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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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년10월]신앙의 힘 - 최정욱

2017.10.07 10:43

편집실 조회 수:103

9월 월차제 신전강화

 

신앙의 힘

 

최정욱(원남성교회장)

 

(4박)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이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 오랜만에 뵈니까 더 반갑습니다. 몸도 좀 안 좋았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감화를 잘 못 했기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인연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원남성 초대회장님께서 자갈치시장, 남포동, 국제시장 등에 노방전도를 가시면 어디를 가시건 마지막에 하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손 대대 복 받는 길”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어떠신지요? 신앙하셔서 모두 자손 대대로 복을 받으셨는지요?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2대, 3대로 내려가면서 크게는 복을 받지 못해도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초대보다는 그 자식이 좀 낫고, 또 그 자식은 거기보다 좀 더 낫고 하는 식으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로또복권 당첨되듯이 크게 횡재수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좋아지는 모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꾸준하게 열심히 하면 차츰 나아지는 것이 천연자연의 이치이고 어버이신님, 교조님의 수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 산하 어떤 교회는 이 길의 신앙을 이어가고 있어도 오히려 소난이 대난이 되어 거꾸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말은 이 길의 신앙만 한다고, 연한만 가고 1대, 2대로 이어서 대대로 세월만 간다고 해서 복 받고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초대부터 대를 이어갈수록 마음이 조금씩 바뀌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수양을 거듭함으로써 자신에게 미쳐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마음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인연이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인연이라는 것은 마음씨에서 오는 것입니다. 어떤 집안에 어떤 인연이 있다는 것은 그 집안 조상 대대로 그런 마음을 많이 써왔다는 겁니다. 그 인연이 안 나오게 하려면 그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신앙하면서 그 마음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리 오랜 세월에 걸쳐서 신앙해도 대대손손 복 받는 길은 없습니다. 오히려 더 심해질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신앙을 하고 있는데도 왜 이렇노?” 하십니다. 큰 마디나 큰 액운이 나와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길게 세월만 보냈을 뿐이지 마음씨를 전혀 바꾸지 않았다는 겁니다.

 

누가 나에게 맞춰주는가

 

저를 비롯하여 여기 계신 모든 분이 신앙을 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남을 위해 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결국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신앙입니다. 예를 들어서 부부는 가장 가까운 사이입니다. 하지만 가장 맞추기 어려운 것이 부부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부 사이에도 나와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언제까지나 “나한테 맞춰라, 당신은 왜 이런가? 왜 이렇게밖에 못하는가?”라고 하면 영원히 맞출 수 없는 겁니다.

저와 남편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여자지만 남자의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고, 저의 남편은 덩치도 크고 남자이지만 여자의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완전히 반대입니다. 기억력을 하나 예로 들면 저는 기억력이 별로 안 좋습니다. 그게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습니다. 지나고 나면 저는 금방 잊어버립니다. 제 남편은 20년 전의 일도 정확히 기억할 정도로 기억력이 좋습니다. 20년 전에 어떤 사람과 어디에서 만나서 어떤 대화를 나눴는데 그때 그 사람이 무슨 옷을 입었고 어떤 안경을 쓰고 어떤 얘기를 어떤 표정으로 얘기했는지까지 기억할 정도입니다. 그걸 두고 저에게

“이런 걸 당신은 왜 기억하지 못하나?”
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로 기억이 안 납니다. 가만히 생각해서 어렴풋이 그런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우리 남편은 정확히 기억합니다. 그런 거로

“당신은 그렇게 기억력이 없나.”
하면서 공격을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처지에서 보면 제 남편이 정상이 아닙니다. 그렇게 서로의 성격이 다른 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나쁜 것을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좋을 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것을 오래 기억하는 것은 좋지만, 나쁜 것을 오래 기억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걸 두고 누가 더 좋다 안 좋다고 말하기 전에 그만큼 다른 겁니다. 자기 기준으로 보면 상대가 모자라게 보이고 저로서 보면 ‘사람이 저렇게 꼼꼼해서 어떻게 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서로가 그렇게 부딪치고 싸우기도 많이 했습니다.

