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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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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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월차제 신전강화

 

아이들에게 신앙을 전합니다

 

 

이상봉(교회장)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7월 월차제근행 즐겁게 올렸습니다. 날씨도 무더운데 참배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바를 말씀드릴 테니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4)

 

소년회 목표

 

매년 7월이 되면 터전에서 726일부터 84일까지 어린이 터전귀참 행사가 있습니다. 천리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신앙을 전하기 위해서 소년회가 있습니다. 2대 진주님께서 교조80년제인 1966년에 아이들에게 신앙을 전해가자.’라는 기치를 내걸고 소년회를 만드셨습니다.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하는 것을 전도라고 합니다. 원래 가족들에게 신앙을 전해가는 것을 전도라 하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길을 전해가는 것은 포교라고 구분지어서 얘기하기도 합니다. 사실은 포교보다도 전도가 더 중요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이 길은 이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지도말씀에 나와 있고, 아이들은 키우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다. 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소년회를 만들 때 2대 진주님께서는 이것은 포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 길에 종사하는 것은 그런 각오로 해야 한다. 부모가 아이들을 그대로 놔둬도 따라오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키우지 않으면 따라오지 않는다.”라고 하신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소년회가 올해로 50주년이 됩니다. 그래서 올해는 그 기념식을 합니다. 평상시에는 84일까지 10일 동안 어린이 터전귀참행사가 열리지만, 올해는 하루 더 연장해서 85일까지 하게 되어 있습니다.

소년회의 목표에 보면 세 가지 약속이 있습니다. ‘삶의 기쁨을 누리겠습니다. 물건을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사이좋게 서로 돕겠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가 세 가지 약속입니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천리교에서 얘기하는 가장 기초적인 얘기지만, 어른인 우리들도 이것들을 평소에 잘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초를 제대로 닦아놓지 못하면 흔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년회의 세 가지 약속이라는 것을 들을 때마다 정말 그렇게 하고 있는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첫 번째인 삶의 기쁨을 누리겠습니다.’와 같이 우리가 삶에 대해서 기쁨을 가지고 있는가?

이번 달 산하교회 순교를 다니면서 드린 말씀 중에

천리교 신앙을 할 때 우리가 즐겁게 생각하고 의지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돈이나 물질이나 집이나 권력과 같은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데 있어서 살리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가지고 의지하는 것이다. ‘숨 하나가 나비요 꽃이다.’라고 가르쳐주신 것처럼 살리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즐거움을 가지고 낙으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즐거움이 없는가? 낙이 없는가?’ 하면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기대가 높으면 높을수록 나에게 즐거움이 오지 않고 도리어 그렇게 바라고 기대하는 것들이 안 이루어질 때 나에게 괴로움이나 고통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는 것 자체에 대해서 즐거움을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사는 데 무슨 즐거움이 있느냐? 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병원에 수훈을 전하러 중환자실이나 위중한 사람들이 누워있는 병동에 가보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건강을 잃고 사는 것 자체가 힘들고 괴로움인 겁니다. 다른 게 없습니다. 의식주에서 남보다 잘 누리는가, 그렇지 않은 것과 전혀 상관없이 사는 것이 힘든 겁니다. 그런 걸 생각해 보면 아프지 않고 이런 이야기를 건강한 모습으로 듣고 있는 우리들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상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은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가에 대해서 잘 압니다. 대단한 것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도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인생을 아주 값지게 사는 것입니다. 인생을 그렇게 살다보면 물질이나 부()는 거기에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낙이 없이 내가 바라는 대로,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즐거움이 없다고 하면 마음이 쓰러지게 되는 겁니다. 거기에 어떤 즐거움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즐거움이 없으면 신님도 우리 마음에 들어와 활동해주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살아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이들은 대단한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항상 즐겁습니다. 어른들은 바라는 것은 많고 이루려는 것도 많고, 걱정도 많아서 즐거움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곰곰이 잘 살펴보고 살아가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나타나는 모습 그대로

 

