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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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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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조탄생의 달 월차제 신전강화

 

감사함을 찾아가는 여정

      

이상봉(교회장)

 

오늘 고성교회 교조탄생의달 월차제에 참배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잠깐 한 말씀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4)

 

신의 섭섭함

 

교조님께서 탄생하신 달을 맞이해서 교조탄생제 겸 월차제를 즐겁게 올렸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시다시피 여러 나라에서 자연재해가 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조님께서는 이 세상은 어버이신님의 몸이다.’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차츰차츰 무엇이든 이 세상은 신의 몸이야 생각해 보라 (친필 3-40)

그래서 교조님께서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교조님께 우리 사는 이 세상은 얼마만큼 넓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교조님께서 우리가 두 팔을 벌리고 양 다리를 벌린 만큼의 크기이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교조님께서는 또, “이 세상 한 가운데는 열기가 있다. 우리 인간의 몸에 열기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야.”라고도 말씀해주셨습니다. ‘이 세계를 버티고 있는 것은 사람 몸에 비유하자면 뼈와 같은 리이다. 암석을 덮고 있는 흙은 사람 몸의 살과 같은 것이다. 세계의 표면에 나있는 초목은 인간 몸의 털과 비슷한 것이다. 세상에 나 있는 물길들은 사람 몸에서는 혈관과 같은 것이다. 사람은 숨을 쉬고 있지만, 세상에는 조수간만의 차이가 있다.’라는 등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단순히 이 세상은 신의 몸이야.”라고 말씀 하신 것에 덧붙여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런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나는 것에 대해서 친필에 명확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산사태도 뇌성벽력도

지진도 태풍도 월일의 노여움 6-91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이유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서 나옵니다.

이곳에서 구제한줄기를 저지당해

어떻든 갚음을 하지 않고서는 못 배겨 6-114

이 갚음 큰 신사 높은산 무너뜨릴 테니

모든 사람들은 명심해 두라 6-115

이 이야기 어떻게 생각하고 듣고 있는가

하늘에는 불비 바다는 해일이야 6-116

구제한줄기를 저지당했기 때문에 어버이신님께서 그 갚음을 하는 것으로서 지진이나 해일, 산사태와 같은 자연재해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번 일본 구마모토의 지진 때 아소신사라고 하는 큰 신사가 무너졌습니다. 이 신사는 2,300년이나 되었고, 산하가 450개정도 되는 신사의 본산지입니다. 이런 큰 신사가 무너진 것입니다. 정말 큰 산사태도 친필의 말씀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당시로 돌아가서 구제한줄기를 저지당한것에 대해 생각해보면, 당시에 교조님 밑에 계시던 세 사람이 나라중교원에 불려갔습니다. 거기서 그 셋은 너희들은 신앙을 그만둬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라중교원이라는 곳은 나라현 안의 모든 종교단체를 관장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 뒤에 이 말씀을 남기신 것입니다. 그 갚음이라는 것이 높은 산 큰 신사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느 신사라고 나와 있지는 않지만 국가권력의 힘의 강압에 의해서 신앙을 그만두게 되는 것이 구제한줄기를 저지당한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시대에 신앙하는 것에 빗대어 생각해보면 어버이신님이 하시는 일은 어떤 것이든 구제한줄기를 위한 과정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신상이나 사정을 구제받기 위해서 모여와서 구제장소인 신전역사를 하고 이렇게 모여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도 길게 보면 모두 신님이 하시는 구제한줄기의 일련의 과정이라는 겁니다. 합리적인 면을 추구하는 인간생각으로 당신들 신앙을 그만두시오. 이런 일 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오.”라고 하는 것은 신님의 일을 가볍게 보고 구제한줄기를 저지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버이신님의 섭리나 리에 대해 100% 알 수는 없지만 인간생각으로 신님이 하시는 일에 관여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구제한줄기를 저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오만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이 지금 우리가 신앙하고 있는 이 시대에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뇌성병력도 지진, 태풍, 홍수도 월일의 섭섭함과 노여움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심은 천심

 

교조님은 천연자연은 신의 몸이고 자연에서 발생하는 재해는 월일, 어버이신님의 손질이다. 섭섭함, 성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지금 이 시대에 나타나는 섭섭함의 표현은 무엇일까요? 우리 속담에도 인심은 천심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심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뜻도 있지만 남의 딱한 사정을 헤아려서 알아주고 도와주는 마음입니다.

