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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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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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받기 121

 

자유자재 3

 

김위태(칠암교회장)

 

고본 천리교교조전 제3장 “행적” 편에는 순산수호에 대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순산시험 그에 앞서 교조님 44세 때 임신 7개월째의 어느 날, 어버이신님으로부터

“오늘은 아무데도 가서는 안 돼.”

라는 말씀이 있었다. 그래서 그날은 종일 나가지 않고 집에 계셨는데, 밤이 되자

“자는 동안에 나온다 나와.”

라는 말씀이 있어, 그 준비를 하고 계시던 중 유산을 했는데, 이내 두통이 났다. 그러나 날이 새고 난 뒤 더러워진 빨래를 손수 물에 세 번 빨고, 끓는 물에 한 번 헹궈서 빨랫줄에 서너 개를 널자, 두통은 씻은 듯이 나았다.

당시, 자칫 잘못하면 생명마저 위험하다고 여기던 유산조차도, 오직 어버이신님께 의지하고만 있으면 조금도 걱정할 것이 없고, 산후에도 아무 염려할 것이 없다는 것을 먼저 몸소 시험함으로써 어버이신님의 자유자재한 수호를 증명하셨다.

1854년 교조님 57세 때, 오하루가 초산을 하러 집터에 돌아와 있었다. 그때 교조님께서는 “무엇이든 안에서부터 시험해 보일 거야.”

라고 말씀하시며 배에다 숨을 세 번 불고, 또 세 번을 쓰다듬어 주셨다. 이것이 순산허락의 시초이다.

그해 11월5일 출산 당일, 큰 지진이 있어서 산실의 뒷벽이 한 평 남짓 무너졌는데도, 오하루는 마음 편히 아주 수월하게 아들을 낳았다. 사람들은 순산허락을 받고 나면 조금도 걱정 할 것 없으니, 과연 고마운 일이라고 납득하게 되었다. 오하루가 24세 때로서 태어난 아기는 장남 가메조였다.

그 다음 날, 집터에 찾아온 동네 사람 시미즈 소스케의 부인 유키는, 오하루가 아무 탈 없이 일하는 것을 보고 신기한 수호라고 감탄하고는

“저도 출산할 때 원하면 그와 같은 수호를 받을 수 있습니까?” 라고 여쭈자,

교조님께서는

“마찬가지야.”

라고 말씀하셨다.

얼마 후, 유키는 임신하여 순산허락을 청했다. 교조님께서는 오하루에게 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세 번 숨을 불고, 세 번 배를 쓰다듬으시며

“인간생각은 일체 필요 없다. 어버이신님께 의지하여 안심하고 낳도록.”

하고 깨우치셨다. 유키는 순산허락을 받았으나, 교조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고 기할 것, 기댈 것 등 종래의 습관에 따르자, 산후의 열로 30일 가량 자리에 눕게 되었다. 그래서 교조님께 여쭈어 보니,

“의심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야.”

라고 말씀하셨다. 유키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과연 그렇구나.’ 하고 깊은 감명을 받아 진심으로 참회했다.

교조님께서는 그 갓난 아기를 맡아 돌보셨다. 유끼는 곧 완쾌됬다.

이듬해 임신하자, 유키는 “이번엔 절대 의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굳게 다짐하고, 다시 순산허락을 받았다. 그때는 교조님의 가르침을 잘 지켜서 오직 한마음으로 어버이신님께 의지한 결과, 신기하게도 쉽게 출산을 했고, 산후도 그 회복이 아주 순조로웠다. 이전부터 그런 사실을 알고 있던 동네 사람들 사이에 그 이야기가 오르내리고 근처까지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교조님께서 어버이신님의 현신임을 아직도 모르면서도,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은 겨우 느끼기 시작했다.

