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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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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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하나 73

 

천리교 가르침의 뿌리, 으뜸인 리 13

 

이 시 중

 

처음에 낳을 자녀 수만큼 연수가 지나면....

 

교전에는 “처음에 낳을 자녀 수와 같은 연수가 지나면 잉태한 인연이 있는 으뜸인 집터에 데리고 와서 신으로 예배받게 하겠다고 약속하여, 납득을 시킨 후 받아들이셨다.” (교전 23~24쪽)는 내용이 나옵니다.

 

처음에 낳을 자녀 수란 9억 9만 9천9백9십9인을 말하며 이 만큼 연수가 지난 때를 1838년 10월 26일이라고 합니다. 으뜸인 집터는 나카야마 씨의 집을 말합니다. 여기에 ‘데리고 와서 신으로 예배받게 하겠다’라는 것은 마에가와 집안의 미키를 나카야마댁에 시집오게 해서 신의 현신이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천리교 입교가 “그 때(1838. 10. 26)에, 그 장소(으뜸인 집터, 나카야마 씨의 집)에서, 미키를 통해서” 시작된 연유가 이미 태초부터 정해진 것임을 밝히신 부분입니다. 천리교의 입교가 우연히 일어난 사실이 아니라 태초부터 어버이신님께서 마음먹고 계셨다는 말이 됩니다. 나카야마 미키는 이 길을 열어주신 교조님이시고, 인간을 창조하실 때 모태로서 역할을 한 여자추형묘상의리와 깊은 연관이 있는 혼이라고 합니다.

 

왜 그만큼의 세월이 흘러야 했을까요?

이때쯤 되어야 자녀들이 어버이의 말을 알아듣고, 분별할 수 있을 정도로 성인하게 되리라고 본 시순이 아닐까요? 갓 태어난 아기에게 부모가 평소 가슴에 담아둔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말을 한다고 해도 그 아이가 알아듣지도 못할뿐더러 부모의 마음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어느 정도 자라기를 기다렸다가 말귀를 알아들을 때가 되면 부모가 아이를 불러놓고, 여러 가지 집안 사정, 가훈 따위를 설명하면서 깊은 속마음을 일러주게 됩니다.

그렇듯이 어버이신님께서도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때 바로 창조의 이유, 어버이의 마음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9억 9만 9천9백9십9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 시순이 도래하기를 기다렸다가 태초에 부부의 본과 인연이 깊은 혼을 불러서 신의 현신이 되게 해서 직접 가르침을 펼치시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태초부터 정해두신 약속에 따른 일이었다는 것이지요.

 

다르게 해석하자면 태초의 인간들은 맑고 순수했겠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숱한 일을 겪으면서 많이 탁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뒤, 더는 내버려 둘 수 없을 때라고 여겨지는 시순, 즉 9억 9만 9천9백9십9년이 흐른 뒤, 태초에 부부의 본과 인연이 깊은 혼을 불러들여서 신의 현신이 되게 하셨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를 통해 구극의 가르침을 펼쳐서 전 인류가 진실로 구제받는 길로 나아가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인간이 원래의 순수성을 되찾고, 창조의 목적인 즐거운 삶을 바르게 실현해 갈 수 있을 테니까요.

 

이것을 두고 생각해 보면 모든 일에는 어버이신님이 미리 정해 놓고 계신 시순, 때라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과정이 있고, 때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대단하고 훌륭한 일을 한다고 해도 순서를 지키고, 과정을 견디고, 시순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시순이 찰 때까지는 서둘러서는 안 되며, 시순이다 싶을 때는 아무리 괴롭고 힘들고 어렵더라도 밀어 부쳐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비난과 조롱이 있더라도, 험담과 시기 질투, 더 나아가 방해와 탄압이 있더라도, 과감하게 밀고 나가야 하는 때가 있게 마련입니다.

순서를 지키고, 과정을 견디면서, 때를 읽어낼 줄 아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철든 사람, 혹은 성인이라고 합니다. 철든 사람은 그 때를 알아서 물러남과 나아감이 자유롭고, 그 때에 맞는 가장 적절한 일도 할 줄 압니다. 철이 들지 않는 어린아이는 때를 모를 뿐 아니라 때에 상응하는 적절한 일이 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엉뚱한 일에 바쁜 거지요.

