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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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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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월차제 신전강화

 

키우면 자란다

 

박일녀(사천교회장)

 

반갑습니다. 오늘은 참 근행 보기 좋은 날입니다. 일 년 중에서도 5월은 실록이 짙고 나가면 지천이 꽃입니다. 그래서 더 좋은 계절입니다.

오늘은 교회장님을 심으로써 즐겁게 근행을 올리고 상급교회장님으로부터 좋은 말씀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소소한 이야기 조금 하고 내려가겠습니다. (4박)

 

5월은 공휴일이 많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기다려지는 날들이 많은데, 젊은이들은 무서운 달이라고 한답니다. 돈 쓸 일이 많아서요. 제가 아이들 키울 때는 어린이날이라고 해도 바나나 한 개만 사줘도 너무 좋아했습니다. 한 송이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것 사주세요. 저것 사주세요.”라고 하면서 아이들이 갖고 싶은 것도 많은 것 같습니다.

마침 내일은 소년회 근행총회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전에는 제가 아이들을 잘 못 키웠지만, 요즘 같으면 아이들을 참 잘 키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교조님 말씀에 ‘잘 키워야 자란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교회장을 안 할 때도 제 어머니에게 아이들을 맡겨놓고 일 보러 다닌다고 분주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잘 먹는 것을 챙겨준 적이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 아이들이 애 엄마가 되어 친정에 와도 따로 챙겨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집에 오면 된장국 밖에 해 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된 손자가 한 번씩 저녁에 와서 밥을 먹을 때 보면 자기 먹고 싶은 대로 먹습니다. 아이답지 않게 청양고추도 먹고, 머위 잎사귀, 상추도 잘 싸 먹습니다. 요즘 제가 그걸 보고 아이 하나둘은 다시 키우면 잘 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걸 볼 때마다 제가 딸을 세 명 키우면서도 잘 키우지 못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렇다고 신님 앞에 은혜 보답을 많이 했던 것도 아니고, 신앙을 제대로 시켜놓은 것도 아니고, 어떻게 생각하면 자기들에게도 미안하고 어버이신님, 교조님께도 죄송할 따름입니다.

어제는 근행을 보고 나서 손자가 와서 논다고 하는 것을 집에 빨리 가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손자가

“왜 빨리 가라고 해요?”

합니다. 그래서 제가

“할머니 숙제해야 하니까 인제 그만 집에 가봐라.”

하고 숙제를 조금 했습니다. 내일 소년회 근행총회도 있고 해서 교조님 말씀을 조금 적어왔습니다.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르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른다

 

교조님께서는 자녀는 가르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게다가 자녀가 성장하여 한 사람의 성인이 되기까지는 부모는 그 자식을 가르치고 키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키우는 데는 자녀를 방임하거나 응석받이로 키울 것이 아니라, 부모가 모든 것을 깨우쳐서 자녀가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잘못되는 일 없이 순직하게 성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인제 이 길은 어릴 때부터 마음에 심어 주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그런데, 나이를 먹고서는 아무것도 안된다. 세상 일에 마음을 쓰고 세상에 구애받으면 이 길은 내기 어렵다. 현재 얼마만큼 된 것에 대해 이만큼 저만큼이라 생각한다. 연한을 쌓아 나가면 어디서 어디까지 되겠지 하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전혀 틀린 생각이야. 어릴 때부터 길을 걸으면 순서를 알게 될 것이니 대강만 깨우쳐 주라. 깊은 데까지는 필요 없다. 깊이 들어가면 이러니, 저러니, 하고 잘못되기 쉽다. 어릴 때부터 마음에 심어주라. 그러면 어떤 일도 된다. (1900. 11. 16)

 

라는 지도말씀이 있습니다만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면 저절로 어버이신님의 가르침도 알 수 있다고 할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이 길의 마음을 심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어떤 일도 이 길의 리에 따라서 되게 되는 것입니다.

