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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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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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월차제 신전강화

 

우리끼리의 신앙

 

이호열(성천교회장)

 

상급회장님께서 바쁘신 관계로 인사 말씀 없이 가셔서 제가 좀 더 빨리 말씀을 전해드리게 됐습니다.

조용한 가운데 잠시 시간을 할애해주시기 바랍니다. (4박)

 

날씨가 후텁지근합니다. 좀처럼 비가 내리지 않고 가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모두가 비를 바라고 있지만,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츠지 츠사쿠 선생의 신앙

 

오늘은 제가 가끔 생각하고 있었던 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여러분들의 의견도 물어보고 싶습니다.

요즘 제가 교회보에 번역 글을 올리고 있는데 이번 달 번역 글을 읽다가 잠시 이런 것도 있었구나 하고 본 대목이 있어서 여기서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츠지 츠사쿠 선생에 대해 알고 계실 겁니다. “근행이 짧다.”라고 하는 이야기로써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분입니다. 이분이 1863년 3월, 여동생의 정신병을 구제받기 위해서 처음으로 터전에 참배했을 때, 교조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듣게 됩니다. “이곳은 팔방의 신이 계시는 곳, 천리왕님이라 한다.”라고 처음으로 어버이신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악가 5장에

널따란 이세상의 가운데라서

도와주는 곳들이야 더러있겠지 (5장 하나에)

신기로운 도움은 이곳이로다

출산도 마마병도 건져주리라 (5장 둘에)

라고 나와 있듯이 이것은 선생을 비롯한 당시의 사람들의 신앙생활의 일면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당시에 하세관음이나 니가츠도 라는 곳을 돌아다니며 다른 신앙을 했던 사람들에게 일러줬던 구절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어버이신님도 그런 다른 신들과 마찬가지로 생각해서 참배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여기는 그런 다양한 신, 팔방의 신이 진좌하고 있는 곳이라고 얘기했던 겁니다. 그래서 선생은 이제부터 신앙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츠지 선생은 교조님께 의지해서 한줄기 마음으로 기원하는 마음이 돼서 여동생의 정신병을 4개월 만에 수호를 받게 됩니다.

그해 7월에는 당시 4세였던 장남이 갑자기 경련을 일으켜 중태에 빠지고 맙니다. 생각해보면 여동생의 신상을 도움받았기 때문에 그 이후에 선생의 신앙심의 열의가 조금 빠졌기 때문에 그랬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다시 교조님께 찾아갑니다. 교조님으로부터 “부모의 마음에 따라 구제해주겠다.”라는 말씀을 듣고 다시 열심히 신앙해야겠다는 결심을 해서 4, 5일 만에 수호를 받게 됩니다. 그때부터 츠지 선생은 다른 신앙인 하세관음이나 나라에 있는 니가츠도 같은 데 따라다니지 않고, 오직 어버이신님만 믿고 따라가겠다는 신념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듬해에는 츠지 선생이 치통을 앓게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위의 얘기처럼 신앙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심 때문에 곧바로 터전의 교조님께 찾아갔을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천리왕님은 순산이나 마마만을 수호하는 신님이라고 오해해서 터전에는 일절 참배를 안 하고 2년간 다른 데, 오만 데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렇게 해서 굉장히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츠지 선생의 경우 신앙을 열심히 했다고 많이 회자하고 있는 분이기 때문에 천리교 신앙만을 열심히 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런 면들도 있었던 겁니다. 왜냐하면, 다른 신앙을 하셨던 선인들도 여러 다른 신앙적인 경험을 통해서 지금에 이르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츠지 선생의 경우 기억력이 좋아서 교조님의 당시 이야기를 후세에 많이 남겨주신 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츠지 선생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교조님께서 말씀하셨던 ‘어버이신님은 으뜸인 신, 진실한 신님이다.’라는 부분에 대해서 100% 완전히 믿지 않았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100% 신님을 의지하나요?

 

