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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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68

 

 

옆집 할머니 이야기

 

박지수

 

작년에 정신신상을 앓는 옆집 할머니 이야기를 여기에 쓴 적이 있었다. 작년에는 그렇게 넘어가고 올해는 이젠 괜찮을까? 올해는 별일 없이 무사하려나? 우려하던 차에 동네 이장님을 만났다. 동네 이장님한테 들으니 작년에 자녀들이 병원에 모셔갔단다. 60대 중반인데도 벌써 치매가 있고, 과대망상, 주변사람들 의심하기, 환각, 환청 증세가 있다고 약을 타왔다고 한다. 그리고도 안 돼서 담장에는 살벌한 철망을 둘렀으며 집에 CCTV도 달아서 누가 뭘 훔쳐가는 지 감시한다고 했다.

할머니 댁에 CCTV를 달아요? 우와~. 차라리 잘 됐네요! 그럼 이젠 의심해서 욕하는 일은 없겠죠?” 하고는 안심하려던 찰나, 할머니의 앙칼진 욕설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래도 이젠 만성이 돼서 그러려니...하고 넘어간다. 욕을 해도 전처럼 그렇게 크게 악쓰지는 않으시고 자기 집에서 욕하니 크게 신경 쓸 일도 아니었다.

 

어느 아침에 새벽근행 후 포교소 앞길에 풀 뽑고 꽃을 심으러 나갔다. 그런데 할머니 밭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할머니가 밭을 매고 계셨다. 그 밭과 길이 바로 붙어있다. 갑자기 할머니를 만나서 놀랬지만, 짐짓 밝게 인사를 했다.

너그가 그렇게 우리 집에 소리 나는 거를 설치해갖고 내가 잠을 못자고 고생한 게 3년째 아이가. 나는 너그가 그리 안하모 아무 감정도 없다. 내가 뭣 땜에 너그한테 못됐구로 하것노? 너그가 그리 하니까 그렇지. 그래, 그 박자소리도 낮에 이런데 틀어놓으면 얼마나 듣기 좋노! 오가는 사람도 듣고, 안 그렇나? 그란데 밤에 그리 틀어갖고 잠도 못 자구로 하고, 그래가지고 서로 원수가 됐다 아이가.” ‘또 작년처럼 환청을 들으시고 퍼붓기 시작하시는 구나싶었지만 화가 나지도, 속상하지도 않았다.

저희는 원수라고 생각 안합니다. 원수진 일도 없구요.” 웃으며 말하는 나를 약간 놀란 듯 쳐다보더니 그래? 그라모 됐다.”하시고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이런 낮에 틀면 듣기 좋다는 말씀이 나온 김에 나는 신악가를 앰프로 조금 더 크게 틀고 신나게 히노끼싱 하였다.

 

그 며칠 뒤에 한 밤중 잠결에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는데, 한창 깊이 잠들었던 터라 꿈결같이 느껴졌고 바로 다시 잠들었다. 그런데 아침에 나가보니 현관문에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풀과 떨어진 작은 꽃잎 같은 것이 마구 흩어져 있었다. 문 중간까지 붙어있기에 이상하다. 간밤에 비바람이 심하게 불었던가? 빗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이상하네.’싶었지만 물로 청소하고 쓸어내었다.

그리고 그 이틀 뒤 저녁 근행 후 아직 신전에 있는 데, 욕하는 할머니 목소리가 들려서 소장이 나갔다. 문을 여는 순간 할머니가 뭔가를 뿌리는 바람에 머리와 온몸에 뒤집어썼다. 대충 털고 들어오는데 보니 머리에 굵은 소금들이 박혀 있고 얼굴 목에도 소금이 묻어있었다. 현관 입구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소금 한바가지를 뿌리고 뭐라 뭐라 욕하면서 가셨다.

당신, 어젯밤에 오줌 쌌나 본 데~. 소금 뒤집어 쓴 거 보니. 큭큭큭” “그랬나?”하며 둘이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나가 보았다. 현관 입구에는 풀무더기와 꽃가지들 그리고 뭔가 모를 크고 작은 것들이 흩어져있었다. 밤이라 잘 보이지 않아서 대충 쓸고 들어왔다.

