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 교회본부



cond="$

[180년04월]행복의 조건 - 최영철

2017.04.04 10:44

편집실 조회 수:84

3월 월차제 신전강화

 

행복의 조건

 

최영철(문산교회장)

 

겨울에 움츠렸던 생물들이 저마다 기지개를 켜고 세상 밖으로 움을 틔우고 있는 이때 따뜻한 봄 날씨 속에 모두가 함께 즐겁고 용솟음치며 감사한 근행을 올렸습니다. 오늘은 제가 지명을 받았기에 맡은 바 소임을 다 할까 합니다.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4박)

 

행복의 조건

 

오늘의 주제는 행복에 대해 같이 공부를 해 볼까 합니다. 행복의 조건도 참 많겠습니다만, 돈이 많아야 행복을 느끼는 사람, 대궐 같은 집을 가져야 행복한 사람도 있습니다.

행복의 조건이란 것은 어떤 물질만으로 느끼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음에 따라 생각의 차이가 크리라 생각합니다. 늘 감사와 행복을 느끼는 사람, 모든 걸 다 가졌는데도 늘 불만족스럽게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여기 계시는 여러분들은 모두가 행복함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믿으며 말씀드리겠습니다.

나에게 묻는다면 당연히 신앙한 덕분에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삼십수 년을 부부의 인연을 맺어 살아오면서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오직 어버이신님만을 믿고 여기까지 온 결과 참 신앙한 보람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 부부도, 집안도 인연이 지중하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를 거듭해서 신앙해온 결과 이제는 인연이 어느 정도 많이 닦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천리교 신앙은 좋든, 안 좋든 인연에 의해 이끌려 들어와 신앙하는 가운데 차츰차츰 인연을 깨달아가는 것 같습니다. 행복이라는 것도 인연을 모르면, 어떤 일들이 자신도 모르게 다가왔을 때 주위를 원망하고 자신을 한탄하며 괴로움을 벗어나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신앙하는 우리는 신앙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회복이 빠르다고 봅니다. 저도 젊었을 때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참 많은 부족불만을 안고 살았습니다. 집사람은 집사람 나름대로 부족이 많았고, 처삼촌들도 천리교로 시집보낸다고 결혼식에도 참석을 안 할 정도였습니다. 하기야 그때만 해도 문산교회는 초라한 스레트 집에다 살림도 넉넉지 못했는데, 남자 얼굴 하나 보고 보낸다는 게 말이 안 됐습니다. 그래도 처가가 신앙을 한 덕분에 장인어른께서는 저를 참 좋게 보셔서 귀한 딸을 저에게 보냈습니다. 문산에서 김씨 집안이라면 꽤 알아주는 집안인데, 인연이 있어서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결혼하자마자 서울에서 생활했는데 8개월 만에 서울 생활을 접고 시골로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부모님의 성화 때문이었습니다. 짐을 싸서 내려와서 곧바로 강습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집사람은 고생길에 접어들었습니다. 남편도 없는데 유별난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모시고 7년이란 세월을 떨어져 살다시피 했습니다. 강습 마치고 곧바로 고성교회로 와 청년근무를 한다고 4년이란 세월을 보냈습니다. 또 포교한답시고 2년 넘게 나가 있다 왔습니다. 여기저기 고성교회 산하 교회들 신전 꾸민다고 돌아다녔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우리에겐 신혼생활이란 게 없었습니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인데 야속하게도 집에 한 번 다녀오기가 힘들었습니다. 그것도 월차제날 집에 한 번 다녀오려면 근무하는 사람이 상급에 근행만 보면 되지 집에 간다고 퉁을 주곤 했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눈치를 보며 집에 다녀오곤 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는 왜 그리도 순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같으면 몰래 다녀와도 모르게 보고 싶을 땐 보러 가도 됐을 텐데, 그렇게도 순진했나 봅니다. 물론 역사기간이라 이해도 되었지만 섭섭함이 더 많았습니다. 남들은 신혼 때라 좋겠다는 말들을 했지만, 그런 즐거운 시절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한 페이지의 추억이 되었지만, 그 모든 걸 참고 견뎌온 결과가 오늘날의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자와 남자의 역할