제가 왜 서두에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여러분들도 이 길을 신앙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입장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어버이신님의 수호, 가르침을 믿고 따라오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부분이 가장 좋아서 이 길의 신앙을 이어가고 있습니까? 어떤 부분을 믿고 따라가고 있습니까? 아마 여러분들 각자에게 좋은 부분이 있으므로 지금까지 신앙을 이어오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 자신의 면면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혹시라도 평소에 ‘어딘가 부족하다.’라는 생각이 드시지는 않는지요? 또, 내가 처음에 신앙할 때는 열심히 했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신앙심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각자 개인의 고유한 마음의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누군가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굳건한 신앙심이 확립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어버이신님의 가르침, 교조모본을 입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100%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친필, 신악가, 지도말씀를 통해서 알려주시는 어버이신님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의지해서 살아간다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도 ‘내가 과연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고 반성해봐야 할 부분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 사람의 신앙하는 사람, 용재, 교회장의 입장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되새겨봐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오랫동안 신앙을 해오면서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고, 그런 가운데서 신앙적인 신념이나 수호를 경험을 통해 얻었지만 어버이신님, 교조님께서 이야기하시는 ‘신앙이 곧 생활이다.’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곰곰이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열심히 포교하고 계실 것이고, 여러 가지 포교에 대한 실험들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계실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다들 열심히 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 길의 신앙에서 중요한 초점은 ‘남을 구제하는 것’입니다. ‘구제란 서로 도웁기이다.’라고 하신 지도말씀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 나 신앙 참 잘했다.’라고 했을 때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어떤 평가가 ‘신앙을 잘했다, 수호받았다.’라는 의미에 부합하는 것일까요. 사회적인 관점에서 자식이 잘되거나, 큰 혜택을 입었을 때일 것입니다. 입신양명했다거나 돈을 많이 벌었다는 측면을 두고 수호를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저 또한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식이 잘됐다.”, “자식이 돈 잘 번다.”, “좋은 대학 갔다.”, “좋은 직장에 들어갔고, 좋은 사람과 결혼했다.”라는 말로써 신앙 잘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자식을 키우셨고 자녀를 키우고 있습니다. 자녀가 학생일 경우에 공부를 못할 경우에는 어떻게 합니까. 억지로라도 앉혀서, 강제로 학원에 보내서라도 공부를 시키려고 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렇게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가서,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앙적인 측면에서 생각을 해보면, 이 길은 신앙으로 작은 부분에 도움을 받아서 나 혼자만 즐겁게 사는 것이 아니라 삶, 운명 자체를 구제 받아서 주위 사람들과 서로 도와가며 즐거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길입니다. 이런 측면을 생각해볼 때, 좋은 신앙을 시키기 위해서 학원 같은 데 데리고 가려고 할 생각을 해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내가 신앙을 못 가르치겠다면 나보다 더 신앙적으로 훌륭한 사람에게 데리고 가야 하고, 또,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억지로라도 신앙을 시켜야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크면 하겠지, 안 하려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억지로 시키겠노.’ 하는 입장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신앙도 어릴 때부터 학원에 보내듯이 억지로라도 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동으로 성인이 되어 신앙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신앙을 하고 있지만, 내가 교회장이고, 포교소장이지만 내가 신앙을 해서 수호를 받고 있다고 판단하는 잣대가 위에서 얘기한것과 같은 사회적인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어떻게 자녀가 신앙할 수 있겠습니까?

신앙은 사회의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 어떤 선생님이 “믿음 속에 음식 없고, 음식 속에 믿음 없다.”라는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단편적으로 신앙과 사회가 양립할 수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국은 우리의 마음속에 무엇을 담아서 갈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신앙하면서 우리가 왜 신앙을 하는가? 자식이 잘되고, 잘 먹고 잘살아야 한다는 생각, 물론 이런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목표로써 잘 먹고 잘사는 것, 잘 되는 것은 사회적인 관점입니다. 그럴 바에야 사회적인 관점에서 열심히 훈육을 시켜서 잘 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종교라는 것은 결국 이런 사회적인 의미의 잘 사는 것에 대해 뒷받침할 수 있는 부분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츠지 선생의 얘기에 대해 말씀드렸지만, 내가 급할 때는 ‘내가 열심히 신앙하겠습니다. 앞으로는 다른 데 한눈 팔지 않고 한길로만 가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언감생심, 수호를 받고 나면 그런 생각은 잊어버리고 다른 데로 가게 됩니다. 그러다 또 한 방 맞으면 또, ‘다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하지만 그런 마음도 금방 잊히고 맙니다.

 

자녀에게 신앙을 가르쳐요

 

가끔 이 길을 가는 분들과 함께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자녀에게 이 길을 믿고 따라가게끔 할 것인가? 하는 것에 논의도 합니다만, 몹시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신앙하면서 초대들 때의 모습을 보면 굉장히 힘들게 이 길을 가셨습니다. 그런 어려운 가운데서 교회를 이루고 사람들을 구제하셨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식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치명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가르치지 않아도 나의 신앙하는 뒷모습을 보고 따라 하겠지 하고 생각했던 부분이 틀림없이 있었을 것입니다. 안 가르쳤는데 뒷모습만 보고 따라온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자신이 안 되면 자기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있는 모임, 교회에서 개최하는 수련회에 보내야 합니다. 우리 고성교회에서는 8월 11일부터 13일까지 여름신앙수련회를 합니다.

수련회에 가자고 하면 잘 갑니까? 안 가려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윽박지르고 하면서 억지로라도 데리고 가야 합니다. 데리고 가서 신앙하는 사람들 끼리끼리의 영향을 받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신앙하기 힘들어집니다. 어린 나이라고 모를 것 같지만 다 알고 느낍니다. 저희 막내도 6살입니다만, 수련회에 갔다 와서 하는 말이 “아빠, 어버이신님께서 우리들의 몸을 빌려주셨데요. 알아요?”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수련회 가서 뭔가 듣고 왔다는 겁니다. 물론 수련회에 보내고 신앙적인 가르침을 들었다고 해서 그게 다 어른이 되어 신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신앙을 할 수 있는 토대는 된다는 겁니다.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에 가는 것보다 더 훌륭한, 말대까지 다스려지는 이 길의 신앙을 정신 속에 심어줘야 합니다.

