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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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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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계대제 신전강화

 

천리교 용재의 할 일

 

이상봉(교회장)

 

- 발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 몸 하나라도 엄청난 자산이고 여기에 살리어지는 은혜보답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 때부터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심어주면 감사를 알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자산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고성교회 춘계대제를 맞아 근행을 올리고, 교조님전에서 교조130년제의 제문을 읽었습니다. 이렇게 춘계대제에 참배해주신 여러분들에게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잠시 한말씀 전해드리고자 하니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4)

 

대를 잇는 신앙

 

아시다시피 올해는 교조님께서 은신하신지 130년째 되는 해입니다. 교조님은 천리교의 입장에서 보면 천리교의 길을 열어주신 분이기도 하지만, 혼의 인연으로 보면 전 세계 인류의 어머니의 혼을 지니신 분입니다.

교조님에게서 배운 가르침에 따라서 모두들 이 길을 걷고 있지만, 각자 신앙하는 성인의 정도에 따라 그 차이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상·사정으로 인해서 도움받기 위해 입신한 우리들은 도움 받은 데서 차츰차츰 성인해서 보답하고 있는 가운데, 자기 자신과 가정을 위해서 마음을 쓰고 정성을 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더 성인하면 주위 사람들을 돌보고 구제하는 데까지 노력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조님께서는 자녀 귀엽기 때문에 자기 자식도 아닌 전 세계 인류의 성인을 고대하시면서 자신의 생명을 25년이나 줄여서까지 그런 마음을 내고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은 평범한 범인(凡人)으로서는 도저히 접근하지 못하는 모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미처 거기까지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교조님이 가르쳐주신 가르침을 근거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와 남이 함께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넓히기 위해서 노력해야겠습니다.

 

요즘 사회를 보면 여러 가지로 살기가 어렵다는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인기 있는 TV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 예전에 살았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공감을 합니다. 당시 경제적으로는 힘들었을지 몰라도 행복감은 지금보다 컸던 것 같습니다. 가족, 부모·자식, 친구간 또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서로의 위치정립이 확실히 되어 있었기 때문에, 비록 지금보다 경제적으로는 힘들고 몸은 피곤할지 몰라도 행복감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었던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물질적으로 더 풍요하지만 왜 행복감을 더 많이 느끼지 못하는가 하는 것은 벌써 가정에서부터 부부, 부모자식, 형제, 친구,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떤 위치에서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죽하면 요즘 젊은 세대들은 결혼을 하지 않으려하고, 결혼을 한다고 해도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합니다. ‘자식을 낳아서 이렇게 힘든 세상을 더 힘들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다. 평생 집 마련을 위해서, 집세 내느라고 인생을 담보 잡혀서 나의 인생을 살기 싫다.’ 등의 이야기까지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선진국에서도 이런 문제들은 진작부터 대두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20세기는 물질의 시대라 하고 21세기는 마음의 시대라 합니다. 1999년까지는 물질에 가치관을 두고 잘 사는 것에 목표를 두고 살아왔다면 21세기부터는 잘 사는데 빼앗겼던 마음의 성장을 해야 되는 시대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점점 그렇게 되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물질에 사로잡혀서 돈으로 행복을 사려고 하고 진정한 행복을 느껴야 하는 가정부터 행복이 무너져가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는 종교가 해결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경제가 발전하고 선진국이 되어 가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종교의 사회적 역할이 없어진다고 하지만 오히려 이런 사회적인 문제들은 종교적으로 풀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특히, 우리들 천리교를 신앙하는 사람들은 교조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근본으로 삼아서 이런 문제를 보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교조전일화편 41편에 보면

신앙은 영원토록 계속하는 거야.”

라고 하시고 90편에는

“1대에서 2, 2대에서 3대로 리가 깊어지는 거야. 리가 깊어져서 영원한 리가 되는 거야.”

라는 교조님 말씀이 있습니다.

이 길은 신앙을 자식에게 물려줘서 함께 신앙을 하면 그것으로서 참다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을 보장받는다는 것입니다. 또 어버이신님은 부부가 이 세상을 다스리는 가르침의 근본이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악가 2절을 보면

잠깐이야기 천신의 말을 들어다오 그릇된 말은 아닐 것이니 이 세상 땅과 하늘의 본을 받아서 부부를 점지하여 왔었음으로 이것이 이 세상의 시초이니라.”

라고 나와 있습니다.

