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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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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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월차제 신전강화

 

신님의 수호에 의해


유상준(성진교회장)

 

반갑습니다. 무더운 날씨 가운데에도 월차제 근행을 즐겁게 올렸습니다. 저는 오늘의 근행이 특별하게 생각됩니다. 제가 어제 무리한 일을 해서 오늘 월차제 근행을 못 볼 줄 알았습니다. 제가 어제 벌초를 갔다가 무리를 좀 했습니다. 오늘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4)

 

신님의 수호에 의해

 

오늘 감화 지명을 받아서 한 달 전부터 이것저것 써봤습니다. 어제까지 써놨는데 그건 다 그만 두고 제가 겪었던 일을 간단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제 벌초를 가서 한 군데 풀을 베고 나니 10시 반 정도밖에 안 됐습니다. 제가 어디를 가도 체력만은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묘지가 엄청 넓은데, 나머지를 모두 마저 하기로 했습니다. 집사람에게는 나머지까지 모두 한다고 하면 못하게 말릴 것 같아서 오후 1시쯤까지 하고 마치고 간다고 거짓으로 말해놨습니다.

그렇게 나머지 작업을 하다 보니 어깨가 아프기도 하는 등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정도만 하고 갈까.’ 하고 생각하다 한 바퀴 더 돌았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접어들었습니다.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억지로 묘지 전체 작업을 마치고 나니까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일어날 수가 없을 정도가 됐습니다.

건강할 때에는 이 정도 가지고 큰일 나겠는가?’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수영을 하다가도 옆에서 보기에는 그냥 헤엄쳐서 나오면 될 것 같지만 물속에서 맥이 빠져버리면 헤어나기가 힘들게 되고 물속으로 그대로 가라앉아 죽고 마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어제도 그런 상황과 비슷한 처지가 됐던 겁니다. 생각하기로 이렇게 죽고 마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집에도 가기 싫고 모든 게 귀찮았습니다.

그러던 와중에도 어디에선가 빨리 집에 가라. 교회에 가라.”라는 소리가 들려와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 기계를 메고, 연장을 챙겨서 내려왔습니다. 저도 기억은 제대로 안 나는데 집사람 얘기로 그렇게 교회에 와서 있는데 차에서 못 내리고 있더랍니다. 어떻게 차에서 내려서 주방 뒤쪽 턱에 앉아있는데, 눈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백지 상태가 되었습니다. 어지럽기만 하고 멍하게 있으니까 옆에 사람들이 걱정이 돼서 이런 말 저런 말을 붙여주는데, 그 당시는 그게 참 귀찮게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자리를 옮겨서 빨리 숙소 방으로 가야되겠다는 생각에 방 쪽으로 걷다가 다시 주저앉았습니다.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 얼핏 들으니 산청교회 사모님이 내 눈을 보고 눈이 풀렸다고 머리에 찬물을 끼얹으라고 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머리에 찬물을 끼얹어서 겨우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눈앞이 어지러워서 주위에 누가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람이 가는가 싶었습니다. 주위에서 병원에 빨리 가봐야 된다고 서두르는 중에도 저는 조금 있어보고 병원에 가겠다고 하고는 겨우 방으로 옮겨갔습니다. 방에 있다 보니 조금씩 나아지긴 했습니다.

우리가 팔, 다리를 움직이고, 먹고, 마시고, 보고 하는 것들을 건강한 상태에서는 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버이신님의 수호가 없으면 아무리 간단한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항상 어버이신님의 수호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당연하다.’라고 생각되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데 우리는 잘 잊고 삽니다. 십전의 수호 끝에 보면 우리들은 나날이 어버이신님의 수호에 의해 눈으로 사물을 식별하고, 귀로 이치를 분간해 듣고 코로 냄새를 구분하고 입으로 씹어서 맛을 보며 손으로 일을 하고 다리로 걷는 등 마음대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틀림없이 어버이신님의 수호에 의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건강한 상태에서는 그런 걸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움직이는 것도 당연하다.’라고 생각해서 감사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고성교회장님도 가끔 말씀하시듯이 아침에 일어나는 것 하나만 해도 엄청나게 감사하다는 것을 느껴야 되는데 저 자신부터 그걸 잊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친필에도

인간은 모두가 신의 대물이야

신의 자유자재 이것을 모르는가 3-12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정신을 좀 차리고 있자니 누가 와서 생선회를 먹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늦은 오후였는데 점심도 제대로 못 먹고 있던 상태였는데도 배고픈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분 덕택에 사천에 가서 회도 먹고 올 수 있게 됐습니다.

