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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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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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엄마를 부탁해 ①

 

남상우(구만교회장)

 

30여 년간 양지포교소장직을 묵묵히 걷고 계신 어머님 김점분, 26년째 한 이불서 자는 갱년기 구만사모 채지화, 한국에 몇 대 없다는 40억짜리 K21 장갑차를 운전하는 군바리 아들 남대형, 병천순댓집 부근에서 디자인공학 공부를 하다 휴학계 내고 터전서 천리어학원을 다니고 있는 딸 남유진, 그리고 우리 집 셋째 오바졸귀탱 초딩 1학년 딸 장아은(박시은), 우리 집 넷째 호박넝쿨쟁이 3살 아들 백설. 평소 너희들의 거침없는 돌직구에 시종 망설이기만 했던 아부지(?)이야기를 오늘 드디어 어깨 뽕 무장 해제를 하고서 털어놓는다.

 

 

= 아빠는 나이만 묵었지, 소심하고 쉽게 상처받는 새가슴이고 유리 가슴이야. 그러니 죄인 다루듯 하지 말고 제발 살살 조심해서 다뤄줘.

 

- 시작도 안 했는데 어른이 엄살은요? 그래요, 아주 쉬운 질문부터 드릴게요. 아빠는 인생 최고의 순간이 언제였어요?

 

= 아빠 나이 고작 쉰세 살인데 때 이른 질문 같기도 하고, 어찌 또 생각해보니 생뚱맞은 질문 같기도 하구나. 아빠 최고의 순간이라 글쎄…, 엄마와 결혼했을 때, 아니면 너희들이 태어났을 그땐가? 그것도 아니면 너희들한테 질문을 받고 막막해하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일 수도 있겠구나. 역시 답은 말하기 편한 ‘글쎄다’로 해야겠다. (조금 뜸을 들이더니)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자신의 인생을 결정지을 무언가가 이루어졌을 때나, 또 그런 계기를 만났을 때가 아니겠니. 지금의 아빠가 있기까지, 즉 아들, 남편, 아버지, 포교사로서의 삶을 살았던 매 순간이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생각해. 그런데 그중 최고는 역시 ‘포교사’의 삶을 살겠다고 맹세한, 아니 어버이신 천리왕님한테 선택받았던 바로 그 날 그 순간이었겠지.

그러니까 꼭 16년 전이야. 쌀쌀했던 이른 봄 2월의 새벽이었어. 그것도 바다 건너 일본 나고야에 있는 아이치 교무지청(교구)에서 “안타깝다 아무리 생각을 할지라도 남을 구제하겠다는 마음이 없으므로”라는 친필 한 구절을 받아들었을 때가 아마도 아빠 인생의 최고 순간이었다고 생각해! 그런데 충남 서산에서 단독포교를 한 이후로 매번 ‘닥포(닥치고 포교), 닥포(닥치고 포교)’를 마음속으로만 외치다가, 교조130년제 시순에 닥포를 또다시 시작했어. 제발 엄마아빠 응원해줘, 그리고 기원도 해줘. 그리고 이참에 이 길의 동지이자 인생의 동무인 엄마한테 한마디 해도 되겠니? “여보, 갱년기 힘들지?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겁겠지만, 이것도 태풍처럼 금방 지나갈 거야. 당신이나 나나 지금 인생의 한여름을 지나치고 있어. 그래서 몸은 뜨겁고 마음은 해롱해롱. 115세 정명을 생각해도 우린 지금 막 한여름을 지나쳤어. 늦여름이 기성이라면 잠시 그늘에서 쉬면서, 숨 한번 크게 몰아쉬고 물 한 모금 마음껏 마신 뒤, 앞으로 펼쳐질 가을과 겨울을 위해 ‘구제와 어버이마음’ 만을 생각하고서 우리 같이 힘내요.”

 

 

- 그래요, 아빠. 응원해드릴게요. 아빠, 엄마 파이팅!!! 그럼, 새로운 질문 들어갑니다. 아빠는 다시 태어나도 포교사 할 거예요?

