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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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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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79

 

지도말씀이 내게로 왔다

 

박지수

 

지난 9월 19일, 고성교회 기초교리강좌 강의는 내 차례였다. 강의 주제를 정할 때는 그때 그때 자신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을 택하게 된다. 교육부실장님이 주제를 물었을 때, 몇 가지 이유에서 ‘지도말씀!’이라고 해 버렸다.

 

그것은 지난 5-6월에 걸쳐 교회장자격검정강습, 우리가 흔히 ‘후기’라고 말해 왔던 교회본부의 검정강습을 다녀왔다. 두 번째로 청강을 한 셈인데 이 강습에서는 3원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배우게 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친필과 지도말씀을 많이 배우게 된다. 10년 전에 처음 이 강습을 받았을 때 정말 좋았다. 천리교에 대한 핵심을 가르쳐 주니 배우는 기쁨, 공부하는 즐거움이 아주 컸다. 이 교육을 받기 전에는 뭐가 뭔지 확실히 집히는 것이 없는 느낌으로 지냈는데 드디어 이길의 진수, 핵심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만족스럽고, 기쁘고 뿌듯했다. 그래서 앞으로 3년마다 한번씩 이 강습을 반복해서 받아야겠다고 작정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다행이 늦었지만 10년 만에 다시 다녀오는 수호를 이번에 받게 되었다. 역시 좋았다. 그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도 많이 깨우치고, 자신의 신앙도 되돌아보게 되었고, 교조님을 일상으로 느끼게 해 주는 시간들이었다.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강습과목 중에서 특히 지도말씀과 교회사를 좋아했다.

 

검정강습을 통해 지도말씀을 깊이 배울 기회가 생긴 것이 고맙고 기뻤다. 하지만 그렇게 배우는 지도말씀은 많지 않았다. 워낙 강습받는 시간이 절대 부족하니까. 그래서 혼자라도 공부를 좀 더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번 기초교리강좌 주제를 말해 달라기에 그냥 ‘지도말씀’이라고 말해 버렸다.

우리말로 지도말씀이 번역된 부분도 아주 적고, 그나마 우리들이 자주 읽고 있는 부분은 그 중에서도 극히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것이 성이 차지 않았던 나는 이번에 지도말씀을 제대로 공부해봐야겠다고 작심했다. 친필, 지도말씀, 신악가 3원전 가운데 제일 어렵고, 제일 방대하며, 공부할 기회와 관심이 제일 적었던 지도말씀이 이제야 마음을 끌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교회사를 배울 때 들은 것인데 교회본부의 모든 일들은 지도말씀의 지침에 따라 시행한다고 한다. 교회본부에서 행하는 모든 일에서는 지도말씀을 찾아서 그에 따른다는 것이다. 조금 놀랐다. 옛날에는 교조님, 본석님이 계셔서 바로 지도말씀을 여쭐 수 있었으니 무슨 문제든 신님 뜻에 맞게 처리해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본석님 이후에는 인간생각들이 많이 끼어들지 않았을까. 그래서 감히 ‘교회본부에서 하는 일들이 모두 신님 뜻에 맞는 것일까?’ 하고 생각한 적이 더러 있었다. 그런데 지도말씀에 그 모든 것의 지침이 다 나오기 때문에 거기에 근거해서 일을 처리한다는 것이다! 좀 놀랬지만 공부해 보니 과연, 그렇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우리가 원전이라고 부르는 ‘지도말씀’은 1887.1.4.~1907.6.9.일까지 20년 반 동안 내려주신 지도말씀이 실려 있다. 20년 반 동안 수시로, 그 모든 문제에 대해 신님께 행동의 지침이나 방향, 혹은 깨달음을 청해 들었으니 얼마나 많은 사안, 얼마나 많은 사정에 대해 여쭈었겠는가? 아마도 인간사, 세상사에 생길 수 있는 모든 일에 대해서 지도말씀을 내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리라. 너무나 사소한 것까지도 다 지도말씀으로 여쭈었다는데 예를 들면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기분이 좋지 않은데 왜 이렇습니까?” “이번 행사에 도시락을 몇 개나 할까요?”하는 이런 것까지도 여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일에 대한 지침이 지도말씀 안에 다 있는 것이 맞겠다고 믿어졌다. ‘아, 정말 든든하고 고마운 어버이신님, 교조님이시구나. 이길을 걸어서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살아서 우리를 이끌어주는 지침으로 지도말씀이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소중하게 다가왔고, 더 깊이 알고 싶다는 기분이 강해졌다.

