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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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66

주고받기의 균형

 

박지수

 

사람은 누구나 줌으로써 더 큰 기쁨을 느낀다. 주는 행위는 자존감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라도 주는 자리에 서고 싶어 하지, 받는 자리에 서고 싶어 하지 않는다.

주는 자리는 보통 부모의 자리, 스승의 자리, 부자의 자리. 가진 자의 자리다. 그것이 물질이건 지위이건 지식이건 권력이건 뭐라도 조금 더 나은 형편과 위치에 있는 사람이 주게 된다. 이에 비해 받는 사람은 대개 자식이나 나이가 어린 사람, 배우는 사람, 가난한 사람, 지위나 권력이 낮은 사람이다.

그래서 주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우월감이나 자만이나 교만한 마음이 생기기 쉽고, 받는 사람은 자칫 기분이 나쁘거나 비굴한 느낌이 들고, 자존심이 상하거나 거지가 된 것 같은 굴욕적인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뭔가를 받으면 그에 상응한 뭔가로 보답을 하고 싶어 한다. 물질로 할 수 없다면 다른 무엇을 가지고서라도 대가를 치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셈이다. 내가 물품이나 금전을 도움 받으면 상대에게 고맙다고 절을 해야 하고, 언젠가는 이 은혜()를 갚아야지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늘 받기만 하다보면 그런 마음도 어느새 사라지고 거지가 된다. 자존감이 떨어지고, 점점 더 쓸모없는 인간으로 변해간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는 주고받기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원만하고, 좋은 인간관계가 유지되고, 스스로 자존감을 지키고, 상대방의 자존심도 지켜주기 때문이다. 주고받는 것은 배려이며, 그것은 곧 구제의 현장에서도 중요한 포인트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병원에 수훈을 전하러 갔다. 아프고 굳은 몸에 온기와 위로를 전하는 따스한 어루만짐, 가벼운 마사지를 해 드리고 나서, 병을 통해 더 행복하고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수훈을 전했다. 그러자 그 분이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이렇게 고맙게 기도를 받고도 내가 줄 거라곤 이거 밖에... 이거라도 먹어요!"

하며 두유를 내미신다. 함께 간 일행이

"아닙니다. 두셨다가 할머니 드셔요! 저희는 괜찮습니다."

하며 사양을 하는 데

"할머니, 주세요~ 잘 마실게요. 고맙습니다!!" 

할머니의 내민 손이 무색하지 않도록 내가 밝은 목소리로 냉큼 받자 할머니 얼굴이 환해진다. 그 할머니는 마음을 위로받고 건강을 빌어주는 기도까지 받자 고맙고 기쁜 마음에 자신도 뭔가를 내놓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을 받아주지 않으면 상대는 거절당한 셈이 된다. 누구라도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게 되면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서 내민 것인데 자신의 마음을 거절당하면 무안하고 조금은 자존심도 상할 것이다.

물론 상대가 내민 것이 내게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것이라서 사양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생각 바꾸면 그것을 받아 두었다가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 되지 않는가. 내가 받은 걸 내가 다 먹거나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상대의 호의를 무시하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혜택마저도 막아버리게 되는 꼴 아닐까. 좋은 뜻으로 주는 것은 잘 받아주고, 또 그것을 필요한 곳에 나눠준다면 준 사람도, 받은 나도, 그것이 필요했던 사람도 모두 기뻐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이것이 곧 서로돕기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누군가 차비를 보태 주면서

이거, 신님 돈인데 잠시 내게 맡겨진 것이니 나눠 씁시다. 세상에 내 것이 어디 있습니까? 다 신님 돈이죠.”

한다. 때로는

신자분이 신님께 올린 돈인데 어디 내 돈입니까. 신님 일 하는 포교사가 써 주어야죠. 그래야 그 사람에게 덕이 될 거 아닙니까.”

하시며 돈을 내밀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맞다! 정말로 대물차물의 리를 안다면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겠구나. 이 길의 가르침은 정말로 훌륭하다!’고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받는 사람의 입장을 배려해 주는 마음이 참으로 고맙게 느껴진다.

가끔 만나는 부부 시인이 있다. 그 분들은 벌이가 거의 없는 데도 늘 풍요롭고, 충만한 기운이 감돈다. 그 집에 갈 때마다 무엇이든 챙겨 주시고 때로는 일부러 불러서 나눠 주기도 하신다. 그러면서 건네는 말이

이건 내가 잠시 맡았다가 지수님에게로 공간 이동시키는 것이에요.”

하셨다.

필요한 사람에게 공간 이동이라……. 그런 마음씀씀이에 감동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이 분 댁에는 마치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화수분을 가지고 계시는 것 같다. ‘이 세상 만물을 모두 빌려 받아쓰는 것. 내 것은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몸소 실천하시는 게 아닌가.

 

요즘 읽었던 삼국지 강의에서 조조와 한나라 황제 사이에 일어난 일화가 생각난다.

