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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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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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74

신앙 다지기


박지수

 

겨울 신앙수련회에 서울에 사는 조카 수정이가 오겠다고 하였다. 지난 여름 수련회에는 날짜가 맞지 않아, 오지 못해 좀 서운했는데 이번에 온다고 하니 기뻤다. 평소에 오고 싶을 때나 힘들 때는 얼마든지, 언제든지 와서 쉬었다 가라고 늘 말해 두었다. 수련회 참가한 후 저산에서 보름쯤 더 쉬었다 가겠단다. 좀 쉬고 싶은가 보다.
수련회 끝나고 함께 집으로 왔다. 모처럼 만났더니 그동안 쌓인 이야기들을 숨 가쁘게 내놓는다. 먼저 녀석의 수다를 실컷 들었다. 그리고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들을 이어나갔다. 겪은 여러 일에 대한 소감도 듣고, 이 길의 가르침에 비춰서 깨달아야 하거나 다시 생각해 볼거리를 찾아내곤 했다. 수정이가 오면 밤늦게까지 이야기가 이어진다.

첫날밤에는 수정이가 모처럼 왔으니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자존감 올리는 시간’도 가졌다. 이런 시간은 수정이가 여기 살 때 때때로 했던 것이라 스스럼없이 한다. 자신이 잘하는 것과 장점, 못하는 것과 단점, 남들이 말하는 내가 잘하는 것 찾기라는 항목을 써 보고 함께 나누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에 대해 충분히 들어주고, 긍정적인 공감을 해준다. 그러면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게 되고, 자신에 대해서도 괜찮은 사람, 좋은 사람이란 느낌이 들게 된다. 잘 찾아보면 누구라도 잘하는 게 많고, 잘못 하는 건 적은 편이지만 이런 걸 해 보지 않으면 자신의 단점을 더 크게 많이 생각하게 되기 쉽다. 그러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 버리고, 삶이 힘겨워진다. 수정이가 여기 있을 동안, 밤에는 자존감을 키우는 시간, 좋은 인성을 기르는 시간을 수시로 가지고자 노력하였다.
수정이가 여기 살 때 늘 하루 최소한 한 두 시간 정도는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기에 가끔 와도 똑같이 그런 일상으로 지내게 된다. 수정이도 그런 일상을 좋아한다. 어른들과 교감하는 일을 배우는 것이겠지.

수정이 말에 의하면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에 아빠가 통영 가는 것에 대해
“너 천리교 신앙하냐? 거긴 왜 가려고 해?” 한마디 하셨다 한다. 그래서
“수련회 간다고 천리교 신앙하는 거 아니에요. 거기 오는 아이들 신앙 안 하는 아이들도 많단 말이에요. 그리고 아빠는 천리교를 아세요? 천리교가 어떤지 알지도 못하면서 왜 나쁘게 생각하고 이상하게 보세요? 아빠도 천리교를 알아보고 말씀하세요.”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고 왔다 한다.
누가 옆에서 출세, 성공 이런 이야기를 하면 수정이는
“저는요, 그런 것보다는 행복하게 살 거예요.” 하고 자신 있게 말하는 녀석이다.
때때로 힘들어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면 엄마, 아빠가 먼저
“통영에 한 번 다녀오라.”며 권하고 차비까지 챙겨준다고 한다. 지난여름에도 비록 수련회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여기를 왔다 갔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부모님이 보내줘서 저산에 온 거라고 했다. 수정이가 이곳에 오면 힐링이 되고, 편안하고 행복해진다는 것을 가족들이 다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신악가 4장 일곱에 “여기는 이세상의 극락이라오. 나역시 어서어서 가고싶어라”하는 구절이 떠올랐다. ‘감사하구나, 이곳이 이 세상 극락처럼 여겨지고, 오고 싶게 하는 곳이구나.’ 참 기뻤다.

첫날 수정이랑 이야기 나누면서 지금 제일 큰 고민이 대학 진학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많이 불어난 체중과 그것으로 인한 작은 신상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서울로 돌아가기 전까지 9일간 새벽 5시 30분에 올리는 근행 참배를 권해 보았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예전에 있을 때 저녁근행에는 참배해도 새벽근행에 참배한 경우는 중요한 시험 볼 때 외는 없었다. 그리고 체중과 몸을 추스르기 위해서 완전단식을 사흘 같이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해 보았다. 두 가지 다 선뜻 하겠다고 작정해 주니 오히려 고마웠다. 이런 작정과 실천을 통해 자존감을 올리고, 앞으로의 삶에 밑거름이 되리라.

