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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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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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월차제 신전강화

 

말 한 마디를 무겁게

 

  

박일녀(사천교회장)

 

 

반갑습니다. 잠시 한 말씀 전해드리겠습니다.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4)

 

얼마 전에 우리교회 부인회 기획위원들이 꽃구경을 하러 갔다 왔습니다. 1주일 됐습니다. 꽃들이 너무 예쁘게 피어있었습니다. 요즘 차를 타고 다니다, 산과 들에 나무색을 보면 눈이 참 시원해지고 마음도 상쾌해집니다. 잠시 걸을 일이 있어서 걸어도 발걸음도 가벼운 계절입니다. ,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해서 모든 자녀들이 부모님들에게 1년에 한 번이라도 효도를 하려고 하는 좋은 계절이기도 합니다.

꽃구경 가서 보니 꽃들이 참 예쁜데, 그 중 장미향이 너무 좋았습니다. ‘인공으로 만든 향수가 아무리 좋은 냄새를 풍긴다 해도 이런 향기를 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향기를 맡으면서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어버이신님의 수(), (), ()의 이치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 고마움·감사함을 얼마나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가?’라고 저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여러분 중에는 항상 너무 감사함을 느끼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저 그런 매일의 일상이니까.’ 하고 지낼 수도 있겠지만, 저는 평소에 감정이 무뎌서 그런지 너무 감사하다. 고맙다.’ 하는 감정에 북받치는 경우가 잘 없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여러 가지 냄새가 있습니다. 향기로운 꽃냄새, 미각을 유혹하는 맛있는 음식냄새, 똑같은 향수라도 코를 찌르는 독한 향수냄새, 지독한 신발냄새, 숨 막히게 하는 배기가스냄새 등등 수많은 냄새가 있습니다. 평소에 우리가 의식을 하지 않고 있는 냄새도 아주 많습니다.

그 중에 사람냄새는 어떨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누구나 마음의 냄새가 있습니다. 까닭 없이 챙겨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까이 오면 멀리 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무의식중에 냄새를 감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냄새를 가지고 스치고 있습니다. 마음의 냄새가 꽃향기를 풍길 수도, 악취를 풍길 수도 있는 것은 마음 씀씀이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가장 미움 받는 냄새의 근원은 남에게 악취를 풍기며, 결국에는 자기가 사는 세계를 스스로 좁히는 꼴이 되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멀어져 갑니다. 좋은 냄새를 풍기고 싶거든 배려를 먼저 생각해봐야 합니다. 꽃향기가 사람을 즐겁게 하듯 좋은 냄새를 풍기는 사람은 가족, 친구, 동료들을 즐겁게 합니다. 주위가 밝아지면 자신 또한 즐겁습니다. 평소에 나는 어떤 냄새를 풍기고 있을까? 자신의 냄새는 어떤 것일까? 하고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해봅니다.

 

말 한 마디를 무겁게

 

얼마 전에는 스마트폰으로 어떤 분이 좋은 글을 하나 전송해왔습니다.

어떤 작은 마을에 스님이 한 분 계신데 어떤 부인이 혼자 사는 집에 그 스님이 매일이다시피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매일 그렇게 드나드는 걸 보고 동네 아낙들이 모여서

저 여자는 스님과 바람이 났다.”

라고 수군대는 가운데 오랜 시간이 흘러 그 여자가 죽었습니다. 죽고 나서 보니 그 여자가 암으로 투병을 하다 죽었는데, 그 스님이 기도를 드리러 그 집에 드나들었던 겁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동네 여자들이 자신들이 잘못한 것을 뒤늦게 깨닫고 스님에게 찾아가서 자신들이 오해했던 바를 이야기하고 스님에게

저희들이 사죄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 스님이 하시는 말씀이

나에게 죄송할 건 없는데 자신들의 잘못을 용서받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그 돌아가신 분을 화장하고 난 후에 뼛가루를 뿌린 자리에 쌀겨를 가지고 가서 뿌리고 오세요.”

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 여자들이 쌀겨를 뿌리고 와서 스님에게 찾아가서

그렇게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하니까. 그 스님이 아무 동요도 없이

그 뿌린 쌀겨를 그대로 다시 거둬오십시요.”

라고 했답니다. ‘가루가 다 흩어지고 일부 날라 갔을 쌀겨를 어떻게 다시 가져오라는 것인가.’ 하고 황당해서 그 여자들이 스님에게

그 다 흩어져서 그 자리에 남아있지 않은 쌀겨를 어떻게 거둬옵니까?”

하고 물으니까. 그 스님이 하시는 말씀이

사람의 말 한 마디가 살인보다 무섭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말을 옮기게 되어 일파만파로 퍼지게 되어 있습니다. 살인을 하면 사람 한 명을 죽이지만, 잘못 퍼진 말 한 마디는 살인보다 더 무섭습니다.”

라고 했답니다.