(전략) ……

황제를 더욱 감동시킨 것은 조조가 그를 위하여 일용품을 제공할 때 '국가의 물건을 반납한다.'는 방식을 취한 점과 [상잡물소上雜物疏]를 올린 점입니다. 조조는 이 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물건들은 모두 선제께서 신의 조상들에게 하사하신 것입니다. 선제께서 신의 조상들에게 하사하신 물품들은 선제께서 은총을 베푸신 것이라, 신의 조상들은 집안에 모셔두고서 지금까지 감히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생활이 불편하시고 신 또한 국가에 대하여 아무런 공적이 없으니, 어떻게 감히 집에 남겨두겠습니까? 도리상 마땅히 돌려드려야만 합니다."
이 방법은 정말 근사합니다. 누군가를 도울 때는 받는 사람이 도움을 받아 신세를 졌다고 느끼지 못하게 해야 하며, 다른 사람이 자신의 도움을 받았음을 일깨워서는 더더욱 안 되는 법입니다.
물론 신하가 황제에게 물건을 보낼 때에는 예로부터 '부모를 섬기고 공경하듯이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때 신하가 '섬기고 공경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충분히 체면을 세워주는 셈이 됩니다. 그런데 조조는 뜻밖에 '반납한다!'고 말했습니다. '반납한다는 것''섬기고 공경하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이 '섬기고 공경한다'고 했다면 그 물건은 당신의 것이라는 뜻이고, 황제도 당신에게 신세를 진 셈이 됩니다. 그러나 반납한다는 그 물건이 원래 황제의 것임을 의미하므로, 조조는 전혀 호의를 베푼 것이 아닌 셈이 됩니다. 황제는 부끄럽지 않게 그것을 받고 조조도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한 것이 됩니다. 이것이 제대로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모습입니다. 은혜를 베풀면서도 베푼 듯이 보이지 않았으니 조조는 정말로 훌륭합니다.

(삼국지 강의, 이중텐지음, 김영사출판, p153.)

 

조조가 상대방을 도울 때는 도움 받은 사람이 신세를 졌다고 느끼지 못하도록 해야 하고, 도움 받았음을 일깨워서는 더더욱 안 되는 법이라는 데까지 지혜를 얻은 것도 참 대단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 길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히노끼싱. 즉 살리어 주시는 신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베풀고 나눈다는 것이다. 원래 이 세상 모든 것은 신의 대물, 차물이라고 한다. 어버이신님의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내 것이란 없으며,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속한 것도 아니다. 단지 어버이신님께서 우리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모든 것을 빌려주신 것이다. 그렇기에 본래 주인이신 어버이신님의 뜻에 맞게 써야 한다. 그것이 곧 기쁘게 쓰고, 살려 쓰고, 행복하게 써서 남을 편안하고 행복하고 즐겁게 하는 것 아닌가.

언젠가부터 나도 나눌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나눈다.’는 것을 삶의 지침으로 정하고 있다. 그래서 뭐라도 나눌 수 있는 물건이라도 생기면 재빨리 나누려고 노력한다. 그럴 때 항상 생각하는 것이 상대방이 도움 받아 자존심이 상하거나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일이다. 오랜 세월 동안 말단 포교사로서 남에게 많은 것을 도움 받았기 때문에 생겨난 지혜일지 모른다.

그래서 운 좋게 뭔가가 생겨서 나눌 때면

제가 필요 이상으로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요. 신님은 제가 욕심 부려서 쌓아놓는 것을 싫어하시거든요. 그래서 나누는 거예요. 쌓아 놓으면 제가 혼나요. 그래서 제 마음 편안하려고 나누는 거랍니다. 제가 하나 필요한 데, 어쩌다가 하나 더 생겨서 나누는 것뿐이랍니다. 잘 받아주시면 제가 더 고맙죠.”한다.

필요 이상으로 생기는 것은 주변 사람들과 나누라는 뜻이 아닌가. 아니면 잠시 맡았다가 다른 데로 보내라는 신님의 심부름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누는 일이 생색내는 일이 되어서 안 되며, 거만해서도 안 되며, 뭔가 대가를 요구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나누어주는 것보다 받아주는 마음이 더 큰 사랑일 때도 있기 마련이다.

 

나눔은 전염성이 강한 것 같다. 내가 나눠주면, 상대도 뭔가로 보답하려고 한다. 그래서 사랑의 따스한 온기가 올라간다. 이렇게 마음을 서로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내가 선 자리, 내 주변 전체가 따스하게 변하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된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이런 일들이 일상으로 자주 일어나 서로돕기가 생활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가지 물건도 서로 나누고 나누고, 또 이쪽에도 저쪽에도 나누어 즐겁게 지내는 것이 하나 리의 토대, 리의 토대. (1896.5.20)

세계에서 서로서로 도우고 살라고 말한다. 안에서 닫혀 있는 리가 없도록. (1896.8.5)

할 수 있는 대로 보살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각자 물건을 나누어 주면 낙오하는 예는 없다. (189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