물론 수정이가 내려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는 중학교 친구들 만나는 일이다. 그런 날을 피해서 작정한 것인데, 날을 피해서 정하다 보니 12박 13일 머무는 기간 중 9일이 겨우겨우 맞춰졌다.
“9는 괴로움이 없어지는 숫자야. 그러니 네가 원하는 것을 수호받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새벽근행에 일어나는 것은 알아서 일어나라”고 하였다. 스스로 일어나는 것과 남이 깨워서 일어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덕, 부덕으로 나눠진다고 이야기하면서 더 큰 수호를 받고 싶다면 스스로 일어나서 근행을 올렸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더니 그러겠다고 약속하였다. 사실 작정을 시켰지만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다. ‘9일 못 하더라도 며칠이라도 새벽근행을 올리면 좋겠지.’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첫날 가만히 보니 알아서 일어나서 눈 비비면서도 근행을 올리는 모습에 놀랐다. 그사이에 많이 컸구나. 이젠 알아서도 새벽근행에도 참가하고.... 흐뭇하였다.
하루는 친구랑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작정한 날 중간쯤인데 자기 집에 와서 놀다가 같이 자고 가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살짝 염려스런 마음으로 귀 기울여 들어 보니
“나는 이모랑 약속한 것이 있어서 거기 가서 잘 수는 없어. 안 돼.”
라는 것이었다. 통화 끝나고
“그럼, 수정이는 어쩌고 싶은데?” 하고 진심을 물으니
“작정한 건 지켜야 하니깐 못 가죠. 끝날 때까지는.”
“그래. 대단한 데~. 그러면 지혜를 우리 집에 오라고 하면 어떨까? 그러면 너도 작정을 지키고, 걔랑 같이 지낼 수도 있으니 서로 좋잖아? 그리고 여긴 신님 집이니 지혜가 신님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아, 그러면 되겠네요.”
저런 마음이라면 9일간 작정도 잘 마치겠다 싶었다.
9일째 되는 마지막 새벽에는 수정이가 오히려 우리를 깨우는 일까지 생겼다. 여러 일정을 소화하느라 너무 지친 탓인지 부부 같이 일어나지를 못했다. 다행히 수정이가 깨우는 바람에 일어나 함께 새벽근행을 흥겹게 올렸다.
9일 작정 성공 축하로 때마침 생긴 문화상품권을 두 장 선물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은 수정이가 친구와 영화 보기로 계획했던 날이어서 딱 좋은 선물이 되었다.
“수정이가 9일간 새벽근행 작정 성공했다고 신님이 축하하시나 봐. 상품권까지 때맞춰 주시고. 자~ 이걸로 오늘 영화 봐~”
“감사합니당~! 이모, 내가 뭔가 신님이 좋아하시는 일을 하면 꼭 선물을 바로바로 내려 주시는 거 있죠~!”하면서 기뻐하였다.

사흘의 완전단식도 완전히 성공하였다.
사흘의 시간을 연달아 뺄 수도 없고,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잦아 감식, 보식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에 물도 안 먹는 완전단식을 하루, 하루, 하루 사흘을 나누어서 하도록 했다. 그래도 원하는 만큼의 건강을 얻고 체중을 줄일 수도 있었다.
수정이는 9살 무렵에 고성교회에서 실시하였던 사흘 단식수련회에 참가해 본 적이 있어서 체중이 불어나면 늘 “단식을 해야 하는 데....”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그 뒤로는 실천한 적이 없어서 공염불로 그쳤던 것을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성공하는 경험이 필요하였다. 그래야 앞으로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나도 원하는 것을 해내는 사람이구나 하는 자존감을 키워주고 싶었다.
하루 완전단식이라지만 전날 저녁을 먹은 뒤 온종일 아무것도 안 먹고, 그다음 날 아침 식사 전까지 물도 안 먹는 것이므로 32시간 완전단식이 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을 세 번 해냈다. 함께 동반단식을 하면서 ‘수정이가 이제 의지력도 많이 키워지고 있구나.’ 실감했다.

