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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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년12월]순서의 리 - 김위태

2016.11.30 08:36

편집실 조회 수:62

11월 월차제 신전강화

 

순서의 리

 

김위태(칠암교회장)

 

오늘 제가 상급교회장님의 명을 받들어서 신전강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순서의 리’에 대해서입니다.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박)

 

순서의 리

순서라는 것은 국어사전에 보면 ‘정하여져 있는 차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길에서의 순서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이 길에서의 ‘리’는 위에서 밑으로 내려갑니다. 대교회, 교회, 포교소 하는 식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갑니다. 리에 문제가 생기면 수습하기가 굉장히 힘이 들게 됩니다.

둘째,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 있습니다.

이 길의 전도·포교는 밑에서 위로 올라갑니다. 먼저 서민들에게 전도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최악의 상황에 있는 사람을 구제하는 모습을 보고, 위의 사람들이 이 길을 신앙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길의 구제는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바지도 밑에서 위로 올라갑니다. 물론, 위에서 밑으로 내려오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밑에서 위로 올라갑니다.

태초에 어버이신님께서 인간을 창조한 이후 인간들에게 말을 가르쳤습니다. 제일 쉬운 말로 한 가지씩 순서대로 몇 년에 걸쳐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9억9천9백9십9만9천9백9십9년 전부터 사용하던 말을 계속 발전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현재에도 한국에서만 매년 3백여 개의 말이 새로 생겨서 국어사전에 올라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말에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흔하디흔한 물도 윗사람부터 아랫사람으로 순서를 거쳐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나긴 겨울밤에 사랑방에 모여서 이야기를 하면서 놉니다. 그때 물바가지가 방에 들어오면 아무나 먼저 먹는 것이 아니라, 나이 순서나 집안의 항렬 순서 등에 따라 윗사람부터 먹게 됩니다.

 

원전, 준원전에 있는 순서의 리

다음은 신악가와 친필, 천리교교조일화편 등에 나와 있는 순서의 리에 관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신악가의 제3장 여섯에의 내용입니다.

무리한 소원일랑 하지 말고서

한줄기 마음으로 되어오너라

여기서 ‘무리한 소원’이라고 하는 것은

- 씨앗을 뿌리지 않고 수확을 바라는 마음

- 나쁜 씨앗을 뿌려놓고 좋은 열매가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

- 오늘 뿌려놓고 내일 수확을 바라는 마음

- 젊었을 때는 사회 일을 하고, 은퇴하고서는 큰 교회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저 같은 사람입니다.

- 상급교회에 이바지를 소홀히 하면서 자신은 산하로부터 많은 이바지가 올라오기를 바라는 마음

- 과음, 과식, 과연, 과색 등을 하면서 몸은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 – 절대로 ‘과(過-)’ 자가 들어가는 말의 습관을 지니고는 오래 살 수가 없습니다.

- 덕을 쌓지 않으면서 자식이 훌륭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 남을 구제하기를 소홀히 하면서 큰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이상과 같은 무리한 소원은 절대로 신님이 받아주시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한줄기 마음’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 어버이신님의 마음에 순직하게 따라가는 마음 – 이친이 시키면 순직하게 “예” 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 형편이 좋든, 나쁘든, 어떤 경우든 신님 말씀대로 이 길을 나아가는 마음

이런 것들이 ‘한줄기 마음’입니다.

 

다음은 신악가 제6장 넷에 나와 있는 근행을 열심히 해야 도움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근행에 열심히 참여해야 도움을 받습니다. 이바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첫째가 근행입니다.

잘도잘도 근행하며 따라왔구나

이것이 도움의 근본이 된다

당시 근행을 못 보게 정부에서 탄압을 많이 했습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근행을 열심히 보고 있다는 교조님의 격려 말씀입니다. ‘잘도잘도 근행하며 따라왔구나’ 하는 교조님의 격려 말씀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전 진주님께서는 ‘만인의 모본’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교조님이 쓰신 친필에서는, 수훈보다 근행에 더 비중을 두고 깨우치고 있음을 여러분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근행과 수훈에 대해 각자 자신의 몸과 관련 시켜서 그 수호를 생각해 볼 때, 뭔가 근행보다는 수훈쪽에 비중을 크게 둘 것같이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오히려 근행에 비중을 많이 두고 깨우쳐 주고 계십니다.