다음날 아침에 다시 나가 봤더니 풀과 고춧가루 같은 것이 흩어져 있었다. ‘~ 그럼 자기 집 음식물쓰레기를 갖다 현관문에다 덮어씌운 거였나? 설마??’하고는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제야 어젯밤에 무엇을 뿌리고 가셨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고춧가루와 시든 쑥 무더기와 소금이었다. 나름 귀신 쫒는 데 좋다는 것을 가지고 와서 뿌리고 간 것 아닐까? 좀 더 있으면 마늘도 갖다 뿌릴지도 모르겠다. 이왕 통 마늘이면 더 좋을 텐데^~^. 기막혀 헛웃음이 나온다. ‘거참, 어디에 있는 귀신을 쫓는다고 했는지 모르겠네.’

 

덕분에 이틀 만에 현관 물청소를 다시 하였다. 앞으로도 현관문과 계단에 물청소 자주하게 생겼다. 엊그제 현관문에 붙어있던 것도, 계단에 있던 그 쓰레기들도 태풍이 불어서 날아온 것이 아니라 할머니가 욕과 함께 퍼붓고 간 찌꺼기들이었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 똑 같은 성분이었으니까. 어버이신님께서 우리 현관에 물청소를 자주 하라고 저 할머니를 시켜서 그러시는 것일까.

 

누가 그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그 집 자녀들에게 이야기해서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는가?”

글쎄.... 그 집 자녀들이 아니까 병원 약을 타 와서 드리고, 감시카메라도 달아드린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조치를 취한다고 차마 부모를 정신병원이나 치매요양원에 넣기는 어렵지 않은가. 더구나 자녀들이 함께 사는 것이 아니니, 자신들이 괴로운 것도 아니고, 당하는 우리가 항의하는 것도 아닌 데 굳이 부모를 정신병원에 넣겠는가. 그럼 우리가 항의를 해야 하는가? 그러고 싶지 않다. 우리가 신고를 하면 정신병원으로 이송된다고 하는 소릴 경찰관한테서 들었다. 그래서는 너무 불쌍하다. 그리고 아직은 그냥 웃어넘길 만하지 않는가.

 

지은 인연이라면 당해서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이 있다.

그래, 살다보면 속수무책으로, 내가 잘못이 없더라도 그냥 당해야 하는 일이 있는 것이리라. 당해서 악인연을 넘어가는 것이겠지.

이왕 당할 거면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당하자. 즐기면서 당하자그것이 단노라는 것이겠지. 작년과 재작년에 많이 당하면서 온갖 나름의 작정을 하고 실천했지만 올해 또 저러니 우리 빚이 아직 다 갚히지 않았나 보다. 그래, 당할 만큼 당하자. 기쁘게!’ 라고 마음먹으니 또 웃어넘길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어떻든 마음 쓰러지지 않도록, 이만큼 부자유하지만 다른 일이면 어찌 되었을까 하고 단노(1901.7.15)]라는 지도말씀이 떠오른다. 신님께서는 이보다 더한 일에 비교해서 생각해보고, 자신이 지은 인연을 깨달아 단노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래, 한밤중에 시끄럽게 쳐들어오시면 문 잠그고 에어컨 켜고 자면 된다. 문에다 쓰레기를 뿌리면 다음날 물청소하면 되지. 그러면 현관이 늘 깨끗하니 좋다. 게다가 어버이신님께서는 3년 전 할머니 신상이 심해지기 시작할 무렵, 미리 에어컨도 수호해 주셨다. 한여름인데 문을 열지 못하면 에어컨이라도 켜고 시원하게 자라고... 그런 일이 없다면 전기세 걱정에 우리가 어찌 에어컨을 쉽게 켤 수가 있겠는가. 할머니가 욕을 퍼붓기 시작하면 잠을 잘 수가 없으니, 문을 꼭꼭 닫아 잠그고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을 틀고 잘 수밖에 없어진다. 어버이신님께서 시원하게 자라고 수호해 주시는 방법도 여러 가지란 생각에 감사하기까지 하다.

만약 다행히 할머니가 밤이 아니라 새벽에 고함지르면 밤중에 잠깨지 않고 푹 자니 고맙고, 저녁에 욕하면 한밤중이 아니니 잠 설치지 않아서 좋고, 아침부터 욕 듣지 않으니 좋다. 또 낮에 몇 시간 욕하고 저녁에는 조용한 날은 하루 종일이 아니니 고맙다. 감사하다고 생각하면 감사하다. 그런 일이 있지만 감사를 찾으면 감사할 일도 참으로 많다.

