생 이바지하면 반드시 구제받게 되는 거야.” 라는 말씀을 하셨고, 따뜻한 어버이마음 넘치는 보살핌으로 없는 목숨을 구제받았던 것이다. (『고본 천리교교조전일화편』 33 「지역을 잇는 다리」 )

 

어떻든지 신앙을 할것같으면

교회를 이룩하여 볼것아닌가

 

“어떻든지 신앙을 할것같으면”의 뜻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신앙을 할 것 같으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1860년경부터 신기한 구제를 받은 사람 가운데서, 드디어 이 길을 걸으며 나중에 용재로서 열심히 신앙하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사람에 대해서 교조님께서는 거름수훈, 부채수훈을 전해 주심과 동시에 신앙의 목표로서 “어패”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에 사람들에게 “강(講)을 만들어라”(『고본 천리교교조전』 제7장 「마디에서 싹이 튼다」 )라고 서두르고 계십니다. 실제 강(講)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1864년에 신앙을 시작한 이즈시치죠(伊豆七条) 마을의 마스이 이사브로(桝井伊三郎)선생이 받은 어패를 보관한 상자에 “시치죠무라강중(七条村講中)”이라고 쓰여 있으며, 1867년 “어신전명기장”에 “야베무라강중(矢部村講中)”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면, 1865년부터 1868년 초기에 걸쳐서 자신들의 마을 이름을 붙인 강이 몇 군데 결성되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초창기의 야마토 지방의 강은 옛날부터 전해져 오던 관습인 “오히마치(お日待):농촌에서 무엇을 기원하는 뜻에서 부락민이 집회를 열고, 잔치를 벌이는 일”과 마찬가지로, 다달이 바꿔가며 당번 집에 모여 박자목과 북을 치면서 근행을 올리고 연회를 즐긴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윽고 신앙의 길이 터전뿐만 아니라, 모든 지역으로 널리 퍼져나감에 따라서 강(講)에 대해서도 조금씩 변화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1875년부터 가구라(神樂)강, 세이신(淸心)강 등 마을 이름이 아닌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강이 가와치(河內)나 오사카 쪽에서 생겼습니다. 또 강과 같은 신자모임이라도 신진조(真心組), 메이세이사(明誠社), 신도회(斯道会) 등과 같이 조, 사, 회 등의 명칭을 사용하는 곳도 생겼습니다.

더욱이 1872년에는 정부의 교무성이 그리스도교 대책으로서 강사 결성을 장려하고 있었다는 당시의 정책에 영향을 받아서, 강원(講元) 등 강의 책임자를 특정한 사람에게 운영을 맡기는 등 강의 조직도 대내외적으로 갖추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강」은 시대나 지역에 따라 그 명칭이나 형태에 차이는 있을지라도, 중요한 것은, 어떠한 경우이든 강을 결성함에서는 “어떻든지 신앙을 할것같으면”이라는 사람들의 신앙은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강」이 하나의 토대가 되어 교회로 발전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어떻든지 신앙을 할것같으면”이라는 것은 교회를 지탱하는 원동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든지 신앙을 할 것 같으면”이라고 하더라도, 당시 사람들은 아직 그렇게 돈독한 신앙심을 갖고 있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1864년 오야마토신사 사건이 일어나자 그때까지 열심히 신앙했던 사람조차 갑자기 집터에 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1867년 어신전명기장에 기록된 이름의 다수가 13년 후 1880년에 기록된 “덴린오강사명부(天輪王講社名簿)”에는 없습니다.

그런 가운데 1863년부터 사람들이 스스로 신앙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어떻든지”에서 박자목과 북이 연타를 치고, “던지는 손”을 하면서 좌우로 2보 전진하는 모습에서 자발적인 신앙심의 중요함을 느낍니다.

원래 신앙이란, 결코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들 각자가 자신의 마음으로 수호를 느끼고, 자신의 마음으로 가르침을 실천함으로써 신앙의 기쁨을 느끼며, 용솟음치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누구도 갑자기 자기 혼자만으로 신앙을 시작할 수는 없으며, 거기에는 인도하는 사람, 키우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서두에 나온 「일곱에」의 노래는, 그때까지 20여 년간에 걸친 교조님의 인도와 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자녀가 모르는 것이 아니야. 어버이의 가르침이 미치지 못한 거야. 어버이의 가르침이 구석구석까지 미친다면 올바르게 성인된 자녀의 모습을 보게 되겠지.” (『고본 천리교교조전일화편』 196 「자녀의 성인」 )

라며, 변함없는 어버이마음으로 키워 주셨기 때문에 “어떻든지 신앙을 할것같으면”이라는 사람이 생기게 되고, 강이 만들어져서 이윽고 교회가 생겨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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