세월이 지나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남편의 기억력이 좋아서 고맙다.’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못하는 걸 상대가 해주니까 좋다는 생각으로 바뀐 겁니다. 내가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부분을 기억해내지 못할 때, 남편이 그걸 기억하고 말을 해줘서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자주 생깁니다. 그런 걸 갑갑하다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바꿔서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절로 이런 마음이 든 것이 아니라 제가 그렇게 마음을 고치려고 노력해서 그렇게 된 겁니다. 이전대로 생각하면 제 마음만 괴롭게 되니까 말이죠. 점점 바꾸려고 노력한 겁니다. ‘나하고 달라서 고맙다. 나하고 똑같으면 한 방향밖에 볼 수가 없을 텐데, 남편이 여기저기 사방팔방을 봐주니까 고맙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터전을 간다든지 해서 밖에서 움직일 때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다른 여자들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는 어디를 갈 때 앞만 보고 갑니다. 그냥 옆이 보이지 않고 앞만 보입니다.

예를 들어 공항에 도착해서 항공사 계산대에 발권을 하러 간다고 하면 그 목적지만 보이고 거기만 향해서 앞만 보고 가게 됩니다. 그렇게 가고 있을 때 옆에서 누가 인사를 해도 못 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그분들에게서 ‘원남성회장님은 내가 옆에 가서 인사를 해도 못 본 척하고 지나가는구나 무시하는구나.’ 하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제 입장은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저하고 사이가 아주 껄끄러운 사람일지라도 인사를 해서 안 받는 경우는 없습니다. 제가 못 보는 겁니다. 하지만 제 남편은 키가 커서 그런가? 사방팔방을 다 봅니다. 그런 남편이 저를 보면

“왜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가는가?”
하고 뭐라고 합니다.

“용재들이 많아서, 인사를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주위를 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가는가?”
하는 겁니다.

“그럼 그렇게 인사한 사람이 인사를 안 받아주면 얼마나 무안하겠나? 제발 주위를 둘러봐라.”
하고 말합니다. 그럼 저는

“할 일이 많아서 갈 곳만 봐야 하는데 할 일 없이 언제 주위를 빙빙 둘러보고 있는가? 빨리빨리 갈 곳을 향해서 가야지.”
라고 항변합니다. 하지만 살다 보니까 저는 그렇게 해도 남편이 옆에서 주위를 둘러봐 주고 저의 단점을 보완해주니까 ‘고맙게 생각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요즘에는 그런 데 가면 이제 옆을 둘러보려고 노력합니다.

이렇게 이 세상에는 부모, 형제, 자식, 부부간이라도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틀립니다. 내 속으로 난 자식이라고 해도 내 마음대로 되는 일도 없습니다. 나하고 맞을 수는 없습니다. 부부, 자식 간에도 맞추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스갯소리입니다만, 우리 아들이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고 올해 졸업반입니다. 졸업반이라 너무 바빠서 며칠에 한 번조차 통화할 시간도 없을 정도입니다. 아침 7시에 연구실에 가서 밤 10시까지 있다고 합니다. 밥 먹으러 잠시 나오는 시간 외에는 잠시도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제가 전화를 해서

“바쁘더라도 먹을 거는 잘 먹으면서 해라”
하고 얘기했는데, 몇 달 전에 얼굴을 잠시 봤는데 살이 5kg이나 빠져있을 정도로 일이 고단하고 바쁘답니다.

얼마 전에 통화했는데, 아들이

“엄마 지금 바쁘니까 빨리 끊어야합니다.”
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으니까 너무 섭섭했습니다. 딸 가진 부모는 이해를 못 할 겁니다. 아들만 키우는 부모들은 죽고 나서 제사는 잘 지내줄지 모르겠지만, 진짜 재미없습니다. 무뚝뚝하고 전화 통화도 제대로 안 되고 그렇게 재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도 바쁘니까 서로 그런 사소한 것에 메이고 할 시간도 없습니다. 하지만 남편과 다툼이 있었다든지 또 다른 이유로 마음이 울적할 때 아들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얼마 전에도 그런 이유로 전화를 했더니 첫 마디가

“바쁜데요.”
입니다.

“오랜만에 전화했는데 이야기 좀 할 수 없나?”
하니까 아주 성의 없는 목소리로

“그럼, 한번 해보세요.”
합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워놨는데 엄마 소중한 것도 모르고....’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속으로 ‘나도 너랑 전화하기 싫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엄마가 이 말 한마디는 하고 끊어야겠다.”
하니까 아들이

“뭔데요?”
합니다.