 

 

납득을 시킨 후 받아들이셨다

 

어버이신님이 인간을 창조하신다고는 하나 결코 일방적인 통보나 명령, 강제로 진행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 창조가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하는 식으로 한순간에 일시적으로 벌어진 일도 아닙니다. 창조에 쓰일 도구를 가까이에 불러들이고, 장래에 대한 희망도 제시하면서, 자기 특성을 살리고, 스스로 깨달아 주체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이끄셨습니다. 그래서 납득을 시킨다는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납득을 시킨다’라는 표현에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납득한 일은 무엇이든지 자발적으로 하게 됩니다. 비방과 조롱을 받아도 하고, 방해나 억압을 받아도 하며, 손해를 봐도 하게 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끝까지 해 나갈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못해서 억지로 하는 것은 전혀 자발적이지도 않고 오래 가지도 않습니다. 조그마한 틈만 있어도 그만두게 됩니다. 그래서 일을 하기 이전에 그 일에 대한 의미를 충분히 아는 것이 중요하며, 납득을 시키는 것 역시 아주 중요합니다.

물론 납득이 되기 전까지는 거절할 수 있고, 이럴까 저럴까 저울질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 창조 시 부부의 본이 된 인어와 흰뱀도 어버이신님의 말씀을 몇 차례나 거절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전혀 해 본 일이 없었고, 잘할 자신도 없었고, 의미도 잘 몰랐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어버이신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들여서 납득이 될 때까지 대화를 나누고, 이해를 시키고, 설득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인어와 흰뱀이 비로소 충분히 납득이 되었을 때는 앞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추후의 망설임도 없이 한줄기 마음으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누구라도 처음에는 얼마든지 거절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듣자마자 바로 납득해서 한줄기로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거절은 당연합니다.

어버이신님은 절대자이시므로 누구와도 상의(의논)하지 않고 단독으로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일을 추진할 수도 있습니다. 어버이신님이 그리 하시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어버이신님이라고 해도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인어와 흰뱀, 그리고 많은 도구들에 거듭거듭 거절을 당하셨지만 그래도 계속 대화를 시도하고, 설득하고, 납득을 시키는 과정을 거치셨던 겁니다. 그만큼 도구들의 주체성, 자발성, 자주성을 존중하셨다는 의미이겠지요.

의논과 납득의 과정 없이 한줄기는 없습니다. 이것을 생략하고 남에게 ‘예하며 순직하게 따라 오라, 한줄기로 되어오라’라고 하는 것은 욕심이며 성급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으뜸인 리에는 그 어디에도 ‘무조건 예하고 따르라’라는 식의 명령, 지시, 강제하는 논리가 없습니다. 인어와 흰뱀 뿐만이 아니라 이하 다른 도구들(범고래, 거북, 장어, 가자미, 복어, 검은뱀)도 역시 납득을 시키는 과정을 반드시 거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만큼 이 길에서 대화를 중시하고, 의논이 중심 교리로 자리 잡게 한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납득이란 충분한 대화와 충분한 의논, 충분한 설득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어버이신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은 곧 우리도 그렇게 하라는 말입니다. 그 속에 즐거운 삶의 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고 훌륭하고 대단한 일을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추진하기보다 시간을 두고, 대화하고, 의논하고, 충분한 소통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습니다. 거절 때문에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포기할 수도 없으며, 독단으로 처리해서도 안 됩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다 납득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납득이 된 사람부터 하면 됩니다. 때가 왔다 싶으면 혼자라도 해야 합니다. 교조님이 홀로 이 길을 열어주셨듯이 홀로 해야 할 일도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교조님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길을 가셨지만 끝내는 누구도 납득할 수 있는 모본의 길을 남겨주셨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거절당하는 것을 몹시 두려워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거절 때문에 쉽게 상처를 받고, 거절이 두려워서 스스로 물러선 경우도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예 입을 닫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헛소리만 잔뜩 늘어놓게 됩니다. 피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버이신님은 절대 피해가지도 않고 독단으로 처리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납득될 때까지 대화를 시도하셨고, 이해시키면서 이끌어주셨던 것입니다. 시순이 다가왔을 때는 그 정도가 심하여 아주 치열하기까지 했습니다.

입교 당시 신인 문답을 떠올려 보면 금방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한적한 시골의 평범한 여자인 나카야마 미키를 중심에 두고, 그의 남편 젠베와 어버이신님 사이에 사흘 밤낮 동안 문답이 오고 갔습니다. 젠베 단 한 사람을 납득시키기 위해서 절대자이신 어버이신님이 사흘 밤낮 대화를 시도했던 것입니다. 태초에 약속하신 연한이 1838년 10월 26일이란 시순이 꽉 찼기 때문에 아주 치열했던 것이지요. 한 인간을 납득시키기 위해서 사흘 밤낮을 애쓰시는 어버이신님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정말로 깊은 감동, 전율이 일어납니다.

 

어버이신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도 본이 된 도구를 비롯한 모든 도구로부터 거절을 당하셨습니다. 신의 현신이 되신 교조님께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숱한 세월 동안 아주 많은 사람으로부터 거절을 당하고, 수모를 당하고, 탄압을 받으면서 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거절을 당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맷집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성인이 되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어린 우리는 조그마한 거절에도 아주 큰 상처를 받지 않습니까?