사람의 세 치 혀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교회 신자님들은 저에게 별다른 것을 물어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다른 교회 신자분이 저에게 와서 하는 이야기가 그 분의 상급이 천리교에 오지 마라. 상급에 오지 마라. 자식들을 천리교 신앙하는 사람과 결혼시키지 마라.”라고 하더랍니다. 제가 알기로 그 신자분은 말없이 열심히 신앙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상급의 그런 말을 듣고 살도 쪽 빠질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나 봅니다. 그렇게 자신의 하소연을 하다 끝에는 자신의 상급이 불쌍해 보인다.’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누구에게 불쌍하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면 참 안 됐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길을 신앙하는 사람들은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신앙하는 마음가짐

 

얼마 전에 저희 교회 신자님 중 큰 마디를 만난 집이 있습니다. 교회장인 저의 부덕으로 만난 마디라고 생각이 되어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신자님의 자녀가 결혼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 남편이 출직을 했습니다. 겨우 32살입니다.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난 겁니다. 출직한 분의 집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입니다. 그 집안은 아들 하나 뿐입니다. 32살 아들이 죽은 겁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천리교만 다녔지 다른 종교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게 되고 난 후에 다른 종교에도 가볼 일이 가끔 생기게 됐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저의 자식이 저런 상황에 처했다면 저런 마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그 분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 장례식장에 갔는데 아들을 먼저 보낸 부모들이 울지를 않습니다. 죽은 사람의 부인만 울고 있었습니다. 그마저도 시부모들이 울지 말라고 얘기를 하니까 마음대로 울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체육대회 하던 중에 점심 먹고 앉아 있다가 쓰러져서 그 길로 죽은 거였습니다. 너무 놀랄 일 아닙니까? 그 새색시가 아는 사람 하나 올 때마다 설움이 북받쳐 울음을 터트리는데 그 시부모들이 울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발인하는 데 갔는데 그 교회 목사님이 와서 하시는 말씀이 이 사람은 하나님이 필요로 해서 데리고 갔다.” 이 사람은 행복을 내딛는 첫걸음을 떼었다.”라고 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그 부모도 찬송가책을 꺼내서 찬송가를 부릅니다. 우리 천리교와 비교해서 기독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하기도 하지만, 이런 점 하나는 본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만약 내가 저런 경우를 당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의 입장이 교회장이다 보니 어버이신님, 왜 이랬습니까?’ 하는 원망하는 마음이야 안 들겠지만 슬퍼서 눈물이 많이 나올 겁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그런 게 전혀 없더라는 겁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서 신앙에 대한 마음이 우리도 그런 마음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은혜보답의 길

 

신님의 입장에서는 어떠한 경우라도 기뻐할 수 있는 씨앗을 주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버이신님의 귀엽고, 귀여운 자녀들이기 때문에 기쁨을 찾아서 수호를 해주시려는 어버이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금방 잊어버리거나 익숙해지기 십상입니다. 한편, 불평이라는 것은 잊히지 않고 점점 쌓여갑니다. 불평은 끈질겨서 10, 2,30년 지난 것도 기억해내어 곱씹고 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쁨은 금방 익숙해져서 당연하게 여기고 잊게 되는 겁니다. 이 기쁨과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인연을 자각하고 기쁨을 찾아 은혜보답하고, 근행 전도와 히노끼싱을 하면 운명이 바뀌게 된다.’라고 배웠습니다.

운명이 바뀌는 것을 보면 누구나 기뻐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다, 고맙다고 생각하면 다시 은혜보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길을 걸으면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 공식을 알게 되면 이 길은 고맙다, 감사하다.’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신앙을 하였더라도 수호를 깨닫지 못하고, 기뻐하지 못해 가르침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운명은 바뀌지 않습니다.

모처럼 이 길을 신앙하고 있는데 불평만 하면서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만 그렇게 되지 않고 성인의 길을 착실하게 걸어 나가기 위해서는 교회로 단단히 이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머리로만 하는 신앙이 되어버립니다.

세상에서는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괴롭고 힘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욕심의 구렁텅이에 빠져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구제하는 것은 누구일까요? 어버이신님과 교조님께서는 누구에게 기대를 하고 계실까요? 바로 우리들입니다. 이 길이 교조님 한 분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생각하면 여기 있는 우리들이 마음먹고 남을 구제하는 길을 걷는다면 가까운 데서부터 먼 곳까지 반드시 세상은 바뀌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근행을 통해 세상의 안정과 남이 구제되기를 기원하고 수훈을 전하며 전도와 구제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인하여 과연 이 길은 고맙다.”라고 자식과 손자에게, 또 주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진정한 신앙으로 진실한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서 인연자각을 통해 전생인연을 납소하고, 좋은 운명으로 살아갈 수 있는 혼의 덕을 만들도록 같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해봅니다. 말 한 마디도 잠깐 생각하고 행동 하나에도 신앙인답게 신중하게 처신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야 잘 하고 계시겠지만 다시 한 번 자신을 되돌아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주위에서 흔히 하는 말로 나이 들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라.”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신앙하는 우리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말 그대로 말은 생각해보면서 한 마디 말이라도 좋은 말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버이신님과 교조님께서 바라시는 마음성인에 다가가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도 안 되고 여러분들도 잘 안 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교조130년제를 지나고 다시 140년제를 향해서 가는 시발점에서 어쨌든 우리들이 다 같이 마음성인 하는데 노력했으면 하는 생각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