이 세상에는 자세히 생각해보면 선과 악이 같이 섞여있다고 했습니다. 무엇이든 선이나 악으로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요즘 매스컴에서 종종 나옵니다만 사회에서 자기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했을 때는 스스럼없이 인터넷 SNS를 통해서 올려버립니다. 자신의 입장에서 촬영을 해서 사진을 올리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도 서울의 어느 지하철역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어떤 사람들에게서 구타를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구타를 당한 사람이 자신이 억울하다고 인터넷에 사진을 올렸습니다. 이에 때린 사람에게 욕도 하고 많은 질타가 있었습니다. 경찰에서 조사를 받아보니까 서로 잘못해서 때리고 맞은 것이었습니다. 같이 때린 것이었는데 외국인이 맞은 것만 올리고 보니까 사람들이 그것만 보고 때린 사람에 대해서 질타를 했던 겁니다. 이런 식의 일에 대해서 살펴볼 때, 양쪽의 말을 들어보면 모두 일리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법정에서 싸우는 양쪽의 얘기를 들어보면 다 일리가 있고 맞는 말입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입니다. 자기 편리한 쪽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방에 의해서 잘못된 결과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이 길에서 가르치는 여덟 가지 티끌이 있는데 그 중에 사람과 관계된 미워하고 분노하는 것 등을 잘 살펴보면 상대가 다 원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원망하고 미워하고 분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에게 물어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틀림없이 있습니다. 이유 없이 그럴 리가 절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자기 편한대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해버립니다. 신앙을 하는 우리들은,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거나 원망하는 일이 있으면 그 사람은 왜 그렇게 생각할까? 내가 가지고 있는 티끌이 그 사람을 통해서 비춰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혼자 외톨이, 독불장군으로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서로 도와가며 상대방에게 나타나고 비춰지는 모습을 통해서 내 마음을 보고 자신을 깨달아가면서 사는 것이 이 길의 신앙이라고 배우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리대로, 우리 마음대로, 티끌대로 모든 것이 이 세상에 비춰지고 있다고 깨닫게 되면 세상에는 남을 원망하고 탓할 것도 없고 모든 것이 리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그렇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면 신님의 수호로 우리 몸 안에서 살리어지는 모든 수호들이 정상적으로 조화를 이뤄서 사는 것이 얼마나 값지고 기쁜 것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식이 공부를 못한다고, 좋은 학교를 못 갔다고, 취직이 잘 안 된다고 괜히 마음 졸이면서 그렇게 괴롭게 살 필요는 하나도 없는 겁니다. 우리는 신님의 리의 섭리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마음을 졸이면서 살 필요가 없는 겁니다. 설령 어떤 마디가 있어서 좋지 않은 일이 있다고 해도 우리가 천리교 신앙을 한다고 하면 어버이신님으로부터 육체를 빌려받아서 우리 마음 쓴 대로 영혼대로 계속 이어지는 것인데 그런 걸 덧없다고 생각해버리면 바르게 이 길을 신앙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집착을 가지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내 마음을 다스려서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이 삶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겁니다.

 

신앙을 전해가는 여름캠프

 

이번 여름수련회는 부모와 함께 하는 즐거운 여름캠프라는 주제로 거제의 시설을 빌려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학생, 어린이들만을 대상으로 수련회를 개최했는데 이번에는 부모와 함께 하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이런 것도 신앙을 전해 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들의 신앙을 보고 자녀들이 따라온다고 하는데, 말로만 해서는 따라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공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아이라고 할지라도, 부모가 이래라 저래라 할지라도, 자기 자신이 이해가 가고 공감이 되어야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평상시의 생활태도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소년회에 보면 나이대 별로 성인목표라는 것이 있습니다. 세 살 때는 무엇을 하고, 초등학교 고학년에는 무엇을 하고, 중학교에 가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신앙적인 지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몇 살 때는 밥 먹을 때 어버이신님 감사히 먹겠습니다.’라는 기원을 하는 실천을 해야 한다는 식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아이에게만 시키면 아이는 납득을 하지 못합니다. 부모가 먼저 먹는 것에 대해서 어버이신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감사하게 먹겠습니다.”라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아이가 어릴 때부터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따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나이가 먹으면 남이 어려움에 처해 있으면 어버이신님께 기원해줍니다.’라는 식으로 성인해 나가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팔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손춤을 6장까지 할 줄 압니다.’ 하는 식의 지침이 적혀 있습니다. 이외에도 나이에 따라서 박자목, 제금 등의 악기를 할 줄 압니다.’ 하는 식으로 성인해 나가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신앙이나 관념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보여지는 행동에서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보고 따라하는 것입니다. 말로만 신앙하면 좋다. 해라.” 하는 식으로는 힘듭니다.

저는 교인강습을 갈 때마다 강습생들에게 이런 소년회 실천목표를 나눠줍니다. 그걸 보면 어른들도 부끄럽게 여길 만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몇 십 년 신앙을 해도 나도 못하고 있는 것을 중학생까지 해야 하는 것이 이렇게 많구나.’ 하고 말입니다.

교회에서도 그렇고 어른들이 등한시하고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것들을 부모도 자녀도 교회에 자주 오고, 일상생활 속에서 신앙적인 실천을 행동으로 반복하면서 자녀들에게 신앙을 원활히 전해갈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이번 여름캠프는 교회가 아닌 밖에서 부모와 함께하는 즐거운 여름캠프로 계획을 했기 때문에 용재, 신자여러분들께서는 특별히 관심을 가지시고 어린이, 학생, 부모가 같이 이번 여름캠프에 많이 참가해서 신앙을 전해 가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간단하게나마 이것으로 저의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