그래서 거절이 무서워서 전도지를 전하지 않고, 거절이 무서워서 수훈을 전하지 않고, 거절이 두려워서 할 말을 하지 않고, 거절이 두려워서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어리다는 증거이지 않을까요? 거절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의미 있는 일도, 창조적인 일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으뜸인 리에서 보듯이, 입교의 으뜸하루를 보듯이 거절당하는 것은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며, 새로운 문을 열기 위한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이 근본은 진흙바다 속의 인어와 흰뱀 그것을 끌어내어 부부로 삼았다 6-32

이 세상 태초는 진흙바다 그 가운데는 미꾸라지뿐이었다 6-33

그 속에 인어와 흰뱀이 섞여 있어 잘 살펴보니 인간의 얼굴 6-34

그것을 보고 착상한 것은 진실한 월일의 마음인 거야 6-35

이들에게 도구를 끌어들여 차츰차츰 수호를 가르치게 되면 6-36

이 도구 결합수호와 지탱수호 이들을 몸 속에 끌어넣어 가르친다면 6-37

수기승강수호와 풍기수호와 인출수호와 절단수호를 끌어들이면 6-38

그것으로써 확실히 세상을 창조하려고 신은 의논을 했다 6-39

 

이 세상은 진흙바다였는데 거기에 월일이 있었을 뿐이다 6-80

월일이 진실로 착상한 것은 무엇인가 세상을 창조해 보았으면 6-81

없던 세상을 창조하기란 어렵다 어쨌든 도구를 찾아낼 준비를 6-82

살펴보니 그 속에 미꾸라지도 인어와 흰뱀도 다른 것들도 있었다 6-83

그것들을 모두 이끌어 들여 의논하여 인간 창조의 수호를 시작하면 6-84

 

자아 자아, 충분히 의논했다, 의논했다. 이 집터 시작한 이래 충분히 의논했다. 충분히 받아들였다. (1887. 1. 24)

 

큰마음으로 나아가면 크게 된다. 작은 마음으로 나아가면 작게 된다. 부모가 화를 내서는 자녀가 어떻게 자라겠는가. 모두 어버이의 대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야. 만족을 주며 키우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야. 모두에게 만족을 주어야만 으뜸인 터전이야, 본고장이야 하며 만족하고 돌아가는 거야. 무엇이든 충분히 의논하여 만족을 주도록. (1888. 7. 7)

 

 

의논의 중심, 납득의 중심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것은 무엇을 위한 의논이고 납득인가 하는 것입니다. 즉 의논의 중심, 납득의 중심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지요. 인간을 ‘창조할까 말까’하는 것이 의논의 중심, 납득의 중심이 아닙니다. ‘즐거운 삶을 누리게 할까 말까’도 아닙니다. ‘즐거운 삶을 누리게 하려고 인간을 창조한다’라는 것을 흔들림 없는 중심으로 해서 대화하고 의논하고 납득시켜 나갔던 것입니다.

이것은 입교 당시의 모습과도 유사합니다. ‘세계구제를 시작할까 말까’ ‘미키를 신의 현신으로 할까 말까’가 의논의 중심, 설득의 중심이 아니었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절대 중심의 하나는 ‘세계구제를 위해 미키를 신의 현신으로 삼고 싶다’라는 것을 중심으로 해서 대화하고 의논하고 납득을 시켜 나갔던 것입니다.

교조님께서 이 길을 여시면서 50년 동안 남겨주신 모든 모본의 중심도 ‘세계구제’였습니다. 가난에 떨어지고, 비방과 조롱을 받고, 시기와 질투를 견뎌내고, 탄압과 억압을 감수하고, 딸을 앞세우고, 남편을 앞세우고, 아들을 앞세우고, 며느리를 앞세우면서도 멈추지 않았던 절대 중심 하나는 어떻게 하면 ‘세계를 구제할까, 어떻게 하면 세상 모든 사람이 즐거운 삶에 이르게 할까’였습니다.

 

그러므로 ‘세계구제, 즐거운 삶’은 의논의 대상이 아니라 의논의 중심이고, 납득의 최종 목표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용재들이 밤낮 24시간, 1년 사시사철 중심을 잡고 가야 할 화두는 바로 ‘세계구제, 즐거운 삶’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아무리 많은 대화를 하고, 아무리 많은 의논, 회의를 하더라도 그 모든 중심에 ‘세계구제, 즐거운 삶’을 두지 않으면 필시 잘못된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은 너무나 명확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세계구제, 즐거운 삶’이라는 명백한 중심, 명백한 목표를 버리고, 다른 것에 유혹을 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선 손쉬운 교회 관리나 유지를 위해서, 혹은 편리와 이익을 위해서, 아니면 기득권 유지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반성하고 또 반성해 볼 일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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