두 작정이 성공한 후 나누기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설마 신님 수호를 믿고 놀면서 원하는 대학을 바라는 건 아니겠지?”라고 한마디 덧붙였다.
“그럼요~.” 그 정도는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기특하게 대답한다.
저런 마음가짐이라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완전단식과 9일 새벽근행 작정 성공 후 자신감이 많이 생기고 신님의 수호를 받을 수 있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수정이는 통영에 사는 중학교 친구들이랑 아주 친하게 지낸다. 서로 같이 자고, 놀고 뒹군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거의 다 이혼한 가정이거나 부모 사이가 나빠 힘들어한단다. 그래서
“수정아, 친구들을 만나면 자연스레 자기 이야기를 하게 되잖아? 여기 통영에 있는 친구들은 부모가 이혼하거나 힘든 아이들이 많다고 했지? 이야기하다가 적당할 때, 자연스레 나는 이렇게 천리교 신앙해서 행복해졌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신앙을 권해 봐~. 친구들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니?”
“네~. 그럼 민지랑 4월쯤 일본 여행 갈 계획인데.... 터전에 가 볼까요?” 한다.
“그거 좋지. 일본은 물가가 비싸니까 야기 쯔메쇼에 숙소를 정해놓고 먹고 자고 하면서 주변 오사카 같은 관광지를 여행하면 되겠다. 별석도 2석쯤 받고 말이야. 일 석 2조네.” 하고 권했다.
물론 그렇게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녀석이 그렇게 생각해 주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새벽근행 후에는 매일 친필을 한 호씩 함께 읽고 그날 읽은 친필 중에 인상적인 구절, 느낌,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을 이야기 나누며 친필공부도 하였다. 어느 날
“신님은 좀 화가 나신 거 같아요. 사람들이 너무 시키는 대로 안 하고 말을 안 들으니까요.” 한다.
읽은 친필에서 노여움, 섭섭함 이런 구절들이 나왔던 날이었다. 전에도 친필을 가끔 읽어서인지 그런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대견스럽다. 용재인 우리도 잘 이해 못 하는 부분이 많은 데.......

수정이가 머문 기간에 우리 포교소의 춘계대제, 고성교회 춘계대제가 있어서 더 좋았다. 우리 포교소 월차제에는 수정이가 대학부로 고성교회 학생회 총무를 맡았던 승민이에게 오라고 연락해서 함께 즐겁게 근행을 올렸다. 녀석이 하는 짓마다 참 이쁘다.

그리고 고성교회 춘계대제일, 그날 서울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는데 수정이가 아팠다. 전날 1박 2일로 친구들 만나고 같이 밤늦게 돌아다니며 놀다가 감기에 걸린 것이었다. 그날 아침 일찍 고성교회로 함께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수훈을 전하고는
“우리 수정이, 아파서 우짜노? 좀 쉬었다가 나중에 따뜻해지면 버스 타고 올래?”
“그러면 근행시간에 늦잖아요. 안돼요. 같이 갈 거예요.”한다.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래도 돼요? 그럼 그렇게 할게요.” 할 거라고 상상했는데.
‘아~ 이 녀석, 언제 이렇게 신앙이 자란 거지?’ 감탄하며 마사지를 해주었다.

이렇게 13일 머무는 기간이 수정이의 신앙 다지기 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는 잘 이해가 되도록 조금씩, 하나씩 신앙을 가르쳐 왔는데, 이젠 그런 것들이 밑거름되어 단단한 기초가 되어 있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신앙이 쑥쑥 자라고, 이젠 확실히 다져졌다. 그리고 이번에 머문 시간을 통해 앞으로 수정이의 대학진로와 삶에 신앙이 함께 깊숙이 자리 잡아가는 것을 느꼈다.

서울 가는 버스를 타기 전에
“힘들거나 어려운 일, 괴로운 일이 있으면, 언제나 ‘나무천리왕님’을 부르며 근행을 올려라. 우리 수정이, 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와~. 사랑해~”하고 안아 주었더니
“네~. 집에 잘 다녀올게요~” 한다. 자기도 모르게 자기 입에서 나온 “집에 잘 다녀올게요.”라는 말에 수정이도 웃고, 나도 웃었다.
‘그럼! 여기가 신님이 계시는 진정한 네 집이지.’ 생각하며 나도 기쁜 맘으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