 

살아오면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고 나니 이제야 철이 좀 든 것 같습니다. 요즘엔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남자 할 일, 여자 할 일 따지지 않고 힘들다 싶은 일은 뭐든 도와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먹고 싶고, 입고 싶은 것 못하며 살아왔는데 형편이 허락하는 한 모두 해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살다 보니 행복이란 것은 결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이 있었습니다. 아들 내외도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걱정거리도 없고 한 번씩 만나서 같이 식사하고 할 때마다 행복을 느낍니다.

두 사람의 마음이 맞아 합심하면 어떠한 일도 즐겁게 헤쳐나갈 수가 있다는 사실은 신악가에도 많이 나옵니다.

두 사람의 마음을 합심하며는

어떠한 일이라도 나타나리라 (4장 둘에)

부부가 합심하여 히노끼싱

이것이 첫째가는 근원이된다 (11장 둘에)

여자의 역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좌우하는지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여자의 길’을 읽어보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야. 하늘과 땅은 완전히 다르지. 이 점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남편을 세우며 지내지 않으면 땅의 리는 없어지고 마는 거야. 땅은 아무리 하더라도 하늘에 닿을 수 없는 것, 이런 정도는 알고 있겠지. 여자가 하늘에 손을 대려고 하니까 상처를 입는 거야. 여자는 토대지, 여자는 토대인 거야. 토대는 크지 않으면 안 돼. 토대가 작으면 넘어지는 법이야. 여자가 나날이 써야 하는 마음은 남자보다 어려운 거야. 말씨나 행동 하나하나가 남자와는 달라. 남자는 남자가 걷는 길이 있고, 여자는 여자가 걷는 길이 있는 거야. 여자에게만 상당히 무리한 말을 하는 것 같으나 결코 무리한 말을 하는 게 아니야. 여자의 마음 하나로 가정이나 나라도 망치게 되는 것이므로 여자는 마음을 단단히 가져야 해.

이처럼 여자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함으로써 가정과 나라도 평화가 찾아오리라 생각합니다.

요즘은 세계 각국에서 여자분들이 정치에 입문해 국가를 이끌어 가는 나라도 많습니다. 지위가 향상되어 각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도 많이 합니다. 여자로서 나라를 잘 이끌어 가는 분들은, 여자의 도리를 잘 지키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지위가 높다고 해서 일방통행이 아니라, 귀를 기울이며 조화를 잘 이루면서 정치를 하니까 순리대로 잘 이끌어 간다고 봅니다. 그와 반대로 지위를 악용해 일방통행으로 가다 보면 분명히 탈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할까 합니다.

쌀과 보리의 궁합을 보면, 쌀은 여성의 성질을 가지고 있고 보리는 남성의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벼는 수염이 없으나 보리에는 수염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의 성질을 가진 쌀밥은 부드럽고 감미로워 먹기가 좋습니다. 남자의 성질을 가진 보리밥은 거칠고 쌀밥처럼 달콤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걸 보면 조물주의 섭리는 오묘해서 물과 불은 서로 상극이면서도 불을 만나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게 섭리해 놓았습니다.

여성과 밭은 화성(火性)이며, 남성과 논은 수성(水性)인데 남성인 보리는 화성인 여성의 밭에서 생육하고 여성인 벼는 수성인 남성의 논에서 생육합니다. 남성은 여성인 밭에서 생존하며, 여성은 남성의 논에서 생존할 수 있음은 참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이는 곧 남녀 간에 서로 다른 이성 없이는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여성인 벼는 어릴 때부터 생장한 모판에서 그대로 두면 벼 구실을 하지 못하므로 반드시 남성의 집인 논으로 옮겨 심어야 하고, 남성인 보리는 싹이 난 그 자리에서 옮기지 않고 계속 살아가게 됩니다.

