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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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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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70

 

귀여운 내 자녀에게 잘해줘서 고맙구나

 

박지수

 

보통 사람들은 어떤 위험이나 난처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두 가지 반응을 나타내는 데, 싸우거나 도망가거나 한다. 그것은 편도체에서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이다.

 

뇌는 생존에 관련된 것은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위험이 감지되면 편도체가 활성화되고 시상하부는 부신에 명령을 하여 아드레날린 호르몬을 분비하게 한다. 심장이 빨리 뛰면서 각 근육에 혈액이 빨리 공급되면서 힘이 생긴다.

이렇게 위급한 상황에선 싸우기 아니면 도망가기 반응이 나온다.

 

감정과 관련된 기억들은 편도체와 연관되어 있다.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해마와 나머지 뇌의 부분에 이것은 중요하니 꼭 기억하라고 말한다. 쥐는 고양이를 무서워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것은 쥐의 편도체 속에 기억되어 있다. 쥐의 편도체를 손상하면 고양이 앞에서도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편도체는 생존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발취한 글)

 

난처하거나 싫거나 위험한 상황에서는 재빨리 도망(회피)가는 게 살아남는 지혜로 우리 유전자에 입력되어 있다고 한다.

어느 방송에서 뺑소니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위와 같은 이야기도 곁들여 하였다. 누구나 보통의 경우는 교통사고를 내면 무의식적으로 도망가려고 하고, 실제로 도망가는 사람들이 많단다. 그 자리를 무의식적으로 피해서 일단 달아나려고 한다는 것이다. 아이일수록, 성인이 미숙한 사람일수록 그런 본능적인 반응을 더 많이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인격이 성숙한 성인은 자기 행위에 대해, 혹은 주변 상황에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인다고 하였다. 참말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월차제 전날 저녁, 몸은 고단하여 드러눕고 싶은 지경인데 아직도 할 일은 서너 가지 남아 있었다. 그런데 휴대폰으로 카톡이 하나 날아왔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친구인데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다는 것이다그 전날에 카톡을 했던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그때 이야기가 가부간에 결정이 나야 할 일이 있는데, 만약 안 되면 어떻게 할지 전전긍긍 걱정하였다. 나는 미리 걱정하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니, 결정될 때까지는 일단 편안히 지내고 있으라고 위로하였다. 그런데 결국 안 좋은 쪽으로 결정이 나서 염려하던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어휴.... 이를 어째? 큰일이네.“

하고는 내 일이 바빠서 그만 까맣게 잊어버렸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내 생각은 이렇게 이어진 것 같다.

위로한다고 통화를 하면 한 시간은 훌쩍 넘게 길어질 거야.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대부분 한 시간 이상으로 길어지지 않았는가.... 그러면 나는 밤늦게까지 월차제 준비가 끝나지 않는다. 밤늦게 자면 내일이 너무 힘들어질 테니 일단 잊어버리자.’

이렇게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내린 결론이 일단 잊어버리자!’ 아니었을까?

무의식적으로 도망가기, 회피였기에 내 일을 핑계 대며 까맣게 잊어갔을 것이다

 

다음날 월차제 새벽근행에 엎드리니 갑자기 그 친구 생각이 났다. 그런 일을 당하고서 얼마나 힘들까. 그 친구는 의논할 곳도 그다지 없는데 밤새 잠 못 자고 힘들어한 게 아닐까. 그런 힘든 상황을 알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친구의 어려움을 외면한 것이 너무 미안해졌다. 그리고 한마디 톡 날리고 잊어버린 내가 너무 이기적인 것 같고 기막혔다. 잊어도 어찌 그리 까맣게 잊을 수가 있을까 놀라울 정도였다. 물론 나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변명거리, 핑계이지 않은가.

내가 조금 힘들어지는 것을 피하고 싶은 좁은 마음이 어린아이같이 미숙하구나 싶으니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새벽근행 후에 소장님한테도 이야기하여 같이 그 친구를 위해 기원을 드리고, 오늘 3번 기원하겠다고 작정했다.

 

그리고 카톡을 다시 날렸다. 나름대로 마음의 정성을 담아서....

월차제 준비에 바쁜 아침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위로가 될 만한 이야기들과 가르침을 나름대로 전하였고, 몇 번인가 카톡을 주고받았다.

드디어

"~. 너무 고맙고~. ~ 너무 좋다. 인생 3! 이것은 위기가 아닌 기회~!!

막 힘이 나네~ 어쩐지 일이 잘될 것 같고~. 근데 지수야. 무슨 행사 중이지? 바쁠 텐데 내 걱정하지 말고 어서 일 봐~" 라는 답이 돌아왔다.

 

친구의 마음이 밝아진 것이다. 정말 기뻤다.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던 내 마음이 탁 놓이고 밝아졌다. 신님께서 일상적으로 던져주는 테스트에 합격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이렇게 몇 십 분 동안 마음을 내서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하니 상대방의 마음이 밝아지고 희망을 품게 된 것이다. 사소한 일로 보이지만, 나로서는 어버이신님께서 늘 가르치신 자신의 처지를 잊고 상대방을 위해 시간과 마음을 내어 구제하라는 깊은 의도에 한발 늦었지만 합격했구나!’ 는 생각이 들었다.

 

동광 교회장님께서 하신 강의에서 아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지난 4월 전도청 월차제 때도 하신 이야기다.