지진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면, 지구 중심부에 핵이 있습니다. 핵은 열이 있습니다. 그 열에너지가 솟아나서 지각 판이 흔들려서 발생하는 것이 지진입니다. 교조님 당시에 무슨 지질학 같은 것이 있지도 않았고, 알고 있을 리도 없는데 지구 안에 열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겁니다. 열이라고 하는 것은 정렬이나 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 사이의 정이라는 것이 결국 남의 딱한 사정을 헤아리는 것인데, 이런 것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의 딱한 사정을 헤아려서 도와주는 마음이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이 결여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마음이 팽배해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인심은 천심이다.’라는 말에 빗대어 보면 남을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이 결여돼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깊게 생각해보면 비단 어려운 사람뿐만 아니라 생명으로서 존엄을 느끼고 마음성인이 되어감에 따라 다른 생명에 대한 존중이 늘어난다고 했는데, 이런 자연재해도 같은 사람뿐만 아니라 이 지구상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동물, 식물을 비롯한 생명체에 대한 배려심이 결여된 결과로서 지진이나 미세먼지, 황사와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만 이기적으로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 모여서 나타나는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런 걸 보고 남을 돕는 마음,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마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은혜보답

 

이야기는 바뀝니다만, 그저께는 교조님의 탄생일이었습니다. 교조님 탄생제를 본부에서 올렸습니다. 해마다 418일에는 교조탄생제를 올리고 다음날인 19일에는 부인회총회를 개최합니다. 부인회총회를 하면 진주님께서 그 자리에 나오셔서 말씀을 해주십니다. 재작년에 그 자리에서 진주님께서는 초대선배들은 구제받은 감격을 잊지 않고 오로지 은혜보답의 길을 순직하게 걸어서 이 가르침이 이 세상에 퍼지게 됐습니다. 하지만, 대를 거듭할수록 감격이나 즐거움이 없어지고 고마운 모습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은혜보답을 하려는 의식이 없어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요약하자면 이 길의 선배들이 이바지해놓은 리까지 없어지고 있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 아닌가? 그 원인을 생각해보면 인재를 키우는데 부실하게 했다는 겁니다. 초대가 구제를 받아서 은혜보답을 하기 위해 어떤 마음을 작정하고 어떻게 은혜보답의 길을 걸었는가 그 마음을 이어가는 우리들은 어떻게 걸어가는 것이 중요한가. 부모에서 자녀에게, 자녀에서 손자에게 이 길을 단단히 전해서 그에 걸맞은 신앙을 해가는 모습이 되어야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 현재의 이런 신앙의 계승의 문제는 어버이신님에게 원인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그 원인이 있다는 겁니다. 은혜보답이라는 말을 진주님께서 해주셨는데 이 은혜보답에 대해 얼마나 공감을 하고 있는가는 각자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무슨 은혜를 입었나?’ 하고 생각하고 공감이 약할수록 이런 말에 동의를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를 거듭할수록, 초대선생님은 그런 도움을 받았지만 나는 직접적으로 은혜를 그 만큼 받은 적이 없다는 생각이 팽배할수록 자녀들도 신앙을 이어가려는 의지가 없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신앙의 행태가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을 목숨이 살려지는 것만이 은혜보답인가? 그럼 그 이외의 것은 고맙지 않은가? 나날이 살아가고 있다는 데 고마움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마움을 계속 찾으려고 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떤 일이든 아무 것이든 매사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감사를 느끼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어떤 선생님은 어떤 일이든 당하면 바로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습관을 들였다고 합니다. 집에서 다니다 기둥에 머리를 받혀도 일단 감사합니다.’ 하는 겁니다. 왜 감사한가는 나중에 생각하는 겁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머리의 뼈가 부서지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라는 식으로요. 그렇게 마음을 먹는 데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무엇이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하게 되면 사람의 마음이 밝아지고 어버이신님이 들어와서 활동하기 쉬운 몸이 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천리교 신앙의 목표는 즐거운 삶을 유지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즐거운 삶이라는 것은 환경이나 물질이 풍족해지는 등 조건이 갖추어져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어떤 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고 항상 즐거운 마음, 용솟음치는 마음으로 걷는 삶이 진정한 즐거운 삶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되는 것은 고맙습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천리교의 교리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천리교의 교리들은 간단히 말하면 뭐가 고마운지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리교 교리를 공부해서 고맙습니다. 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들어야 그 교리의 값어치가 있는데, 그런 마음이 되지 않으면 어떠한 교리도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도 듣고 책도 읽으면서 우리 마음을 만들어가는 것이 신앙을 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맨 처음 생각하는 것이 교조님, 어버이신님의 의도가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려움이나 고민에서 도망가고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어버이신님, 교조님께서 나에게 이런 일을 보여주셨는가를 고민하고 그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거의 자신에 대해 반성해보기도 하고 깨달아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자신이 잘못해서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고맙다 겐씨

 

이 길의 선인들 중에 가와라마치대교회의 초대 회장인 후카야 겐지로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의 별명은 고맙다 겐씨라고 합니다. 무슨 일이든 고맙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40일 동안 끊이지 않고 비가 내리는데 이 선생이 고맙다.’라고 하니까 주위에서 왜 고마운가?”라고 물으니 “40일 동안 내릴 비가 3일 동안 내린다면 전부 다 떠내려가고 없어질 텐데 어버이신님께서 3일 동안 내릴 비를 40일 동안 나눠 내려주게 해주시니 고맙다.”라고 했답니다.