친필에 보면 ‘근행’이라는 단어는 85회 정도 나옵니다. 하지만, ‘수훈’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은 근행을 보지 않으면 수훈을 아무리 전해봐야 수호가 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근행을 소홀히 한 용재는 수훈을 아무리 전해봐도 수호가 나지 않습니다. 근행을 정성껏 본 용재에게는 근행의 리가 혼에 많이 쌓여서 수훈을 전하면 교조님이 그 몸에 듭셔서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수훈을 1천 번 정도 전하면 교조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모두 그 정도는 하셨겠지만, 수훈을 1천 번에서 2천 번 정도는 해야 교조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악가 둘에는 신기로운 역사를 하기 전에는 신님께 여쭈어서 허락을 받는 것이 순서라는 것입니다.

신기로운 역사를 할 것이며는

신님께 여쭈어서 일러주어라

이 신악가의 뜻은 신기로운 역사를 하고자 하면, 터전에 알려서 허락을 받은 다음에 시작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리를 받은 교회는 신전을 확장, 보수할 경우에 모두 터전에 알려서 승인을 받은 후에 가능하게 됩니다. 교회는 신님의 몸이기 때문에 신축, 보수는 터전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신전역사는 세 가지 중요한 순서가 있습니다.

첫째, 교회장을 비롯하여 모든 신자가 신전역사에 대하여 한마음 한뜻이 되어야 역사를 할 수 있습니다. 한마음 한뜻이 되지 않으면 역사가 곤란하게 됩니다. 사정이 먼저 생기기 때문입니다. 교회장님이나 역원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합니다.

둘째, 신전역사를 하기 전에 상급의 신전역사에 많은 이바지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정이 생기지 않고 순조롭게 역사가 진행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가 되고 나도 사정이 생기는 수가 있습니다.

셋째, 터전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고성교회 3대 교회장님께서는 우리 교회 역사를 하기 전에 설계서를 전도청에 가지고 가서 전도청장님에게 허락을 받는 모습을 제가 직접 봤습니다. 고성교회 신전역사 때는 다른 교회 신자들이 하는 얘기가 “고성교회는 상급의 신전역사에 많은 이바지를 하였기 때문에 반드시 사정도 생기지 않고 잘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상급에 이바지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친필 3호 47수는 남을 도와야 자신이 구제받는 것이 순서라는 것입니다.

잘 깨닫도록 가슴속 깊이 생각하라

남을 구제하면 제 몸 구제받는다

‘남을 도와야 자기 몸이 구제받는다.’라는 얘기는 수없이 많이 나오는 이야기이고 다른 종교에서도 이런 얘기는 많이 합니다.

구체적으로 남을 돕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근행에 열심히 참여해야 남을 구제하는 힘이 생깁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하신 분들은 교조님께서 한 가지 소원은 해결해 주실 겁니다. 우리가 수호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당시에는 모릅니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아, 내가 그때 수호를 받았구나.’ 하고 느끼게 됩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상급에 이바지를 많이 해야 남을 구제하는 힘이 생깁니다. 상급에 대해 본척만척하는 사람들은 수훈을 아무리 전해도 수호가 나지 않습니다. 상급에 청소나 당직을 하는 것도 남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교회는 신님의 몸이기 때문에 이곳에 와서 청소하거나 당직을 철저히 하시는 분들은 수훈을 전하면 수호가 잘 납니다.

남을 위해서 기원을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는 전도를 못 다니기 때문에 대신 근행시간에 기원을 정성껏 합니다. 삼전에 기원을 하는 시간이 7분 정도 걸립니다. 여러분들도 기원을 많이 해야 합니다. 이 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제가 아는 사람은 하루에 천 명에게 전도한다는 목표를 정하고 전도를 한다고 합니다.

