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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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69

 

행복을 부르는 질문

 

 

박지수

 

오늘 김해에서 만난 분이 나더러

"오늘 얼굴이 왜 그래요? .... 살 쪘어요? 부었나?“

"그래요? 잘 먹어서 살 쪘나 보죠.“

아닌데.. 이건 살이 찐 게 아니고... (뭔가 몸에 문제가 있어서) 부은 건데...”

글쎄요..”

"아니야, 이건 살이 아니고, 날도 더운데.. 어쩌고저쩌고..."하신다.

날 더운데 조심하란 말씀? 아님 날 더운데 무리하지 말고 쉬라는 말씀???

하여튼 기분이 별로였다.

 

살다 보면 잠을 설치거나 무리를 해서 몸살이 나거나 하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하룻밤만 잠을 설쳐도 얼굴이 푸석하고 붓질 않는가.

그것을 가지고 어디 아프냐는 둥, 무슨 건강상의 문제가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자기생각을 밀어붙이는 사람을 보면 기가 막힌다. 의사도 한의사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닌데 말이다. 그냥 견디는 것도 힘든 무더위 한여름에 어디가 아픈 게 틀림없다는 식으로 남의 기분을 망쳐 놓는다.

 

웃음치료에서 하는 프로그램 중에 행복을 부르는 질문이 있다.

"오늘 얼굴이 환한데, 무슨 좋은 일 있으시죠?“

"오늘 너무 멋진데, 기분 좋은 일 있으신가요?"하고 묻는 것이다.

누구라도 그런 질문을 받으면 얼굴이 환해질 좋은 일이 뭐가 있었나?’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무심히 지나친 뭔가 좋았던 일, 행복했던 일들을 반드시 찾아내게 된다. 하루를 지내는 동안 좋은 일, 감사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을 예사로 당연하게 넘기다가 행복을 부르는 질문 하나를 받고 다시 일깨우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얼굴이 더욱 환하게 밝아지고, 삶이 더욱 만족스러워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질문 하나로 상대를 더 행복하게 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행복을 부르는 질문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예를 들어보면

넥타이가 정말 멋집니다. 고르신 분의 안목이 대단하신데 어느 분의 센스인가요?”

기분 좋아 보이네요.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신가요?”

오늘 새로 깨닫거나 배운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 행복했던 일은 무엇이 있었나요?”

하루를 지내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일은?”

최근에 가장 축하할 일은?”

이렇게 칭찬하는 말로 시작하는 질문, 좋은 기억이나 일을 떠올리게 하는 질문들이다.

 

반대로 불행을 부르는 질문은 뭘까?

얼굴이 어두워 보이는데 무슨 불편한 일이 있으신가요?”

어디 아프신 것 같은데 괜찮으십니까?”

울적해 보이는데 무슨 걱정거리 있으세요?”

왜 그래? 무슨 문제 있어?” 같은 말이다.

이 말들을 진심으로 걱정해서 묻는 경우도 있고, 이 말들이 필요할 때도 있을 테지만 상대가 정말로 아파 보인다 해도 그것을 상기시켜 주는 말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굳이 얼굴이 어두운 이유나 기분이 울적한 이유를 다시 생각나게 할 필요는 없겠지. 아픈 것을 상기시켜서 더 아프게 만들지 말아야한다는 논리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행복으로 가느냐, 불행으로 가느냐 방향이 바뀐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무심코 하는 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언젠가 읽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노스님이 돌침대를 선물 받으셨다. 연세가 드시니 조금씩 몸이 아프거나, 무겁기도 한 것을 알고 주변 신도들이 선물을 한 것이었다. 돌침대를 선물 받아서 아픈 곳에 따끈하게 지지니 좋았단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돌침대를 갖다 버리라고 하셨다.

아니, 그동안 좋아하며 늘 애용하시더니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이 돌침대를 들여놓고 나니 아픈 곳을 뜨겁게 지질 수 있어서 시원하고 좋았지. 그런데 그러다 보니 어딘가 아픈 곳이 있는가 늘 찾게 되었네. 그전에는 아프지 않거나 조금 아파도 무시할 정도였는데 이제는 그동안 몰랐던 곳까지도 안 아픈 곳이 없어. 이 돌침대가 아픈 곳을 늘 찾게 하니 이러다 정말로 내가 안 아픈 곳이 없는 노인네가 되겠네. 그래서 돌침대는 이제 사양하겠네.”하셨단다.

그 글을 읽으며 , 그럴 수도 있겠다!” 공감했기에 기억에 남아 있다.

 

오늘 들은 질문은 불행을 부르는 질문이었다.

기분이 살짝 나빠지고, 어딘가 몸이 아픈 곳이 있는가 찾게 되고, 혹은 스스로 어딘가 좋지 않은 것이 아닐까 걱정할 수도 있게 만든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게 만드는 질문인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 오지랖도 넓으시네. 들어서 기분 좋은 이야기도 아닌데 그렇게 꼭 꼬집어서 말해야 되나? 또 걱정스런 마음에 그렇게 말했으면 됐지. 내가 아무 일 없다고 말하는데도 강조까지 하면서 자기 말이 맞는다고 우기다니! 어처구니가 없군. 내 몸에 대해서 자기가 그렇게 잘 아나? 내가 아니라면 아닌 것이지, 내가 아프기라도 바라는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런 이치를 알고 있으니까 그 정도 선에서 '그건 괜한 당신 생각이고~!'하며 부정적인 생각을 잘라 내었지만…….

 

평소에 이런 이치를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런 질문에 아무렇지도 않기가 어렵다. 사람이란 관계 속에서 사는 동물이다 보니, 나에 대해서 말하는 다른 사람의 말에 전혀 아무렇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나도 그 말을 듣고 '어젯밤에 잠을 잘 못 잤던가? 부종이 생겼다면 신장이 나쁜가?' 따위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걸 느꼈다. 이렇게 자신을 보지 못하면 계속 부정적인 생각으로 끌려가기가 십상이다

세 사람이 연이어 "당신 어디가 아픈 거 같다. 무슨 큰 병에 걸린 것 같다."고 이야기하면 아주 건강한 사람이라도 실제로 아프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말의 힘이란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참 조심해야겠다고 반성했다.

나는 걱정돼서 물어본 말에 상대 기분이 다운되고, 우울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조금은 어둡거나 힘들어보여도 일단은 밝게 한마디를 건네는 연습을 해야겠다. 내 말 한마디에 상대가 즐겁고 행복해 질수 있도록, 감사를 찾을 수 있도록...

명심하고 또 명심하면서 노력할 일이다.

 

말 하나가 용재의 힘(1895. 10. 7)

 

모두 오는 자에게 부드러운 말씨를 써 다오, 써 다오. (……)

말은 이 길의 거름, 말의 단노는 이 길의 거름, 거름. (1901. 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