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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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년02월]은혜보답 - 이상봉

2017.02.06 09:40

편집실 조회 수:85

춘계대제 신전강화

 

은혜보답

 

이상봉(교회장)

 

오늘 고성교회 춘계대제를 다 같이 즐겁게 용솟음치며 올렸습니다. 참배해주신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전석에서 상급교회장님께서 좋은 말씀 많이 들려주셨기 때문에 저는 준비해온 내용 중에 중요한 이야기만 줄여서 간단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박)

 

교조님의 시작

 

1월에 올리는 춘계대제는 교조님께서 은신하신 날을 기리기 위해 올리는 근행입니다. 교조님께서 은신하셨다는 의미를 생각해보면, 천리교는 교조님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길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이 길에 대한 것을 많이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로 되돌아가서 생각해보면 교조님께서 손춤을 가르쳐서 근행을 올리게 해도 쉽지 않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월이 흘러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은데 아무것도 없던 데서 50년 동안 모본의 길을 걸어서 이만큼 성인 시켜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보통의 사람은 하기 힘든 것입니다.

자동차를 운행하는 것으로 하면 처음 엔진에 시동을 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의 자동차는 엔진 시동을 걸기 위해서 손으로 손잡이를 돌려서 시동을 걸었지만, 요즘에는 간단하게 자동차 열쇠를 꽂고 돌려서 시동을 걸 수 있습니다. 하여튼 처음 엔진에 시동을 거는 절차를 거쳐야만 연료가 엔진으로 공급되고, 엔진이 돌아서 자동차를 운행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교조님께서 이 길을 열어주신 것은 이런 자동차의 엔진에 처음 시동을 거는 것과 마찬가지의 역할을 하신 겁니다. 교조님의 행적이 우리에게 지금의 열매를 맺게 해주신 것입니다.

특히 근행을 올리는 것은 교조님의 오랜 세월의 노력과 노고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근행을 완벽하게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오늘 고성교회의 근행은 악기와 근행봉사자를 모두 갖춰서 교대도 하면서 여러 사람이 즐겁게 근행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이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성교회 초대회장님께서 걸어가시고, 고생하신 리에 따라서 이렇게 모여서 오늘과 같은 은혜를 입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그 은혜를 잊을 수 없게 됩니다.

설령 지금은 악기도 다 갖추지 못하고 근행인원도 다 갖추지 못했더라도 열심히 구제해서 근행봉사자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성인을 시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노력해야 합니다. 수훈을 통해서 신상과 사정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 용재의 사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몸의 가치

 

교조님께서는 “평상시에 사람은 어버이신님으로부터 몸을 빌리고, 세상에 살아갈 수 있도록 어버이신님께서 베풀어주시고 있으므로 다른 모든 것도 빌리고 있는 것이다.”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는 자주 이런 말을 듣고 있지만, 실생활에서는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요?

얼마 전에 신문을 보니까 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 8명이 세계 하위 36억 명의 재산보다 많다고 합니다. 10년 전만 해도 부자 수백 명이었던 수치가 8명으로 줄어든 것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이 계속 몰리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예전에는 백만장자라는 말도 썼지만, 이제는 그 정도는 부자 축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됐습니다. 백만장자를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10억 정도 됩니다. 지금 세계에서 돈이 가장 많은 사람이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88조 원 정도의 돈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빌 게이츠라는 사람입니다. 이 기사에서는 사회에서 부의 편중에 관해서 이야기하면서 요즘 흔히 얘기하는 흙수저, 금수저라는 것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흙수저로 태어나면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현재의 열악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망이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생망’이라는 유행어도 있다고 합니다. ‘이번 생에는 망했다.’라는 뜻이랍니다. “나는 이미 밑바닥에서 태어나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별수 없으니, 이번 생은 포기한 것으로 하고 다음 생에 부모 잘 만나서 좋은 가정에 태어나면 그때 내가 하고 싶은 꿈을 펼치며 살겠다.”라는 것입니다. 이 정도의 말이 생길 정도라고 합니다. 이런 사회현상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그 기사는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조님의 가르침에 비추어보면 이것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위 기사에서는 제일 중요한 부분을 빼먹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라는 자산을 빼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 몸을 돈으로 환산하면 그 액수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 몸의 가치를 금전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우리 몸에 세포가 60조 개가 있는데 세포 1개당 10원씩만 해도 600조 원의 자산을 가지고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각자의 자산이 600조 원입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보다 5배 정도 많은 금액입니다. 그 부자도 몸이라는 자산을 가지고있다고 하면 모두 합해봐야 별 차이 없는 겁니다.