“덕담 한마디 할라고.”
하니까 아들이

“무슨 덕담이요?”
그래서 제가

“우리 아들은 너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 거야.”
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예? 정초도 아닌데 그런 덕담을 갑자기 왜 하세요?”
하고 놀랍니다.

“신문에 보니까 젊어서 아깝게 죽는 사람들 보니까 전부 효자더라.”
라고 했습니다.

“부모들에게 잘 하는 사람들이 안타깝게 죽는 걸 보면 전부 어린 나이에 죽더라. 그러니 너는 얼마나 오래 살겠노?”
라고 농담조로 했더니 아들이

“에이~ 엄마도 참”
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을 정도로 아들만 하나 키우다 보니 대화도 하고 싶을 때도 있는데, 섭섭한 마음이 들 때도 많습니다. 왜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살아보니까 부모와 자식 간에도 제 마음을 100%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저 자신도 저에게 마음이 들지 않을 때가 많은데, 내가 아닌 남인데 어떻게 자신에게 맞출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무조건 상대에게 맞추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용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신앙도 산하와 상급이 조화를 이루고 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 길의 산하, 상급은 피도 살도 하나 섞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렇게 혈연관계가 없는 산하 상급이 100% 서로 기분 좋게 가는 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 서로 양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좀 있다손 치더라도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상대를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설령 마음이 들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오죽하면 저렇게 하겠나?’ 하는 식으로 서로가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줄 수 있는 마음만 된다면 교회뿐만 아니라 나라 간에 전쟁도 없어질 것이고 아무런 불편도 없을 것입니다.

전쟁이다 테러다 하면서 난리가 나는 이유가 바로 “내가 옳다. 우리가 옳다. 너희는 틀렸다.” 하는 것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는 겁니다. 신앙하는 우리부터라도 어버이신님, 교조님의 도구로서 어떻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런 마음을 전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어버이신님, 교조님께서는 입이 없으니 말을 할 수가 없잖아요. 저를 비롯한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어버이신님, 교조님의 도구입니다. 어버이신님, 교조님을 대신해서 이런 말을 전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신앙하되 어떻든지 여기 와서 참배만 하고 가시는 분조차도 이런 말을 듣고 ‘좋은 말들이다.’ 하고 생각하고 문밖으로 나가면서 잊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루하루를 어떻든 마음이 조금씩 바뀔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바뀌어야 그 마음이 상대에게 비칩니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절대 상대의 마음에 비치지 않습니다. 신앙의 힘은 이런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무리 큰 어려움, 괴로움 속에서도 의지할 수 있는 데가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인연이 전생에 이런 마음을 많이 써왔나 보다. 상대가 이러는 것은 전생에 내가 이런 마음을 많이 써왔기 때문에 그대로 보여주시는 것이구나. 절대로 상대를 원망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마음을 먹게 되는 것이 신앙의 힘입니다.

신앙의 힘이 아니라면 내가 괴로움을 당하거나 슬픔을 느끼게 될 때 상대에게 보복하려 할 것입니다. ‘내가 당했으니까 너도 한번 당해봐라.’ 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신앙의 힘으로 단노를 하고 전생인연을 자각하게 되는 겁니다. 이 감사한 것을 우리만 알 것이 아니고 주위 사람들도 이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 수 있도록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어버이의 마음으로 그런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이 용재의 의무입니다.

 

올여름 날씨는 참 더웠습니다. 남편과 제가 얘기하기를 “올여름이 한 달만 더 길었어도 우리 모두 죽었을지 모르겠다.” 하는 말을 할 정도로 올여름의 폭염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딱 적당한 시기에 어버이신님, 교조님께서 더위를 물러가게 해주셔서 너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날씨를 맞게 된 것 같습니다. 요즘은 조석으로 아주 선선하고 점심때만 잠시 더운 정도입니다. 이런 환절기에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오곡이 무르익는 추수의 계절이 왔습니다. 가을에 추수한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좋은 씨든 나쁜 씨든 뿌려놓은 씨앗이 있어야 추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씨를 뿌릴 때의 모습을 보면 허리와 머리를 숙이고 낮은 마음으로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뒤로 젖혀서는 씨를 심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씨앗을 심을 때는 낮은 마음과 순직한 마음으로 씨를 심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씨를 심어야만 올가을이 아니더라도 내년, 후년에라도 추수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가을에 추수할 게 있으려면 봄에 좋은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좋은 마음의 씨앗을 많이 뿌리셔서 매년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4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