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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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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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76


예복양반


박지수


꽃길 가꾸기전날 이웃 할머니랑 약속한 대로 나가서 찻길 가 풀이 무성한 밭둑을 매고 정리하였다. 늘 아름다운 마을길을 가꾸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하고, 여력이 안 돼서 마음뿐이었는데 “이 동네 길을 꽃길로 가꾸자”고 할머니가 먼저 마음을 내어 주셨다. 혼자로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나는 일인데 말이다. 무척이나 고마웠다.
좀 더 나이 들어 밖에 일이 적어지면 하고픈 일, 1순위는 동네 꽃길 가꾸기이다. 터전 귀참 때 보면 일본에는 집집이 동네마다 꽃 화단, 꽃 화분들이 얼마나 이쁜지 감탄하게 된다. 조그마한 자투리땅에도 꽃을 심고, 화분을 놓고, 잘 가꾸어서 지나며 보는 사람들조차 행복하게 만든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선진국이라서 먹고 살기에 여유 있으니 모두가 일상으로 그렇게 주변을 아름답게 가꾸고 돌보는 모양이다.
요즘 내 처지는 동네 길을 꽃길로 만들 여력이 못 된다. 포교소 아래쪽에 있는 무더위 쉼터인 정자와 한 선생님 밭둑, 포교소 앞 양쪽 길가, 우리 화단만 간신히 가꾸는 정도이다. 그것도 조금 바쁘게 다니다 보면 어느새 풀 천지로 변해 있을 때가 많다.
최근에는 포교소 돌보기 할 때나, 주변 히노끼싱 할 때도 늘 단정한 복장으로 ‘즐거운 삶, 천리교/ 감사, 겸허, 서로돕기’ 어깨띠를 매고 한다. 누가 보건 말건, 무슨 일이나 신의 일로 하려는 뜻에서이다. 꽃길 가꾸기 같은 일은 더구나 더 그렇다. 신의 몸인 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가꾸는 거룩한 일이지 않은가. 그런 마음가짐으로 어깨띠를 매고 신악가를 틀어놓고 묵묵히 즐겁게 히노끼싱 한다.

예복양반
<교조전> ‘제3장 행적’
가족들은 어버이신님의 의도에 따라, 들일을 나갈 때에도 언제나 무명으로 지은 예복을 입고 있었으므로, 인근 사람들은 쇼야시키 마을의 예복양반들이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채소와 나무행상을 하며 인근 동네를 누비는 슈지의 모습은 특히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되었고, 동네 사람들은 “예복양반, 예복양반.” 하면서 가까이했다. (교조전 p 30~31)

위 일화를 보면 어버이신님의 의도에 따라 교조님 가족들이 예복을 입고 들일이나 행상을 했다고 한다. 어버이신님은 어떤 의도에서 들일을 나갈 때조차도 예복을 입어라고 하셨을까? 그것은 아마도 무슨 일이든 신님의 일로 여긴다는 마음가짐으
로 일상생활을 하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비치길 바라셨던 것이 아니었을까. 마치 스님이 승복을 입고, 수녀님이 수녀복을 입고 일상을 지내듯, 자신의 처지, 자신의 마음가짐을 단단히 가지게 하려는 의미가 담겨있지 않았을까? 혼자 짐작해 본다.
신앙과 일상이 하나로
밭둑을 매고 정리한 날 오후, 길가에 꽃 심기 히노끼싱을 나갔다. 장화를 신고, 호미와 낫을 들고, 밀짚모자를 쓰고, ‘즐거운 삶, 천리교/감사, 겸허, 서로돕기’라 쓰인 어깨띠 차림이다. 내 손길 따라 꽃이 피어날 아름다운 그 날을 떠올리며 즐거운 꽃길 만들기 히노끼싱을 하였다. 할머니랑 꽃분홍색 화사한 꽃이 피는 송엽국을 길 따라 줄지어 심고, 물주고 마무리를 하였다.
 
