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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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년05월]가족 - 박혜경

2016.05.02 09:16

편집실 조회 수:76

가 족

박혜경(진홍교회)

 

십여 년 전 제가 직장 생활을 할 때 교육을 받으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강사님께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몇 가지 적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당연히 1번을 가족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강사님께서 제가 적어놓은 것을 보시고는

, 결혼하셨어요?”

라고 하셔서, 제가

아니요.”라고 대답을 했더니, 그 분이 하시는 이야기가 자신이 여러 곳에 강의를 다녀봤지만, 아가씨가 가장 중요한 것 1순위로 가족을 뽑은 사람이 제가 처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보며 참 특이하다고 얘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 부모님은 워낙 가족의 소중함을 이야기 하셨기 때문에 저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게 달라보였던 모양입니다.

 

우리 부모님은 정말로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유난히 강조를 많이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척수경화증이라는 신상으로 하반신이 마비가 되자,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신 부모님이 개종을 하시면서 까지 아버지의 신상을 도움 받기 위해서 두 분이 노력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낳고 몸조리도 제대로 못하시고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려고 전국의 병원이라는 병원은 다 다니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천리교를 알게 되셨고, 천리교에 입신한 후 아버지는 어버이신님의 수호로 말끔히 나으셨고, 저희 삼남매는 아버지가 신상 수호를 받으셨다는 감사한 이야기를 늘 들으며 자라왔기에 가족의 소중함이 더했던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는 아버지가 출직하신지 4년이 되는 기일이었습니다. 신님의 수호로 40년 가까이 수명을 연장하신 아버지는 아무런 증상도 못 느끼시다가 우연히 병원에 들러서 폐암이라는 것을 본인은 모르셨지만 가족들이 알게 되었고, 다른 분들에 비해서는 큰 고생 없이 두 달을 병원에 입원해 계시다가 출직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늘 부지런하셨고, 가족들을 너무 사랑하셨으며 가족들에게 불편한 부분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늘 애를 쓰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출직을 하신 뒤에야 어머니가 카세트 레코더를 작동 하실 줄 모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 집은 음악을 좋아하는 가족이라 늘 집에서 음악소리가 들렸는데, 딸들이 시집을 가고 없는 동안 거의 매일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음악을 들려주시려고 아버지는 다시듣기 버튼이 없는 기계를 노래가 끝나고 나면 다시 돌리고 돌리기를 반복하시며 거의 테이프가 다 늘어나서 못 들을 정도로 음악을 틀어주시기도 하셨고, 키가 작으신 어머니를 위해 작은 선반이라도 만들어 주시고는 너무 높게 달았다는 작은 불평에도 군소리 없이 다시 어머니의 키에 맞춰서 달아드리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포교를 나오신 후에도 멀리에 계시지만, 우리들 운동회에 한 번도 빠지신 적이 없고, 잘 생기신 아버지가 학교에 나타나시면 학교에 빛이 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남에게 폐 끼치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되고, 신용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잘 안 될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외할아버지께서 출직하신 뒤 밤에 잠자리에 누워 외할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많이도 울었습니다. 11, 7살인 아이들이 우리 인생에 외할아버지 살아계실 때가 제일 좋았다고 하니 정말 요즘 사람들 말로 웃픈(웃기다와 슬프다의 합성어)이야기입니다.

 

어머니는 자식들 교육을 위해 정말 애를 많이 쓰셨습니다. 포교를 나와서 전도 다니시며 틈틈이 시간을 내서 삼남매 학교교재며, 쉽게 살 수 없는 피아노 책도 필요하다면 몸빼바지를 입고 대구에서 제일 큰 서점에 들러서 귀한 책을 사 주시기도 하셨고, 좋은 피아노 선생님도 알아봐 주시고 다른 포교소장님들은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포교와 자식교육 모두 정성을 들이셨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아버지의 금전적인 지원과 어머니의 노력으로 어려움 없이 자라왔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얼마 전에 지난 연제 때까지 내 인생에 다시없을 연제라고 하시며 큰 마음먹고 삼년 작정으로 대구역에서 전도를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역 안에서 바람을 피해 전도를 하셨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게 되어 대구역 밖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전도를 하시느라 얼굴에는 동상이 걸리고, 안 좋은 허리 때문에 힘드셨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삼 년을 달려 오셨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연제가 지났지만, 여전히 전도를 하시며 즐겁게 지내시는 모습이 참 존경스럽습니다.

 

제가 자식을 낳아 키우다보니 생각대로 부모라는 이름에 걸맞은 행동을 하기가 정말로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아버지 제사 음식을 준비하며 어머니와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어머니는 저에게 내 딸이 되어 줘서 고맙다.”고 하시고, 저는 어머니에게 저의 엄마가 되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는 잠을 청했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는 생각을 하니 부모님 생각이 제일 먼저 났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속에도 각자 떠오르는 가족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가 있으시지요?

모두들 마음속에 있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며 가족의 고마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오글거리지만 감사의 마음도 그때그때 표현을 해보고, 따뜻하고 행복한 5월의 하루하루를 보내시길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