이들 생태는 여성은 시집을 가서 살아야 정상적인 여자구실을 할 수 있으며, 남성은 생장한 자기 집에서 살아가는 것이 정상임을 일깨워줍니다. 여성의 가장 큰 비애가 시집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것은 조물주의 깊은 뜻에 의한 섭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간혹 아들이 없거나 재물이 많으면 딸자식을 내 집에 두고 사위를 맞아들여 살게 하는 부모들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딸은 여자의 구실을 할 수 없으며 사위 또한 남자의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데릴사위로 들어가게 되면 눈치를 보며 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벼와 보리는 어릴 때는 꼭 같이 고개를 숙이지 않으나 익을수록 여자인 벼는 고개를 숙이지만, 남성의 보리는 익어도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리의 성질을 지닌 남성은 젊어서나 늙어서나 아내에게 고개를 쉽게 숙이지 않는 천성이 있지만, 여성은 나이가 들고 교양이 있어 속이 찬 여인은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미덕을 갖게 되며 이런 여성은 품성을 갖춘 여인, 즉, 현모양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여자인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 속이 찬 여성들은 남성들의 천성을 체험으로 통해 이해하게 되므로 머리를 숙이듯이 이해하고 참아줍니다. 여인의 그런 성품 덕분에 가정에 평화가 있고 변함없는 부부의 애정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꼿꼿하게 고개를 숙이지 않고 서 있는 벼는 이삭이 제대로 여물지 못한 쭉정이이듯이 숙일 줄 모르는 여인 또한 속이 차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가정의 화목의 바탕은 아내에게 달려있다고 봅니다. 남편을 굴복시키려는 생각이나 맞서려는 생각보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 좀 져주면서, 기도 살리고 미소와 애교로서 부드러운 무기를 사용한다면 여자를 사랑하지 않을 남편이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처럼 사랑은 아낌없이 주는 것이라 서로가 주려고 베풀려고 하다 보면 늘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음이 조금 맞지 않으면 분위기가 싸늘해집니다. 서로가 냉전 상태가 오래가면 서로 주는 것이 끊겨 버립니다. 결국은 서로가 손해를 봅니다. 젊었을 때는 객기도 부려보고 했지만, 이제는 그럴 힘도 없고, 해봐야 내 마음만 아프고 손해 보는데 왜 합니까. 손해만 보는 장사를 이제는 연식이 지나 반품도 안 되고, A/S도 안 되고 하는 마당에 더 망가지지 않도록 아끼고 투자를 해서 건강도 챙기고 서로 그렇게 남은 인생 행복하게 살다 가려고 노력합니다.

 

졸혼

 

요즘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졸혼이란 말을 많이 합니다. 탤런트 백일섭 씨 나오는 프로그램입니다만 자식들 때문에 이혼은 못 하고 서로 따로 생활하는 것을 졸혼이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친구같이 필요할 때만 만나고 필요 없을 때는 안 보면 되고 간섭 안 받고 생각해보면 좋은 면도 있을 것 같지만, 나이 팔순을 바라보면서 안 하던 밥을 해 먹고 실림도 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느꼈습니다. 혼자 사니 무료하니까 생각해 낸 것이 암캉아지를 사게 됩니다. 그 강아지에게 ‘오빠야’라고 부르라고 하며 키웁니다. 그렇게 ‘오빠야’ 하며 키우는데 아들이 반찬하고 여러 가지를 챙겨주러 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오빠야’ 라고 부르면 난 강아지에게 뭐라 불러요? 고모라고 불러야 되나요?”

하고 서로 웃더군요. 하루 일상을 강아지한테 시간을 다 투자합니다. 똥 치우고 밥 주고 목욕도 시켜줍니다. 부인하고 살 적에는 한 번도 살림이라고는 모르던 분이었습니다.