오사카 카와오치라는 마을에 큰 약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약국의 약사는 참으로 착하게 매일매일 약을 팔면 생기는 남은 동전을 항상 옆에 모아놨습니다. 모아놓았다가 뭘 하냐면 다음날 약국 앞을 지나가는 거지들에게 나눠줍니다. 밥 사 먹어라, 뭐라도 사 먹으라하며...  소문이 나니까 아침마다 거지가 모여들었고 나중에는 200명까지 줄을 섭니다. 매일 그렇게 거지가 장사진을 치고 있으니 장사에 방해가 되고 얼마나 귀찮겠습니까? 하지만 이 약사는 끊임없이 그렇게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척과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는데,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사는 모르고 자기는 눈을 떠보니 어느 무인도에 쓸려와 있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 살았다.’ 싶겠지만, 이때는 , 죽었다입니다. 왜냐면 옛날에는 구조대가 없습니다. 헬리콥터도 없고. 어디서 어떻게 사고 났는지 누구도 모릅니다. 구조하러 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배 타고 나가서 안 돌아오면 끝입니다. 이 사람도 이제 죽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가뜩이나 섬이 작아서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 나는 죽었구나!’ 생각하였는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물고기 세 마리가 죽어 있더랍니다. 그래서 주워 먹었습니다. 그런데 또 그다음 날 물고기 세 마리가 죽어있더라는 겁니다. 그다음 날 또 그랬습니다.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물고기가 죽어 있었습니다. ‘신기하다, 참 신기하다.’ 하면서 그걸 먹고 연명을 했는데 3개월쯤 지나자, 마침 그 앞을 지나가던 어부가 이 사람을 발견해서 구해 주었습니다. 목숨을 구제받았습니다. 얼마나 신기했겠습니까. ‘, 신님이 계신다. 신님이 도와주셨다.’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약국에 돌아와서 평소에 자기가 했던 일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은혜 갚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거지들에게 잔돈을 나눠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천리교의 포교사 한 분이 그 약국을 찾아갔습니다.

천리교입니다. 나라 현 산마이뎅 마을에 살아있는 신님이 계시는데 뵈러 가지 않겠습니까?”

하니까, 이 약사가 두 말도 하지 않고 바로 가겠다.’ 했습니다. 자기가 목숨을 구제받았으니 살아있는 신님이 계신다는데 꼭 가 뵙고 싶었습니다.

가니까 교조님께서

, 잘 돌아왔다. 기다리고 있었다.” 하셨습니다.

누가 찾아와도 교조님께선 내 귀여운 자녀 잘 돌아왔다.” 하시죠. 이 사람이(약사)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교조님께서 이어 하신 말씀이

나의 귀여운 자녀들에게 잘해주어서 정말로 고마웠다.” 그러셨습니다. 이분이 눈물을 흘리며 , 이분이야말로 정말로 어버이시구나. 신님이시구나.’ 깊이 감동했답니다. 교조님 말씀은 그 약국 앞에 찾아온 거지들에게 잘해줘서 고맙다는 말이지요. 교조님은 또 빙긋 웃으시면서

그래서 나도 좀 갚아주었지!” 그러셨습니다. 물고기를 매일 3마리씩 보내서 살려주었다는 말씀이시죠.

 

동광 회장님이 들려주신 이 이야기가 다시 생각나면서 마치 교조님께서

"고맙구나. 지수야. 내 귀여운 자녀에게 잘해 줘서 정말 고맙구나." 하시는 것 같았다. 무겁던 마음이 밝아지고 기분이 좋아지니 콧노래가 랄랄라~ 절로 나온다.

어제의 부끄러운 행동, 미숙한 마음에서 나타난 회피, 도망 반응을 이렇게 수습하며 이나마 조금이라도 성인 되는 것 같아 흐뭇하다.

 

상대가 만족할 때까지 들어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상대 마음이 만족스러워질 때까지 위로하고 격려해 주는 것.

이것이 곧 내 마음도 밝고 즐겁게 만드는 길임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다.

둘 다 만족스러워하니 신님, 교조님께서도 기뻐하시는 것 같다.

 

모두, 어버이의 대리를 하는 거야. 만족시켜서 이끌고 가는 것이 어버이의 역할이야. (1888. 7. 7)

나날이 바쁘다, 틈이 없다고 하는데, 어째서 바쁜가. 모두들 찾아온다. 만족시켜 주도록. 만족의 리로 세상을 다스리도록. (1895. 10. 7 10)

 

어버이라 한다, 자식이라 한다, 자식에게 충분히 만족시켜서 어버이가 즐긴다. 자식이 성인하면 어버이를 소중히 한다, 이것이 낙이야. 이것이 세상을 다스리는 리, 모든 일이 당장에 다스려진다. (1895. 11. 14 )

 

모두 좋은 도구만으로 일을 할 수 없다. 좋은 도구, 나쁜 도구 모아서 된다. 어떻든 만족은 이 길의 거름, . 만족은 즐거움의 꽃이 피는 것이니. (1901. 6. 14)

어려운, 어려운 가운데 하나의 리, 이것도 하나 잘 듣고 이야기라 한다. 또 만족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만족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이 길이라 한다. …… 들려주는 데도 마음에 만족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만족을 주는 데 있어 물질로써 당장 어떻게 하려 하나, 좀처럼 그렇게는 안 된다. (1902. 8. 10)

 

말로서라도 만족을 주면 거기서 하나 리를 알게 된다. 과연 훌륭하구나 하는 마음 가져 다오. 이런 사람 저런 사람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안 돼 저것은 안 돼 하는 것은 이 길의 흠이라 한다. 이쪽이 흐리고 저쪽이 흐리므로 시간이 걸린다. (1904.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