 

상대가 신상으로 터무니없는 모함을 하며 욕을 퍼붓는 것에 대응해 같이 화를 내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것은 길을 가다가 개가 짖는다고 같이 화를 내며 짖어대는 것과 같다. 무슨 욕을 하더라도 그건 그 분의 신상으로 인한 그분의 몫이다. 자기 입으로 자기 내키는 대로 마구 욕을 하는 데, 그것을 받아 나도 덩달아 욕을 하면 인연을 짓게 되는 것이고, 웃어넘기면 인연이 닦여지는 것 아닌가. 욕이든, 무엇이든 받으면 그대로 내게 쌓이지만 흘러 보내면 흔적도 없이 그냥 흘러가게 된다.

다만 우리가 여러 가지로 부족하여 도울 방법을 찾지 못하고 구제하지 못하니 그것이 안타깝고 어버이신님께 죄송할 따름이다.

 

이일을 두고 단노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본다.

1. 우리가 전생이나 전 전생에 지은 인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인연을 갚는 중이다. 인연이라는 중한 빚을 갚으니 마음 홀가분하고 기분 좋은 일이지.

2. 만약 우리가 지은 인연이 없다면 우리의 마음 그릇을 키워주려는 신님의 배려일 수도 있다. 용재답게 마음그릇을 키웠으면 하는 바램이 있으니 그것도 수호이고, 감사한 일이다.

3. 그것도 아니면 우리의 마음성인 정도를 테스트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테스트에 합격하면 신님께서 뭔가 커다란 선물을 주실 것이다. 지도말씀에 [보잘 것 없는 조그마한 마디에서는 작은 싹이 트지만, 큰 마디에서는 굵고 튼튼한 싹이 튼다. 굵은 싹은 여간해서는 부러지지 않는다(1888.3.8)]고 하셨으니 얼마나 굵은 싹이 트려고 그러는 것일까? 기대된다.

4. 마지막으로 이것도 저것도 다 아니라면 온 동네 떠들어서 우리 대신 전도를 해 준다고 여길 수 있다. 천리교가 이곳에 있은 지 50년이 다 되었으니 동네 분들이 모를 리는 없지만 이런 일로 천리교를 새롭게 알리는 계기가 되는 것 아닌가. 저 할머니가 정신신상이 있다는 것도 다 아시고, 우리가 막무가내로 그냥 당하고 있다는 것도 다 아신다. 천리교 선생들이 저렇게까지 욕을 듣고 괴롭힘을 당하는데 어찌 대응하는 지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이래저래 천리교를 알리는 일이 된다. 고마운 일이 아닌가.

 

모든 경우를 다 생각해봐도 역시 이 일은 수호 이상 다른 것이 없다고 여겨진다. 신님의 고마운 의도가 있으신 것이다. 3년째 당하다보니 조금은 더 단노가 되는 것 같다. 이것 역시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학생들이 숙제와 시험을 통해 성장하듯이 우리 역시 마디를 통해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마디를 즐기며 당하자고 작정을 한 다음날 아침에 눈 뜨자 자동으로 웃음이 피어나며 참 감사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간밤에 할머니가 쳐들어오지 않으셨고, 무사히 잘 지나갔구나. 감사합니다. 신님,’ 현관 앞에 나가서 살펴봐도 아무 일없이, 어제 물청소한 현관이 환히 빛난다. “, 고맙습니다. 신님! 어젯밤에는 할머니도 별일 없이 잘 주무셨나 보군요.”

아침에 일어나 감사하다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걸 보니 스스로 흐뭇하다. 지도말씀에도 [아침에 감사하다고 하는 가운데, 내일이라고 한다(1892.6.3)]하셨는데 아침에 감사하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괴로움을 당해봐야 당연하게 여기던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신님의 수호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감사를 알고 사는 삶은 밝은 미래가 있고, 행복한 삶으로 가는 길이 될 것 아닌가.

그 뒤로 한 열흘이 지났지만 옆집 할머니는 쥐죽은 듯 조용하다. 처음에는 혹시 누가 병원에 모시고 가셨나, 무슨 일이 있으신 가걱정이 되어서 밤에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불이 켜져 있다. ‘아무 일 없으시구나, 건강하세요. 할머니.’ 그 뒤로 아직까지는 아무 일 없이 조용하게 지내고 있다. 그렇게 감사한 여름날들이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