노처녀 노총각이 결혼할 수 있도록 중매하는 것도 남을 구제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35세를 넘기게 되면 그 부모는 피가 마릅니다. 안 겪어본 사람은 잘 모릅니다.

구걸하는 걸인에게 적선하는 것도 남을 구제하는 것입니다. 전도를 나가서 구걸하는 걸인에게 천 원짜리 한 장을 주고 전도지를 전해보면 잘 받습니다.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것도 남을 돕는 것입니다. 고성교회에도 장학회가 있습니다. 저도 으뜸장학회 이사여서 매달 일정액의 장학금을 입금하고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제공하는 것도 남을 구제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밥 못 먹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배고픈 사람은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전해주는 것도 남을 돕는 것입니다.

 

친필 13호 108수는 남을 원망하는 것보다 자신을 원망하는 것이 순서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길이 있을지라도

남을 원망 말고 제 몸을 원망하라 13-108

이 말씀은 평소 어려운 일이 생기는 것도 모두 평소 자신이 써온 마음씨 그대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남을 원망하지 말고 자신을 원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했던 행동이 자기에게 되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남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천리교교전〉 제6장“인도”편에 기록되어 있는 원망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떠한 질병이나 불시의 재난, 괴로운 사정도 모두 각자의 반성을 촉구하시는 돈독하신 어버이마음의 표현이요, 참된 즐거운 삶으로 이끌어 주시는 자애로운 인도인 것이다. 그런데 어버이신님의 깊으신 마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다만 눈앞의 괴로움이나 고통에 마음이 사로잡혀, 자칫하면 미숙한 인간생각으로 남을 원망하고 하늘을 저주하며 세상을 한탄하는가 하면, 혹은 이상을 피안에서 구하기도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고통을 피안에서 구한다’라는 의미는 제 생각이기는 하지만, 무속신앙에 의존한다든지, 감언이설에 속아 거짓말에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천리교교조일화편〉 178편 ‘몸이 근본이야’에는 몸이 제일 중요한 것이고, 다음으로 금전이 중요하다는 내용입니다.

교조님께서는

“목숨이 제일 소중하다고들 한다. 몸이 근본이야. 금전은 둘째야. 지금 ‘불이야!’ 하면 꺼낼 수 있는 만큼은 꺼내겠지만, 몸이 타는 것도 상관 않고 꺼내는 사람은 없다. 홍수일 경우도 마찬가지야. 도둑이 들어왔을 때도 목숨이 소중하기 때문에 아까운 돈이지만 모두 내준단 말이야.

아플 때도 마찬가지야. 둘째가는 것을 아끼지 말고 빨리 베풀어서 신상을 구제받지 않으면 안 돼. 아까워하는 마음이 강하다는 것은 마치 타 죽는 것도 아랑곳없이 돈을 꺼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야. 아깝다고 생각하는 금전, 보물은 남고 몸은 버리게 된다. 그것은 마음 그대로지. 그러므로 둘째가는 것으로써 신상이 구제받는다면, 그것이 대난이 소난으로 되는 리인 거야. 잘 분간하라.”

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기타 지로키치가 전해 준 깨우침이다.

교조님께서는 돈으로 몸을 사야 한다고도 하셨습니다. 신상이 왔을 때 돈으로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소에 해두는 것이 신상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길의 많은 선배 선생님들께서는 모든 재산을 신님께 올린 후 생명을 구제받은 후 은혜보답을 위해 단독포교를 시작한 경우가 너무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많이 계시지만 옛날에는 더 많았습니다. 어떤 분은 잠자리는 다리 밑에서 해결하고, 가축을 기르는 축사에서 근행을 올리고, 공중전화부스에서 자면서 이 길을 걸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아무리 급해도 돈 받는 유료화장실에는 가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돈을 신님전에 올리기 위해서입니다. 또, 손자들이 돈을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돈을 빼앗아서 신전에 올리셨습니다. 또, 포교하실 적에는 식사를 대부분 밀가루죽으로 해결하셨다고 합니다. 모두 어머니께서 출직하신 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서울에 있는 우리 집에 오셔서 “돈이 얼마가 필요하다.”라고 하시면 그 액수가 당시 저의 한 달 월급이 되는 경우도 있고, 그 배가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돈을 드릴 때까지 가시지 않고 기다리시기도 하셨습니다. 말씀하신 그 액수를 채워드려야 했습니다.