사정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던 어떤 사람이 이 선생에게 찾아갔더니 사정 때문에 괴로운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라고 하며 왜 그러냐 하면 어버이신님이 당신을 특별히 눈여겨보고 나중에 큰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 일부러 티끌을 뿌려서 티끌 투성이인 사람으로 만들었다.”라고 했답니다. ‘마치 나무의 뿌리부분에 쓰레기나 먼지 같은 것을 부어놓으면 거기서 나오는 영양분을 먹고 나무가 커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아무 것도 붓지 않으면 나무가 자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티끌을 뒤집어쓰지 않으면 안 된다. 티끌을 안 뒤집어쓰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티끌을 뒤집어쓰더라도 심이 썩으면 안 된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라는 것은 마음이 아니라 연필심과 같이 가운데를 말하는 것입니다. 심까지 썩어버리면 똑같이 티끌이나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티끌을 뒤집어쓰더라도 어버이신님께서 큰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이겨내게 되면 어떤 사람이라도 모여와서 기댈 수 있는 큰 나무가 되는 거야. 당신은 신님이 특별히 보고 계신 거야.’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 어떤 산하의 교회장이 교회가 여러 사정으로 잘 되지 않았을 때 저는 덕이 없어서 신님의 수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답니다. 이 얘기를 들은 후카야 선생이 호되게 꾸짖으셨답니다. 덕이 없어서 수호를 받지 못한다는 말은 안 된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교회를 운영하는 것을 자기 덕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 힘으로 이 길을 발전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자기의 덕과 부덕으로 얘기를 한다.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고 덕분에 이 만큼까지 왔습니다.’라고 생각하라. ‘어버이신님, 교조님 덕택에 이 만큼까지 되었습니다.’ 하는 것을 생각하라. 그러면 즐거운 마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걸 잊고 내가 한다. 내가 덕을 쌓아서 이렇게 됐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내가 하는 마음에서 부족의 마음, 걱정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마음을 버리고 어버이신님, 교조님의 수호를 나날이 즐거워하면서 걷는다면 결국에는 고마운 수호를 받을 수 있는 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사가 자기 생각대로 안 될 때에 걱정하고 괴로워하는 것보다도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을 하면서 거기에 즐거워하고 용솟음치면서 걸으면 됩니다. 그 뒤의 결과는 신님의 영역이고 신님에게 맡기면 되는 것입니다. 밝은 마음 즐거운 마음에 어버이신님이 들어와서 수호를 해주십니다.

오늘도 생각해보면 오늘 뭐가 즐겁습니까? ‘오늘 여기에 와서 근행을 보게 된 것 자체가 고맙다.’라고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 생기는 겁니다. 근행 끝나고 나면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게 될 텐데, ‘식사를 아무 탈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는 것도 덕택에 고맙다.’라는 마음이 생기는 겁니다. 이런 것들을 벗어나서 이런 일도 내 마음대로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는데 왜 안 되나? 하고 생각하면 부족의 마음이 생기는 겁니다.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습관을 그렇게 들이고 자녀들도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나는 것입니다. ‘부모가 천리교 신앙을 하니까 모든 게 고맙다, 고맙다.” 하면서 살더라.’라고 생각하게 되면 그런 게 신앙이 저절로 이어지는 가장 큰 길, 좋은 방법입니다. 반대로 천리교에서는 즐거운 삶이라고 하면서도 우리 부모님은 항상 힘들고, 피곤하고, 부족스러움에 쌓여 있으면 자녀들 입장에서는 나는 저런 길을 안 걷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이 되기 위해서 고맙고 감사한 것을 찾아내는 여정이, 신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천리교의 신앙은 감사함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그 습관을 잘 들이면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자녀들에게도 이 길을 전해서 1대에서 2, 2대에서 3대로 대를 거듭할수록 리가 깊어지는 수호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은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4)

 

* 본 신전강화는 고성교회보 홈페이지(www.tenrikyo.kr), 유튜브를 통해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