신악가에 보면

여기까지 신앙을 하였지마는

으뜸의 신님인줄 알지못했다 (3장 아홉에)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진실한 신님에는 틀림이없다 (3장 열로)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신앙하고 있지만, 교조님의 말에 대해 100% 의지하고 있느냐에 대해서 여러분들 가슴속에 손을 대고 생각해보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까. 100% 의지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의지한다고 하는 것이 나 혼자는 힘들 수도 있습니다. 각자의 인연을 깨달아서 모임 속에서 인연을 자각하여 정체성을 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길의 신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사회적인 잣대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교조님의 모본, 어버이신님의 가르침대로 평가를 해야 합니다. 이 길을 신앙하시는 분들의 정체성이 혼란스럽지 않은가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천리교 신앙하는 사람 맞나?’ 하는 생각, 근행 볼 때는 천리교 신앙하는 사람이 맞는 것 같은데, 집 밖으로 나가면 근행 볼 때의 마음은 다 떠나고 일반 사람들과 같아집니다. 그 편차가 상당히 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부터 그렇기도 합니다.

 

진정한 구제

 

여러분들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만, 진정한 구제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147 진정한 구제

야마토 지방 구라하시 마을에 사는 야마모토 요헤이(山本與平)의 아내 이사(당시 41세)는 오랫동안 하반신 장애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1882년 신기한 구제를 받아 부드득 소리를 내며 일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 손이 약간 떨렸는데 좀처럼 잘 낫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으나 본인은 그것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1884년 여름, 터전으로 돌아와 교조님을 뵙고 그 떨리는 손을 내밀며 “숨을 불어 주십시오.”라고 청했다. 그러자 교조님께서는

“숨을 불어 주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나, 자네는 다리를 구제받았으니까 손이 약간 떨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말끔히 구제받는 것보다는 조금 남아 있는 것이 전생의 인연도 잘 깨닫게 되고, 언제까지나 잊지 않게 되므로 그것이 진정한 구제인 거야. 사람들은 모두 말끔히 구제받기를 원하지만, 진실로 구제받는 리가 소중한 거야. 숨을 불어 주는 대신 이 책을 빌려 주마. 이것을 베껴서 끊임없이 읽어라.”

라고 깨우쳐 주시면서, 친필 17호 전권을 빌려 주셨다. 그때부터 이사는 손이 떨리는 것은 조금도 괴로움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친정아버지가 베껴 주신 친필을 평생 곁에 두고 읽곤 했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열심히 포교하며 89세까지 장수했다.

라고 천리교교조전일화편에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대난은 소난, 소난은 무난이라는 가르침에 관해 얘기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소난까지만 수호를 해주시는 의도에 관해 설명해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말끔히 깨끗하게 수호받는 것이 목표처럼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좀처럼 남을 구제하는 데 있어서 멈칫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사람을 내가 다 이끌지 못하면 어쩌지?, 내가 다 수호받게 해주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망설임 때문에 힘들어하거나 아파하는 사람이 있어도 선뜻 다가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버이신님께서는 대난은 소난 정도까지만 수호해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진정한 구제의 리에 대해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끼리의 신앙

 

우리가 요즘 신앙을 하는 가운데 교회에 오면 그때 그 사람이 지금 그 사람이고, 새로운 사람이라고는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밖에 나가서 남을 구제하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끼리 신앙적으로 뭉치고, 신념을 가지고 세상의 어떤 시선이나 형편에 사로잡히지 않고 우리끼리 성숙할 수 있는 면에 대해 살펴봐야 할 때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죄송스러운 말씀입니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교리와 가르침을 가지고 주변의 교우에 대해서 신상이나 사정이 나왔을 때, ‘그런 마음을 쓰니 그렇지.’ 또는 ‘그러면 안 되는데.’ 하는 판단을 많이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잘 되고 있으면, 잘 안 풀리고 있는 교우에 대해서 서로 돕는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이끌어서 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교세가 엄청 크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정도의 규모가 된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우리의 실정으로는 어루만져주고, 덮어주고, 끌어주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어버이신님의 말씀대로 생각을 해보면 언젠가는 모든 인간이 어버이신님의 가르침대로 마음이 맑아져서, 마음이 바뀌어서 즐거운 삶의 세계를 건설하는 데 용목으로서 쓰이게 되겠지만, 그때까지는 우리의 현재 상황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자각해서 서로 뭉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헐뜯고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마음으로 하나의 신념으로 걸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땡볕에서 고생하며 남을 전도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신앙하는 사람들끼리의 결혼을 통해서 생산되는 자녀들과 함께 신앙의 테두리를 지속해서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이런 ‘우리끼리’의 신앙을 굳건하게 다지면서 교조님, 어버이신님께서 원하시는 세상이 될 때까지 세상에 휩쓸리지 않게끔 서로가 손을 잡고 가는 교우들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구난방의 이야기가 됐지만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정리해서 말씀드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제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4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