 

자아 자아 키우면 자란다. 키우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다. 가벼운 리가 아니야. 잘 생각해보라. 조금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알려주지 않으면 알지 못할 것이다. 알려준다면 모두 알게 될 것이니. (1890. 6. 12)

 

키우면 자란다. 키우는 법 모두 부탁한다. 부탁한다. (1895. 10. 11)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키운다는 것은 가벼운 리가 아닙니다. 키우기 위해서는 그 방법을 잘 분간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1889년 10월 1일의 지도말씀에서는

키우는 데는 키우는 방법이 있다. 불평불만이 없는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키운다면 깨끗하게 키울 수 있다. 그런데 불만의 마음으로 이렇게 해도 안 돼, 저렇게 해도 안 된다고 한다면 정성을 다해 아이를 키운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는 어떤 일도 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어버린다. 매일 매일 서로 예의를 다할 수 있는 마음으로 불평의 마음을 가지지 말고 정성을 다해서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라는 의미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또, 1889년 2월 25일의 지도말씀에서는

키우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키움으로써 아이는 인간으로서 어버이신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걸어가는 바른길. 과연 그렇구나 하는 리. 사정을 알게 된다.

 

아이에게도 아이로서의 하나의 리가 있다. 그러므로 어버이신님의 가르침의 리를 말로써 매일 들려주고, 아이도 들으려는 마음이 있다면 마음에 비쳐서 과연 그렇다는 리가 다스려지게 된다. 넓고 큰 이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큰마음으로 매일 가르침의 하나하나의 리를 들려주고 마음에 새기게 해서 과연 그렇다는 생각을 다스릴 수 있도록 자녀를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자녀를 키우고 사람을 키우고 이 길을 다스리는 데에 어버이신님께서는 여러 가지로 마음을 쓰시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어버이신님의 가르침에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이것은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말할 수 없다. 말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리를 분간해 듣는다면 어떠한 리도 선명하다고 한다. (하서)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에게 무리하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지도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그것보다도 우리 스스로가 어버이신님의 뜻을 잘 새겨 분간해 듣고 어버이신님의 마음에 맞는 길을 간다면 선명한 수호의 리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부모가 먼저 실천해야

 

양육에 대해서도 우리는 아이에게 무리하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고 다그치지 말고 먼저 부모가 어버이신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행해서 아이들의 마음에 그 리가 비칠 수 있도록 마음을 쓰고 자녀가 부모의 모습을 보고 부모가 생각한 대로 성인 되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가르침에 따른 자녀 양육의 기본자세라고 알고 있습니다.

 

자녀가 자라는 데는 순서가 있다. 키우는 도리가 있다. 단번에 키울 수 없다. 어버이신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해 주셨습니다만 인간이 단번에 성인 된 것은 아닙니다.

9억 9만 9천9백9십9년의 긴 세월 동안 최초에 5푼으로 태어나서부터 끊임없는 수호로 키워주신 덕분에 오늘날의 모습으로 성인 되었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3살까지는 부모님의 품속에 안겨있기 때문에 인간의 도리가 어떤 것인지 모릅니다만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면서 그 나이에 맞는 이치를 배워 성인이 되면 무엇이든지 알 수 있게 됩니다. 마음의 성인도 한 사람 한 사람 각자 각자의 성장 정도와 상황에 따라서 키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키우기 위해서는 자녀의 사정을 잘 알아야 합니다.

모두 마음의 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각자각자 가져가고 내놓게 됩니다. 거기에는 되는 것에도 되지 않는 사정이 있으며, 되지 않는 것에도 되는 사정이 있습니다.