 

= 아이고, 죽겠네! 어쩌려고 이런 질문만 던지니? 좀 쉬운 질문 없니? 너희들도 차츰 느끼겠지만, 인생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아. ‘오늘 밤은 어느 가게의 치킨을 시켜 먹을까?’하고 전단지 보고 치킨 가게 고를 때 정도 말고는…. 생각해보렴. 너희들이 우리 집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도 너희들이 선택한 거 아니잖아. 그 비슷한 거야. 졸귀탱 아은이나 백설(白雪)같은 썰이가 우리 집에 다시 태어난 것도 그렇고. 그리고 생각해봐. 만일 선택해서 군대나 대학, 어느 집안에 마음대로 태어날 수만 있다면 모두가 서울대학, 아니 하버드대학, 그리고 금수저 집에 가고 싶지 누가 흙수저로 태어나고 싶겠니? 군대는 말하나 마나 면제를 선택할 거고.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잖아. 하물며 직업은 더 그렇다고 생각해. 결혼 상대도 마찬가지지만, 직업도 그 사람의 마음인연을 보고서 신께서 짝지어준 최상의 캐미(조합)라고 생각해. 그러나 만일 내생(來生)에서 내 마음대로 나(我)를 정할 수 있다면 이왕 하는 거 좀 더 뽀대나고 간지나는 업(業)을 꼭 해보고 싶구나. 자신의 업을 직접 고를 수 있는 감로대 세상, 즐거운 세상에 만일 다시 태어난다면, 최민식 같은 영화배우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다재다능한 화가가 되어보고 싶구나. 어때, 미리 사인이라도 한 장 받아둘래?

 

 

- 사인요? 못 들은 거로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때 만일 아빠가 포교사를 안 했다면 지금 뭘 하고 계실까요?

 

= 고맙구나. ‘글쎄’라는 답이 필요 없는 질문을 주어서 말이다. 천리왕님의 심부름꾼을 안 했다면, 단언컨대 아빤 분명 무역회사 사장이 되어 있을 거야. 아마도 세계를 상대로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지구촌 장돌뱅이 삶을 살고 있을 거야. 한때는 그 직업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대학도 무역학과로 갔던 거고. 너희들이 어렸을 적에는 서울에서 아빠가 한동안 그 일을 했었잖아. 기억나니? 큰놈 대형이는 조금 기억이 날 거야. 아빠는 그 일이 많은 사람을 충분히 배불리 먹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어. 하지만 무역도 알고 보니 역시 제한된 몇몇들만 배를 불리는 일이었어.

그러나 이 길(포교)을 가면서도 몇 번인가 화려한 저 길(무역)로 다시 돌아갈까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 그때마다 아빠의 발목을 잡은 건 ‘구제’라는 단어였어. 돈도 출세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구제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거잖아. 물론 그 덕에 엄마랑 너희들이 조금은 고달프게 살고 있긴 하지만…. 아무튼 너희들도 세상의 많은 사람을 배려하고, 그들을 즐겁고 기쁘게 해주고, 절로 미소 짓게 하는 직업, 그런 삶을 선택했으면 해. 그렇다고 개그맨을 꿈꾸는 건 아니겠지. ^^ 물론 세상 모두를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는 않아. 하지만 아주 불가능한 일도 결코 아니야. 왜냐 하니까 아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상상 이상으로 많으니까. 너희들이 마음 여행을 중도에서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기필코 만날 테고, 그들과 손잡고 같이 간다면 두렵지도 흔들리지도 않을 거야.

 

 

- 그럼, ‘포교구제’ 말고 무엇을 하실 때 아빠는 제일 행복하세요?

 

= 음, (잠시 생각하다가) 우선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고민은 철저히 내려놓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 뒤, 적고 많음을 떠나서 되돌아온 것에 감사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해. 그런데 말은 이렇게 하는데 아빠도 그게 좀처럼 잘 안 돼. 근데 말이 나와서 하는 이야긴데, 사실 아빠는 요사이 꼼지락 꼼지락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많이 초조해. 그리고 누가 낯선 걸 맡기면 덜컹 겁부터 나. 자꾸만 꽁무니를 빼고 싶어져.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자꾸자꾸 생각하게 되고…. 참, 그리고 결정을 나중으로 미루는 등, 전에 없던 버릇까지 생겨났어. 그래서인지 나보다 기막히게 잘한 걸 보고 있으면 참 행복해. 예를 들면 모처럼 마음에 드는 글을 읽고 있을 때나, 미술이나 사진 등 내 마음에 쏙 드는 예술품을 보고 있거나, 음악을 듣거나 할 때 특히 행복해. 대리만족하고는 분명 다른 것 같은데 아무튼 그래.