내친김에 집을 지어서 이사 온 이웃에 선물로 드릴 꽃 화분을 만들었다. 엊그제 꽃시장에 가서 봄꽃들을 몇 가지 사 오면서 옆집에 드리려고 같이 샀다. 이사 선물로는 꽃 화분이 좋을 것 같아서 여러 가지 꽃들을 각각 사서, 큰 화분에 조화롭게 심어서 갖다 드렸다. "우리 꽃 사면서 예뻐서 팀장님 드리려고 좀 더 샀어요. 이사 축하드려요. 저희 이웃이 돼 주셔서 고맙습니다." 했더니 김 팀장님은 감동하셔서 어쩔 줄 몰라 하신다. 곧 인사하러 오겠다더니 저녁 근행 후 며느리를 대동하고 찾아오셨다. 지난번에 드렸던 전도지 8종류를 며느리에게 보여주면서 천리교에 가보자고 꼬셨단다. 자신도 전도지를 받은 그 날 밤새 다 읽고는 서울에서 다니러 온 새댁 며느리에게 자랑하였던 모양이다. 우리 집 주변에 이런 곳이 있고, 이런 분들이 사는 데 같이 가서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고.
집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자마자 김 팀장님은 오늘 아침에 내가 히노끼싱하는 복장ㅡ 젊은 여자가 밀짚모자에 천리교라고 쓰인 어깨띠. 장화신고 낫, 호미 들고 ㅡ을 보고 감동하여서 확 끌려오는 느낌이었다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사람도 별로 다니지 않는 이런 시골 마을에서 어깨띠 단정한 복장으로 혼자서 쓰레기를 줍거나, 풀을 매거나, 길을 가꾸다니 놀라웠다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자주 보았다고 하신다. 나는 몰랐는데 유심히 보셨나 보다. ‘누가 보든지 말든지 동네 길을 가꾸는 모습, 자신의 신앙신념을 그대로 일상에 옮기는 모습은 참으로 보통사람이 아니구나. 그런 모습에서 말이 아닌 신앙과 생활이 하나인 진실 그 자체의 모습을 보았다’고 하면서 엄청난 감동이었다고 감탄사를 연발하셨다. 내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일부였지만 지켜보는 사람들은 남다른 느낌인가 보다. 우리 동네는 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내가 히노끼싱하는 걸 보는 사람도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 데 사실은 다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이분 말씀이 “저는 직업상 많은 종교를 심층 취재하느라 깊이 들어가서 듣고 보고 경험하여 많은 종교인들을 잘 압니다. 그리고 각 종교의 문제점이나 내부사정도 잘 알고, 종교인들의 속내도 많이 들여다보았습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해도, 말뿐이고, 알고 보면 실망스러운 점이 많았지요. 천리교는 처음이지만, 신앙을 자신의 삶과 일치시켜 살고 계시는 여기 사모님 모습을 보면서 더욱 감동을 합니다. 천리교는 대단한 종교인 것 같습니다. 이웃이어서 제가 행운입니다.”라고 하신다. 
이래서 신님은 교조님 가족들에게 예복 차림으로 들일을 하고, 행상하라고 하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어깨띠를 맨 예복양반
어제는 아버지 삼우제였다.
삼우제는 출직 후 떠도는 영혼을 위로하는 제사로 초령제를 지내서 영혼을 위로하고 신님 품 안으로 모신 우리 천리교에서는 필요 없는 의식이지만 어른들의 주장에 맞춰서 산소 돌보고, 가족들 한 번 더 만나고, 어머니도 한 번 더 뵙는 마음으로 갔다. 다녀오다가 꽃길 가꾸는 데 다양한 꽃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배둔 가까이 길가에 있는 커다란 꽃 농장에 들어갔다. 그곳은 바로 앞에 횡단보도가 있는 길가였다. 남편은 어깨띠를 한 채로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꽃을 고르고 있는데 마침 어떤 차가 신호대기 중에 미끄럽게 들어와 차를 세웠다. 꽃 사러 오나보다 했는데 남편 쪽으로 다가와 차 창문을 내리고 “천리교입니까? 참 반갑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살 때 천리에 가 본 적이 있는데.... 천리교분들 참 좋은 분들인 것 같았습니다. 천리교는 어디 있죠?” 하면서 말을 걸어오더란다. 그래서 지갑을 꺼내어 전도지 여러 장을 건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처음엔 그분은 차 안에서 이야기하고, 남편은 서거나 앉거나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나중에는 차 밖으로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10분 이상 이야기하고는 각자 갈 길로 갔다.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그 다음 날 전화가 와서 차 한 잔 나누고 싶다며 저산으로 오겠단다. 전화를 받은 그때는 원남성교회에 있어서 그 다음 날 저산에서 점심을 먹자 하고 끊었다. 이튿날 포교소에 와서 참배하고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 속에 일본에 사는 친구랑 전화 통화를 했던 내용을 소개했다. 그분이 어깨띠를 한 우리를 만난 이야기를 우연히 했더니 저쪽에서 며칠 전 간사이공항에서 어깨띠를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들 아니었을까 했다는 것이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사실 얼마 전 4월 중순에 우리 부부는 포교 20주년 기념과 천리향 3년 천일 사례 참배 차 터전을 다녀왔기 때문이었다. 다들 가는 시기에는 강습소 수료식이 있어서 갈 수가 없었기에 미리 다녀왔다. 그때 이 분의 친구가 간사이공항에서 우릴 보았다는 것이었다. 이런 놀라운 인연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신기해하고 놀랐다. 그렇게 점심부터 오후까지 5시간에 걸쳐 이 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3개월 강습도 권해 보았는데 4월에는 가기 어렵고, 5월에는 갈 수 있겠다고 했다.

단지 어깨띠를 매는 것이 무슨 전도냐고 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없을 때는 이렇게 어깨띠만 매고 그냥 있어도 이렇게 말을 걸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것도 삼년천일의 실천이 이어지니 보여주시는 수호이기도 하겠지만. 얼마 전에 터전 귀참할 때도 여러 사람이 일어로 된 어깨띠와 한국어 어깨띠를 보고 말을 걸어왔다. 알은체하고, 반가워하기도 하고, 호감을 보이기도 하였다.   

교조님 가족들에게 들일을 할 때도, 행상할 때도 일상적으로 예복을 갖춰 입으라고 하신 어버이신님의 말씀을 내게도 적용해본다. 일상적인 일에서도 가능한 단정한 복장에 천리교 용재임을 알리는 어깨띠를 매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아무렇게나 입고 하는 것과는 정말로 다른 마음이 되는 걸 자신도 느끼게 된다. 나는 거룩한 신님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고, 이 세상을 아름답고, 즐겁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자긍심도 갖게 된다. 이런 모습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나 자신이 천리교를 알리는 용재임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