 

위의 기록은 교조님께서 몸소 체험하신 순산과 딸 오하루의 순산 소식을 듣고 찾아온 유키씨의 순산 내용이 상세히 기록된 것이며, 두 분의 순산으로 교조님께서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처음으로 쌀 너 홉을 가지고 사례 참배하러 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순산수호를 받으려는 산모들이 자연히 교조님께 많이 찾아오기 시작했으며, 중병으로 고생하는 사람까지 교조님의 도움을 요청함으로써 이 길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자유자재한 순산수호로 산모들을 구제하기 시작한 것이 이 길의 출발점이 된 것입니다.

저의 사촌 누님께서는 6.25 전쟁 전에 사천읍으로 시집을 가셨는데 초산을 하시다가 출직을 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처음 아기를 낳을 때 산모들이 출산의 고통 때문에 출직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누님의 남편은 박 씨였는데 누님이 출직한 후에도 처가댁에 몇 번 오신 것을 보았으며 힘들게 태어난 딸도 외가에 가끔 왔는데 그 가족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친필 8호 88수는 어버이신님께서는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도 자유자재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높은곳에 있는 자에게도

자유자재로 이야기해 주리라 8-88

위 친필 말씀의 뜻은 아무리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일지라도 어버이신은 아무 거리낌이나 망설임 없이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입니다. (친필 주석 참조)

교조님께서는 1874년 12월 23일 야마무라 고텐(엔쇼지)에서 정부관리와 말씀하신 내용이 고본 천리교교조전 “터전결정” 편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나오가 “어떠한 신이냐?”라고 묻자,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교조님께서­는 신비하고도 울려 퍼지는 듯한 목소리로

“어버이신에게는 온 세상 사람은 모두 다 자녀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구제하고 싶다.”

라고 말씀하셨다.

이나오는 “그대가 참으로 신일 것 같으면 내가 4, 5일간 다른 데 갔다 올 것이니, 그동안에 내 몸에 벌을 줘 봐라.”라고 말했다.

그 순간 교조님께서는

“물, 불, 바람이 모두 물러날 줄 알아라.”

라고 엄히 말씀하셨다.

 

교조님께서는 높은 자리에 있는 정부 관리에게도 자유자재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저는 어느 날 서울 신당동에 있는 교단 월차제에 어머님과 함께 참석했는데, 그 당시 교통이었던 원남성 최재한 초대회장님께서 나를 보더니 반갑게 손을 잡아 주시면서 “위태야, 나는 엊그제 청와대에 가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식사대접을 받았다.” 하시면서 자랑을 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자랑을 할 만도 했습니다. 그 당시 천리교 신자는 약 50만 명이 되었으니까, 최재한 회장님께서는 국가 통치차로부터 대우를 받게 되고 또 자유자재로 할 말은 다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의 용재나 신자들이 높은 사람들에게 교조님의 말씀을 전할 때는 반드시 교조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보다 같은 높이의 자리거나 높은 자리에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낮은 곳에서 위를 쳐다보면서 교조님의 말씀을 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친필 11호 22수는 어버이신님께서는 교조님의 입을 통해서 자유자재로 말씀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몸 안에 월일이 들어가서 자유자재로

말하고 있지만 깨닫지 못하겠지 11-22

위 친필말씀의 뜻은 어버이신이 교조님의 몸 안에 들어가서 자유자재로 말하고 있지만 모두는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친필 주석 참조)

사람들은 교조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어버이신님이 교조님 몸 안에 들어가 자유자재로 말씀하시는 것을 믿지 못하고 있으므로

친필 11호 20수에서 “이번에는 장소를 바꾸어서 이야기를”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고칸에게 부채를 쥐게 하여 어버이신님의 뜻을 전하게 한 사실을 말합니다.

