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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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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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받기 123

 

자유자재 5

 

김위태(칠암교회장)

 

· 터전은 모든 것을 갖춘 곳입니다.

고본천리교교조전일화편 “하늘이 근본”에는 교조님께서 신사나 절 등 참배하는 곳은 손에 비유하면 손가락 하나하나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터전은 양손 손가락을 모두 갖춘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어버이신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세상의 모든 기운을 동원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만약에 십전의 수호 중 하나라도 빠졌으면 인간을 창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 터전은 언제나 살기 좋은 곳입니다.

고본천리교교조전일화편 145. “언제나 살기 좋은 곳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조님께서는

“쇼베 씨, 잘 찾아왔어. 언젠가는 이 집터에 와야 할 거야.”

라고 인자롭게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깊이 감격한 쇼베는 장사도 팽개치듯 하고 터전과 고베를 왕래하며 포교・구제에 힘썼다. 그러나 터전을 떠나면 웬일인지 몸이 개운치가 않았다. 그래서 여쭤 보니, 교조님께서는

“언제나 살기 좋은 곳에서 사는 게 좋을 거야.”

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쇼베는 어떻든 집터에서 살기로 굳게 결심했던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 진주님의 ‘즐거운 삶’에는 터전을 살기 좋은 이상적인 도시로 만드는 것이 꿈이라는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조 70년제를 제창할 때 복원의 결실을 마음성인의 모습으로 수호받고 싶다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고장 건설로 나타내려고 다짐했습니다.

여기에 살던 안 살던 이 길을 걷는자로서 본고장 터전에다 이상적인 즐거운 삶의 도시를 세울 꿈을 꾸었던 것입니다. 이런 꿈을 꾸었을 때는 물론 덴리시란 이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덴리시가 꿈이 아니라 현실로서 이 지상에 나타난 것입니다.

위 교조님 말씀과 진주님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터전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살기 좋은 곳을 만드는 것이 이 길을 걷는 많은 사람의 꿈이라는 것입니다.

 

· 터전은 순산허락을 하는 곳입니다.

이 길의 용어에는 순산허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는 이 순산근행때 감로대에 올렸던 특별한 어공을 순산허락의 어공으로써 내려주고 있는 곳입니다.

- 중 략 -

이 순산허락에는 임신6개월 이후에 임산부 자신이나 남편, 또는 그 시부모가 교회에서 작성한 원서를 가지고 상급교회를 거쳐 본고장에 돌아가면 존명하신 교조님이 계시는 집터에서 직접 받게 되는 것입니다.

순산허락을 받은 임산부들은 어공 세 봉지를 받게 되는데,

하나는 산모와 태아를 위하여 어공을 받아온 즉시 정성껏 기원한 후 먹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출산을 재촉하는 어공으로서 산모가 태기를 느낄 때 정성껏 기원을 한 후 안산을 위하여 먹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출산 후 산모의 건강회복을 위하여 정성껏 기원한 후 먹는 것입니다.

 

· 터전은 기뻐하는 곳입니다.

고본천리교교조전일화편 105. “여기는 기뻐하는 곳”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오랫동안 앓던 병을 구제받은 미사의 기쁨은 한층 더해, 기쁘다 못해 흐느끼기까지 했다. 그러자 교조님께서는

“왜 우는 거야?”

라고 말씀하셨다. 미사는 여전히 훌쩍이면서 “산(生) 신님을 뵙게 되니 고마워서, 고마워서 눈물이 쏟아집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교조님께서는

“터전은 우는 데가 아니야. 여기는 기뻐하는 곳이야.”

라고 말씀하셨다.

위 기록의 뜻은 터전은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근원이 되는 장소이기 때문에 울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터전은 사방팔방에서 감로대를 중심으로 참배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곳입니다.

1894.7.12 지도말씀은 마음성인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자유자재의 수호를 내려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하는 진실한 리와, 그때만의 리와, 어쨌든 표적을 보아야 하겠다는 리와, 리에 따라 줄 수도 안 줄 수도 있다. 자꾸만 되풀이 묻기 때문에 마음가짐을 깨우쳐 둔다. 해마다 사정이 거듭된다. 아직 아직 자유자재는 멀었다. 여기에도 조금, 저기에도 조금, 자유자재를 보이면 주변 사람들 모두 알게 된다. 결정을 내리기에는 아직 멀었다. 1894.7.12

 

위 지도말씀의 해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어떻게 해서라도 수호받기를 원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한 번 신님께 부탁이나 해보자며 그때만의 이익을 바라는 자도 있다.

무릇 원하는 대로의 수호는 너희들이 작정한 마음의 진실을 보고 신이 내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주고자 해도 주지 못할 경우가 있다. 이러한 점에 대해 너희들이 묻고 있으니, 그 마음가짐을 깨우쳐 주는 것이다. 해마다 이러한 사정에 대해 부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하는 대로 자유자재한 수호를 내려 주기에는 아직도 마음의 성인이 미흡하다.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신이 신기한 수호를 나타내면 주변 사람들도 모두 진기한 수호는 진실한 마음에만 주어진다는 것을 잘 알게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원하는 대로 곧 혜택을 받기에는 마음의 성인이란 점에서 아직 충분하지 못한 데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도말씀 연구 해설 참조)

위 지도말씀을 내린 배경은 각 지역의 교회에서 기우 근행을 올려야 하는 사정이 생겨 본부에 기우근행을 출원할 때 본부에서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신님께 여쭈어본 결과 내리신 지도말씀입니다.

위 해설에서 자유자재한 수호를 내려주기에는 아직도 마음성인이 미흡하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비가 내리게 하는 자유자재의 수호를 베풀기에는 아직도 마음성인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성인이 부족하다는 것은 어버이신님께서 바라시는 진실한 마음이 부족하고 또 어버이신님의 수호가 조그마한 것이라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고설선집 “밖으로 나오면 태양이” 편에는 인간의 마음이 티끌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면 신님으로부터 자유자재의 수호를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님이 인간에게 진실한 어버이가 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티끌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 티끌이 인간과 신님과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신님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이다.

티끌투성이의 인간은 「인간 마음」이라는 굴레 속에 갇혀 살고 있다. 이 「인간 마음」은 마치 빛이 없는 어두운 방안에 틀어박혀

‘날이 어둡다. 어둡다’

하는 것과 같다. 이 「인간 마음」에 사로잡혀 있으면 밖에서

‘날이 밝았으니 나오너라.’

하고 아무리 외쳐도 방안이 어두우면 아직까지 바깥세상이 어두운 듯이 생각해서 굳게 문고리를 걸어 놓고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 마음」이란 굴레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밝은 햇빛을 볼 수도 없고, 따뜻한 빛을 받을 수도 없어 고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생각」에 의하여 바깥세상과 차단되어 갇혀 있던 티끌투성이의 마음에서 빠져 나와 햇빛이 비치는 밖으로 나오면 신님의 자유자재의 수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끌투성이의 인간은 「인간 마음」보다 달리 좋은 것은 없는 듯이 생각하고 티끌을 놓지 않고 단단히 쥐고 있기 때문에 내 마음에 진보라는 것이 없는 것이다.

위 기록의 내용은 인간은 티끌투성인 인간 마음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신님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님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은 밝은 햇빛도 볼 수 없고, 따뜻한 빛을 받을 수도 없어 고생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티끌투성이의 마음에서 벗어나게 되면 신님의 소리를 듣게 되면서 신님의 자유자재한 수호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티끌투성이의 인간은 티끌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악인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