 

그리고 지도말씀을 공부하게 된 동기가 또 하나 더 있다. 몇 년 전에 선인들의 신앙에 대해 강의를 준비하던 중 우리가 흔히 잘 아는 지도말씀이 어떤 배경과 상황에서 내려주신 것인가를 알게 된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그냥 좋은 말씀이구나 생각하였던 그 지도말씀의 배경을 알게 되자 커다란 전율과 감동으로 다가왔다. 놀라웠다. 알면 사랑한다더니... 그 때 받았던 감동이 지도말씀을 더 깊이 공부해봐야겠다는 동기유발로 무의식중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런 몇 가지 이유로 내 마음을 강하게 끈 지도말씀에 대해 이번 강의를 준비하면서 대강 정리한 일부를 다시 나누고자 한다.

 

지도말씀이란 모든 인간을 구제하려는 목적으로 밝히신 어버이신님의 계시적 지시말씀이고, 구제한줄기를 위하여 내리신 신언(神言)이다. 천리교 원전(原典) -천리교 교의의 근원 내지는 규범인 경전은 구체적으로는 어버이신님이 계시하신 친필, 신악가, 지도말씀이다. 이런 어버이신님의 계시는 교조님을 통해 내려진 것이다. 즉 어버이신님이 교조님을 현신으로 삼아 직접 이 세상에 나타나시어 전 인류에 대한 구제의 의지와 그 실현방법을 계시하신 것이다. 그리고 교조님이 몸소 행동으로 가르쳐주신 것은 모든 사람의 실천적 규범이 되는 모본이다.

지도말씀이란 넓은 의미로 교조님이 하신 모든 말씀을 가리킨다. 하지만 ‘원전’으로서 지도말씀이란 천리교 교회본부가 그 권위와 책임 하에 계시를 적어서 보존하고 있던 것을 편집한 전 7권, 6,331페이지로 된 책의 내용을 말한다. 그것은 1887. 1. 4 ~ 1907. 6. 9일까지 만 20년 반에 걸쳐 내리신 말씀이다.

이것은 1927년 10월에 1권이 나오고 계속 이어서 31년 6월 33권이 나왔다고 하는 데 2대 진주님께서 자료를 모으고, 감정하셨다고 한다. 이것이 뒷날 다시 전 7권으로 정리되어 나온 것이다.

이 지도말씀에는 교조님이 직접 하신 말씀은 1887년 초에 조금 있을 뿐이고, 그 외는 교조님의 리를 받아 어버이신님의 의도를 전한 본석님의 입을 통해 나온 말씀이다. 물론 교조님께서는 1838년 어버이신님의 현신이 되신 이래로, 교조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은 틀림없는 어버이신님의 지도말씀이기 때문에 그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원전화 되지 못한 것은 완전한 형태로 기록된 것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조님 재세 시에는 언제 각한말씀이 내릴지 몰랐으며 때로는 가을철 농사일이 한창 바쁠 때에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독실한 신자들은 그 말씀을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고 하던 일도 팽개치고 집터로 달려갔다는 것이다. 또 신상과 사정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교조님을 흠모하여 매일같이 집터로 찾아가서 고마운 지도말씀을 듣고 신기한 구제를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일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런데 그때 교조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그것을 진지하게 마음에 새기기는 했어도 바로 그 자리에서 적어 두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원전화되지는 못했다. 당시 이러한 교조님의 말씀은 입에서 입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져 사람들의 마음속에 생생하게 살아 지금도 신앙의 한없이 큰 양식이 되고 있다. 그 일부가 교조전일화편에 나오는 말씀들일 것이다.

 

교조님 제세 시와는 달리 원전으로서의 ‘지도말씀’이 된 대부분은 본석님의 입으로 나온 말씀이지만 존명의 교조님 말씀이고, 이것을 적어두는 게 매우 중요해졌다. 왜였을까? 각자 깨닫기 나름이겠지만 교조님께서 친필을 남기신 이유처럼 잊기 쉬운 사람들에게 잊지 않도록 애써 붓으로 남겨두게 하신 것 아닐까. 언젠가 본석님마저도 출직하고 나면 더 이상 지도말씀을 들을 수 없는 때가 올 테니까, 그때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 없도록 후대 사람들을 위해, 귀여운 자녀를 염려하셔서 적어 두게 하셨던 것이 아니겠는가. 지도말씀에는 오늘날 우리들이 나아가고 행해야 할 모든 일에 대해서 다 적혀 있다!