성격이나 이해력도 다르므로 마음의 리라고 하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특히 젊은 사람에게는 젊은 기세로 마음대로 하려는 속성이 있으므로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라도 각자각자 마음의 리를 분간하고 가르침의 리를 판단의 기본으로 삼아 이렇다면 이렇게 하자고 정하고 이렇게 노력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이 길을 벗어난 마음으로 잘 키우려고 한다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다스린다면 사정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내 자녀를 키우기 위해서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매일 매일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일도 키우는 리로서 키운다면 키울 수 있습니다. 또 키우는 리에 의해 흐려지기도 하고 맑게 개기도 합니다. 씨앗은 심어놓고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추위와 더위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환경과 싸움에 져서 싹이 늦게 나오거나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버이신님의 가르침 하나의 리에 의해 안을 다스린다면 다스려지게 됩니다. 어버이신님께서는 어떤 장소에도 어떨 때에도 들어오셔서 활동해주십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신의 리에 맞춰 바르게 만들어서 이 길의 흐름을 인간 마음으로 도중에 막아버리는 일 없이 사정의 무겁고 가벼움에 관계없이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수호에 의지해서 키우려고 한다면 인간은 자라게 됩니다. 따라서 세상의 도리에 따르는 길을 걷지 말고 신한줄기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마음을 작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 씨앗을 뿌려 오늘 도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도 가르치면 도구가 됩니다만 가르치는 방법이 좋지 않으면 도중에 상처가 생기게 됩니다. 상처가 생긴 도구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수리해서 원래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연구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처음과 같이 고치고자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수리해서 원래대로 되었다면 다른 방법으로 가르쳐서 완전히 부서지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또 오늘 씨앗을 뿌려서 오늘 도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한 자의 도구와 석 자의 도구가 있다면 그것은 각각 적당한 용도에 맞게 사용해야 합니다. 도구가 맞지 않는다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뿌린 씨앗을 묻고 수리와 거름을 해서 각각의 용도에 맞게 키워야 각각 성인이 되는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 열매의 맛의 리를 잘 분간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유년기부터 여러 가지 사정에 대해서 매일 들려준다면 매일 다스려지게 됩니다. 어버이신님의 말씀에 의지해 젊은 나무가 자라납니다. 어버이신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용재의 힘이 됩니다. 그렇게 한다면 세상에서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무섭고 두려운 길은 없습니다.

 

또 상대가 직접 실천할 진실한 마음이 없다면 꼭 이렇게 해야 한다며 무리하게 시켜서는 안 됩니다. 마음의 움직임 없이는 눈을 뜨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누구의 자녀를 키우더라도 차별 없는 마음으로 온 마음과 힘을 다해서 키워야 하겠습니다.

한 사람의 앞에 서서 다음 사람을 키우는 것이 이 길의 순서입니다. 되지 않는 곳에서 키우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한다면 이루어집니다.

사람에게 거친 부분이 있더라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가벼운 마음으로는 안됩니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지금부터는 이렇게 세상의 리를 지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힘을 쏟고 토대를 굳힌다면 세상도 견고한 세계로 단단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 길의 사람들 모두가 마음을 모으고 생각을 모으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마음의 사용법은 충분히 마음을 써서 다른 사람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 토대입니다.

‘그대로 두어도 누군가는 할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라고 가르쳐주시고 있습니다.

 

내일은 이 신전에서 고성교회 소년회 근행총회를 합니다. 한 명의 자녀라도 참석시켜서 어버이신님, 교조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가르침의 리를 만들어 성인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월은 어린이 달인데 추세가 저출산이라서 아이들이 없습니다. 국가적으로도 이대로 2, 30년이 지나면 나라가 어떻게 될지 장담을 할 수 없답니다. 우리 교회도 ‘나만 잘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하다 보니 후계자를 키우지 못해서 이제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만 해도 근행의 제원이 모자랍니다. 어떻든 상급교회에서 소년회 근행도 볼 기회도 있고 하니 한 아이라도 더 데리고 와서 키워야겠습니다.

 

제가 지난 4월에 터전귀참을 했던 터에 우리 손자 입히려고 핫피를 하나 사 왔습니다. 우리 손자가 원래 돌아다닌다고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근행을 볼 때도 신전에서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고 합니다. 핫피를 사다 옷걸이에 걸어놨더니 그 손자가 그 핫피를 보고

“할머니 저게 뭐예요?”

합니다. 그래서 제가

“너 근행볼 때 입히려고 사온 근행옷이다.”

라고 했더니 그 아이가 근행옷이라고 좋아서 단추도 달지 않은 옷을 입고 좋아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주의가 산만한 아이가 핫피만 입고 근행을 보면 얌전하게 앉아있습니다.

이번 달에 성진 회장님이 순교를 오셔서 감화하시는 데도 그 꼬마가 그 핫피를 입었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꿇어앉아서 감화를 들었습니다. 옆에서 아무리 다리 아프니까 편하게 앉으라고 해도 끝까지 꿇어앉은 자세로 감화를 다 들었습니다. 끝에는 다리가 아파서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였습니다. 어린 마음에 교복을 입지 않으면 상단에 못 올라오게 하니까 그거 하나 입은 게 그렇게 좋았던 모양입니다.

 

요즘 인문학 강의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 아이가 배운다.’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어떻든 우리가 바른길을 잘 걷고 인도를 잘해서 후계자들이 그것을 보고 배워서 좋은 운명을 길들여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4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