부부의 관계에 따라서 이 세상을 평온하게 다스리는 길이 생겨난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한 번만으로 끝나지 않고 출직과 환생을 거듭하면서 혼에 쌓인 인연에 따라서 운명에 따라서 만나는 사람이나 각자의 삶이 달라진다고 배우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밀접하게 맺어진 부부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상대에게 맞추어서 마음을 다스리는 노력을 서로 아끼지 않고 산다면 평온한 가정을 이루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대에게 이런 노력을 게을리 하게 되면 부부나 가정은 순탄치 못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신악가에도

두 사람의 마음을 합심하며는

어떠한 일이라도 나타나리라 (4-2)

라고 나와 있습니다.

 

현대는 마음의 시대

 

그런데 두 사람의 마음을 합심하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어느 역사학자가 얘기하기를 현대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들이 마음을 협력해서 한 가지 일을 해나가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현대사회는 점점 개인의 사회로 나아가고 이 세상을 개인 중심으로 보기 때문에, 이 세상 전체에서의 라는 개념보다는 내가 있어서 이 세상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한 가지 일을 협력을 해서 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인데, 그것을 제일 잘 할 수 있는 곳이 종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1세기는 마음의 시대라고 한 것처럼 천리교를 신앙하는 우리는 마음의 문제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세상을 접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의 시대라고 하는 것은 종교에서 마음의 구원과 치유를 위해 의지할 곳을 찾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성장할 때는 사람에 의해서만 성장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사람 말고도 자연이나 다른 것들에서도 치유를 할 수 있기도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커지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가운데서만 생길 수 있습니다. 마음의 성장은 사람으로서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사람 간에 애정을 가지고 접하는 가운데 마음이 길러지고, 거기에 영혼의 성장도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마음의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 속에서 어떻게 마음을 쓰고 애정을 주고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이 때문에 마음의 성장은 차이가 많이 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사회, 가정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볼 때 마음의 성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 몸은 어른이고 부모이지만 부모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성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유아기에 세상을 접해나갈 때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면서 그 안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정서적인 교감을 했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천차만별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릴 때 학대를 받았던 사람은 커서도 똑같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녀를 때리고 학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벌써 마음의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남에게 말을 함부로 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어릴 때 성장과정에서 그런 것들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인간관계에 있어 당연한 것으로 인식을 하게 됩니다. 어릴 때 사랑과 배려를 받은 어린이들은 남들에게 사랑을 베풀 줄 알고 배려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그런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어린아이들끼리 싸움을 하는 것을 보면, 힘이 세서 때리기만 하는 아이는 그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맞는 사람의 고통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맞아본 아이는 그것이 얼마나 아픈 줄 알아서, 남을 때리는 것을 주저하게 됩니다. 역시 그런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고 애정을 주고받아가면서 마음이 자란다는 것입니다. 혼자 내버려두어서는 마음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어버이마음을 간직하고

 

생각해보면 사람의 생명은 부부, 부모가 없었으면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목숨은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로서 이 세상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나는 것도, 잉태하는 것도 월일, 출산케 하는 것도 월일의 보살핌이야.’라고 하신 것처럼 부모가 소중하게 키우려고 노력할 때, 어버이신님의 어버이마음이 거기에 활동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수호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식에게 어버이마음을 가지고 소중히 키우려고 하는 것처럼, 남들에게도 어버이마음으로 접해 가면 거기에 어버이신님의 수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식도 함부로 대하고 남도 함부로 하면 과연 거기에 어버이마음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마음속 깊이 우리가 태어나게 된 것은 어버이신님의 깊으신 의도에서 태어나게 됐고, 누구나 각자 각자 하나의 혼을 가지고 태어난 생명이라고 인식해야 합니다. 천리교를 신앙하는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키워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친필에

어떤 곳에서 오는 사람이라도

모두 인연이 있기 때문에 4-54

라고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감사와 은혜보답

 

우리들은 모두 어버이신님으로부터 으뜸의 인연 즉, 즐거운 생활을 시키고 싶다는 의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부부, 부모자식이 살아간다면 자연스럽게 가족이 화목해지고 마음의 유대감이 길러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족 간의 유대가 깊어지려면 각자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면서 서로 도와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식들에게 먼저 서로 감사와 은혜보답의 마음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불행이라고 생각하고, 요즘 흔히 하는 말로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느니,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느니하며, ‘, 우리 부모는 나에게 흙수저 밖에 물려준 게 없어서 평생 남을 위해 노예처럼 일하면서 살아야 하는가.’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감사의 마음보다는 부족·불평의 마음이 가득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길의 가르침을 배운 우리들은 육체를 빌려 받은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자산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육체를 빌려서 생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 몸 하나라도 엄청난 자산이고 여기에 살리어지는 은혜보답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 때부터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심어주면 감사를 알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자산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을 대하는 마음가짐

 

어느 뇌 과학자가 인간의 진화는 전두엽의 발달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전두엽은 머리의 앞쪽에 위치하는 뇌의 부분인데 양쪽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한쪽은 이성의 기능을 관장하고, 다른 한쪽은 창조적인 기능을 관장합니다. 전두엽을 발달시키는 것이 인간의 발달사와 같다는 것입니다.