오늘 아침근행시간에도 문을 다 열어놓고 자서 근행 보는 소리가 그대로 방에 들렸을 텐데도 그 소리도 하나도 못 듣고 푹 잤습니다. 그렇게 푹 잔 덕분에 조금 전의 월차제 근행도 잘 볼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신님의 수호는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도말씀에

이 길의 사람들이 항상 진실한 신님이야, 교조님이야 하면서 나날이 신의 가르침을 굳게 지킨다면, 10리를 가면 10, 20리를 가면 20, 30리를 가면 30, 100리를 가면 100, 외딴 곳에 가더라도 어떻든 혼자 고생시키지는 않겠다. 어느 때라도 하늘에서 신이 단단히 버티어 줄 것이니. (1887. 4. 3)

라고 하셨습니다.

어제 같은 경우, 제가 신앙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갔을지도 모릅니다. 저희 집안은 단명인연이 있습니다. 저의 나이가 아직 많지는 않지만 저희 부모들에 비하면 장수를 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가더라도 안타까운 것 그렇게 없을지도 모릅니다. 가는 길에 아프지 않고 갈 수만 있으면 하는 게 바람입니다. 더 오래 살고 하는 것은 큰 바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석증을 통해 반성참회

 

제가 이석증으로 고생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3년 전쯤에 쌍둥이 손자를 두고 나서 쌍둥이를 키우면서 힘든 것에 대한 원망 때문에 큰 가르침으로 이석증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작년에도 고성교회 월차제에 왔다가 이석증으로 고생을 했고, 올해도 같은 날인 620일에 이석증이 와서 근행을 못 볼 정도로 고생을 했습니다. 월차제 근행 보기 바로 전에 신전으로 이어지는 구름다리에서 신을 신다가 이석증 전조증상이 와서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쓰러진다는 것은 다른 분들을 걱정시키는 것에 앞서 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입니다. 교만해서 그런 것만 아니라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겨우 정신을 차려서 난간을 잡고 기숙사 3층 숙소까지 이동했습니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가다가 주저앉기도 할 정도로 심했습니다.

이석증이라는 것은 의학적으로 보면 귀 부분에 달팽이관이 고리에 걸려있어야 하는데, 그게 빠지는 바람에 어지럼증과 구토 증상을 유발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한번 증상이 나타나면 정신을 못 차립니다. 이번에는 좀 약하게 맞았습니다. 집사람은 교회장님을 모시고 와서 수훈도 받고 해야겠다고 했지만, 근행시간이 임박해서 그렇게 할 수도 없어서 집사람에게는 어서 신전에 가서 근행을 보라고 시키고 저는 얼른 짐을 챙겼습니다. 세 번의 이석증 증상을 경험하다보니 전조증상이 나타났을 때 대처요령이 좀 생겼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간다고 말도 안 하고 사감선생님에게 부탁해서 터미널까지 차로 태워달라고 해서 갔습니다.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로 올라가다 신탄진휴게소에서 버스가 잠시 주차해서 쉬고 있는데 교회장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집사람이, 제가 말없이 출발한 이후에 교회장님에게 수훈을 전해달라고 요청을 해서, 숙소에 오셨는데 아프다고 하던 사람이 사라졌으니 얼마나 놀라셨겠습니까? 교회장님께 참 죄송하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많은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저의 나이가 요즘으로 하면 청춘인데 교회장님의 입장에서 봐도 저의 나이가 아직은 아까울 지도 모릅니다. ‘교회장님께서 저 때문에 얼마나 놀라셨을까.’를 생각하니 전화를 받으면서도 눈물이 좀 났습니다.

그렇게 집에 와있다 보니 집사람이며 여기저기서 걱정이 돼서 전화도 오고, 저는 또 저대로 회복을 좀 해서 신전에 가서 근행도 보고 반성참회도 하면서 어느 정도 회복을 해서 오늘 또 이렇게 이 자리에 설 수 있을 정도가 됐습니다.