그러자 교조님의 말씀과 고칸의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는데 이로써 교조님이 시종하시는 말씀은 인간 마음으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버이신의 뜻을 전하고 계신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셨던 것이라고 친필 주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조님께서 인간 창조의 과정을 설명하여 주신 으뜸인 리와 지구상의 만물을 수호하여 주시는 내용을 설명한 십전의 수호는 교조님의 생각으로 말씀하여 주신 것이 아니고, 어버이신님께서 교조님의 몸속에 듭시어 교조님의 입을 빌려서 자유자재로 말씀하여 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내용이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여 주고 있는 것이며, 또 이 세상 어떤 곳에서도 으뜸인 리와 십전의 수호 내용을 가르쳐 준 곳이 없으며 오직 교조님의 입을 통해서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길이 인류 말대까지 이어지는 종교라는 근거로 으뜸인 리와 십전의 수호라는 가르침이 있기 때문입니다.

친필 10호 37수는 어버이신님은 근행인원의 인연이 있는 사람은 어디에 있더라도 모두 끌어들인다는 것입니다.

어떤 곳에 있는 자라 할지라도

월일은 자유자재를 나타내 보일 테다 10-37

위 친필 말씀의 뜻은 근행인원으로 쓰고자 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더라도 자유자재한 섭리를 나타내어 반드시 이끌어 들인다는 것입니다. (친필 주석 참조)

“이길의 용어”에는 근행인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근행 인원은 모으기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단지 사람 수만 갖추면 되는 것이 아니라, 교조님께서는 근행 인원으로 적합한 “마음”을 지닌 사람을 찾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근행 인원의 수에 대해서는

신악 10인

악기 9인

손춤 36인

악인 20인

모두 75명의 인수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신악 10인은 태초의 리에 의해 감로대를 에워싸고 근행하는 분들로서 어버이신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나타내신 열가지 수호의 리를 받아 그들 열 사람의 인원이 각각의 수호를 손짓으로 나타내어 근행을 올립니다.

- 중략 -

교조님께서는 이러한 역할을 맡은 사람들을 각각 지명하셨는데 일단 그 역할을 맡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버이신님의 뜻에 맞지 않는 인간 마음을 쓰거나 역할을 벗어나는 행동을 할 때는 부득이 수호를 중단할뿐더러 출직시키기 까지도 한다고 깨우쳤습니다. 사실 그처럼 출직하신 분도 있는 것입니다.

 

위 기록의 뜻은 근행인원은 모두 75인으로서 그 중 신악 10인은 태초의 리에 의해 감로대를 에워싸고 근행하는 분들로서 열 가지 수호의 리를 받아 각각 다른 손짓으로 근행을 올리게 되며 근행인원 10인의 마음이 하나로 융합되어 어버이신님과 통할 때 수호를 받게 되는 것이며, 근행인원이 어버이신님의 마음에 맞지 않는 인간 마음을 쓰게 되면 수호를 중단하고 출직시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전진주님의 “즐거운 삶”에서는 근행인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조님께서는 정해진 열 사람의 근행인원이 감로대의 터전에서 신악근행을 올림으로써 사람들의 소원은 모두 성취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감로대의 터전이란 인간 창조시의 중심점이라고 말씀하신 만큼 세계 인류에게는 본고장이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신악근행의 성격이나 근행 인원의 역할도 모두 인간 창조시의 리를 이어받은 것이므로 이 근행에 대해 절대적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든 교조님께 의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근행”에는 물론 두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근행 인원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 참배자입니다. 교조님께서는 먼저 이 열 사람의 근행인원을 모으는데 애를 쓰셨습니다.

여러 가지로 “리”를 일러주고 납득시키는데 힘을 기울이셨으나 결과는 교조님의 뜻하신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위 기록의 내용은 교조님께서는 근행인원이 감로대의 터전에서 신악근행을 올림으로써 사람들의 소원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감로대가 있는 터전은 태초 어버이신님께서 인간을 창조한 장소이기 때문이며 근행 인원의 역할도 인간 창조시의 역할을 이어받는 것이라고 믿는 마음이 중요하며 동시에 모든 것을 교조님께 의탁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조님께서는 열 사람의 근행 인원을 모으는데 애를 쓰셨으나, 그 결과는 교조님께서 뜻하신 대로는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