전두엽은 유아기에 가장 많이 발달한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어울려서 놀아야 합니다. 사람을 만나 어울리는 활동을 많이 해야 전두엽이 잘 발달한답니다. 아이들끼리 어울려 놀면서 어떤 자극을 주느냐에 따라서, 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경쟁심을 북돋게 되고 그것에 의해서 인류가 발전해 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극한의 상황에 처하게 되면 경쟁 상대를 쓰러뜨리거나 죽이거나 하는 충동을 갖게 되는 데 이런 것도 전부 전두엽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전두엽의 발달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사람이 잘 조절하면서 살아가게 되면 우리에게 충분히 유익한 생활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조절하지 못하면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더 끔찍한 상황을 만들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접하는 어른들이 잘못하거나 환경이 좋지 못하면 그 아이들도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라면 그 아이는 폭력적으로 됩니다. 유아기에 접하는 사람이나 경험에 의해서 사람 한 명의 운명이 크게 좌우되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을 하는 우리는 어린 아이에게도 항상 사랑의 마음으로 대해야 되고 감사하게 되는 상냥한 말씨를 쓰면서 접해야 됩니다. 그것이 사람을 구제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아이에게 항상 호된 말로 나무라고 말 안 듣는다고 체벌하게 되면 전두엽이 벌써 그 쪽으로 질이 나게 돼서 학습능력이 각인되는 것입니다. 어쨌든 아이에게는 상냥하게 대하고 좋은 말씨와 사랑의 마음으로 접해야 합니다. 아이가 잘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면 아이는 이럴 때는 이런 식으로 해결해야 하는구나. 하고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런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사람들을 돕고 구제하는 데 적합하도록 좋은 운명으로 바꿔주는 것입니다.

 

천리교 용재로서의 역할

 

어떤 정신과 의사가 현대인의 불안의 근원이 개인으로만 자신을 의식하지 않고 전체와의 연관성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좋을지 모르는 곳에 있다고 하면,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부모와 자식·부부라는 혈연적 관계를 재정립해주어야 하는데, 이것에 가장 좋은 것이 종교가 아닌가.”라고 얘기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사람들이 종교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을 요구하는 시대로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만큼 마음을 어디에 의지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천리교를 신앙하는 우리들의 역할이 큽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자각하고 사는 것이 자기 존재 의미도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삶이 남에게 얼마만큼 큰 삶인지 반문하면서 살게 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자체에 진심으로 기뻐할 줄 알게 될 것입니다.

가장 큰 우리의 역할은 교조님의 도구 중의 한 사람으로서 쓰여지는 용재가 되어 다음 세대의 생명을 키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용재의 역할을 하는 데 있어서 사람마다 그 방법은 다양하고 또 능숙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거기에 미숙한 사람이 있더라도, 우리가 내는 마음이 어버이의 마음에 가까우면 그 마음이 우리 영혼에 새겨진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는 것은 사람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모든 생성하는 자연계에도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경외심으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친필에

차츰차츰 무엇이든 이 세상은

신의 몸이야 생각해보라 3-40

라고 하셨습니다.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눈높이를 낮추는 것입니다. 1988년도를 살아가는 TV드라마를 보며 향수에 젖어서 그리워하는 이유도 당시의 사람들은 눈높이가 낮았기 때문에 행복을 더 많이 누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월일이 인간을 창조한 것은

즐거운 놀이를 보고 싶은 까닭에 14-25

이 뿌리를 진실로 캐게 되면

참으로 믿음직한 길이 될 것인데 5-66

이 길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는가

만가지를 서로 도와갈 뿐이다 13-37

그렇게 하면 신도 진실로

확실히 맡아서 섭리하리라 13-69

모든 자녀들은 귀엽기만 해서

누구도 결코 차별은 없지만 15-69

라는 친필 말씀들이 있습니다. 이런 말씀 속에서 어버이가 자녀를 보는 자녀 사랑이 넘치는 말씀을 참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어버이의 심정에 다가가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들, 용재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교조130년제를 향해서 열심히 걸어왔습니다. 앞으로 일주일 후에는 교조130년제가 터전에서 열리게 됩니다. 3년 동안 활동이 미진했다고 반성하는 점도 많이 있지만 연제가 끝나더라도 참된 삶의 길을 교조님 모본에서 구하고, 어버이신님을 빗자루로 삼아서 각자의 마음의 티끌을 청소하고 또 세상 사람들이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길에 더 마음을 가다듬어서 매진했으면 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4)

 

* 본 신전강화는 고성교회보 홈페이지(www.tenrikyo.kr)와 유튜브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