 

1889. 10. 9 지도말씀은 옛 길이 새 길보다 중요한 것이 순서라는 것입니다.

옛 길이 있기 때문에 새 길이 있다. 옛 길은 어버이, 새 길은 자녀라 한다. 자아 자아, 차츰차츰 새 길을 걸으려 하기 때문에 옛 길을 잊는다.

위 지도말씀의 뜻은 옛 길이라는 것은 교조님께서 걸으신 50년 모본의 길입니다. 새 길이라는 것은 교조님의 모본 이후에 용재들이 따라 걸어간 길을 의미합니다. 용재들이 교조님의 모본의 길을 다 따라가면 좋은데 인간 생각으로, 자기 멋대로 가는 경우가 있으므로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는 교조님의 모본을 소홀히 생각하면 수호를 받을 수 없으므로 많은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 터전의 리를 소홀히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터전의 리를 소홀히 해도 처음에는 별 느낌이 없으니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기뿐만 아니라 주위의 다른 사람들까지 고통을 받을 수도 있게 됩니다.

교조님이나 선배 선생님들께서 겪으셨던,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체험이나 고통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어떤 때 알 수 있는가 하면, 우리가 목숨을 걸고 남을 구제하려고 노력을 해도 구제받지 못할 때 ‘과연 그렇구나!’ 하는 느낌을 체험하게 됩니다. ‘선배님들이나 교조님께서는 이런 때에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게 되면, 그 노고를 ‘과연 그렇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여기에 교복을 입고 있지만, 선배 선생님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박자목을 쥐고 나면 과연 그렇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선배 선생님들이 이런 고통을 느끼며 걸어왔다고 하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됩니다.

 

결론

이제 결론입니다.

고설선집 ‘신님에게 신용을 얻으려면’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님께 부탁을 드려도, 힘을 빌려주실 때도 있고, 빌려주지 않을 때도 있다. 빌려주지 않을 때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안 된다. 예를 들면 열심히 전도를 한다. 그리고는 몇 번 기원을 한다 해도 조금도 수호를 주시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면 우리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신님께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빌려주시지 않을 때는 어떤 때인가? 그것은 순서에 맞지 않는 실천을 할 때이다. 신님의 길에는 순서가 있다. 신님은 항상 순서를 통해 우리들에게 힘을 빌려주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순서가 얼마나 중요한가. 교회, 포교소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또, 개인, 가정의 문제도 순서를 잘못 택하면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선배 선생님들께서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망설이지 말고 순서를 정하여 하나하나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단, 교회 내에 큰 어려운 일이 생기면 모두가 차분한 마음이 되어야 하고, 조용히 교회 내부에서 해결하는 것이 최선의 순서라고 했습니다. 교회 내부의 일을 밖으로 들고 나가면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전 진주님께서는 “순서라는 것은 그 이친을 쫓아 뒤지지 않도록 나아가는 모습을 말하며 이친을 구심점으로 하여 실천 노력하는 모습, 그것이 순서가 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위 말씀의 뜻은 교회의 모든 용재와 신자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노력하는 것이 최고의 순서라는 것입니다.

이 길의 선배 선생님들께서는 순서의 리를 무시하면 간질병의 인연이 생긴다고 하였으며, 선후의 순서가 틀리면 자식이 약하게 자라며 보신을 해주어도 효과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 자녀들이 훌륭하게 성공하는데 큰 장애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까지 제 말씀을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4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