이런 걸 생각하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아무리 가난하다고 하더라도 흙수저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일생을 살아가는 자체를 고마워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천리교는 감사하고 고마운 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 처지가 이렇다.’라고 비관한다거나 해서는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이런 엄청난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은행에서 그런 돈을 빌릴 수도 없겠지만, 만약 그만큼의 돈을 빌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이자만 해도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 이자만 생각해도 고마운 것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설령 몸이 불편해서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벌써 본전 이상은 다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세상의 어떤 일이든지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돼 오는 것입니다. 어버이신님의 수호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을 하고 어떻게 하면 은혜보답을 할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는 것이 이 길의 신앙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뜻대로 되지 않고, 괴롭고 힘든 일이 있으면, ‘내가 신앙을 하는데도 왜 이렇게 수호를 못 받나.’ 하고 생각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감사하는 마음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보답의 방법 - 인재육성

 

어버이신님, 교조님께서 제일 좋아하시는, 남을 돕고 구제하는 일에 나름대로 정성을 바쳐서 은혜보답을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 형태 중의 하나가 교회에서 이렇게 근행을 올리고, 전도 하고, 수훈을 전하는 등의 일입니다.

여기에 보태서 할 수 있는 은혜보답의 방법이 또 하나 있습니다. 진주님께서 원단 인사에도 말씀하셨습니다만 그것은 바로 ‘이 길을 이어나갈 인재육성’입니다. 올해 교회 본부에서 주최하는 후계자 연성회가 열립니다. 한국에서는 7월이나 8월에 열립니다. 후계자라고 하는 것은 교회 후계자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길의 신앙을 이어받을 사람이면 누구라도 후계자에 해당합니다. 특히 이 길의 자녀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로써 하라고 해서 듣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녀 교육에서 중요한 것이 직접 체험을 시키는 것입니다. 어버이신님께서 우리 자녀를 키우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9억9만9천9백9십9년 동안 지혜와 문자를 가르치고 인간으로 성인 될 때까지 키워주셨습니다. 사람에게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라고 하면 힘들 텐데, 어버이신님이라서 그렇게 느긋하게 봐주실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님은 인간의 어버이라서 참을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즉 인간과 같이 생각이 얇지 않다는 것입니다. 신님은 느긋하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교조님께서는 우리가 싫어하는 감옥이나 경찰서에 가셔서 노고를 하셨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사람들이 교조님께 “교조님, 당신의 그 자유자재한 능력을 갖추고 억지를 쓰는 사람들에게 손발의 자유자재가 없도록 벌을 주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교조님께서 말씀하시길 “인간의 자식들도 철없는 시기에는 부모가 젖을 먹일 때 젖을 물기도 하고, 오줌이나 똥을 뒤집어쓰게 하지도 않느냐. 그때 그때 화를 내면 자식을 키울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느긋한 어버이 마음이었기 때문에 짧은 연한에도 훌륭하게 키워내고, 나중에 부모에게 효도하는 성인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부모가 자식을 너무 귀엽게만 키우면 옆에서 볼 때 “부모가 자식을 잘못 키웠다.”라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어리석지 않으면 자기 자식도 키울 수 없다고 합니다. 부모가 좀 어리석어서 느긋해야 자식도 키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님은 “바보가 되라. 바보는 신님의 바람이야.”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 바보나 어리석은 사람을 신님이 바라시는가 하면 사람을 구제한다는 것은 자식을 키우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제받는 사람으로서 처음부터 이 길의 리를 알고 따라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치 이 길의 리를 모르는 철없는 아기와 같으므로 세상 사람들의 처지에서 봤을 때 어리석은 사람 같이 되지 않으면 진실한 구제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느긋하게 자식을 키우는 것이 있는가 하면, 또 부모의 권위로써 대해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어떤 부모는 집의 냉장고 문에 이런 글귀를 붙여놓았답니다. ‘너희들은 내가 해주는 음식을 군말 없이 먹어야 한다. 내가 입히는 옷을 군말 없이 입어야 한다. 내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야. 왜냐하면, 내가 엄마니까.’ 요즘은 자식들과 아무런 격의 없이 친구처럼 지내면서 키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만, 자식과 부모 사이에는 질서와 권위가 필요합니다. 그런 걸 허물어뜨리는 것이 좋은 부모가 된다고 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특히 자녀가 신앙을 이어받게 하는 데 있어서 어릴 때부터 교회에 가서 참배하고, 근행을 보고, 자기 용돈이 생기면 일정 부분 신님에게 은혜보답하게 하는 것은 일종의 권위나 강제로써 어릴 때부터 계속 심어주지 않으면 나중에 가서 하라고 시켜봐야 ‘옛날에는 그런 거 시키지도 않더니 지금 와서 그런 말을 하십니까.’ 하고 반발을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는 때때로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바보가 돼서 천천히 기다려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부모의 권위나 책임으로써 자녀에게 신앙을 전해가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게 이번에 진주님께서 말씀하신 요지입니다.

우리는 어버이신님으로부터 빌려 받은 이 육체를 공짜로 쓰는 감사함, 살리어지는 감사함을 기본으로 삼아서 자녀들에게 이 길의 신앙을 전해 가는데 여러 가지로 마음을 다해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4박)

 

 

* 본 신전 강화는 고성교회보 홈페이지(tenrikyo.kr), 유튜브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