질투하고는 좀 다르지만, 그 비슷한 것 때문에 젊었을 적에는 남들이 나보다 잘하면 습관적으로 과소평가하곤 했는데, 지금은 ‘꽤 하는데!’ 하며 그걸 즐길 줄 알게 된 것 같구나. 이제야 겨우 나와 다르거나 뛰어난 걸 볼 때 손뼉을 칠 수 있게 됐어. 예전에는 시기하고 질투도 하고 때로는 지질하게 경쟁도 했던 적이 있어. 그때는 많이 피곤했고 불행했는데, 지금은 거기서 아주 자유로워졌고 가벼워진 것 같구나. 혹시 아빠 방에 걸려있는 액자 속 송무백열(松茂栢悅)이라는 사자성어 뜻을 아니? 아빠도 이제야 그 말뜻을 조금은 알 것 같구나. 나중에라도 좋으니 인터넷 지식 검색창에서 꼭 한번 찾아봐.

 

 

가벼워졌다면서 아빠 배는 나날이 왜 자꾸만 불쑥불쑥 나오죠. 마지막 질문입니다. 그러면 아빠는 언제 절망하시죠?

 

= 그래, 내 배를 볼 때마다 아빠는 절망한단다. 됐니!!! ㅋㅋ 근데 한국에서 그것도 아버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절대로 절망하거나 눈물을 보이면 안 되는데…. 그런데 사실 어른이 되고부터 오히려 매 순간이 절망이야. 방금도 절망했는걸. ‘무슨 답을 해야 하나?’하고 말이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얼마 전 주인 없는 딸자식 방에 무엇을 찾으러 들어갔다가 딸아이가 고3 때 매일매일 공부했던 내용을 메모해둔 수첩을 우연히 본 적이 있어. 그 수첩의 제일 첫 장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어. “겁내지 마라,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다. 기죽지 마라,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걱정하지 마라, 아무에게도 뒤처지지 않았다. 슬퍼하지 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조급해하지 마라, 멈추긴 너무 이르다. 울지 마라, 너는 아직 어리다.” 좋은 글월이다 싶어 책상 위에 올려두고 지금도 가끔 읽곤 해. 절망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루에도 몇 번씩 아빠는 겁내고, 기죽고, 걱정하고, 슬퍼하며, 조급해하고 있어. 최초 고백이지만 지질이처럼 최근에는 혼자서 울어도 봤어. 목 빼고 기다리지 않았는데도 쉽게 찾아와 아빠 마음을 뒤흔들고 가는 절망감, 그리고 두려움….

근데 너희들도 생각해봐. 고통 없이 행복만 지속한다면 그게 어찌 인생이겠니? 또 희망없이 절망만 있다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니? 그래서 벼랑 끝 절망이란 건 절대 없다고 생각해. 늘 희망은 절망 뒤에 숨어서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따라오고 있어. 절망에 가려져 우리가 눈치를 못 챌 뿐이야. 어두워질수록 잘 보이는 게 꿈이라고 하잖아. 그리고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뜰 테고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 우리 모두 걱정은 베개 밑 걱정 인형*에게 모두 다 맡겨버리자, 알았지. 그래서 아빠는 늘 다짐하고 있어. “걱정하지 말자, 행동하자, 어떻게든 되어온다, 그리고 감사하자.”

 

 

- 아빠, 수고했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미리 양념 후라이 반반에 콜라와 맥주 시켜놨어요. 같이 먹어요. 그 대신 아빠가 돈 내야 해요. 알았죠.

 

= 아니야, 너희들이 아빠 취조(?)한다고 더 수고했어. 그러니까 돈도 너희들 용돈에서 내렴. 아빠는 저녁 약속이 있어서 그럼 이만~.

 

 

걱정 인형*은 과테말라에서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인형이다. 부모들이 아이에게 하는 선물 인형이다. 아이가 그 인형에게 자신의 걱정을 말하고 베개 밑에 넣어두면 부모는 베개 속의 걱정 인형을 치워준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네 걱정은 인형이 가져갔단다.”라고 이야기한다. 부모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크고 작은 걱정들을 인형에게 털어놓는 순간 거짓말처럼 아이들의 걱정이 마음에서 사라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