우리가 쉽게 몸이 아프다 하면 인연이 어떻다. 운명이 어떻다.” 하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친필에 보면

어떤 것이든 질병이나 아픔이란 전혀 없다

신의 서두름 인도인 거야 2-7

온 세상 어디가 나쁘다 아프다 한다

신의 길잡이 인도임을 모르고서 2-22

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남의 앞에서는 나이가 많지 않다고 하지만, 이제는 집사람에게 맡겨놓고 산속에 들어가서 자연인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많습니다. 집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곤 하니까 처음에는 안 된다.”라고 반대하다가 요즘에는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대신 한 달에 한 번, 월차제날은 내려오랍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어버이신님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야 이놈아, 벌써 네가 그런 마음을 먹으면 되겠나?” 하시면서 말이죠.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160년제까지 터전귀참을 한다고 얘기 해놨습니다. 그때가 되면 저의 나이가 98살이 됩니다. 그때까지 참배를 한다고 하는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니까 어버이신님께서 머리에 그런 신상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앞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 되겠다.’ 하는 마음작정을 하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님의 입장에서 아직까지 쓸 만한 사람이라고 여기셔서 손질하면서 쓰시는 것 같습니다. 이석증을 일 년에 한 번씩 맞고 있지만 큰 탈 없이 잘 지나가고 있습니다.

 

모이는 리는 크다

 

이번에 여름캠프에 처음으로 참석해봤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초등학생 1명에, 어른 4명 참가했습니다. 초등학생 1명과 저와 집사람은 참가를 하고, 어른 2명은 참가비를 내고 등록만 했습니다. 다른 데는 애들만 십여 명 데리고 오기도 했다고 하는데, 저에 비하면 그런 사람들은 참 덕자라고 생각합니다. 성진교회 월차제를 마치고 바로 내려와서 13일부터 15일까지 참가를 했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산으로 둘러싸인 야외 풋살경기장 한가운데에 천막을 깔아서 자리를 만들고 교회장님을 모시고 근행을 보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첫 날 그렇게 야외에서 근행을 보는데 너무 감격에 겨워 눈물이 다 날 정도였습니다. 고성교회 안에서 할 때는 잘 몰랐는데 밖에서 아이들과 같이 게임도 하고 뛰놀고 풀장에서 물놀이도 하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밖에 나가면 뜨거운 공기에 땀이 등줄기를 타고 줄줄 흐르는데 숙소 안에만 들어가면 에어컨 바람이 시원해서 너무 좋았습니다.

삼일 동안 아이들과 같이 게임도 하고, 같이 어울리고, 같이 먹고, 같이 노래 연습도 하고, 율동도 하는 게 모두 너무 즐거웠습니다.

아무래도 고성교회를 떠나 밖에서 하다 보니 경비가 많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안전 문제도 있고, 경비 문제도 있어서 밖으로 나가서 하는 것을 꺼려한다는 얘기도 듣기는 했습니다만, 우리가 신님에게 한줄기 마음으로 다가간다면 밖에 나가더라도 아무 탈 없이 잘 마치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경비 관계에 있어서도 우리가 마음만 모으면 어떠한 것도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에도 캠프를 외부 펜션을 빌려서 하게 되면 그 비용을 우리 성진교회에서 한번 해보자.’라고 해서 마음을 모아서 하면 어떠한 것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겠다는 마음을 작정하고 마음만 모으면 하다못해 그 10분의 1이라도 신님이 수호해주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 되면 100분의 1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굳게 마음을 다졌습니다.

모이는 리는 크다.’라고 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유리컵에 개미를 넣게 되면 먹을 게 없어서 개미가 모두 다시 밖으로 기어 나옵니다. 하지만, 그 컵에 설탕을 조금 넣어두게 되면 개미가 들어가 컵 안이 개미로 가득 차게 됩니다. ‘모으는 리는 작지만, 모이는 리는 크다.’라고 합니다. 컵 속에 설탕을 넣어두는 것과 같이, 모이는 리만 있으면 물질은 자연히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앞의 작은 일에 집착하기 보다는 나날이 덕을 쌓고 베품과 겸허한 마음을 잊지 않고 해나간다면 컵 속의 개미처럼 모이는 리는 충분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다 같이 조금씩이라도, 다만 얼마라도 내년 여름캠프에 마음을 모아서 돈이 모인다면 또 밖으로 캠프를 가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지도하신 선생님들도 고생 참 많으셨습니다. 모든 분들이 그 더운데 아이들 챙긴다고 수고들 하셨습니다. 더군다나 어린이담당을 맡으셨던 선생님들이 땡볕아래서도 인상 하나 안 찌푸리고 즐겁게 아이들을 지도하는 모습이 참으로 고귀해보였습니다. 거기에는 누가 돈을 따로 챙겨주는 것도 아니고 히노끼싱하는 것 자체인데 그렇게 열심히 하시는 모습들이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내년에도 더욱 발전된 여름캠프가 되실 수 있기를 기원 드리면서 저의 두서없는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