 

우리들이 지도말씀을 대할 때는 절대적인 신앙심을 갖고 어디까지나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주의를 촉구하신 지도말씀이 있다.

이제까지 헛된 지도말은 하지 않았다. -중략- 그러나 밖에 나타나 지도말을 하는 것은 존명하는 어버이, 교조의 리인데 이것은 이렇게 하고, 저것은 저렇게 하자면서 지도말을 흐리게 한다. 흐린 지도말은 소용없다. 1901.5.15

오늘까지 교조존명 교조가 나날이 들어가서 말한다, -중략- 나날이 말하는 것은 교조 재세시와 같은 것, 전과 같은 마음으로 지도말을 받지 않고 있다. 1901.5.25

 

돌이켜 보면 내가 지도말씀을 대하는 태도도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존명하신 교조님께서 본석님의 입을 빌어 내리신 말씀이란 것을 믿지 않았기에 친필, 신악가와는 달리 격이 좀 낮게 생각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지도말씀을 본석님이 내리신 것이라 여겨 은연중에 소홀히 대접했다. 물론 그게 아니라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지만 충분히 믿지 않았던 탓이다. 되돌아보면 어버이신님께 참으로 죄송하고도 어린 신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10년 후 교회장자격검정강습에서 다시 공부하고 나서는 새롭게 지도말씀을 대하게 되었다. 역시 충분히 납득하고 알아야 신앙도 조금 더 깊어지는 것 같다.

 

1895년5월22일 지도말씀의 해석에서는

각한말씀이란 실로 구제한줄기를 위한 한없는 어버이마음이 가득 차서, 마치 그것이 둑을 차고 넘쳐흐르듯 중요한 일을 적극적으로 깨우쳐 주신 말씀이다. 동시에 그것은 또 시순을 놓치지 않게 하기 위한 말씀이다. 즉 그것을 놓치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중요한 시기에 대한 어버이신님의 자애 넘치는 경고이다. 시순을 놓치지 않도록 배려해 주시는 한없는 어버이마음이다.

 

교조님 재세시에 이길의 선인들은 무슨 일만 있으면 교조님을 찾아 집터로 돌아오곤 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이나 괴로운 신상을 당하게 되면, 그야말로 자녀가 어버이에게 매달리듯 교조님 슬하에 모여들어 구제를 받았던 것이다, 이른바 지도말씀의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무슨 일만 생기면 집터로 돌아와 지도말씀을 청했던 것이다. 교회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는 물론, 개인의 신상이나 사정에 관한 사소한 문제까지도 일일이 지도말씀을 청했다. 이에 대해서 어버이신님은 사람들이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에 대해 각각 그 사정에 따라 자상한 지도말씀을 내리셨던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해서 지도말씀으로 밝히신 어버이신님의 의도를 깨달아가며 스스로 신앙을 키우고, 그 신의에 따름으로써 진기한 수호를 받았던 것이다. 따라서 지도말씀을 내리시는 그 자체에 어버이신님의 무한한 어버이마음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즉 어버이신님은 우리들의 신상, 사정을 통하여 마음의 성인을 촉구하시는 한편,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계시는 것이다. 참으로 지도말씀이야 말로 자상하신 어버이마음의 발로이다!
다시 지도말씀의 의의를 살펴보자면 구제한줄기를 위한 어버이마음으로 내려주신 것으로 참으로 지도말씀이야 말로 우리들이 구도의 길을 가는 데 있어 때에 따라 일에 따라 방향을 바로 잡아주는 다시없는 지침이며, 자칫하면 빗나가기 쉬운 우리들에게 가만히 손을 잡아 이끌어주시는 자애 넘치는 어버이의 손길에 비유할 수 있다.

(지도말씀 연구 (상) p5~11 참고, 부분 인용)

 

이번 지도말씀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동안 지도말씀을 얼마나 바로 알고 있는지, 얼마나 지켜 왔는지 새삼 반성하게 되었다. 자기의 경험이나 실천, 자기의 깨달음이 전부인 양 착각하면서 이길의 교리를 잘못 해석하는 오류를 많이 범하지 않았던가. 그런 오류를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서도 3원전 특히 그 동안 소홀히 했던 지도말씀을 더욱 가까이 해야겠다. 일에 따라, 시순에 따라, 상황에 따라서 언제나 곁에서 가만히 손 내밀어 이끌어주시는 존명의 교조님을 느끼면서 이길을 나날이 기쁘게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