아들은 엄마하고 살고 있는데 손녀에게 줄 선물을 사서 아들과 부인이 함께 사는 집에 갔는데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대문 앞에 서서 전화로 왔다고 하니 한참을 기다린 끝에 아들이 나오더니 조금 있으니 며느리도 나오고 하는데, 대문 앞에서 선 채로 인사를 나눕니다. 보통 같으면, 며느리라도 ‘아버님 들어오셨다가 차라도 한잔하고 가세요.’라고 하겠지만, 안에 엄마가 계시니까 그렇게 하지도 못 하고, 그냥 대문 앞에서 손녀 선물만 주고는 돌아가는걸 보니 참 마음이 안돼 보였습니다.

몸이 떨어져 있으면 자연히 정이 멀어집니다. 요즘 각방을 쓰는 부부도 많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따로 살다 보면 정이 없어집니다. 부부는 싸워가면서도 부딪히면서 정이 쌓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졸혼이라고 해서 마누라도 마음대로 못 만나고 자식이 사는 집에도 마음대로 못 들어가는 등의 생활은 잘못된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그 모양은 이혼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떨어져 나와서 생활하는 것만큼의 정성을 부인한테 쏟았으면 그 부인이 얼마나 감사해 하며 행복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신님의 뜻에 안 맞는 이치라 생각합니다.

 

순직하게 받아들이는 마음

 

서로의 입장만을 생각하지 말고, 인연을 생각해 깨우쳐 가는 것이 최선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아낌없이 베풀려고 하면 상대도 분명히 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인생에 문제가 생겼다고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지 마세요. 이것 또한 다 시간이 지나면 별것 아닌 문제였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니’ 하고 살면 됩니다. 인생길에 내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나라고 누구 마음에 꼭 맞겠습니까. 내 귀에 들리는 말들도 더러는 좋게 들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세상은 항상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으니 마땅찮은 일이 있어도 ‘세상은 다 그렇다.’ 하고 살아갑시다. 사람들이 주는 상처에 너무 마음 쓰고 아파하지 마시고 세상은 아픔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뭐든 집착하지 말고 그러려니 하며 살면 됩니다. 남은 세월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세월 참 빠릅니다. 저도 어느덧 60이 넘고 손녀가 생겼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슬픈 일, 괴로운 일,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그 아픔을 느낀다는 것은 우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죽은 사람은 아픔을 느끼지 못합니다. 저도 체험을 해보니, 목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박아도 아픔을 몰랐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감각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산송장이 아니겠습니까. 살아있으니까 아픔을 느끼는 겁니다. 내가 아픔을 느낀다면 그것은 ‘내가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라는 감사한 생각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너무 애태우며 살지 마세요. 살아있다는 이 자체가 극락이고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신앙하는 우리는 늘 어버이신님께 감사를 잊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저도 여기까지 오면서 경제적으로나 여러 가지의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한때는 호주머니에 돈이 없어 친구들을 피해 다닌 적도 있습니다. 사람의 도리를 다 못 하고 사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또 신앙에 회의도 느낀 적이 있었지만, 주위에서 많이 도와주시고 이끌어주시고 격려해주신 덕분에 오늘날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는 받는 입장에서 주는 입장이 되어 은혜를 갚으며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어버이신님께 감사를 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진실과 정성을 쏟은 만큼 어버이신님께서는 우리에게 행복이란 걸 수호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살아있는 자체가 행복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버이신님께서는 늘 좋은 것만 주시지도, 늘 나쁜 것만 주시지도 않습니다. 조금 어렵고 힘들더라도 잘 참고 이겨내면 분명히 우리의 정성과 노력에 대해 몇 배로 돌려주신다고 확신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여러분의 가정에 행복이 함께 하시길 빌면서 부족하나마 이것으로 마칠까 합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4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