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통권 351호 입교187년(2024년) 11월 |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
2016.06.05 08:27
추억어린 사랑을 베이다
최진만
칠 년생 쯤 되는 석류나무를 김 선생으로부터 분양 받은 지 이십여 년. 우신아파트 화단모퉁이에 정성껏 심고 관찰했던 재미가 엊그제 같다. 이맘때면 하루가 다르게 연두 빛 잎을 단 가지는 넓은 머리 공간을 독차지할 기세였다. 이른 봄엔 뿌리 곁으로 빙 둘러 흙을 파고 말린 계분과 퇴비를 듬뿍 넣고 다시 흙을 덮는 날에는 오늘처럼 꼭 비가 와주었다. 날이 개면 해살 속으로 실록의 잎은 비취색 에메랄드보석처럼 빛났다. 태풍이라도 불라치면 지지대 부목을 대고 가지가 부러지지 않게 붙들어 매기도 하였다. 흐드러지게 석류꽃이 피고 푸른 석류가 조금씩 자라는 모양을 지켜보면서 행복한 미소를 느낄 수 있었다. 해마다 가을이면 석류 알이 터지고 셀 수 없는 붉은 다이야 몬드 탐스러운 그 영롱함 새콤한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석류나무가 너무 자라 같이 이사를 오지 못했지만, 고향 언덕에 옮겨 심겠다고 다짐 했는데- 세든 아주머니께 석류나무를 잘 지켜달라고 단단히 당부 드렸는데- 문득 생각이 날 때면 찾아가 제법 고목이 되어가는 석류나무를 지켜보곤 하였다. 잘 가꾸지 않아 전처럼 굵은 열매는 맺지 못했지만 나는 그 석류나무를 사랑했다. 이사 온지 삼년이 지났다. 올해는 기필코 석류나무를 고향텃밭에 옮겨 심을 계획 이었다. 며칠 전 세든 아주머니로부터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아저씨 4층사는 할머니가 상추, 고추, 호박을 심겠다고 저도 집에 없는 사이 석류나무를 베었답니다. 어떻게 해요?” 삼십여 년 추억을 함께한 내 사랑했던 석류를 지키지 못했다. 큰 덩치 끝으로 막 새순을 틔운 잎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번호 | 제목 | 날짜 |
---|---|---|
129 | [179년09월]여름 편지 - 최진만 | 2016.08.31 |
128 | [179년08월]신앙의 눈 - 최진만 | 2016.07.26 |
127 | [179년07월]르네상스 조수미 - 최진만 | 2016.07.04 |
» | [179년06월]추억어린 사랑을 베이다 - 최진만 | 2016.06.05 |
125 | [179년05월]화해 - 최진만 | 2016.05.02 |
124 | [179년04월]봄 날 - 최진만 | 2016.04.03 |
123 | [179년03월]꽃피울 어느 날 - 최진만 | 2016.03.09 |
122 | [179년02월]힘든 만큼 희망이다 - 최진만 | 2016.01.30 |
121 | [179년01호]어머니 - 최진만 | 2016.01.11 |
120 | [178년12월]절집 앞에서 - 최진만 | 2015.12.01 |
119 | [178년11월]가을편지 - 최진만 | 2015.11.01 |
118 | [178년10월]K, 행복을 빌며 - 최진만 | 2015.10.03 |
117 | [178년09월]제자리 지킨다는 것 - 최진만 | 2015.09.01 |
116 | [178년08월]푸른 묵상의 靜寂 - 최진만 | 2015.08.09 |
115 | [178년08월]마지막 선물 - 박일순 | 2015.08.09 |
114 | [178년07월]시간의 밥 - 최진만 | 2015.07.03 |
113 | [178년06월]유월이 오면 - 최진만 | 2015.06.06 |
112 | [178년06월]삶의 질(수준) - 전병호 | 2015.06.06 |
111 | [178년05월]이별과 이별 - 전병호 | 2015.05.01 |
110 | [178년05월]봄날 오후 - 최진만 | 2015.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